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종, 군밤의 왕-25화 (25/320)

8. 연평 바다에 바람이 분다 (3)

“대체 어떻게 된 거요? 대체 어찌 하였기에 이런 사달이 났단 말이오?”

노기등등한 벨로네가 따져 묻고, 그나마 의지할 구석인 로즈 제독도 ‘그러게 왜 그랬냐’ 하는 낯빛을 보이니, 보셰 소령은 그저 변명을 주워섬길 수밖에 없었다.

“그, 그것이,,, 바다안개 때문에 상륙정 몇 척이 좌초했습니다. 습격 후 귀환하기 위해서는 배가 필요했으니 어떻게든 끄집어내려 용을 쓰고 있는데, 그때 현지인들에게 발견된 것입니다. 곧 현지인들이 무리를 지어서 몰려들었는데, 모두 같은 흰 옷을 입고 있어 제복차림의 군인이리라 단정한 몇몇 부사관들이 사격을 지시한 모양입니다. 사격 자세를 갖추는 것을 보고 달려오던 선교사가 총에 맞은 것은 불행한 사고였습니다.”

“불행한 사고라. 그래, 당신에게는 불행한 사고겠지만 그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단 말이오! 사고라니, 참! 뚫린 입이라고 말은...”

관자놀이가 시큰하게 아려와, 벨로네는 말하다 말고 머리를 움켜쥐었다. 잠시 분위기가 진정되자 로즈 제독이 입을 열었다.

“냉정하게 생각하시지요, 각하. 지금 그 신부가 절명하였다는 것은 우리만 알고 있습니다. 군의관에게 보이기 위해 급히 후송하였을 때만 하더라도 의식이 남아있었지요.”

“덕분에 사정은 더 잘 알게 되었지! 신부 말로는 배가 좌초한 것을 도와주려고 기독교인들끼리 무리지어 모여들었다 하던데, 그들도 여럿 쏘아 죽였을 테니 모양새가 퍽 좋게 나오겠소이다.”

중국과 코친차이나 일대에서 기독교인들에 대한 탄압이 있을 때마다 이를 명분삼아 보상을 요구하며 이권을 뜯어내던 프랑스였다. 벨로네는 물론이요 어지간한 장교들도 이를 알고 있었다. 그러니 만약 우호적인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발포로 살해당했음이 알려진다면, 역풍이 불어도 족히 미스트랄(Mistral) 급의 역풍이 불어 닥칠 것이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신부의 죽음은 불행한 일입니다만, 문제가 불거지면 코레 인들이 먼저 우리를 위협하였다고 둘러대면 될 일입니다. 사안의 진실을 아는 이들이야, 지금 이곳에 있는 우리들과 몇몇 사병들뿐이지 않습니까.

문제는 포구에 있던 고관들입니다. 그들 본인은 순순히 체포에 응했지만, 시종이나 호위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마 총성을 듣고서는 가까운 관청으로 가 신고하도록 했겠지요. 그러니 며칠 내로 코레 정부도 우리가 항구를 급습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제독은 잠시 눈길을 돌려 사람들의 이목이 저에게 집중되었음을 확인하고는 말을 이었다.

“각하, 제가 생각하기에 지금의 상황은 아직 수습 가능합니다. 제 경험으로 판단컨대 동양의 정부는 대개 낙후되고 비효율적인지라, 아무리 오늘 일을 들어 알게 된다 할지라도 대책을 논의하는 데 하루이틀은 족히 걸릴 것입니다. 또 각지의 요새에 경계령을 내리는 데 며칠. 증원군을 모아 보내는 것도 며칠씩은 각각 소요되겠지요.

우선 주변 수로를 정찰한 뒤, 당초 계획대로 살레 강을 거슬러 올라가, 적절한 지점에 봉쇄선을 형성하여 코레 정부로 하여금 협상에 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듭시다.”

조용히 듣던 벨로네는 지금껏 그를 지탱하던 노기가 빠지면서 함께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의자에 털썩 걸터앉았다.

“그렇게 하시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다른 방도가 없구려.”

“제독께 한 가지 건의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때, 조용히 듣고 있던 올리비에 대령이 나섰다.

“살레 강의 수심이 충분히 깊지 않아 세미라미스를 끌고 올라갈 수 없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또 강폭이 넓지 않을 경우, 정크선 위주의 현지인 함대라 할지라도 물살을 타고 충각을 감행하는 등의 방법으로 우리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해군총병대를 함께 보내, 수로를 타고 올라가던 중 적절한 고지가 있으면 그곳을 점령토록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음, 확실히 주변 지리는 눈으로 관측하는 게 가장 확실하지. 해상봉쇄보다 수로 옆의 고지를 점령하는 게 훨씬 더 강한 메시지를 줄 수도 있을 것이고. 좋은 생각이오. 보셰 소령에게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주도록 하지.”

문수산 중턱에 오르니 참으로 멋들어진 경관이 펼쳐졌다. 옆에는 강화도가 보이고, 바다 너머로는 크고 작은 섬들이 늘어서 있었다. 바다안개를 포연(砲煙)이 갈음하고, 갈매기 울음소리 대신 포성이 울려오고 있지만 않았더라면 성가퀴에 몸 기대고 둘러보며 구경할 여유가 있었을 것이다.

손돌목에 들어선 양선(洋船) 주변에 물보라가 몇 번 일더니, 이번에는 강화도 둔덕 쪽에서 흙먼지가 일어났다. 그렇게 주고받기를 몇 번. 처음에야 석전판 구경하는 마음으로 ‘천세! 천세!’ 하고 외치던 병졸들도 곧 긴장감에 입을 다물었다.

“또 쏜다!”

누군가 외쳤다. 양선의 허리춤에서 흰 연기가 솟구치더니, 돈대(墩臺)가 또 한 차례 박살나고, 안타까운 탄성을 흘릴 무렵에야 포성이 메아리쳐 들렸다. 응사하는 포성은 양선이 한 차례씩 돌아가며 포를 날릴 때마다 잦아들어, 이번에는 아예 침묵으로 응대할 뿐이었다. 멀리서 포화만 주고받았으니 인명이 크게 살상되지는 않았을 터, 완전히 기세를 잃었거나, 화약이 떨어져 더는 쏠 수 없는 것이리라.

“선전관(宣傳官) 나리, 서, 설마 저곳이 마지막은 아니지 않겠습니까요?”

애써 침착함을 가장하는 정운구(鄭雲龜)에게 옆을 지키던 젊은이가 물었다. 모양새를 보아하니 단순한 군졸은 아니요, 신헌 일행을 호위하기 위해 특명을 받고 내려올 때 경군(京軍)에서 차출하여 데려온 자였다.

“음. 양이가 아무리 화포에 능하다 하나, 한 번에 한 곳씩 뚫고 오다 보면 지쳐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는 법. 앞서 초지진(草芝鎭)과 덕진진(德津鎭)을 넘어 지금 광성보(廣城堡)까지 제압했다 하나, 아직 용진진(龍津鎭)이 남아있고 건너편 갑곶(甲串)도 있네.”

그런데 지금 다시 보니 어딘가 모르게 생김새가 익숙했다. 며칠 전 제물포로 내려올 때만 해도 신앙을 고백하고 스스로 탄핵해 대간직을 내려놓은 것으로 일약 유명인사가 된 – 물론 그 이후 신설된 법어역관(法語譯官) 직을 다시 맡기는 했지만 – 남종삼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한 번 보고 고쳐볼수록 확실히 아는 얼굴이었다.

“자네, 혹시 나와 얼굴 맞댈 일이 있었던가?”

“저, 그... 일전에 운현궁에서 뵈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왜, 임금님께서 운현궁 행차하셨을 때 옆에서 소란이 일었던 날 있잖습니까? 그때 그 머슴이 접니다요.”

“아, 그래, 이름이 그, 덕만이라 했던가?”

그새 헛상투도 제대로 다시 틀고, 생김새도 훨씬 번듯해지기는 했지만 얘기를 듣고 보니 그때 그 멋모르는 총각이 맞는 것도 같았다. 아닌 게 아니라 그때 상께서 새로 군영에서 취재(取才)하는 법도를 마련하고 있다고 귀띔해주셨으니, 이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젊은이가 거기 붙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애초에 작년에 제도가 바뀐 이래로 사실상 총만 잘 쏘면 누구든 군문에 들 수 있게 되지 않았던가.

퍽 신기한 인연도 있다고 농을 던지려 했는데, 그때 또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저, 저, 멍청한 놈들! 쏘지 않고 뭘 하는 게야!”

박 무어라 하는 진무영(鎭撫營) 중영(中營)의 초관(哨官. 종9품의 하급 지휘관)이었다. 손돌목을 넘어 오랑캐 배들이 다가오는데, 아마도 용진 나루 옆에 있을 용진진에서는 포연은커녕 깃발 하나도 날리지 않고 있었다. 광성보까지 무너지는 것을 보고서 도망친 모양이었다.

그러니 이제 남은 것은 갑곶 하나뿐인데, 배들이 어째 나루로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문수산 쪽 해안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주변에서 군졸들이 ‘아이고, 맙소사’ 소리를 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그만의 느낌은 아닌 듯했다. 곧 배에서 종선(從船)들이 연이어 내려왔고, 아마도 사람인 듯한 검은 무언가가 꾸물대며 노 저어오더니 곧 뭍에 닿았다.

“젠장할. 신 영감 말씀이 꼭 이렇게 맞아떨어지다니.”

나흘 전, 오랑캐들과 첫 교섭을 하고 돌아온 뒤 신헌 영감이 자신을 불러, 오랑캐들이 적반하장으로 분기(憤氣)를 품은 듯하니, 혹 저들이 소란을 일으킬 경우에 대비해 바로 조정으로 파발을 보낼 준비를 해두라 하였다. 또한 덧붙여, 소란이 일어나면 데려온 병사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단속하면서 문수산성으로 물러나라 하였다.

애초에 이곳 문수산이 선왕이신 철종대왕의 장지로 정해진 이유는 건너편 강화도가 잘 보일 정도로 주변에서는 꽤 높은 축에 들기 때문이다. 객지(客地)에서 싸워야 하는 오랑캐 장수의 입장에서도 주변의 지리를 살필 수 있는 이곳을 노릴 것이 분명하였다.

그리고 신헌이 걱정한 바는 바로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고야 말았다. 바닷가에서 느닷없는 화포 소리가 나기에 깨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제물포에 모여든 천주쟁이들이 ‘코쟁이 군대가 사람을 쏘았다’, ‘신부님이 총에 맞으셨다’ 외치며 달아나는 게 아닌가. 어차피 호위만 생각하고 데려온 병력으로는 저들을 막을 수 없을 터, 전날 신헌이 제게 한 말을 떠올리고서는 최대한 주변의 군졸들을 수습해 이곳 문수산으로 온 것이다.

아직 오랑캐들이 소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이 이곳까지 퍼지지는 않았기에, 손쉽게 사공을 구하여 건너편 갑곶으로도 연락을 취할 수 있었고, 다행히 진무영 쪽에서도 원군을 보내와 그나마 산성을 지키는 구색은 갖출 수 있었다.

그러나 그래보았자 자신을 따라온 군사가 서른넷, 문수산성 별장(別將. 종9품) 신도혁(申道赫)이 이끄는 진무 좌영(左營) 소속 병졸로 호출에 응한 자가 마흔여덟, 그리고 진무 중영의 원군이 쉰하나. 능참봉 –선왕의 능묘는 융릉(隆陵)의 예에 따라 산성 안에 있었다 - 오 아무개가 데려온 동네 장정과 머슴이 서른일곱. 지금 언뜻 보기에 뭍에 닿은 종선만 열한 척이니 암만 생각해도 저 양놈들을 상대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어쨌든 모두가 저를 바라보고 있으니, 두려워하는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우연히 남종삼이 대원군의 밀명을 받아 양인들과 만나는 것을 목도한 이래로, 발설치 말라는 은밀한 경고와 함께 품계를 올려받은 그였다. 조만간 당상관(堂上官)으로 올라갈 것을 노리는 판이었으니, 지금이 기회가 아니라면 또 언제가 기회이랴!

그렇게 공을 세울 욕심이 생기니 어느새 두려움이 잦아드는 게 느껴졌다. 조정에서 빨리 원군을 보내주든, 저들과 다시 교섭하여 군을 물리게 하든, 대책을 내어줄 것이다. 어떻게든 버티다 보면 대원군 대감이 무언가 꾀를 내어주지 않겠는가!

그때였다.

“피하십쇼!”

덕만이 제게 몸을 던지더니, 곧 와장창. 우르르. 쉬익. 콰앙. 하는 소리가 산 전체를 울리는 듯했고, 잠깐 멈추는 듯하더니 또 한 번 더 울렸다. 앞서 다른 진지들이 당할 때에는 구경거리였지만, 막상 자신이 저 천둥벼락 같은 화포를 얻어맞게 되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이고, 아이고!”

“김 서방, 눈 좀 떠 보게! 아이고야...”

포성이 잦아드니 부상자의 신음 소리와 시신을 끌어안고 곡하는 소리가 가득했다. 거기에 응답이라도 하듯 또 한 차례 화포가 쓸고 지나갔다.

“문루(門樓)가 무너진다! 피해!”

성벽과 문루가 무너지고, 그와 함께 병사들의 기세도 무너져 땅에 떨어지는 듯했다. 장수 되려는 자로서,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말하는 도중 저 예를 모르는 오랑캐들이 또 화포를 쏘지 않기를 기원하며, 단전에 숨을 모아 외쳤다.

“모두 들어라! 이곳 문수산은 선왕의 능묘가 있는 곳이다! 물러서면 반드시 나라가 욕을 당하게 내버려둔 자들로 부끄러운 이름이 남을 것이요, 지켜낸다면 그 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저 오랑캐들의 화포가 예리하니 이는 당해낼 수 없지만, 그 속은 오랑캐이니 어찌 너희 충용한 장병에 비하랴! 그리 알고 마지막 한 숨까지 바쳐 적을 막아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반응은 없었다. 생각해보니 당장 살 길이 급한 자들에게 먹힐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살 길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화포가 무섭다지만 보이지 않는 적에게 쏠 수는 없다. 그러니 이곳 성벽을 버리고 등 뒤로 펼쳐진 문수산 산세에 의지해야 한다.

우선 이미 넋이 나간 표정인 능참봉과 마을 장정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오 참봉! 적의 기세가 매서우니 필히 완병(緩兵)의 계를 베풀어야 하오! 그대들은 병장기를 내려놓고 이곳에서 상한 자들을 구호하되, 반드시 곡을 크게 하고 적이 다가오면 살려달라는 듯 매달리도록 하시오!”

사실 그가 따로 지시를 하지 않았더라도 저렇게 했을 것이지만, 사람은 대개 자신이 하려는 일에 그럴듯한 명분이 있기를 원하는 법. 어울리지 않는 결연한 낯빛이 저들 사이에 돌았다.

“나머지 군사들은 산등성이에 몸을 숨기되, 경군만 나를 따르고 중영은 박 초관, 좌영은 신 별장을 각각 따라라! 각자 무리와 함께 움직이되, 방포할 때는 무리 안에서 반드시 합을 맞추어야 한다!”

제사(齊射)하여 적의 기세를 꺾는다는 내용을 일전에 어떤 병서(兵書)에서 본 것도 같았다. 물론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무 계획 없이 대충 싸우라는 것보다야 나을 성싶었다.

“오랑캐들이 다가옵니다!”

용감하게도 부서진 성벽에 몸을 기대고 계속 밖을 주시하던 병사가 외쳤다.

“내가 한 말을 잊지 말아라! 모두 흩어져라!”

그러고는 자신을 향한 다짐을 담아, 떨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면서 한 번 더 외쳤다.

“모두들, 상급(賞給) 타서 살아 돌아가자!”

이번에는 작게나마 호응이 있었다.

“나, 나리. 무섭습니다.”

함께 아름드리나무 뒤에 몸을 숨긴 덕만이 떨면서 말했다.

“흐흐흐... 사내대장부가 되어서, 그게 무슨, 소리더냐.”

짐짓 허세를 부리는 정운구도 마찬가지로, 몸이 떨리다 못해 허파가 쥐어 짜여 말이 중간에 끊어졌다. 그 꼴이 꽤 우스웠는지, 덕만이 힘겹게나마 억지 웃음을 지었다.

“나리, 옆에 아무도 없으니 속 시원히 털어놓으셔도 됩니다요.”

“그, 그러냐. 후. 니미럴. 나도 무서워 죽겠다 임마.”

아마 그를 따라 여기저기 몸을 숨긴 다른 병사들도 사정은 비슷할 터였다. 왕릉을 버려두고 도망쳤다가는 작게는 일신이 벌을 받고 재수 없으면 일가 전체가 파가(破家)당할까 두려워, 차라리 이 악물고 버텨서 살아남겠다 생각할 뿐이리라. 앞서 궁여지책으로 떠올린, 차마 계책이라 하기도 뭐한 계획이 제발 먹히기를 천지신명과 조선 천지 모든 산신령에게 빌고 또 빌었다.

“이러, 이럴 줄 알았으면 저도 천주교인이나 될 걸 그랬습니다요.”

“그러게 말이다. 저, 적어도 빌 곳이 한 군데는 더 생길 것 아니냐.”

“어... 어? 나리, 저, 저기!”

검은 옷 입은 무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닷가가 아니라 굳이 이쪽으로 오는 것을 보니, 신 대감 예상대로, 능묘를 노린다기보다는 산마루에 올라 주변을 살핌이 목적인 듯했다. 넓게 흩어져 주변을 살피면서 천천히 산을 오르는 폼이, 단언컨대 잡병(雜兵)은 아니었다.

반면, 이쪽으로 말할 것 같으면... 당장 장수라는 자가 정운구 자신 아닌가. 소질 없는 글공부 대신 무관으로 출세해 사또니 뭐니 하며 위세 부리고 살 생각에 이 길을 택한 자신이 문득 우스워졌다.

그때, 코쟁이 한 명이 엉뚱한 곳에 손가락질을 하며 무어라 고함을 질렀다. 필경 매복하고 있는 다른 무리들 중 하나가 발각된 것이리라. 그래, 지금 아니면 또 언제가 기회랴. 한 번 죽지 두 번 죽겠는가. 스스로 되뇌며 몸을 일으켰다.

“쏘아라!”

화살이 시위를 떠나, 또 다른 코쟁이 몸을 스치고 옆 나무둥치에 가서 박혔다. 놈들의 시선-그리고 아마도 총구도 –이 자신의 쪽으로 향하는 게 느껴졌다. 뒤이어 불질하는 소리가 두어 번 나더니, 저기서 두세 방. 또 저기서 서너 방, 두서없는 총소리가 울렸다. 아마 딴에는 한꺼번에 쏘겠다고 준비하였으리라.

살짝 고개를 내밀어보니, 놈들이 몰려들어, 성기게 두세 줄을 만들고는, 몇몇은 궤사(跪射. 무릎쏴)하고 몇몇은 서서 겨냥하였다.

제 옆의 덕만이도 멀뚱멀뚱 있다가 총을 겨누더니,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안 나갑니다!”

“고개 숙여, 멍청아!”

총알 수십 발이 나무를 스치고 지나간다. 저 멀리서 비명 소리도 언뜻 들리는 듯했다.

“육시럴! 못 쏘겠으면 소리라도 질러!”

“아아아악! 다 죽어라! 아아아아악!”

그러니 저쪽에서, 또 앞뒤에서도 비슷한 고함소리가 산을 울렸다. 뒤이어 조총의 총성도 연이어 들려왔다. 다시 고개를 내밀어 보니,정운구가 있는 쪽으로 대열을 만들어 응사하던 오랑캐들이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저들의 고개가 잠시 등 뒤를 향한 틈을 노려, 또 한 번 화살을 시위에 올리고, 몸을 내밀고, 당기고, 놓는다. 어디 맞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명이 고꾸라졌다.

그때, 저 멀리서도 총성이 울렸다. 원군이 온 것일까? 메아리 소리로 보아 자신들이 있는 문수산 자락은 아닌 듯했다.

적들도 소리를 들었는지,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의 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물러나기 시작했다. 기세가 오른 자들이 몇 발씩 여기저기서 더 총질을 했지만 대개 빗나갔다.

그래도 어쨌든, 자신들은 아직 살아있었다. 총에 맞아 어깻죽지가 축축해졌든, 겁에 질려 하초(下焦)가 축축해졌든 간에 숨은 붙어있었다. 어찌 되었든 물러나는 것은 저쪽 코 큰 무리이니, 안도감이 몸을 적셨다.

“놈들이 물러간다!”

“이겼다! 천세! 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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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역사에서 개화기 조선군 편제에 처음으로 충격을 준 사건이 바로 병인양요였습니다. 당시 조정이 꾸린 일종의 임시 통합부대인 순무영(巡撫營)의 기록을 보면, 훈련도감군 중심으로 꾸린 선봉중군(先鋒中軍) 중 조총수가 5분의 1도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조총을 제대로 다루는 사람이 부족해 여기저기 민간인들 – 심지어 멀리 강계의 호랑이 사냥꾼들까지 –을 동원해야만 했던 충격으로 인해, 그 이후로 조총이 점차 중시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반면 이 역사에서는 앞서 귀남이 덕만에게 입시비결(?)을 알려준 데서 짐작할 수 있듯 대충이라고는 하나 군제를 개편하면서, 조금이라도 포수를 중시하는 경향이 일찌감치 나타났습니다.

진무영(鎭撫營)은 수도 방위 및 조운의 요지인 강화도와 그 일대를 지키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설치된 부대입니다. 총 병력은 3천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함께 등장하는 별장(別將)은 『속대전』부터 직제가 명시된 종9품 관직으로 각지의 산성과 나루 등을 지키는 것이 그 직임이었습니다. 작중 등장하는 신도혁은 실제 역사에서도 문수산성 별장이었고요.

한편, 실제 역사의 병인양요에서도 문수산성을 놓고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한강 하류 유역으로 들어가는 수로 전체를 감제할 수 있는 요지거든요. 차이점이라면, 당시에는 로즈 제독이 사전에 수로를 답사해 교동 쪽으로 들어와 강화도에 상륙, 이후 갑곶에서 바로 조그만 배를 타고 문수산을 공격한 반면 여기서는 염하수로 방면으로 들어왔다는 게 있겠네요. 그러나 어찌 되었든 문수산성의 해안 쪽 문루와 성벽은 대포에 맞아 무너지는 운명을 면하지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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