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종, 군밤의 왕-40화 (40/320)

13.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닐진대 (2)

벨로네는 개인적으로 유대인에 대해 딱히 악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이 자는 암만 보아도 놈팡이 같아, 이런 자들 때문에 스테레오타입이라는 것이 생기고 유지되지 않겠는가 싶을 정도였다.

“하하... 그래서 처음에는 생각했지요. 차라리 왕릉이라도 하나 도굴해서 도망칠까? 물론 수중에 돈은 떨어져 가고, 도산한 회사가 회생할 리는 없으니, 어디까지나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는 얘기입니다만...”

“무슈 오페르트, 제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물론 자신이 내몬 프랑스군도 선대 조선 국왕의 능묘가 있는 요새를 공격하기는 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실수였다. 반면 눈앞의 이 자는 대놓고 도굴을 얘기하지 않는가. 만약 눈앞의 이 자가 진지하게 도굴 같은 소리를 사업 구상이랍시고 내놓는다면 사기꾼으로 붙잡아서 관헌에 넘기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홑몸으로 제물포에 와서는, 우선 무어라도 알아야 장사를 해먹는다 생각하고서 열심히 현지인 언어를 배웠습죠. 그러다가 흥미로운 소문을 듣게 되었다 이 말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병째 술을 들이키고 올 걸 그랬다고 생각하며 미간을 쥐어잡는 벨로네였다. 그때, 마침내 무언가 들어볼 만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라의 북쪽 산악지대에 엄청난 금이 묻혀있고, 영국인들은 이를 알면서도 숨기고 있다더군요! 그래서 저도 있는 돈 없는 돈 털어서 저 머나먼 북쪽의 험준한 산악까지 가보았지요! 휴! 알프스가 따로 없더군요. 거기에 호랑이! 지금 생각하면야 모험이지만 그때는 정말... 어휴!”

이 자가 자신을 속이려 드는 게 아니라고 전제하면 꽤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물론 영국이 조선과 수교하면서 광산 개발을 위해 전문가 몇몇을 알선해주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이는 조선 정부가 주관하는 것. 벨로네 자신이 아는 영국이라도 미리 전문가들에게 언질(과 뒷돈)을 주어, 광맥을 열심히 찾되 발견한 곳은 영국 측에만 보고하도록 지시할 법했다.

그러고서 몇 푼 안 나오는 곳이지만 그래도 아예 빈 광맥보다는 낫다고 설득해 헐값에 광산 개발권을 양도받는 것이다. 자칭 세계 수위의 경제 대국이라기에는 너무나 치졸한 짓이라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런 수완을 발휘할 만큼 철저하지 못했기에 조국 프랑스가 섬나라 놈들에게 밀리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저는 분명히 보았습니다. 확실히 금광이 있습니다. 규모도 결코 작지 않고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나라 광부들은 채광을 할 때 폭약을 쓰지 않더군요. 그러다 보니 뻔히 금맥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파내지를 못하고 있었고요.”

조선 정부가 민간의 무장에 대해 편집증적 공포를 가지고 있음 은 군사고문단을 통해 익히 들었다. 그렇기에 발파 작업에 필요한 화약을 민간이 보유하는 것도 허가하지 않았으리라.

“뭐, 왕릉을 도굴하는 것보다야 자연이 품은 재보를 도굴하는 편이 훨씬 명예롭고 수익성 있는 길이기는 하지요. 그래서 제안하고 싶은 사업 구상은 대체 무엇입니까?”

“간단합니다. 각하께서 광산 채굴권을 얻어내시고, 채굴권을 다시 제가 세운 회사에 넘겨주시는 겁니다. 프랑스 본국에서 직접 투자를 유치해주시든, 아니면 아직도 캘리포니아를 쥐 잡듯 뒤지고 있는 미국의 황금광들 돈을 끌어와 주시든 상관은 없습니다. 각하 개인께도 지분을 적잖이 드리도록 하지요.”

“허, 확실히 그대의 용기에는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군요. 대체 무얼 믿고 그대에게 그런 특전을 베풀어줘야 한다는 말입니까?”

“각하, 냉정하게 생각해주십시오. 영국인들을 이 땅에서 몰아낼 기회 아닙니까? 제가 홀로 궁궐에 찾아가서 영국인들의 태업을 고발해보았자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겁니다. 각하께서 직접 나서신다면 당연히 외교적 마찰이 생길 거고요. 하지만 프랑스 공사관의 보증을 받은 함부르크인이, 양심선언을 하는 형식으로 고변을 하면 어떨까요?”

사기꾼이라면 언변이라도 좋아야 하는 법이다. 벨로네도 스스로 총명한 축에 든다고 자부하기는 했지만, 한 번 흥미가 동하기 시작하자 꽤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각하께서는 이 땅을 처음으로 문명화된 세계에 개방시킨 유럽인이십니다. 뭐, 그전에도 알아서 개방한다 뭐다 했다지만, 각하께서 친히 찾아와 이들을 계도해주시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요. 그런데 각하께서 응당 받으셔야 할 명예는 돌아오지 않고, 게다가 영국과 러시아가 끼어들고 있지 않습니까? 이번 기회에 설욕하지 않으신다면 또 언제 기회가 오겠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애초에 삼 년 전에 위풍당당하게 페킹 공사관에 들어설 때만 하더라도 자신이 이런 초라한 동양식 집에서 외풍에 덜덜 떨고 있으리라 상상이나 했던가.

“제안을 받아들인다 칩시다. 무얼 해 주면 되겠습니까?”

“하하. 감사합니다. 각하께서는 섭정공, 나아가 국왕과도 교분이 있으시다 들었습니다. 제게 구두로든 서면으로든 신원보증을 해 주시고, 섭정공이나 국왕과의 자리를 마련해주십시오. 아무리 권력자라고 하지만 물정 모르는 동양인인 것은 똑같지요. 제 언변으로 저들이 기꺼이 광산에 대한 권리를 프랑스에 넘기도록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운현궁이라는 이름은 곧 구름재(雲峴)라는 지명에서 따온 것이고, 그 지명은 언덕마루에 있는 관상감(觀象監)의 옛 이름 서운관(書雲觀)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러나 세간 사람들이 요새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은, 운현궁 주인을 뵈러 몰려든 사람이 구름과 같이 많아 언덕길을 통째로 채우고도 광화문 앞 육조거리까지 내려올 정도이므로 구름재라 부름이 가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는 우스갯소리가 대개 그러하듯 과장이 심한 얘기였지만, 일말의 진실은 있었다.

당장 때늦은 새해맞이 인사를 온 사람들이 오페르트 앞에 주욱 늘어서 있지 않았던가. 아마 어제 통행금지령(인정) 이전까지 기다렸지만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해 다시 온 사람들이리라. 물론 오페르트가 신경 써줄 이유는 없었으므로,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욕지거리를 못 들은척 하고 당당하게 대열의 맨 앞으로 향했다.

이방인이 직접 왔으니 비상한 사무가 있으리라 생각했는지, 아니면 (사실 별 기대 안 하고 댄) 벨로네의 이름이 효험을 거두었던 것인지는 몰라도 대문에서 문지기 노릇하던 종복은 곧바로 자신을 들여보내 주었다.

“그래, 아리망(亞里莽, 독일)인 오배(吳拜)라 하였는가. 어디 한 번 들어보세나. 금광이 어찌 되었다는 겐가?”

어설프게나마 조선말을 배우고 직접 북방의 험한 산을 발로 뛰면서, 이 섭정공이 가진 위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고 들은 오페르트였다. 금맥을 찾기 위해 두둑이 뒷돈을 챙겨준 현지인 사설 채굴업자들(잠채꾼)조차, 언제 어디 있을지 모르는 대원군의 국가경찰대(익문사)를 두려워하는 것을 보면, 국왕이 성년이 되어 직접 국사를 돌본다지만 섭정공의 위세는 그대로인 듯했다.

그러나 아무리 위세가 드높다지만 결국 섭정공도 사람이요, 사람일진대 물욕이 없을 수는 없다. 상인의 조국은 돈이고, 오페르트는 자신의 조국이 가진 매력을 믿었다.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일부러 자신이 아는 몇 안 되는 조선 속담까지 써 가면서 어설픈 조선말로 떠듬떠듬 얘기하다가 정 안 되겠다 싶을 때만 벨로네가 붙여준 통역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곧 호구 잡힐 사람에게 친근한 인상을 주기 위함이었는데, 과연 먹히는 듯했다.

준비한 이야기를 한 타래씩 풀어낼 때마다 대원군도 엊저녁 벨로네처럼 점차 혹하는 듯했다. 영국인들이 탐광을 열심히 하면서도 정작 보고는 게을리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그 뒤를 면밀히 파고들어 마침내 운산에서 금맥을 찾아냈다는 소식에는 다시 얼굴이 활짝 피어났다.

“그, 자네 말이 맞다고 해 두세. 정말로 운산 고을에 그렇게 금맥이 많아서 자네가 원하는 대로 설점(設店)케 해준다면, 그 이익이 얼마나 되겠는가?”

“물론 광산이란 직접 파내기 전에는 산출을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십시오. 듣기로 이 나라의 법에 모든 광산은 국왕 전하의 것이라 한다는데, 그러면 저 금광에서 나올 금도 저희 업자들에게 소정의 보수로 돌아가는 만큼을 제하면 고스란히 국왕 전하께서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지금 귀국 정부에서 온갖 개혁을 하는 바람에 재정도 마뜩잖을 텐데, 아무리 그래도 군주로서의 위엄까지 희생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저 말이야말로 대원군의 심금을 울리는 것이었다. 평소라면 어디 국외인으로서 감히 종사의 위엄을 입에 담느냐며 역정을 내었겠지만, 지금 이 자가 말하는 것은 금 아니던가. 하찮은 미곡이나 면필 따위가 아니라 그 자체로 부(富)가 되는 황금이다. 그렇다면 박규수 그 자에게 아쉬운 소리를 듣지 않고서도 충분히 그의 숙원대로 경복궁 터에 휘황찬란한 고대광실을 차릴 수도 있으리라.

그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얼굴로 새어 나오는 기쁜 마음 정도는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자신이 구체적으로 조선 측에 돌아갈 액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마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있으리라. 여기서 조금만 더 건드려주면 바로 제 편으로 넘어오리라고, 상인으로서의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영국과 러시아는 비유하면 강역을 놓고 다투는 호랑이와 이리 같은 자들로, 쉽게 신용할 수 없습니다. 만약 러시아인에게 이 권한을 주시면, 아마 영국은 크게 원한을 품어 훼방을 놓으려 할 것이고, 그렇다고 영국에 권한을 주시면, 이미 귀국 정부를 속여넘기려 한 괘씸함이 있는데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 될 겁니다.”

“계속 말해보게.”

“반면 소인의 고국 아리망. 저희 말로는 덕의지(德意志)입니다만. 좌우지간 저희와 미국 광부들을 끌어들이고 거기에 영국에 비견할 만한 강대국인 법국을 끌어들여 보증케 하면 어떻겠습니까? 이야말로 솥발(鼎足)의 형세이니 아무도 다른 나라의 몫을 탐내어 귀국을 압박하지도 않을 것이며, 조선 땅이 이처럼 풍요롭고 강성함을 알게 되면 다른 나라들도 귀국을 쉽게 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헛소리가 지나치지 않았나 스스로 잠깐 걱정했지만, 다행히 섭정공은 눈앞에 제시된 황금 이야기에 빠져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그대의 계책이 꽤 그럴듯하구려. 내 조금 더 고민해보고, 성상께 잘 여쭈어보도록 하겠소. 살펴 돌아가시오.”

“아아, 이처럼 총명하신 판단으로 나라를 이끌어주시니 정말 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소인은 이만 물러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작년 홍콩에서 형제들 돈까지 끌어들여 자신 있게 차렸던 사업이 무리한 확장과 실패한 모험의 끝에 마침내 파산하고야 말았던 이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인고의 세월이 마침내 종장에 다다랐다 생각하며 오페르트는 쾌재를 불렀다. 이 나라의 실권자라는 섭정공도 이렇게 자신의 말에 홀랑 넘어갔으니, 더 어리고 물정 모를 국왕은 말할 것도 없을 터. 구름재를 벗어나 대문 밖 숙소로 향하는 그의 머릿속에는 벌써 제물포에 당당하게 부활할 오페르트 상회 – 오페르트 동양광업회사의 부속기업 –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경하드리옵나이다. 전하. 성상의 덕이 지극하여 천지에 그윽하니, 이처럼 머나먼 나라에서 온 상인도 감복하였습니다. 그러니 이처럼 잘못을 가리고 또 나라의 산천에 묻힌 귀물(貴物)의 행방을 직고(直告)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 일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하늘과 열성조의 가호하심이라 할 수 있겠소, 어려운 나라 살림에 큰 도움이 될 터. 허나 무릇 재보라 함은 소인이 쉽게 농간을 부릴 수 있으니 경계하여야 하오.”

당연히 자신도 함께 기뻐하리라 생각했는지, 의외의 반응에 대원군도 조금 놀란 듯했다.

“그러나 있는 금을 없다고 하기는 쉬워도, 없는 금을 있다고 할 수는 없는 법이옵나이다. 저 상인 오배라는 자가 찾아와 금광의 이익을 취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양이의 기술로 그 이로움을 몇 배로 더할 계책을 헌상하였는데, 나라의 대사이니 중신의 조언도 들어보아 성려(聖慮)에 보탬이 되도록 해야 하겠지만, 이 어리석은 신이 보건대 이 일은 득이 됨은 많고 실이 됨은 적다 못해 없을 듯하옵나이다.”

“세상에는 군자만 있는 것이 아니요, 언제든지 남을 속여 빼앗고자 하는 소인도 많은 법이외다. 비록 내 경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지금의 형국은 양인이 양인을 고변한 것이니 양쪽의 사정을 모두 들어보아 사리에 맞고 나라에 도움이 되는 쪽을 택함이 가하지 않겠소이까.”

생판 모르는 사람이 일확천금을 약속한다면 경계부터 품어야 한다는 것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든 아는 상식이다. 그러나 서양인들이 제멋대로 그어놓은 문명과 비문명의 구분과 무관하게, 아직 19세기면 사람들이 의외로 돈에 있어서는 순수한 면이 있던 시대였다.

그리고 그런 순수함을 먹고 자란 사기행각이 법의 철퇴를 맞고, 다시 그 법망을 피해 교묘해진 사기가 등장하고, 뛰는 법 위에서 나는 법을 배워나간 결과물이 바로 귀남의 원 세상에서 보고 들은 사기였다. 그리고 귀남 본인도 그런 식으로 수십 년 전 거하게 사기를 한 번 당한 이력이 있었고.

그때가 아마 북악산 타고 넘어온 북괴 무장공비들이 서울에서 활개 쳤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아직 열심히 노력하면 팔자 고치고 새장가도 들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이왕 굽게 된 군밤 잘 구워서 안국동 명물로나 만들어보자 생각할 때였다.

마침내 노력이 성과를 거두었는지 그날따라 매상이 꽤나 나왔는데, 웬 양복 입은 젊은이가 찾아와 이름을 묻더니 중정(중앙정보부)에서 나왔다고 하는 것 아닌가. 말하기를, 서울 내에 침투한 간첩들이 노점상들 사이에 섞여 있다는 제보가 있어서 신원을 확인해야 한다 했다.

겁을 덜컥 집어먹고서 물어보는 말에 순순히 대답해주었는데, 그 젊은이가 안쓰럽다는 듯, 은행에 계좌 하나 만들어두고 얼마 이상을 저금해 두면 신원이 보장된다. 그러면 이런 일도 없을 것 아니냐. 내가 개인적으로 아저씨가 참 사람 좋아보이는데 이런 의혹을 받는 게 안타까워 이런 얘기 해 주는 것이다. 이러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 청년이 말해준 금리 높다는 은행에 쪽방 마루 아래 숨겨둔 현금다발 들고 갈 생각을 했더니, 또 이어서 말하기를, 자기가 말한 은행은 생업 바쁜 사람들을 위해 행원이 출장나오기도 한다 했다. 또 거기에 혹해 나흘 뒤 말쑥하게 생긴 아가씨가 찾아왔을 때 순순히 돈다발을 넘겨주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고객님 돈은 안전합니다’라며 제 명함과 그럴듯한 통장, 그리고 사은품 휴지까지 건네준 자들은 그 이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깟 노점상 돈을 털어먹어야 할 만큼 어지간히 궁색한 사기꾼 남녀였다 싶지만, 어쨌건 그때는 정말이지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었다. 경찰서에 찾아갔더니 그런 뻔한 수작에 당하는 놈이 바보 아니냐며 보내오는 냉소는 덤이었다.

그때 이래 다른 것은 몰라도 두 눈 뜬 채로 사기를 당하는 일은 없게 하겠다고 굳게 다짐한 바 있었다. 물론 귀남 자신보다 똑똑한 사람이 온 힘 들여서 자신을 속이려들면 그때는 당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호락호락하게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그러므로 흥선군이 자신있게 들고 온 이 금광 개발계획이 비록 어디가 문제인지는 몰라도 미심쩍은 면이 있다는 것 정도는 귀남도 눈치챌 수 있었다. 게다가 평안도 어디께에 엄청난 금광이 있었다더라 하는 얘기는 그의 큰형도 알고 있을 만큼 조선 팔도에 널리 퍼져있지 않았던가. ‘얼마나 금이 매장되어 있는지 모른다’고 하는 이 오가라는 상인의 말을 완전히 믿기는 어려웠다.

그렇잖아도 제가 예전에 큰형에게서 들은 금광의 소문이 사실인지를 확인코자 일을 맡겼던 영국 업자들이 영 보고가 뜸해 의심하던 차였다. 그걸 고변하러 온 자도 대원군의 얘기를 듣자면 썩 미덥잖은 면이 있었다.

그리고 옛날처럼 한낱 노점상이었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지금 그는 일국의 임금이다. 사기를 치려는 자를 역으로 속여넘기기까지는 어렵더라도, 적어도 주변 정황을 확인해 상대가 원해는 대로 순진하게 넘어가지는 않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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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망(亞里莽)이란 곧 알르망(Allmagne), 즉 불어로 독일입니다. 아직 독일이 통일되기 전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훨씬 이전부터 ‘독일’이라는 정체성은 국가와는 별개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북독일 연방 위주의 통합이 1866년 보오전쟁에서 프로이센이 승리하면서 더욱 가속되는 시점이기도 했고요.

운산 금광에 대해서는 동양 최대의 금광 운운하는 자료가 많습니다만, 확실한 데이터는 끝내 구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최대까지는 아니어도 상당한 수준의 금광이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일례로 운산 금광의 타보위(Tabowie) 광구에서는 폐광될 때까지 2천만 달러 상당의 금이 채굴되었습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근대화된 광업 설비를 갖추었기 때문이고, 아직 작중 시점이면 우리가 생각하는 대규모 설비를 갖춘 탄광은커녕 다이너마이트(1867년 특허 등록)도 보급되지 않은 시점입니다. 원 역사에서의 운산 금광도 수익만큼이나 운산 일대의 인프라 구축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음을 고려하면, 흔히 ‘노다지’로 알려진 만큼의 대박이 나올 수 있을지는 의문을 제기해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작중 시점이면 1849년 캘리포니아의 골드러시를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투기성 광업이 활성화되던 시기이기는 합니다. 당시 조선에 대해서도 금이 넘쳐난다는 미확인 보고가 넘쳐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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