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종, 군밤의 왕-28화 (28/320)

9. 밤으로써 밤을 논하니 (2)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먼 옛날 로마가 골족(Gaul)에게 불탔을 때 골족의 족장 브레누스(Brennus)는 도시에서 철수하는 조건으로 황금을 바칠 것을 요구하였다 한다. 살아남은 로마인들이 신전의 금을 긁어모아 가져오자, 브레누스는 직접 자신의 앞에서 요구한 만큼의 금을 가져왔는지를 저울질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아뿔싸, 아무리 보아도 저울이 브레누스에게 유리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로마인들이 불공정하다며 하소연하자, 브레누스는 제 칼을 풀어 저울추 위에 던져놓으면서, ‘패자에게는 설움뿐(Vae victis)’이라 외쳤다고 한다. 결국 칼의 무게만큼 더 금을 바친 뒤에야 골족들은 물러갔다.

어둑어둑한 기오헌 안에 호롱불이 일렁이니, 섭정공의 누런 얼굴이 더 도드라져 마치 약탈한 전리품의 분배를 논하는 야만인 수령 브레누스처럼 보였다. 물론 따지고 보면 골족이 벨로네의 먼 조상뻘 되니 브레누스에 가까운 것은 자신이겠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렇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대원군께서 이르시기를, 이미 싸움이 벌어졌고 승패의 갈림이 명백해졌으니, 흥정하고자 한다면 더 내놓는 것이 있어야 한다 하십니다.”

“그 무슨 소리요? 잠시 물러났을 뿐인데 어찌 승패를 논한다는 거요? 지금이라도 족히 이 도시까지 밀고 올라올 수 있지만, 그저 두 나라의 우호를 위해 더 이상의 피가 흐르지 않기를 바라기에 초대에 응했을 뿐이외다.”

물론 그럴수록 물러설 수는 없었다. 이곳 궁전 안으로 들어오면서 잠시 소년 시절 즐겨 읽었던 모험소설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아 설레기도 했지만, 이제는 다시 정신을 바짝 차릴 때였다. 야만인 소굴 한 가운데에 들어온 지금, 그의 목숨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조국의 이름과 일신에 지닌 재치뿐이었다.

통역을 맡은 요한이 귓가에 다가가 자신의 말을 옮기니, 섭정공이 피식 웃었다.

“말씀하시기를, 고작 급히 모은 병사 이백에 막혀 물러나면서 배 한 척까지 잃게 되었으니, 이제 이 나라에서 이십만 정병을 모아오면 어찌 대응할 것이냐고 이르셨습니다. 또한 한 번 실패야 전쟁에서 자주 있는 일이라지만, 야심만만한 젊은이 하나의 관로(官路)가 만리타향에서 막혀버리니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라 하십니다.”

그 말을 듣자 아차 싶었다. 비록 문명의 혜택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눈앞의 이 자는 엄연한 권력의 실세, 저 자리를 주사위놀음으로 따내지는 않았을 테다. 게다가 리델 신부가 찾아오기 전 자신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수도 있지 않은가.

애초에 프랑스에 유리할 게 없는 초대에 응해서 이곳까지 온 시점에서 벨로네는 이미 약점 하나를 잡힌 셈이었다. 상황에 떠밀려 이판사판으로 덤벼들었을 뿐. 별 소득 없이 돌아간다면 – 그가 목이 붙은 채 돌아갈 수 있다는 전제 하에 – 로즈 제독은 두 번 생각지도 않고 저를 배신할 것이다. 본국에 용케 직소한다 하더라도 이 일을 굴욕적인 처사로 간주해 복수한답시고 설칠지언정 자신에게 온정을 베풀어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무언가 엄청난 소득을 얻어가지 않으면, 벨로네에게 남은 것은 파멸뿐이었다. 제 앞가림도 못한 채 나라에 손해만 준 머저리로 낙인찍혀, 어디 남태평양 한 가운데로 쫓겨나 미관말직으로 평생 썩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런 다급함이야말로 패착은 아니었는가 싶었다. 처음 섭정공이 말문을 트자마자, 양국의 우호와 친선, 신앙과 교역의 자유, 개항장 추가, 연해(沿海) 측량권 등등, 몇 년 전 사이공에서도, 또 페킹에서도 먹혔다고 들었던 조건들을 내걸었더니, 섭정공은 하나씩 비꼬며 대꾸하는 것이었다.

두 나라의 우호와 친선을 이야기하자, 그대 나라에서는 요새를 부수고 왕릉을 침범하는 것이 다른 나라에 대한 우정을 표현하는 관습이냐며 비꼬았다. 해군총병대가 점령하러 올라간 고지가 왕릉이 있는 곳이었음을 벨로네가 어찌 알았겠냐만, 어쨌든 왕릉을 에워싼 성곽이 포격에 맞아 무너졌으니, 자신이 생각해보아도 반달리즘(Vandalism)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듯했다.

이어서 연해에 암초가 많아 위험하므로 자신들이 측량해주겠다고 이야기하자 대꾸하기를, 연안에 배가 좌초한 것으로 보아하니 멀쩡히 항해하는 것도 어려워하는 듯한데 무슨 측량을 하겠냐고, 차라리 수도에 용한 지도제작자가 있으니 그 사람에게서 지도나 한 첩 얻어가는 게 어떻겠냐고 하는 게 아닌가.

또 교역의 이야기를 꺼냈더니, 양민들에게까지 총을 쏘아대는 것으로 보아 화약과 총알이 남아도는 모양인데 그런 건 저들 나라에도 많이 있다고 비웃었다. 더 비꼼을 들을 엄두가 나지 않아 치외법권 얘기는 꺼내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협상이고 뭐고 모두 관두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설마 자신이 분사(憤死)하는 꼴을 보려고 이렇게 불러서 모욕을 주는 것은 아니리라 믿으며 겨우 눌러 참았다. 그랬더니 지금처럼 자신의 앞길을 지레 걱정해주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다.

“함대를 이끄는 자로 나이 지긋한 수군 도독(水軍都督)이 따로 있는데도 굳이 연소한 관원이 직접 온 것은, 나라의 영광 외에도 필히 따로 일신의 영달을 위해 노리는 바가 있음이 아니냐고 물으십니다. 또한 말씀하시기를, 그 원하는 바를 이루는 데 도움을 준다면 무엇을 내어줄 수 있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지금 자신에게 저 한 몸의 이익을 위해 조국을 배반하라 한 것인가? 혹 엄청난 모멸감을 이기지 못해 실성한 것은 아닐까 싶어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다. 허나 그러건 말건 눈앞의 동양판 브레누스는 계속 무어라 중얼대었다.

“만약 원하기만 한다면, 이 모든 일을 덮어줄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옮기던 요한도 잠시 멈칫하였다. 자신이 올바르게 들었는지 반신반의하는 눈치였다.

“인명을 살상하고 왕릉을 침범한 것은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일이니 반드시 상응하는 사죄와 배상이 있어야 하지만... 꼭 실제로 일을 벌인 사람과 책임을 지는 사람이 같을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고 하십니다.”

본래 사람은 남에게서 좋은 생각을 들으면, 그것이 사실 처음부터 제가 한 생각인데 그저 남이 먼저 입 밖으로 냈을 뿐이라 여기기 마련이다. 어떻게든 살아날 구멍을 찾던 벨로네가 듣기에도 언뜻 솔깃하였다.

민간인에게 발포하여 프랑스인 주교가 죽었고, 비록 군사작전 중 일어난 일이라 하나 다른 나라의 왕릉을 훼손했다. 이 모든 일이 다 로즈 제독 탓이라고 저 혼자 우긴다면 본국에서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지만, 이 나라의 정부가 나서서 자신의 편을 들어준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곧 영국, 어쩌면 러시아도 이곳 코레에 도달할 터. 그들끼리만 입을 맞춘다면 – 마치 며칠 전 벨로네 자신과 로즈 제독이 주교의 죽음을 코레 측에 뒤집어씌우자 모의했던 것처럼 –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잖아도 유럽의 무기를 들여오려 했는데, 이번 일의 배상 차원에서 화포와 선박, 그리고 기기창을 차릴 수 있는 기물들을 싼 값에 들여올 수 있도록 거간을 서 준다면, 애당초 요청했던 것처럼 전권대사를 제물포로 보내 유럽식으로 조약을 체결하는 예를 갖추어 줄 것이며, 중국 측에도 공사에 대해 호의적인 이야기를 넣어주겠다고 합니다.

또한 손상된 우의를 보수하는 뜻에서, 곧 영길리, 아라사 두 나라를 비롯해 서양 제국(諸國)이 통상을 청해올 것인데 이때 이들 나라들이 아국을 핍박하거나 기만하여 귀국보다 더 많은 이익을 취하는 일이 없도록 중재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그러한 정의(情誼)를 지켜주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이 저들 나라들에게도 ‘우리가 법국인들로부터 이러한 피해를 입었으니, 귀국에게도 함부로 문을 열어줄 수 없다’고 답변하여 둘러댈 수밖에 없으리라고도 하셨습니다.”

한편으로는 구슬리고 한편으로는 겁박하니, 들으면 들을수록 무엇에 홀리는 듯했다. 그러나 조국의 이익과 위신을 버리고 동양 야만인 정부와 야합함은 대프랑스의 외교관이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지금껏 자신의 출세만을 바라고 살아왔던 벨로네였지만, 이처럼 당당하게 대놓고 회유를 받게 되자 어딘지 모르게 저어되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당해야만 하는가? 또 생각해보면, 조국이야 그렇다 쳐도 저 로즈 제독이 과연 자신을 위해 해준 일이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 어차피 이 일로 로즈와 벨로네 둘 중 최소한 하나는 목이 날아가야 한다면, 늙다리 군인보다야 앞날 창창한 자신 같은 인재가 남는 편이 나라를 위해서도 좋은 일 아닐까?

자기정당화의 논리와 대프랑스 외교관으로서의 양심이 부딪히기 시작해, 마치 눈앞의 호롱불 불꽃처럼 여기저기 일렁였다. 섭정공의 말을 모두 옮긴 요한 남이 어딘지 모르게 질린 듯한 표정으로 섭정공을 바라보고, 또 그 말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또 더욱 표정을 일그러뜨렸건만 벨로네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노인인 듯 노파인 듯 애매한 고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무 바닥이 콩콩 울렸고, 곧 미닫이문이 드르륵 열렸다. 옆의 두 사람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도로 엎드려 절을 올리자, 엉겁결에 일어난 벨로네도 허리를 굽혔다.

“국왕 전하십니다! 예를 갖추시고, 절대 얼굴을 직접 보지 마십시오!”

옆에서 요한이 필사적으로 속삭여 눈치를 주었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허리를 더 굽히고 있는데, 문득 구수한 냄새가 코에 와 닿았다. 섭정공과 요한이 다시 좌정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제 자리에 앉아서 둘러보니 지금껏 비워놓았던 상석에 멋들어진 비단옷을 입은 동양인 소년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몇몇 관원들 – 아마 오리엔트 궁정에 많이 있다는 환관이리라 – 이 들어왔는데, 국왕 포함 네 사람 앞에 각각 조그만 상을 하나씩 내려놓고서는 그 위에 다시 무언가 동그랗고 노란 것을 한 접시씩 돌렸다.

“상께서 하교하시기를, 늦은 밤까지 나랏일을 돌보는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해 직접 이 ‘외프 드 마롱(œuf de marron, 율란)’을 준비하셨다 합니다. 공손히 예를 표하시고, 감사한 마음으로 드십시오.”

소년 왕이 먼저 한 입 들고, 섭정공이 이어서 한 입, 요한도 한 입씩 들었는데 벨로네는 함께 내온 바게트(젓가락)가 영 익숙지 않아 낑낑대었다. 그 모습이 가여웠는지 임금이 낭아한 목소리로 다시 무어라 말했다.

“또 하교하시기를, 멀리서 찾아와 낯선 나라의 관습을 따르느라 어려움이 많음을 알고 있으니 걱정 말고 그저 편히 들라 하셨습니다.”

분명 식기에 대한 이야기였겠지만, 왠지 모르게 그 속 온정이 느껴져 살짝 눈물이 돌았다. 배 타고 이 도시에 들어왔을 때부터, 아니, 어쩌면 체푸를 떠나왔을 때부터 저에게 이렇게 온정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었던가. 아마 그만큼 물러나려야 물러날 길 없는 낭떠러지를 등지고 있던 그였기에, 사소한 배려에도 이처럼 과하게 감동하였던 것이리라.

왕이 이른 대로 편하게 바게트로 푹 찍어서 한 입 맛을 보았다. 마롱 쇼(marron chaud. 군밤) 알맹이를 갈아서 더 달달하게 만든 듯한 맛이었다. 동양에 군주가 요리를 직접 하는 풍습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으니, 그만큼 자신을 환영하고자 직접 수고로움을 감수한 것이리라. 입 안에서 녹아내리는 구수함이 앞서 살짝 맛본 왕의 온정과도 같은 듯해, 지금껏 긴장으로 가뜩 뭉쳐있던 마음도 함께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섭정공은 열심히 어린 왕에게 무어라 얘기하는 것이, 아무래도 방금 전까지 자신과 주고받은 내용을 전달하는 듯했다. 처음 코레의 시국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 당연히 옆 나라 자폰(일본)에서 그렇듯 임금은 허수아비에 불과하고 모든 권력이 섭정의 손에 있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지금 대화를 나누는 모양새를 보니, 실권자가 형식상으로 통보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정말로 아들을 챙겨주는 아버지의 모습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이 감질 나는 디저트는 무엇이란 말인가? 임금의 본심이 – 무엇을 믿고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 이처럼 자신에게 호의적이라면, 아마도 이 나라가 프랑스와 제대로 된 관계를 수립하고 싶어 하는 것은 사실인 모양이었다. 물론 섭정공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눈앞에 펼쳐진 모습을 보아하니 섭정공이 굳이 임금의 뜻을 거스를 성싶지는 않았다.

긴장감이 풀리면서 그간 무의식 저편에 눌러두었던 허기가 돌아와, 더 많은 당분을 집어넣기를 갈구했다. 예법을 최대한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바게트를 분주히 놀렸다. 벌써 포도당이 흡수되어 혈류로 퍼져나간 것일까? 마치 다시 시동을 건 증기기관처럼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다.

왕과 섭정공이 협조해준다면, 본국의 고관들 쯤이야 쉽사리 속여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저들이 코레에 무슨 관심이 있겠는가. 조금만 펜을 잘 놀리면, ‘야만인보다 더 야만적이고 규율이 흐트러진’ 함대가 ‘선량한 주민들’을 겁박하였으며 그 베르뇌인지 뭔지 하는 주교도 그 와중에 사망하였다고 둘러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무력충돌이 이어지면서 전면전 직전까지 간 상황, 그것도 군사적으로 승리를 거두기는커녕 계속 엉뚱한 짓만 하던 상황에서 젊은 외교관이 홀로 담판을 지어, 극적으로 양국의 우호와 친선을 위한 조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한다. 문명과 평화, 진보를 말하는 언론의 취향에 얼마나 잘 맞는 이야기인가! (그것이 프랑스 외교정책의 실상과 얼마나 부합하는 취향인지는 차치하더라도).

『르 피가로(Le Figaro)』나 『르 쁘띠 주르날(Le Petit Journal)』 같은 유력한 언론에 자신의 모험담이 대서특필될 것을 생각하며 젊은 백작은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조약이 지나치게 코레에 유리하게 짜이는 것 정도야 쉽게 둘러댈 수 있다. 어차피 빈궁한 나라인데 당장 무력으로 이권을 뜯어낸다면 얼마나 뜯어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잖아도 요 몇 년 사이 불황을 호소하는 산업계다. 몇 프랑 되지는 않겠지만 새로운 기계와 화포, 선박의 주문처가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들은 고무되어 자신을 찬양할 것이다. 적당히 가지고 있는 연줄로 '장기적 이익'을 생각하라고 설득해준다면, 코레 정부가 감당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할부로 대가를 지불하는 조건도 마련해봄직할 것이다.

이제 막 문호를 여는 반문명국을 지금 당장 삼키기보다는 조금씩 후원해줌으로써 점차 파이를 키워 수출 시장으로 삼고, 친(親)프랑스 여론을 북돋아 극동 한가운데에 거대한 전초기지를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훨씬 세련된 외교정책 아니겠는가.

그때, 섭정의 보고를 모두 들었는지 왕이 다시 자신에게 무어라 이야기하였다.

“전하께서 앞서 오간 이야기를 모두 들으시고 하교하시기를, 교섭한 바가 모두 온당하니 제안한 대로 하겠다고 약조만 한다면 마땅히 귀국 군함으로 전권을 가진 자를 파견하여 그대로 수호(修好)하는 전범을 갖추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어 하문하시기를, 아무리 양국이 이렇게 서로 돕고 칭찬하는 예를 갖춘다고 하더라도 주교와 양민들이 살상당한 것은 분명할진대, 그들의 원통함을 어떻게 달래야 하겠느냐 하셨습니다.”

자리에 앉은 세 사람의 귀가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모두 임금에게 향했다. 설마 이 일을 가지고 무언가 더 처분을 요구하는 것일까? 이미 일신의 이익과 국익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시점에서 더 코레의 편을 들어준다면, 어쩌면 이 판 자체를 깨버리는 게 더 이로운 형국이 되어버릴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임금은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죽은 주교는 실로 의인(義人)이니, 비록 뜻을 온전히 이루지는 못했지만 귀국 군대가 못된 생각을 품고 인명을 살상하려는 것을 온 몸으로 막아내었다고 하십니다. 이 안타까운 일은 결국 서로 상대를 몰랐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주교의 이름을 따 제물포에 학교를 세우고 귀국의 학자들을 초빙해, 주교의 뜻을 기리고 두 나라의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는 단초를 마련함이 어떻겠냐고 전교하셨습니다.”

죽은 주교를 한낱 거래의 거스름돈으로 삼지 않았다는 데 감격했는지, 통역하는 요한의 목은 어째 조금 메여있는 듯했다.

마침내 담판을 끝내고 궁 밖에 나설 때는 밤이 깊어도 보통 깊은 것이 아니었다. 사자 굴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왔다가 구명할 도를 찾아 나가는 길이니 기분이 자못 유쾌하여였다.

다만 한 가지, 세부적인 내용들을 논의하기 전, 임금이 마지막으로 덧붙였던 조건. 베르뇌 주교의 이름을 딴 학교를 세워달라는 것이 잠시 마음에 걸렸다. 따지고 보면 프랑스가 손해 볼 일은 아니지만, 그 명분으로 내세운 것이 임금에게는 오히려 명분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만약 몇 백 년 전에 저렇게 선량한 군주를 두었다면 이 나라에게도 참 좋은 일이었겠지만, 오늘날의 문명화된 세상에서 국가의 통치자는 도덕군자가 아니라 냉철한 국가이성(raison d'etat)의 화신이어야만 했다. 만약 그렇지 못한 국가가 있다면 결국 다른 누군가에게 뜯어 먹힐 뿐이었고, 문명의 진보와 평화를 위해서 어쩌면 그것이 더 이로울 수도 있다고 벨로네는 배웠으며 또 믿었다.

과연 저런 무른 군주가 이 거친 세상 앞에서 과연 어찌 살아남을까 싶어 잠깐 궁금하기는 하였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벨로네 자신에게 무엇이 떨어질 지였다. 이깟 보잘것없는 나라 하나쯤이야 어떻게 되든 크게 마음 쓸 일은 아니었다. 조금 생각하던 벨로네는 우선 더 중요한 일, 로즈 제독의 뒤통수를 때릴 일에 신경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도성 땅을 밟은 이방인은 대원군의 배려로 순라군 하나 없이 조용한 길목을 따라 어두운 그믐밤 속으로 사라졌다. 아직 은은한 밤의 맛이 입안에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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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조불수호조규를 둘러싼 막후협상이 건성으로 끝났습니다.

아직 보불전쟁의 패배로 프랑스 내 민족주의가 마구 일어나기 전이라, 골족 수령 브레누스 이야기는 벨로네에게 그렇게까지 큰 감흥을 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흥밋거리 옛 고사 정도로 받아들여질 뿐이지요. (물론 훗날에는 전함 이름으로까지 쓰이는 등, 민족주의의 주요 아이콘이 됩니다.)

제2제국 성립 이후 빠르게 성장하던 프랑스 경제는 1860년이 되면 후발 산업국들, 즉 미국, 프로이센 등에게 따라잡혀 점차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게 됩니다. 이권 수탈보다는 교역을 통한 장기적인 시장 개척이 더 타산이 맞을 수도 있다는 벨로네의 잔머리에도 나름의 근거는 있는 셈이지요.

중간에 대원군이 이십만 대군 운운하는 것은, 사실 원 역사의 병인양요에서 순무사 이경하가 프랑스군에게 ‘천만 대병’을 이야기했던 것에 비하면 비교적 순한맛에 속하는 허세입니다.

벨로네의 행복회로에 등장하는 『르 피가로(Le Figaro)』나 『르 쁘띠 주르날(Le Petit Journal)』 은 당대 프랑스의 유력한 언론매체였습니다. 르 피가로는 지금도 꽤 큰 영향력을 가진 일간지로 남아있지요. 나폴레옹 3세의 언론정책으로 인해 자유주의적 저널리즘은 대체로 억압받았고, 대신 소위 말하는 ‘국뽕’ 저널리즘은 정책적으로 장려되는 정도까지는 아니었어도 비교적 흥성한 편이었지요.

여담으로, 중간에 나오는 바게트(Baguette)는 본래 ‘막대기’라는 뜻입니다. 젓가락을 이르는 불어이기도 하고요. 우리가 아는 바게트 빵도 그러니 ‘막대기빵’인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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