15. 오랑캐의 도의 (3)
“이러한 연고로 감히 상께 망측한 청을 올리게 되었나이다. 신이 부덕하여 감히 지극한 존엄에 누를 미치게 되었으니 그저 대죄할 따름이옵나이다.”
입궐한 대원군이 고개를 조아렸다.
박규수의 예상대로 청국에서 글이 도착한 것은 사흘 전이었다. 딱히 조선을 핍박하는 모양새를 내고 싶지 않았던 것은 서태후든 마신이든 마찬가지였기에, 내용을 보면 대체로 위무하는 뜻이 주를 이루되, 그 안에 뼈는 확실하게 들어있었다.
‘아, 조선왕 형(고종의 휘)은 들으라. 일찍이 선대께서 천명을 얻으시매, 덕으로써 효유하고 무위로써 다스리셨다. 그럼에도 불측한 무리들이 있기에 처음에는 타이르고 다음에는 꾸짖었는데, 그러고도 이언입죄(以言入罪. 문자의 옥)하는 무리들이 있어 눈물을 삼키시며 벌하셨다.
지금 조선왕 그대는 나라에 널리 덕을 펼치고 있으니, 사방 천지가 어지러운데 오직 동쪽 번병(藩屛)만이 평온하다. 아아, 이 평온을 난언(亂言) 한 마디로 해치려 하는 괘씸한 무리가 있으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짐은 조선왕이 능히 이를 통어(統御)하여 근심될 바를 뿌리뽑을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것도 예상했던 대로 자문(咨文)이 오는 대신 칙서(勅書)가 직접 내려왔으니, 온건한 말과는 반대로 그 압박은 더욱 위중하였다. 게다가 사신도 어디 말직의 사람이 아니라 사교(邪敎, 태평천국)를 물리치며 나름대로 명망을 쌓은 대신 잉한(英翰)이 직접 왔으므로 말의 무게가 더욱 묵직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저들이 말하는 대로 칭제를 운운하는 유생들에게 죄를 주었다가는 필히 나라의 인화(人和)가 깨지고야 말 것입니다. 상께서는 잠저에 계실 때부터 어질고도 밝은 성품으로 능히 뭇 사람을 어루만지셨으니, 부디 이번에도 깊은 은덕을 베푸시어 청국 흠차대신에게 아국이 청국을 거스를 생각이 없음을 깨닫게 해주시기를 청할 따름입니다.”
깊게 생각하던 임금이 옥음을 발하였다.
“어제 고하였던 장계취계(將計就計)의 계책을 말함이오?”
머리 맞대고 고민하던 대원군과 박규수가 내어놓은 대책이란, 왜국이 획책한 이이제이의 꾀를 그대로 되돌려주자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이런저런 핑계로 명치(明治) 연호를 쓴 국서를 받을지에 대해 답을 회피하고 있던 차, 이제 어쨌든 청국에서 칙서가 내려왔으니 이를 명분으로 내세워 ‘어쩔 수 없이’ 국서를 받지 못하겠다고 둘러댄다. 그러고서 청국에는 왜국이 참람되이 ‘천황’을 자칭하니 맞대응하고자 잠시 망령된 칭호를 쓰자는 말을 일시의 편법으로 몇몇 선비가 내세웠던 것이라고 다시 둘러댄다. 여기에 입에서 녹는 것처럼 사람 마음도 녹이는 달달한 어제 군밤까지 더해진다면, 어찌 조선이 진심을 보인다고 짐작하지 않겠는가!
어쨌든 청국이 보기에는 지난 정축년(1867) 조일 양국이 맺은 조규가 있으니 꽤나 그럴듯하게 들릴 얘기였다. 소란의 모든 책임을 일본에 뒤집어씌우게 되면 흠차대신 마신이도 번국의 반심(叛心)을 막지 못하여 북경까지 근심이 이르게 한 혐의를 벗을 수 있은즉 쉬이 찬동할 것이라 두 사람은 생각하였다.
그렇게 되면 북벌을 공식적으로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봉선이니 교체(郊禘)니 주접 떠는 무리들까지 억누를 수 있게 되므로, 대원군은 아버지로서 아들을 돕지는 못할망정 외려 도움을 청하고 있음을 부끄럽게 여기면서도 이러한 계책을 바쳤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꾀한 바를 실제로 옮길 때가 되니 임금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그런데 이대로 하게 되면 왜인들은 필히 우리에게 원한을 품게 될 터인데, 이는 어떻게 할 생각이오?”
물론 대놓고 국서를 받지 않겠다 공언하는 것보다는 덜하겠지만, 어쨌든 선량한 속방 조선에게 헛바람 불어넣는 일본이라는 모양새가 나오게 된다.
“원한을 품는다 한들 왜인들이지 않습니까. 어차피 왜인이라는 족속은 간교하여 원한을 품든 품지 않든 이익이 되면 붙고 그렇지 않으면 해치려 들 자들입니다. 지금 성상께서 널리 자강하는 뜻을 밝히시어 국운이 날로 창성하고 있거늘, 섬 오랑캐들이 어찌 감히 우리에게 대들겠습니까?”
그러나 귀남이 생각하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그가 무식쟁이라지만, 조선이 어느 나라에게 망하였는지를 모를 리 없었다. 그런 나라에 마음의 빚을 지운다면 모를까, 오히려 원수가 된다면 어찌 뒤탈이 없을까. 게다가 지금의 일본은 그가 보기에 딱히 조선에게 잘못한 일이 있지도 않았다.
망설이는 아들의 얼굴을 살짝 고개 들어 보았는지, 대원군이 재차 재촉하였다.
“물론 이는 속임수를 속임수로 갚는 격이니 군자의 계책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만방이 오랑캐 천지인데, 어찌 도의를 따지겠습니까. 속이고 빼앗을지라도 이익이 된다면 따라야 하니, 부디 넓게 보고 헤아려 주시옵소서.”
“오랑캐도 사람이오. 오랑캐에게도 지키는 도의가 있으니, 우리가 오랑캐를 금수와 같다 하지만 실은 금수보다는 나음이 있소. 헌데 정작 우리가 오랑캐보다 나음을 자처하면서 금수와 같은 짓을 하면 어찌 되겠소이까. 그리 되면 진실로 천지에는 금수만 남게 될 것이외다.”
실은 엊그제 대원군이 찾아와 작금의 정황과 대책을 들려준 이래 계속 귀남의 머릿속을 떠돌던 생각이었다.
정말 무더운 여름이면 ‘민속과자’ 장사도 잘 되지 않는다. 그럴 때면 되지도 않는 장사 하면서 진땀만 빼느니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어디 공원 나무 아래 응달에나 모여앉아 다른 노인네들과 한담 나누며 소일함이 외려 낫다.
그렇게 사람이 모이게 되면 싸움도 곧잘 벌어지는 법이다. 애초에 무더위가 한창일 무렵이면 응달이든 양달이든 바람부터가 물기 가득한 열풍이니 돌부처끼리 모여 있어도 절로 치미는 짜증을 이기지 못할 때다. 헌데 생각해보면 이상한 것이, 노인네들끼리 보기 흉하게 싸움을 벌인다 해서 구경하러 가 보면 싸우는 이들은 귀남 자신처럼 팔자 사나워 말년까지 빈궁한 사람들이요, 그 전에 물러나는 사람들은 집에 봉양하는 자식 하나라도 있는 사람들이었다.
생각해보면 지금 청일 두 나라와 조선이 그런 가산 곤궁한 노인네 꼴 아닌가. 가멸찬 재산도, 믿음직한 자식도 없이, 그저 알량한 자존심뿐이다. 그러나 그 자존심마저 꺾이게 되면 정말로 남는 것이 없으므로 오히려 양보하려야 할 수 없다. 차라리 무언가 베풀 만큼 여유가 생긴다면 서로 간섭하려 할지언정 너 죽고 나 죽자 하는 식으로 달려들지는 않겠지만, 지금의 흉흉한 시국에서는 그럴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면 이렇게 자존심 싸움이 격화되어 정말 어느 한쪽이 끝장을 보자는 식으로 폭주해버리지 않게 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그나마 좀 더 힘 세 보이는 쪽에 붙어서 다른 쪽을 눌러버리는 것은 귀남이 보기에 답이 아니었다. 당한 사람이 원한을 품게 되면, 그나마 힘센 자보다는 그보다 더 얄미운 자신을 먼저 때리지 않겠는가.
“내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는데, 한 번 들어보도록 하시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듣던 대원군도, 의외로 그럴듯한 생각이라 여겨져 꽤 솔깃했다. 말을 박규수에게 전하니 박규수도 역시 주상이시라며 찬탄하고, 이것저것 부족한 부분을 메꿔서 다시 계책을 헌상하니, 이제 남은 것은 행동으로 옮기는 일 뿐이었다.
조선왕이 부른다는 소식을 듣고서 마침내 대국의 뜻대로 되었거려니 여기며 의기양양하게 궁에 들어선 잉한은, 잠시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마신이를 대동하고 국왕이 있다는 전각에 들었을 때, 반대편에 앉아 있는 일본국 사절과 주조선 공사를 맞닥트린 것이야 그렇다 치자. 자신들을 반갑게 맞이하면서도 밤 굽기에 열중하고 있는 조선왕은 대체 무슨 생각이라는 말인가?
아연한 표정은 일본 측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뒤따르던 마신이가 조용히 말했다.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속을 알 수 없으니, 계한(季漢)의 소열(昭烈)이 천둥에 젓가락을 떨어뜨린 고사를 잊지 마시오.”
하지만 곧 밤이 모두 익어서 뜨끈뜨근한 것이 모두 앞에 놓였을 때, 잉한도, 반대편의 이와쿠라와 카츠도 한 가지는 결론지을 수 있었다.
“정말 대단합니다! 밤처럼 흔하디흔한 물건으로 이런 맛을 내시다니, 달인의 경지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군요!”
이와쿠라는 찬탄하고, 대국의 체면으로 저렇게 경망스럽게 맞장구를 칠 수는 없던 잉한도 ‘매우 훌륭하다’며 짤막하지만 묵직한 평을 남겼다.
“다들 맛나게 드셨으니 참으로 다행이오. 과인이 양국의 귀인들을 초청한 이유는 이처럼 서로 상한 감정을 풀고 낯선 얼굴을 익은 것으로 만들기 위함이오.”
맛에 취해, 조선왕이 하필 두 나라 사절을 동시에 부른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궁금함을 잠시나마 잊고 있던 잉한과 이와쿠라 모두 갑자기 현실로 돌아왔다.
“대국의 칙서를 받고 일본국 국서의 일을 다시 생각해보니,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 이리 하였소. 작년에 우리와 일본 두 나라가 서로 자립지국임을 인정한 것은, 중원의 문명이 찬란하여 일찍이 두 나라에 크나큰 복록이 되었음을 알았기 때문이외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는 오히려 식견이 짧은 탓에 저지른 실수였던 듯하오.”
뜻밖의 상봉에 놀란 가슴이 군밤으로 진정되었다가, 다시 갑자기 긴장하기 시작했다. 자립지국이 아니라면 정녕 자주국임을 주장하려는 것인가? 이와쿠라는 조선이 자신의 편이 되든 청국을 막는 고기 방패가 되든 자신-그리고 신정부-의 승리를 직감하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잉한이 무언가 반문하려 했지만, 곧바로 앞접시에 뜨끈한 군밤이 새로 구워져 나오니, 조금 더 먹고 싶은 욕심도 없잖아 우선 조선왕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지금 해외의 각국이 대국에 찾아와 통교를 청하고 있으니, 실로 『만국공법』에 나온 대로 수선지구(首善之區)임을 알 수 있소. 그런데 겉보기에 저 양이들은 자신도 자주국이요, 대국도 자주국이니 서로 같다고 우기고 있고, 대국은 한없는 아량으로 이를 용서해주고 있소이다. 하지만 어찌 이것이 옳다 하겠소이까?”
물론 잉한 자신이 썩 맘에 들어하지 않는 공친왕 패거리의 글이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에서 대놓고 아첨을 하니 기분이 다시 좋아짐은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만국공법』을 보니 신속하는 나라를 둔 나라로는 또 토이기(土耳其)가 있으니 이는 곧 돌궐이오. 그런데 어찌 돌궐의 후신 따위와 대국이 같다 하겠소? 대국의 문물은 천하의 제일이니, 같은 자주지국도 거느릴 수 있음이 명백하외다.”
굽히고 들어감도 한 가지 방도겠지만, 때로는 그럴듯한 아첨이 답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애초에 아첨이란 말하는 사람은 공짜요 듣는 사람도 공으로 기분 좋아지는 것 아닌가.
”그런데 실지로 대국의 은혜를 입은 나라들이 대서 각국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찌 되겠소? 이는 자국이 겁박당할 빌미가 될 뿐 아니라, 대국의 체통에도 누가 되는 일이오. 듣기로 일본국도 이리하여 이전부터 제국을 자칭하는 나라에게는 자신도 제국을 칭하였다 하였소.”
이번에는 이와쿠라의 신경이 곤두섰다. 조선왕이 군밤을 굽다가 불을 잘못 쬐어 갑자기 청국을 찬양하는 것은 아닌가 살짝 걱정하던 이와쿠라였다. 그런데 엉뚱하게 일본의 얘기가 나오지 않았는가?
“지금 서양의 사정을 보면 큰 나라가 힘만 믿고 작은 나라를 억지로 무릎 꿇려 신속케 하니, 사대자소(事大字小)의 도의와는 이만큼 다를 수도 없소. 그러므로 떨치고 일어나 대국과 그 번국의 관계가 이와는 전혀 다름을 천하 만방에 알려야 한다는 것이외다.”
조선왕이 화해를 빙자하여 일본에 힘을 실어주려 한다고 단정한 카츠가 나지막이 무어라 귀띔해주자, 이와쿠라도 한 마디 거들었다.
“전하께서 이처럼 밝으시니 조선 인민의 홍복입니다! 잉한 대인께서도 잘 생각해주십시오. 우리 일본이 지금 국체를 일신하고 있는 것은 오직 승냥이 같은 무리가 나라를 범하지 못하게 방비하기 위함입니다. 대국이라면 능히 예로부터 우호가 돈독한 나라끼리 서로 아끼고 지켜주는 큰 뜻을 품으리라 믿습니다.”
그쯤 되자 잉한으로서도 돌아가는 판국이 조금 머릿속에 들어왔다.
애초에 더 이상 조공하고 책봉하는 예를 지켜나갈 수 없음은 그도 익히 알고 있었다. 훗날 양이와 같이 화포의 예리함과 대선의 웅장함을 얻게 된다면 엇나간 천하의 질서를 도로 되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직면한 현실은 그렇지 않다, 천자가 양이의 우두머리와 같은 급이라 하는데 어찌 천자로 받들어야 하냐는 무엄한 번국을 말로써 달랠 수는 없었다. 조선 정도라면야 남은 힘을 긁어모으면 겨우 제압할 수 있겠지만 일본은 또 다른 문제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렇게 구색이라도 갖추어 대국의 체면도 살리고 번국들이 아예 오랑캐와 한편이 되어 대국에 칼을 돌리는 것을 막아버림도 방편이 될 수 있을 듯했다. 조선왕의 말이 그저 아첨이요 궤변일 뿐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권력을 쥔 자들에 의해 참이라고 인정되는 순간부터는 새로운 법도가 되어버린다.
조선왕이 미친 척하고 아예 일본에 붙어버린다고 해 버리면 어떻게 해야 할지 속으로 은근히 고민하던 잉한으로서도, 원 역사와 달리 성공이 절박한, 분열된 일본의 이와쿠라로서도 이렇게 억지를 참으로 만들자는 조선왕의 제안은 그의 군밤만큼이나 달콤했다.
서로 싸우기도 여의치 않고, 그렇다고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어쨌든 세 나라 모두 넘치는 자존심에 비해 실력이 모자란 것이 문제였지 않은가. 우열을 가리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고 우선은 화기애애하게 서로 위하는 척이라도 함이 가하였다.
박규수가 만들어준 대본을 어제 밤새도록 외운 귀남은 일이 잘 풀리는 듯해 속으로 안도하면서 질화로에 집중하고, 잉한과 마신이는 어떻게 하면 이 일을 잘 포장해서 대국의 체면을 세웠다고 보고할지 고민하고, 이와쿠라도 신정부의 외교적 성과로 이야기를 잘 풀어낼 궁리를 하였다.
한 번 분위기가 풀리니 덕담에 덕담이 꼬리를 잇고, 군밤은 또 군밤으로 이어졌다. 루쉰(鲁迅) 같은 사람이라면 이런 정신승리가 또 어디에 있겠냐며 비아냥거릴 일이었지만, 그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으니 논할 이유가 없었다.
“그대 말이 맞소. 확실히 음흉한 구석이 있는 조선왕이군. 어쨌든 우리야 면이 살았지만, 결국 조선왕도 어느 쪽에게도 놀아나지 않으면서 자신의 위엄을 지켰으니 찬탄도 나오지만 훗날이 걱정되기도 하는구려.”
모화관으로 돌아온 잉한의 단평이었다. 마신이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실로 그렇소. 조선인들이 면종복배(面從腹背)한다고 하면 옛날 좋은 시절에야 믿는 구석이 없었으니 걱정거리도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양이의 기물을 들여오고 있는 데다가 왜인들까지 같은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게 되었으니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오.”
“알면서도 당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 그저 조정에서 빨리 양무(洋務)에 힘써주기만을 바랄 뿐이오.”
물론 잉한이 아는 조정이라면 그저 조선이 대국을 흠모하여 그 덕을 드높였다는 대목만 보고 자기만족에 머무를 듯하였지만, 이번만은 다르기를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 공사관에서도 비슷한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노우에 군에게는 미안하게 되었네. 헛발질을 하게 만들었어.”
“하하, 어쨌든 일이 무사히 끝나지 않았습니까. 물론 정부의 지시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두렁길로 가든 밭을 지나가든 같은 것이지요.”
그간 열심히 조선을 동경하는 일본인 젊은이 시늉을 하며 어수룩한 서생들을 선동하고 다녔던 이노우에였다. 어쨌든 당장 청국과 싸움이 벌어지지도 않았고, 신정부로서는 공식적으로 출범한 이후 처음으로 거둔 외교적 성과다.
비록 비공식석상에서 이루어진 합의라고는 하지만, 그리고 절차상으로는 조금 양보해야 하기는 하겠지만, 조만간 『일청수호조규』가 맺어지게 되면 혹 일본의 발목을 잡을까 노심초사했던 ‘자립지국’ 딱지를 일 년 만에 떼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노우에의 얼굴 한 구석에 석연찮음이 감돌아, 카츠의 눈에도 띄었다.
“자네, 아직도 어설픈 면이 있군. 조정의 공경들이 비록 실권을 잃은 지 수백 년이라지만 그간 는 것은 눈치뿐이야. 이와쿠라 경 같은 분들과 함께 일하려면 얼굴에 철판을 지금의 두 배는 깔아야 할 걸.”
“역시 봉행 어르신이십니다. 제가 미욱한 것도 있지만 봉행 어르신께서 대단하신 것도 있는데 조금 봐 주십시오.”
가볍게 농으로 넘기는가 싶더니,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답변했다.
“지금의 이 화해는 물론 우리에게는 호재입니다. 하지만 오래 가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래 가서도 안 되고요. 황국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지금의 아시아에 있는 질서를 깨뜨려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주(神州)를 노리는 자들을 막아낼 힘을 얻을 수 없지요.”
“그래, 그러려고 우리가 지난 몇 년간 그 난리를 쳤던 것 아닌가.”
“후... 그런데 그걸 조선왕은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고작 군밤 따위로 해내고 있지 않습니까. 에도의 너구리를 몰아내기도 버거운데 이제 이곳 반도에도 너구리 대장이 하나 더 있음을 알았으니 마음이 편할 리가요.”
카츠가 해 줄 수 있는 대꾸는 쓴웃음뿐이었다.
--- *** ---
사르투 잉한은 본래 역사에서는 청일수호조규 체결에 반대한 보수파 인물이었습니다. 그 시절 만주족 고관치고는 특이하게도 무명(武名)을 먼저 떨쳤는데, 염군 지도자 장락행을 체포하는 데 일조하는 등 태평천국의 난과 염군의 난 진압에서 활약했습니다. 그러나 원 역사에서는 서태후의 총애를 입은 이홍장이 본격적으로 전면에 등장하면서 힘을 쓰지 못하였지요.
원 역사에서도 청일수호조규는 비슷한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집니다. 당시 일본측 대표 다테 무네나리는 근대조약으로 형식상으로나마 양국이 동등함을 인정하지 않으면 필히 서구 열강들이 걸고 넘어질 것임을 지적하였고, 상대였던 이홍장은 조약이 체결되지 않으면 아쉬운 것은 일본임을 지적하였지요.
그 결과 조약도, 장정도 아닌 ‘조규’라는 애매한 형태로 근대 국제질서와 전통적 중화질서가 혼재된 양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의 일본은 작중에서와 같은 각종 불리한 여건에 처하지 않았기 때문에, 필요한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난 뒤 바로 대만 출병(1874), 류큐 처분(1879) 등 중화질서의 해체에 돌입합니다.
이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로, 지금의 합의는 그저 모두 바라는 바에 비해 실력이 부족한 덕분에 잠시 화해의 양상을 보였을 뿐, 조선이라면 모를까 청일 양국의 속마음은 평화와는 거리가 멀지요. 군밤은 그에 대해 적당한 핑계가 된 셈이고요.
과연 겉허울뿐인 합의가 속살까지 여물게 될까요? 그렇지 않으면 쭉정이가 되어 시대의 풍파에 날아가버리고 말까요? 계속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