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 (2)
날이 추워 한기에 무릎이 아려오지만, 입궐할 때는 솜 속옷 한 겹을 관복 안쪽에 껴입을 뿐 따로 갖옷을 걸치거나 휘항(揮項. 털모자)을 쓰지 않는다. 주상께서 하사하지 아니하신 의복을 겉에 드러내 복식의 도를 흩뜨림은 예(禮)가 아니다.
몸이 쇠한 지 오래이므로 어딘가를 오갈 때는 견여(肩輿. 가마의 일종)를 타야 하지만, 돈화문 앞에 이른 뒤에는 지팡이 하나 짚지 않고 오직 후들대는 다리를 억지로 놀려 제 힘만으로 걸어 들어간다. 궤장(几杖)을 사여하는 성은을 아직 입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예에 맞다.
힘겹게 궐 안으로 들던 중 이항로는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저 하늘은 늘 푸르니 원대한 도를 품었고, 크고도 넓어 땅 위 모든 것을 넉넉히 덮으니 실로 지극한 덕을 지녔다. 세상 사람들이 그 이치를 터득해, 이 땅에 정도(正道)를 세우고 스스로 닦으면 뭇 어지러움은 절로 다스려질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올해로 나이가 고희(古稀)에 닿고도 네 해를 더 산 늙은 선비는 부쩍 답답함을 느꼈다.
비록 어두침침하다 하나 그 또한 눈이 있고 귀가 있다. 대원군의 부름에 혹해 서원 훼철의 소(疏)를 올리자마자 쓰임이 다해, 이제는 고루한 늙은이 취급을 당하고 있음을 익히 짐작하여 알고 있었다.
지난 가을. 서원의 이름을 망령되이 달고서 난동을 부린 얼자들의 이야기는 퍼지고 퍼져 이항로의 귀에도 닿았다. 그리고 양이가 몰래 도성을 드나들었다는 풍문도 들려왔다.
사안이 이처럼 중대하니 다음 날이면 상소가 빗발치리라 기대하였다. 아무리 세상이 어지럽고 밝은 도가 흐려졌다 하더라도, 옳고 그름을 구분할 줄 아는 선비들이 적지 않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퍽 야속하게도 성토하는 말 한 마디, 죄를 청하는 글월 한 줄도 올라오지 않았다.
하다못해 소문의 근원을 제공한 대원군이라도 무언가 조치를 취해주리라 기대하였다. 그러나 운현궁 역시 침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때 그는 대원군에게서 주공(周公)을 보았다. 위태로움에 처한 반천년 사직을 일으켜 세우고, 찬란한 문명의 제도를 부흥시킬 토대를 마련해주리라 믿고 기대하였다. 노욕을 부린다는 오명을 감수할 각오를 품고, 늙은 몸을 이끌고 상경한 것은 그 원대한 일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일은 어떻게 돌아갔는가. 권학도감의 일은 이미 대원군의 익문사와 박규수의 개화당이 멋대로 농단한 지 오래다. 저들은 잡다한 말단의 일을 시무책이라고 내세워 어린 주상의 눈을 가리고 김문의 세도가 무너진 자리를 저들끼리 나누어가지려 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답답하여 이러한 풍문이 돌고 있는데 왜 모두 가만히 있느냐고 지나가는 유후조를 붙잡고 따졌더니, 그가 야멸치게 응수하는 것 아닌가.
“선생께서 걱정하시는 바는 익히 알겠습니다만, 말씀하시는 사안은 모두 주상 전하와 대원군 합하의 깊은 심산으로 다뤄질 일입니다. 우리가 지금 왈가왈부한들 무슨 보탬이 있겠습니까?”
마치 자신은 처음 듣는 일인 양 대경실색한 모습이었던 박규수도, 급히 상과 독대를 청하고는 물러날 때는 표정이 한결 밝아져 있었다.
“상께서 이 일을 깊게 생각하시어, 어지러움을 다스리고 그릇됨을 바룰 방도를 마련할 대강(大綱)을 내려주셨습니다. 이러한 일은 모두 지엽(枝葉)에 속하는 것이니, 바라건대 화서 선생께서는 괘념치 말아 주십시오.”
어찌 선비 된 자로서, 신하 된 자로서 괘념치 않을 수 있는가? 온 나라가 지금 무너지려 하건만, 조정의 중신이라는 자들은 어찌 가만히 있고 박규수와 대원군의 무리들만이 입을 놀리고 있다는 말인가?
대비께서 철렴을 선포하셨건만 대원군은 여전히 조정의 뒤에서 손을 부지런히 놀리고 있었다. 아마도 대원군과 한통속일 박규수가 『개화소』를 올린 지 벌써 보름. 저의 편을 들어주리라 기대하였던 김문의 자제들의 입은 지금 그가 지나고 있는 금천교(錦川橋) 아래의 시냇물처럼 얼어붙어 있었다.
그러니 이제 조정에서 사도(斯道)의 올바른 이치를 내세울 수 있는 이는 이항로 한 사람 뿐이었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사세의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닫고 대세에 승복할 것이나, 그는 비답을 받을 때까지 떨리는 손으로 붓을 놀리고 시든 목소리로 간곡히 아뢸 각오를 하였다. 이것이 신하된 자의 도리다.
어린 주상이 편전에서 정사를 돌본다. 일을 처리하는 요령에는 미숙함이 있는 듯하지만 사람을 대함은 마치 이항로 자신보다도 노련한 느낌이 든다. 그런 밝으신 주상께서 어찌 대원군과 개화당의 전횡을 용인하고 계실까? 그저 통촉해주기를 기원하며, 저 삿되기 이를 데 없는 ‘신법(新法)’을 공박하고 공박할 뿐이다.
“날이 풀리는 대로 취재(取才)를 벌여, 일전에 하교해주신 대로 군비를 갖춤으로써 경사(京師)를 방비하고 선왕의 묘역(철종의 능묘)을 굳게 지키는 기틀로 삼고자 합니다.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병판의 뜻대로 하시오.”
오늘의 안건이 모두 논의되었다. 마치 말을 맞춘 것처럼, 중신의 대열에서 누군가 나와 아뢰고, ‘그리하라’, ‘경의 뜻대로 하라’ 하는 비답이 내렸다. 이제 파할 때가 되었다.
“신 동부승지 이항로 아뢰옵나이다. 일전에 미욱한 신이 올린 상소에 비답을 내려주시니, 어리석은 머리가 트이고 어두워진 눈이 밝아지는 듯하였사옵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신법을 펼침에 우려되는 바가 있어 간곡히 통촉하시옵기를 청하옵나이다.”
이항로는 한 발을 내딛어 앞으로 나섰다. 얼핏 살피니 그에게 동조하는 낯빛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항로는 태연자약하게 올리고자 하는 바를 계속 아뢰었다.
“대저 이 신법이라 하는 것의 요체를 살피면 오직 사학(邪學)의 해로움을 다스리고 해방(海防)의 법제를 갖추어 장차 나라의 화(禍)가 될 것을 미리 없애는 데 그 뜻이 있으니, 이는 실로 아름다워 가히 취할 만합니다.
허나 그 절목을 들여다보면, 그런 뜻을 떨치고자 할 때 준용할 상도(常道)가 엄연히 있거늘 도리어 권도(權道)를 택하고자 하니, 본말(本末)의 뒤집힘이 이보다 심할 수 없습니다.
바른 도리를 따름은 비유하자면 산을 오름과 같습니다. 사람들이 오가는 대로(大路)가 비록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지언정 실은 가장 평탄하고 떳떳한 길이요, 첩경(捷徑. 지름길)은 비록 빠르게 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은 가장 거칠고 위태로운 길입니다.
잠시의 편리를 위해 큰 도를 가볍게 여김은 결코 어진 정사에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바라건대 상께서는 깊게 헤아리시어, 혹 옆에서 안정(眼睛. 눈망울)을 가리는 소지가 없는지 살펴주시옵소서.”
한두 번 오간 논쟁이 아니었다. 이미 여러 차례 이항로는 『개화소』의 신법에 문제될 여지가 많다며 딴죽을 걸었고, 그럴 때마다 개화당 영수 박규수가 나와 차근차근 논박하였다.
이항로는 사학 교도들에게 ‘교첩(敎牒)’을 발행함은 마치 성묘조(成廟朝. 성종)에 불승들에게 도첩(度牒)을 내려주려다 혁파한 것과 같으니 효험이 없을 것이며, 이단(異端)을 다룰 때는 단호한 위엄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자 박규수는 교첩을 발행하면서 그 내역을 관에서 기록해, 감히 교첩 없이 사학을 믿거나 허가받지 않은 국외인(國外人)을 숨겨주는 등의 위법한 일이 있으면 해당 고을의 모든 교인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므로 삿된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반박하였다. 즉 나라에서 모든 교인의 행방을 파악하여 잘못된 일을 저지를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위엄을 보이는 길이라는 것이다. 정전(丁錢)을 거두어 관의 곳간에 보탬은 덤이다.
또 이항로는 이양선에게 각 관에서 물자를 베푸는 일을 금하고 대신 제물포(濟物浦) 한 곳에서 이양선과의 교역을 허하겠다는 데 대해서도 극렬히 반대하였다. 유원(柔遠)의 도를 버리고 멀리서 온 이에게 먹고 마실 것을 제공하지 않음은 예의의 국가에서 따를 바가 아니다. 또한 이미 양목(洋木. 영국산 포목)이 들어와 나라의 물산을 곤궁하게 하고 있는데, 통상을 허함은 그러한 해악을 가일층 키울 것이며, 심지어 청국에서 그러했듯 사학과 아편이 퍼지게 되는 단초가 될 것이다.
박규수는 기다렸다는 듯, 해방을 함에 있어 가장 우선되는 도리는 문정을 빙자해 사사로이 이양선과 통함을 차단하는 데 있음을 청국에서 들어온 여러 서책을 들어 주장하였다. 또한 제물포를 오가는 양물(洋物)에는 포구에서 조세를 거두는 법도를 준용하여 포조(浦租. 관세)를 뗄 것이니 값싸게 들어오는 기물로 아국의 귀한 양곡이 나가는 폐해를 능히 규제할 수 있다 하였다. 이양선 단속의 법제를 마련함으로써 청국으로 몰래 새어나가는 포삼(包蔘)의 유출을 막는 것 또한 유익한 점이다.
이항로는 알래야 알 수 없는 궁리를 통해 나온 것이 박규수의 이 시무책이었다. 어린 임금 속에 들어앉은 미래의 노인은 어설프게나마 정책의 결과를 알았고, 나라를 바꾸겠다는 소년 시절의 꿈을 끌어안은 채 고스란히 늙은 대신은 그 목표에 도달키 위해 무엇을 쌓아올려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둘이 머리를 맞대어 나온 방책에, 산림에 있던 이항로는 듣도 보도 못한 서책과 국고의 출납을 인용하여 근거로 삼으니, 편전에 든 중신들은 물론이요 궐 밖에서 조정의 논의에 귀를 기울이던 어지간한 사람들도 꽤나 그럴 듯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양이들이 연경에 틈입(闖入)하여 난동을 부리고 오랑캐 황제가 잠시 이어(移御)하였다 하나, 아직 이 땅에서 그러한 흉계를 꾸민 일은 없었다. 대원군이 집정하여 조정 뒤편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나, 아직 으리으리한 대궐을 새로 지어 백성의 살림을 곤궁케 하는 것처럼 뚜렷하게 잘못된 일을 저지른 바도 없었다.
둘러싼 사정이 이러하고 또 박규수가 내세우는 주장이 저처럼 일견 정연(井然)하여 조리가 맞으니, 항심(恒心) 없는 무리들이 보기에 억지를 부리는 것은 이항로였지 결코 박규수가 아니었다.
다시 때는 지금으로 돌아와, 이항로가 간신히 고개를 숙이어 비답을 기다리고, 박규수가 늘 그랬듯 대신 나서서 반박하고자 마음의 채비를 갖추려 하는 차, 임금이 옥음(玉音)을 내렸다.
“동부승지는 들으오. 경의 뜻은 가상하나 가납할 수 없소.”
지난 보름 동안 『개화소』의 신법에 대해 조용히 긍정만 하던 주상이었다. 아니, 생각해보면 철렴 후 지금껏 정사를 돌보면서 뚜렷한 의견 없이 신료들이 주청(奏請)하는 대로 윤허해주던 주상이었다. 이처럼 뚜렷하게 어지(御旨)의 향방을 밝힌 일은 처음이었다. 가만히 듣던 신료들의 눈이 절로 크게 뜨였다.
“지금 나라가 존망(存亡)의 갈림길에 놓여, 나라의 령은 제대로 서지 않고 곳간은 텅 비었으며 백성들 중 이반하는 무리가 적지 않소. 그런데 이제 이양선(異樣船)이 근해를 드나들며 헛된 말로 민심을 더욱 어지럽히니, 종묘의 일이 급함이 개국 오백년 이래 지금 같은 때가 또 있었겠소?”
분명 흉중에 품고 오래 고심한 듯한 말이었지만, 그 말투는 마치 무릎 위에 손주를 앉혀놓고 타이르는 노인과 같았다.
“나라의 형국이 물에 빠진 사람과도 같소. 지금 손을 뻗어 끌어 당겨주지 않는다면, 승냥이나 이리와 같은 자가 될 것이오.” [『맹자(孟子)』, <이루 상(離壘·上)>]
조용히 듣던 박규수가 숨을 들이켰다.
‘아직 상의 배우심이 부족하여 이렇게 발목이 잡히는구나!’
산림의 거두 앞에서 경전을 인용함은, 그것도 잘못 인용함은 실로 큰 실수였다. 과연 이 꼬투리를 놓칠 이항로가 아니었다.
“하교하신 바가 지당하오나, 맹자께서는 뒤이어 물에 빠진 형수의 손은 잡아 끌 수 있지만 물에 빠진 천하는 오직 도(道)로써만 구원할 수 있다 말씀하셨으니 이는 실로 아성(亞聖)의 지극한 뜻입니다.
나라의 위란(危亂)을 헤쳐 나옴에 있어 올바른 길이 이와 같으니, 권도로써 일시의 편리만을 좇으면 이는 결국 미봉책(彌縫策)에 지나지 않을 것이요, 삿됨을 내치고 정학을 바로 세워 치세의 기틀로 삼을 때만 일세의 평안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이대로 논박이 계속되면 기껏 갖은 전례와 경전을 끌어와 정당화했던 신법은 다시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게 된다. 태연함을 가장하는 박규수의 얼굴 한 편으로 땀 한 방울이 흘렀다.
결국 무엇을 끌어와 어떻게 덧붙이든, 자신이 올린 이 계책은 길게 보면 나라의 근본을 뒤흔들 수밖에 없다. 아무리 불자들에게 도첩을 내린 예를 끌어와 서학을 허통함을 정당화하고, 왜인들에게 삼포(三浦)를 열어준 전례로 제물포를 양인들에게 열어준다 주장한들, 그 끝까지 밀고 가보면 결국 작금의 도학이 지향하는 바와는 맞지 않는다.
물론 언젠가는 박규수 자신이 생각하는 나아갈 길을 설파할 때가 올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언제 저 바다로 양이의 함대가 밀고 들어올지 모르는데, 어느 세월에 이와 기(理氣), 화와 이(華夷)를 논한단 말인가?
그런데 말꼬리를 잡힌 어린 임금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감히 말대꾸를 하느냐고 노여워하는 표정도, 할 말이 막혀서 당황하는 표정도 아니요, 그저 ‘네 말도 맞다’ 하는 마음 좋은 노인의 상이다.
“동부승지의 말이 참으로 옳소. 역시 아직 부족하여 성현의 말씀을 익힘에 미진함이 있었구려. 그러니 대신 내가 잘 아는 군밤으로 비유하여 얘기하겠소.
밤 중에는 일찍 여문 올밤도, 덜 익은 풋밤도 있고, 송이밤도, 알밤도 있소. 또 넓적하니 큰 덕석밤도, 조그마하니 귀여운 도톨밤도, 자잘하고 동그란 녹두밤도 있소. 하지만 아예 알맹이 없는 쭉정밤이 아니고서야 잘 구우면 모두 맛이 있다오.
모두 구우면 먹을 만한데 보기에 좋지 않다고 반절을 버리고, 또 벌레가 한 입 먹고 갔다고 나머지 반절을 버리면, 남은 것이 얼마나 되겠소? 지금 나라의 상황을 빗대자면 포대자루에 밤이 몇 톨 안 남았는데 집에 노모가 계신 것과 같소. 맛있게 구워서 양껏 드시게 해 드려야지, 어찌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두어 톨만 구워 바칠 수 있겠소?”
거창한 도를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이야기가 군밤으로 틀어져버렸다. 화제가 갑자기 엉뚱하게 튀어버리니 이항로는 물론이요 뭇 중신들이 순간 당황하였다. 이것은 무슨 비유인가? 어떻게 대꾸해야 하는가?
“그러나 전하, 모름지기 효행하는 도는 미리 헤아려 살피는 것을 중히 여기는 법입니다. 보기에 좋지 않은 밤을 구워서 올린다면 그것을 보는 마음도 좋지 않게 될 텐데 어찌 이것이 효라 하겠습니까?”
“아, 경이 좋은 질문을 해 주었소. 자, 잘 모르는 사람들은 볼품없는 밤이 맛도 없으리라 쉽게 여기기 마련이오. 하지만 이는 굽는 법을 잘 모르기 때문인데, 화덕에 불을 어떻게 지피느냐가 바로 관건이라 할 수 있소...”
돌려서 넌지시 물어볼 때마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격으로 군밤 굽는 장광설이 돌아온다. 능구렁이 넘어가는 듯한 화술에 어느새 본래 『개화소』의 이야기를 꺼내었던 것은 잊혀버렸고, 어느새 어떤 군밤이 올바른 것인지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문답이 몇 순 오가니 오늘에야말로 결단을 보겠다는 굳은 마음으로 등청한 이항로도 끝내 어리둥절한 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기록하던 사관들은,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였기에 이런 황당한 내용이 사초에 실릴 수 있었느냐고 선배들에게 꾸지람을 당할 걱정에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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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생김새에 대해 저렇게 많은 단어가 있는 줄은 저도 집필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출처는 <농민신문> 2013.10.21.자 “밤 일컫는 다양한 말”입니다.
궤장이란 공이 많은 노신에게 하사하는 지팡이입니다. 나이 70세, 품계 종1품 이상인 원로에게 내리게 되어 있습니다 (동부승지는 정3품). 그래도 명색이 이항로급 되는 사람한테 안 내려주었을까 했는데, 실제로 잠시 이항로가 관직생활을 했던 병인년(1866) 승정원일기를 찾아봐도 그런 기록이 없더라고요.
작중에서 언급된 도첩제는 조선 초기부터 임란 이전까지 시도된 억불 정책의 하나입니다. 성종 연간에 이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이항로가 언급하는 것이 그 일입니다.
영국산 포목의 국내 유입으로 인한 시전 상인들의 불만, 홍삼 밀무역으로 인한 세수의 감소 등은 모두 당시에 실제로 있었고 위정자들에게도 인지된 (그러나 관심 있게 다루어지지는 못한)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