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닐진대 (3)
연초에는 사흘을 내리 쉼이 나라의 관례다. 하지만 인간들이 쉰다고 해서 하늘의 해까지 쉬지는 않는 법.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사흘간 연이어 날도 푸근하였기에, 궁궐 지붕 위 눈도 부지런히 녹아내려 처마 곳곳에 영롱하게 고드름이 자라났다. 낙숫물 흘러내려 더욱 번뜩이는 고드름에 색색 단청이 비추니, 그러잖아도 이국적인 동양 궁궐의 미가 심미안 없는 상인(겸 사기꾼) 오페르트에게도 느껴질 정도였다.
환관(?)의 뒤를 따라 미로 같은 길을 종종걸음으로 따라가는 오페르트는 이 광경에, 그리고 여기까지 오게 된 일의 흐름에 취해,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지 오 분에 한 번꼴로 자문하였다.
자신을 의심의 눈으로 뜯어보던 섭정공이 황금 이야기에 반색하며 그대로 넘어왔을 때 그는 성공을 직감했지만, 그 다음날 바로 국왕이 자신을 직접 만나보고 싶다며 궁으로 부를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 닳고 닳은 섭정공도 잘 구워삶았으니, 어리고 순박한 국왕은 말할 것도 없다. 오히려 적당히 잘 구슬리면 더 엄청난 무언가를 얻어낼 수도 있을 법했다.
조그만 문을 지나니 예의 검은 처마 회랑이 죽 둘러싼 가운데, 유독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어설픈 중국어 지식으로 현판을 해석해 보니 ‘정사를 펼치는 집(宣政殿)’이라, 어쩌면 국왕의 집무실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곧 국왕인 듯한 젊은이 앞에 당도하여, 공손하게 예를 갖추었다. 여간한 유럽 젊은이라면 동양 궁정에서 무릎을 꿇는 것을 수치스럽다 하겠지만, 곧 굴러들어올 이익 앞에서라면 사람 발밑을 길 자신도 있던 오페르트는 오체투지를 하래도 기꺼이 할 용의가 있었다.
“잘 오셨소. 스스로 발품을 팔아 이 나라를 위한 계책을 마련하였다 하니 그 마음이 기특하고도 갸륵하오. 다만 헌상한 계책은 내 운현궁을 통해 전해 들은바, 만에 하나 오가는 중 틀어지거나 잘못 옮겨진 뜻이 있을 수 있으니, 다시 한번 여기서 그대의 말로 듣고자 하오.”
도성 천주교인들 사이에서 유명인사라는 통역관 요한 남이 옆을 지키고 있다 곧장 나아와 국왕의 말을 다시 불어로 새겨주었다.
“예, 아뢰겠습니다. 그 대강을 말씀드리자면, 이 나라의 북쪽 산속에 있는 광맥을 개발하여 나라의 큰 보배로 삼는 것입니다. 서양에는 회사라는 것이 있으니, 이는 여러 사람의 돈을 모아 밑천으로 삼음으로써 더욱 큰 이익을 얻는 법도입니다. 자신의 재보를 위태롭게 하지 않고서 큰 이득을 올릴 수 있으니 뛰어난 방법이라 하겠습니다.”
그러잖아도 청산유수인 언변이 엊그제 예행연습을 거쳤기에 더욱 보드랍게 흘러나왔다. 물론 자신이 어설픈 조선말로 읊는 이야기가 궁중 예법은 고사하고 저쪽이 모두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인지도 확실치 않았지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지금 저렇게 집중해서 듣고 있는데.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전하의 나라에 자금을 변통해줄 나라들은 구미 제국(諸國)에 그치는데, 이들은 자신들 나라 사람의 말만 서로 믿고 그 외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못된 버릇이 있습니다. 게다가 익히 아시겠지만, 영국과 아라사 두 나라는 이리와 승냥이 같은 나라로 믿을 수 없습니다. 당장 영국인들이 전하의 정부에 고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하를 속이려 했음이 명명백백히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반면 법국은 그런 일이 없어 예의의 나라라 할 만합니다. 그러니 오직 선의로 모두를 대하는 법국에 광산의 권리를 위탁하여, 전하의 나라에서 예산이 지출되는 일 없이 오롯이 광업의 이익만을 얻을 수 있게 해드리겠다는 것입니다.”
국왕이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빠졌다.
“그런데 산 아래 묻힌 금이 어디 가지는 않을 텐데, 나중에 긴요할 때 우리가 알아서 캐어 써도 되는 일 아니오?”
예상치 못한 일격이었다. 동양인은 물론이요 유럽인이라 할지라도 누군가 눈앞에서 일확천금의 가능성을 터럭만큼이라도 보여주면 곧바로 눈이 벌게짐이 정상일진대, ‘꼭 그거 굳이 해야 하느냐’고 물어보니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할 말이 없어도 어떻게든 만들어내야만 할 터. 세상 사람들이 유대인더러 간교하다고 하는 것에 일말의 진실이 있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머릿속을 박박 긁었다. 다행히 그 결과는 꽤 그럴듯했다.
“물론 그 또한 좋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지금이야 나라에 여유가 있을지 몰라도, 세상일이라는 것은, 특히 재화의 흐름이라는 것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법입니다. 영국의 현인으로 뉴턴(牛頓)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도 장사판에 뛰어들었다가 평생 모은 거금을 잃었다는 고사가 전해집니다. 그러니 사정이 허락할 때 미리 캐내어 왕실만의 재보를 쌓아둠이 가하지 않겠습니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처럼 처음부터 많은 밑천을 요하는 큰 사업에서 중요한 것은 여러 사람을 끌어들여 자본을 한데 모으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은 오직 공명정대하면서도 이재에 밝은 이가 맡아야만 성대한 기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냥 프랑스에 권리를 양도하면 자신에게 쏠쏠한 비자금이 돌아온다고 이해하고는 동의를 표해주기만 하면 될 일이거늘, 꼬치꼬치 설명해야 하니 슬슬 불안함이 기어 올라왔다. 국왕이 또 고민 끝에 이상한 데서 또 딴지를 걸까 우려하려는 찰나,
“좋은 생각이 아닐 수 없구려. 그대의 말대로 나라에 큰 이익이 되고 또 훗날을 대비하는 방책이 되면서도 국용에 폐가 될 일은 없으니 이 어찌 좋지 아니하겠소?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는데, 이런 명안을 가져온 그대에게는 무엇으로 포장(褒獎)하는 뜻을 표해야 한다는 말이오?”
순간의 우려는 오히려 더 큰 호재로 돌아오는 듯했다.
“저는 먼 나라의 상인으로, 본 고장에서는 시운이 따르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 한없는 아량을 베풀어주신다면, 그저 본래의 가업을 이 땅에서라도 잇고자 합니다. 원하는 것은 그뿐으로, 이로써 광산의 일에 한몫 거들며 이 나라와 전하의 가문이 흥성토록 조금이나마 돕고자 할 뿐입니다.”
“허, 굳이 이역만리까지 와서 우리 종실을 돕겠다 하니 실로 의인이로군. 그대의 청하는 바는 잘 알겠소. 내 대신들과 상의해서 그대가 이 광산의 일에 끼어 어울릴 수 있도록 해주겠소이다.”
그리고 며칠을 연습한 그 어구를 드디어 사용할 때가 되었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국왕이 자신까지 챙겨준 데 들뜬 오페르트는, 정작 국왕이 끝내 자신의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이기로 했는지 확언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눈치채지 못했다. 방심한 탓이었을까? 아니면 침묵을 암묵적 긍정으로 여겨, 당연히 자신의 뜻을 받아들였으리라 지레짐작하였기 때문이었을까? 어느 쪽이었든 나중에 후회해보아야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리망인 오배는 교지를 받들라!”
일이 잘 풀린 듯하다고 프랑스 공사관에 기별을 보낸뒤 서대문 밖 숙소로 돌아온 오페르트에게 뜻밖의 손님이 찾아온 것은 며칠 뒤였다. 아직 소식이 없어 슬슬 다시 운현궁이라도 찾아가보아야 하나 고민하던 무렵.
“...하여, 같은 국외인임에도 삿된 것을 결연히 물리치고 잘못된 행실을 고변하여 종사에 큰 공을 세웠으며, 의기로써 양안(良案)을 헌책했을 뿐 아니라 국가의 대사를 수행함에 모수(毛遂)의 예를 따라 스스로 천거하니, 그 마음이 실로 아름답다.
이에 이광도감(理鑛都監)을 새로 두어 나라의 산천에 묻힌 보화를 두루 캐내 국용과 민생에 보태도록 하며, 오배에게는 별직(別職)으로 도청(都廳)을 제수하니, 앞으로도 그 올바른 심성과 밝은 지혜로써 사직에 공헌함에 그침이 없게 할지어다.”
완전히 예상치 못한 사태에 오페르트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그때 국왕이 은상을 내리겠다고 언급했기는 했지만, 끽해야 인삼이나 호피쯤 되려니 여겼을 뿐. 난데없는 벼슬, 그것도 – 그가 아는 한 – 외국인에게 내리는 첫 벼슬이라니 무슨 곡절이라는 말인가?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떠받들어주는 얘기를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 아파오는 머리를 마음속으로 움켜쥐며, 임금의 서한을 들고 온 관리의 도움을 받아 궁궐을 향해 또 절을 올렸다.
물론 악몽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광산은 국왕의 것이라 했으니 따지고 들면 이 일은 왕실의 비자금에 대한 것이다. 아무리 근대적인 통치체제가 미비하다 한들, 정부의 고관들이 개입해 왈가왈부하는 일이 없도록 일을 은밀히 처리하리라 믿고서 이 원대한 계획에 착수하였던 것이다. 애당초 섭정공이 사진의 이야기에 그처럼 혹했던 것도, 왕실이 전용할 수 있는 막대한 재보가 하늘에서 떨어진다고 자신이 사탕발림을 해두었기 때문 아니었는가. 그런데 이렇게 금광의 이야기를 중인환시 하에 공개해버린다니?
자신이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합리주의의 시대에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다루는 법은, 이해가 될 만한 사정을 마음대로 가져다 붙인 뒤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오페르트 자신이 보아도, 이렇게 정부가 전례를 깨고, 또 왕실의 손발이 묶이는 것을 감수하면서도 과분한 포상을 내려준다면,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제공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런 생각은 그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고, 당장 다음날 영국 공사관에서 나온 사환의 ‘강력한 권유’를 받고 끌려들어가 한 소리 들어야만 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우리 영국의 전문가들을 비방하고 다닌 겁니까? 무얼 일러바쳤기에 저 꽉 막힌 현지인 정부가 전례를 깨고 당신 같이 – 우리 솔직히 말합시다 – 아무것도 없는 상인에게 그런 높은 자리를, 그것도 원래는 없던 임시직까지 만들어서 준다는 말입니까?”
그야 오페르트가 과거를 보았을 리 없고, 무반으로서 공을 세운 것도, 아버지가 조선에서 벼슬을 한 것도 아니니 임시직을 만들 수밖에 없는 일이었지만, 또 사정 모르는 외부인이 보기에는 그렇지만도 않았다.
본래 상인으로서 돈과 신용이 관계된 이야기가 나오게 되면 민감할 수밖에 없는 영국 공사대리 파크스였다. 이제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당분간 조선 쪽에 말도 걸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또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나섰냐는 비아냥을 들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 땅이 확실히 대영제국의 손아귀 안에 들어 있었다면야, 고용된 전문가들이 딴 속셈 품고 고용주를 배반하는 것 정도야 있을 수도 있는 일 아니냐며 뻔뻔함으로 일관했겠지만, 여기서 그랬다가 정부가 확실하게 러시아 쪽에 넘어가 버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본국이 어떻게 대응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순탄하게 – 즉, 파크스 본인의 관직이 붙어있는 채로 -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쯤 되니, 애초에 저 오페르트라는 자가 프랑스 공사대리의 신임장을 받고서 조선 왕실과 접촉했다는 데 생각이 닿았다. 이게 만약 영국을 배제한 뒤 러시아와 손잡고 조선을 양분하려는 프랑스의 술책이라면?
덕분에 억울함을 호소하러 벨로네를 만나러 간 오페르트는 마찬가지로 차디찬, 하지만 조금 더 격정적인 응대에 직면해야만 했다.
“사크르블러(Sacre bleu, 하느님 맙소사), 무슈 오페르트. 사람을 우습게 보아도 정도가 있지, 어떻게 나와 대프랑스를 이렇게 농락할 수 있는 겁니까? 세상에, 고작 이 동방 야만인들로부터 조그만 벼슬자리 하나 얻겠답시고 지금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들의 위신을 가지고 불장난을 벌였다는 말입니까? 후, 믿은 내가 천하의 미친놈이지, 미친놈.”
“무슈 벨로네, 그···. 조선 정부가 제 제안에 지나치게 감동했을 뿐입니다. 이 일은 제 의지와는 무관합니다. 저는 결백합니다. 상식 외의 행동을 한 것은 국왕이지 제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퍽이나 그러겠소. 국왕이 여린 마음에 과하게 감동할 줄 알았으면 섣불리 영국인을 비방하는 짓은 하지 말았어야 할 것 아니오?”
“아니, 각하께서도 그때 제 계획에 찬동해주시지 않았습니까?””
자신이 찾아와 그때만 해도 완벽해 보였던 계획을 털어놓을 때는 거 참 묘안이라고 감탄하였던 듯한데, 그건 어제 일이고 오늘은 또 다르다는 양 매정하게 나오니 억울할 따름이었다.
“그때 당신은 분명 ‘양심선언’을 하겠다고 했지요. 세상에 말 한마디로 여태껏 외국인에게 벼슬은커녕 4년 전까지 통상도 허락하지 않았던 나라의 고관으로 발탁되게 해주는 양심선언도 있답니까? 당신이야 결백을 주장할지 몰라도, 결과가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채광권을 너무 잘 얻어내다 못해 아예 눈치가 보여서 아무도 먹지 못하게 만들어주었잖습니까?”
마음만 같아서는 이 일이 모두 못된 유대인 뜨내기 때문이니 부디 본국에 보고하여 일을 크게 키우지는 말아 달라고 파크스를 찾아가 사정하고 싶었다. 그저 같잖은 이권 하나쯤 먼저 뜯어낼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친 프랑스 인사를 정부 고문으로, 그것도 첫 번째 외국인 고문으로 앉혀버린 격이 되지 않았는가. 실제로 자신의 의도가 이 정도까지 갈등을 유발하는 데 있지 않았음을 애타게 주장하는 편지를 쓰다 나온 길이기도 했고.
“후···. 어쨌든 광산 개발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자가 되었으니 참 좋겠습니다그려. 어디 그 자리에서 잘 먹고 잘살아보시오. 프랑스 내에서 댁의 사업에 투자자를 알아볼 생각은 하지도 말고.”
상인의 조국은 돈이고, 지금 오페르트는 조국 없는 사람이었다. 억울하긴 하지만 우선 봉급 준다는 데 붙어서 재기의 기회를 노릴 수밖에 없었다.
귀남이 명복이었던 시절, 글공부 스승을 하던 오경석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공자의 제자 재아(宰我)가 하루는 스승에게 묻기를, 어진 사람은 누군가 달려와 사람이 우물에 빠졌다고 하면 그걸 곧이곧대로 믿고서 우물에 뛰어들지 않겠느냐며 트집을 잡았다. 허나 공자 답하길, 군자는 우물까지 가게 할 수는 있어도 빠지게 할 수는 없고, 속일 수는 있어도 망하게 할 수는 없다 했다 한다.
결국, 사기를 당하는 것은 물욕이 있는 데서 말미암는 법. 대원군이야 경복궁을 다시 짓는 것을 평생의 염원으로 삼고 있으니 넘어갈 법하지만, 귀남이 보기에 지금 조정의 사정이 그만큼 급박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암만 생각해도 오가 녀석이 더 수상했다.
허나 어쨌든 저 오배라는 자가 영국인들의 태업을 고변한 것은 잘한 일이고, 좋지 않은 뜻을 품었다 한들 아직껏 피해를 준 것은 없으니 상은 주어야겠다 싶었다. 물론 훗날 언제 뒤통수를 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그럴 위험이야 자신이 내릴 포상으로써 미연에 방지하면 될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이 있던 새해 벽두도 지나고 이제 슬슬 신록도 앞의 신(新) 자를 뗄 무렵이 되자, 귀남은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자신할 수 있었다. 당장의 물욕에 마음을 잃지 않고, 심증만으로 사람을 내치지 않으며, 오직 쓸 사람은 쓴다는 어진 마음가짐으로 이 오배라는 자를 대하였더니 이처럼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았는가.
“왜국에 있는 미국 공사관을 통해, 운산 땅에 금광이 있으니 투자를 원하는 자들은 기별토록 공고해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저들의 가주(加州) 땅에 금광이 발견된 지 십수 년이 되어, 채광하는 이들이 한창 새로운 금맥을 찾고 있다 하니, 사람과 밑천을 마련함이 어렵지는 않을 터입니다.”
몇 달간 격무에 시달리며 꽤 조선말 솜씨가 늘어난 오페르트의 보고였다.
프랑스도, 영국도 등을 돌린 뒤 필사적으로 있는 연줄 없는 연줄 다 동원해 제 먹고살 길을 마련하려던 오페르트의 발악이 소정의 성과를 거둔 셈이었다. 그러나 이를 보고하는 오페르트의 얼굴이 밝은가 하면 외려 그 반대로, 마음고생에 눈이 영 퀭했다.
프랑스와 영국이 자신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데 더해, 정부 안에도 그런 살벌한 눈길이 여럿 있던 것이다. 무슨 놈의 감찰이 그리도 살벌한지, 잘 알지도 못하는 현지 벼슬아치들이 억지로 공부까지 해가면서 뭔가 이권을 챙기려고 할 때마다 매의 눈으로 달려드니 결국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꼴이었다. 그러니 얼굴이 펴지려야 펴질 수 없었다.
“허어, 그간 고생이 많았소. 날이 꽤 따뜻해졌으니 군밤은 좀 곤란할 것 같고, 수라간에 시켜 율란이라도 내오게 할까 싶은데 드시겠소?”
“서,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허나 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거늘 어찌 감히 어제 진미를 맛볼 욕심을 내겠나이까. 청컨대 거두어주소서.”
허나 그런 수척함이 안쓰러워 뭐라도 챙겨주려 하면 기겁하며 극구 사양하는 것이, 어째 그 사이 겸양의 덕도 익힌 듯하였다. 귀남은 홀로 생각하기를, 스스로 덕으로 오배를 대하니 저쪽도 덕을 갖추었구나. 덕은 외롭지 않으니 필히 이웃이 있다(德不孤 必有隣)는 말에 틀림이 없구나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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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기와는 보통 기와와 달리 구울 때 염초(질산칼륨)를 넣어 특유의 색깔을 냅니다. 그러잖아도 염초 구하기가 어려운 조선이었기에 청기와를 쓰는 것은 썩 좋지 않게 인식되었습니다. 창덕궁 내에 청기와를 얹은 유일한 건물이 바로 선정전인데, 이는 본디 광해군이 왕권 강화(또는 제 과시욕.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겠습니다.)를 위해 대신들의 반대를 누르고 왕궁을 중건하면서 최대의 궁궐 인경궁을 지을 때 적잖은 건물에 청기와를 올렸기 때문입니다. 이후 인경궁이 철거되면서 주요 건물을 다른 궁에 옮겨 지었는데, 청기와를 쓴 건물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것이 바로 선정전이지요.
뉴턴이 거금을 잃은 얘기는 엄청난 규모의 버블로 아직까지 인구에 회자되는 남해회사(South Sea Company) 사건에 관한 것입니다. 이때 한화로 20억원 상당의 손해를 본 뉴턴이 “천체의 운행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그럴 수 없다”고 한탄했다는 유명한 일화지요.
중간에 언급되는 우물의 고사는 『논어』 <옹야(雍也)> 편에 보입니다. 논어에 나올 때마다 공자 앞에서 까불거리다가 면박을 당하기 일쑤인 재아가 또 한 소리 듣는 에피소드지요.
오페르트가 팔자에 없는 관직살이를 하게 된 ‘이광도감’은 당연히 현실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툭하면 ~청, ~도감 등 임시 기구를 만들어 당면한 사무를 해결하던 (오늘날 공공기관의 OOO TF들을 생각하면 편합니다) 조선의 관행을 생각하면 납득 가능한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역사에서의 외국인 고문들 – 대표적으로 묄렌도르프나 알렌 –을 생각하면 그냥 공노비 취급받는 오페르트가 조금 의외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묄렌도르프는 이홍장, 알렌은 고종과 명성황후의 총애라는 강력한 백이 있었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묄렌도르프의 경우 아예 통리아문 협판(종2품)에 조선 해관의 총책임자 자리까지 꿰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