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푸른 하늘, 푸른 눈 (2)
상상도 못한 이야기를 들은 표정으로 정운구가 남종삼과 함께 나오니, 정의배의 집 앞에 진을 치고 있던 한량들도 필히 무언가 곡절이 있으리라 짐작하고는 어물쩍 해산하였다. 물론 두 사람 모두 그런 것에 신경 쓸 계제는 아니었다만.
우선은 리델 신부-이복명-가 나서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기는 했지만 궁금증은 꼬리에 꼬리를 물 뿐이었다. 만약 리델 신부나 정의배가 조정이 돌아가는 형국을 조금만 더 잘 알고 있었더라면, 생면부지의 무관에게 지난 몇 달간 운현궁을 오간 비밀 서간들에 대해 털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저들은, 그저 정운구가 주상이 보낸 사람이라는 사실에 흥분하여 마치 무슨 밀사라도 되는 양 여겼으리라. 그만큼 지금 이들이 하고 있던 작당은 중대하면서도 신자들로서는 가슴 벅찬 일이었다.
허통(許通)! 누가 전하지도 않았거늘 스스로 믿기 시작해 어느새 교구 하나를 이룬 이 나라 조선의 2만 신도들이 바라마지않는 두 글자다. 대원군은 부인 민씨 편으로 베르뇌(Siméon-François Berneux) 주교에게 먼저 서한을 보내, 아라사(러시아)를 막을 방도를 만들어 준다면 이 땅에 교회가 설 자리를 마련해주겠다 제안했다.
물론 받은 것이 저 서한뿐이었다면 그간 박해를 여러 차례 당했던 교인들은 진의를 의심하면서, 소극적인 답장만을 보내며 눈치를 살폈을 것이다. 그러나 근자에 나라에서 학교를 늘리고, 그 학교에서는 서양 학문도 가르친다는 풍문을 듣자 베르뇌 주교는 생각을 고쳤다. 물론 뒷부분이야 개화당이 꾸민 일이었지만, 베르뇌 주교는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이 나라가 문호를 열지도 모른다고 넘겨짚었다. 그리하여 남종삼 요한에게는 대원군에게 접근할 것을 요청하고, 조선말이 능숙한 리델 신부를 멀리 경상도에서 이곳까지 올려보낸 것이었다.
정운구가 리델에게 이곳까지 올라와 어떤 의론을 주고받았느냐 물어보았더니, 그것은 자신이 감히 함부로 밝힐 수 없다면서 공을 다시 남종삼에게 떠넘겼다. 그러자 남종삼은 운현궁으로 돌아가 얘기하자면서 정운구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리델이라면 모를까 엄연히 자신보다 품계가 높고 대원군과 직접 대면하는 남종삼이었기에, 정운구 역시 더 탐문하지는 못하고 따라 나올 뿐이었다.
‘불법체류자다!’
정운구가 하는 수 없이 돌아와 자신이 본 것만을 이실직고하자 귀남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저들 믿는 종교를 선교하겠다고 딴에는 좋은 뜻을 품고 왔다고는 하지만, 도성 안까지 외국인이 들어왔는데 임금인 저도 몰랐다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괘씸하기도 괘씸하거니와, 지난 생에서 불법체류자들에 대해 온갖 흉흉한 소문은 다 들었던 터라 무언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윽고 남종삼이 따라 들어와서는 감히 시강을 하던 중 자리를 비운 데 대해 죄를 청하였다. 죄를 청한다고 해서 정말로 마음대로 죄를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나, 조금 얄미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유혈낭자한 방법이 아니더라도 사람을 은근슬쩍 괴롭힐 수 있는 방법은 무수히 많은 법. 곧 돌아올 군밤의 계절에 입천장 몇 번 벗겨지게 해 주면 딱 적당한 보복이 되리라. 그러고서는 대범하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 생각까지 하고 있는데, 대원군의 입시를 알리는 소리가 문 밖에서 들렸다.
“강녕하셨사옵니까, 전하. 이곳으로 모셨음에도 학업에 보탬을 드리기는커녕 저자의 소란함으로 마음에 어지러움을 일으키게 하였으니 실로 신의 불찰이옵니다.”
“어찌 이것이 경의 잘못이겠소. 내 일의 전후 사정을 간략히나마 들어보니 이는 그저 어리석은 무리들이 경거망동한 것이지, 결코 누구를 책잡을 일은 아니외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다만 거친 무리들이 저자를 횡행함은 경사(京師)의 위엄과 민심의 안정에 도움될 것이 없으니, 청컨대 중신들과 논의하여 방도를 마련하고 또 사전에 이를 막지 못한 좌우 포도대장에게 합당한 처분을 내려주소서.”
물론 저 요청이 실제로는 곧 저렇게 하겠다고 하는 통보에 가까움은 귀남도 잘 알고 있었다. 흥선대원군이 원체 대단한 사람이라 들어 알고 있었기에 믿고 맏길 뿐이었다.
“그보다 도성 안까지 들어온 양이(洋夷)의 일을 묻고자 합니다. 경도 이 일 때문에 찾아온 것이겠지요?”
“헤아리심이 늘 지극하시옵니다. 지금 나라에 시급한 일이 국경을 방비하는 것인데, 이이제이(以夷制夷)의 계책을 조금 부려 일시의 방편으로 삼고자 한 것입니다.”
대원군이 설명하는 바를 간추리면 대략 이러하였다.
경신년(1860) 이래 부쩍 경흥부 변경을 수상한 대비달자(大鼻㺚子)들이 배회하는 일이 늘었다. 그러더니 지난 겨울에는 무리지어 얼어붙은 강을 건너와 아라사 인을 자칭하며 통상을 요구하는 일까지 일어난 것이다. 운현궁 밖으로 나가지 않은 경흥부사윤협의 보고에 따르면, 이미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백성들이 삼삼오오 도강하여 저쪽 편에 정착한 것이 기백에 이르며, 국경의 허술한 경비를 뚫고 교역하는 정황도 수차례 보였다 하였다. (여기까지 들은 귀남은 ‘역시 쏘련 놈들은 어딜 가나 도움이 안 된다’ 하며 속으로 짜증을 내었다.)
그때 대원군은 병오년(丙午. 1846년)에 도성을 한바탕 시끄럽게 만들었던 불랑국(佛郞國) 국서의 일을 떠올린 것이다. 사학(邪學) 죄인이라 불리는 김대건(金大建)이 붙잡혀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데, 양이의 대선(大船) 세 척이 바다에 나타나 망측한 글을 조정에 전하고 간 일이 있었다. 집정하고서 그 내용을 찾아보니, 천주쟁이들을 기해년(己亥. 1839년)에 추포하여 처단한 데 대한 항의의 뜻이었다.
예전에 오경석이 선물로 바치고 간 『해국도지』를 상고하여 보니 아라사와 불랑국, 즉 법국은 모두 구라파주(歐羅巴洲)의 나라로 하나는 서양(西洋)에 있고 하나는 북양(北洋)에 연하였다 하였다. 법국이 머나먼 조선까지 거대한 군함을 세 척이나 보내 위협하는 형세를 갖추는 것을 보면, 아라사도 능히 제압하여 조선을 넘보지 못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하여 허통을 미끼삼아 저 소위 신부라 하는 자들을 거간으로 삼아 법국인들의 위세를 빌려올 계책을 세우려 했던 것입니다. 이 일이 혹 새어나가면 혹 민심을 어지럽히고 어리석은 무리들이 날뛰게 될까 두려워 성상께도 미처 말씀을 올리지 못하였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선왕의 양자로 입적되면서 아무리 부자의 연이 공식적으로 끊어졌다 하지만, 이렇게 필요할 때 정말 군주를 모시는 신하처럼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을 보면 여전히 불편한 귀남이었다. 그러나 대원군의 본론은 이제 시작이었다.
“이전에 성상께서 이판(박규수)에게 언젠가 나라의 문호를 열어야 된다고 가르침을 내리시었다 들었습니다. 아무리 오랑캐의 무리라 하나 ‘배워야 할 것은 배워야 한다’고 전교하시었다고요.”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딱히 감출만한 일도 아니었다.
“상께서도 지금 조정에 여러 붕당이 있음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부족한 신이 성상을 돕기 위해 초야에서 등용한 인재들이 여럿 있고, 이판이 이끄는 무리도, 병판(김병학)이 이끄는 무리도 있습니다. 지금은 권학도감의 일로 바쁘지만 동부승지(이항로) 역시 명망이 높아 한 무리를 능히 이끌 만합니다.”
정확히 왜 나누어져 다투는지는 몰라도, 지금껏 정사를 보면서 제 뒤에 발을 치고 있는 대비와 의론하는 것을 보면서 조정 내에 그런 파벌이 있음은 귀남 역시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이 일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 일은 작게는 변방의 일이지만 크게는 혹 나라의 앞날을 좌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항상 주의하며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허나 언젠가는 조정의 공론을 거쳐야 할 터. 그리 되면 필히 크게 편을 갈라 다투게 될 것입니다. 전하께서 성정이 어지시니, 그리 되면 필히 앞서 서원의 일처럼 화이불류(和而不流)하시고 주이불비(周而不比)하고자 하실까 신은 걱정할 따름입니다.”
“그것이 어찌 걱정할 일이 된다는 말이오? 일전에 함께 이야기하였듯, 꼭 편을 갈라 싸우지 않고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적지 않은데, 꼭 한 쪽 편을 들어서 다른 쪽을 억누르고 원한을 쌓아올려야만 하는 것이오?”
임금의 표정은 단호하였다. 이전에 입궐하였을 때, 자신의 앞에서 망국을 거론하며 지었던 예의 그 표정이었다. 사람이 무른 것인지, 아니면 무른 사람이 되기로 굳게 마음을 먹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대원군은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전하께서 만약 영명하신 헤아리심으로 기기묘묘한 신책(神策)을 내신다면, 신 역시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허나 전하, 신은 사사롭게는 생부 되는 이로서 보필(輔弼)하는 도를 다하고자 할 뿐입니다. 사세가 어쩔 수 없게 되었을 때 한 쪽에 의탁함은 결코 허물이 되지 않음을 잊지 말아주시옵소서.”
겉보기에는 따르겠다는 뜻이지만, 들여다보면 말 속에 뼈가 있었다. 이 일로 또 양분될 조정의 두 쪽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 또는 지난번 서원의 일처럼 양쪽 다 무슨 영문인지 알지 못해 손을 놓을 수밖에 없게끔 하는 – 계책을 세우지 못한다면 결국 대원군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날이 슬슬 저물어 임금은 어느덧 환궁하였고, 고즈넉한 노안당에는 다시 대원군 혼자만 남았다. 한 번 더 주변을 살핀 뒤, 주상을 뵈러 가기 전 남종삼이 전해준 서찰을 호롱불에 가져다 대었다.
종이에 따로 기름을 먹인 것도 아니니, 당연히 조금 그을릴 뿐 바로 불이 붙지는 않았다. 어쩌다 이렇게 눅눅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참을 불에 댄 듯했는데 고작 끄트머리에 잔불이 조금 붙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딴에는 불이라고 열심히 번지려 안간힘을 쓰는 꼴이 퍽 잔망지게 느껴졌다.
지금쯤 핏덩이 같은 아들은 아직 다 굵지 아니한 머리를 열심히 굴리면서, 어떻게 하면 서학의 허통을 놓고 다시 갈라질 조정을 봉합할까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또 어떤 해괴한 발상이 나올지 은근히 기대가 되기도 했다. 만에 하나 괜찮은 생각이 나온다면, 그때는 마땅히 도와서 사직에 최대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끌어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가 꾸미고 있는 바와 같이 교섭이 진전된다면, 아마 임금의 뜻대로 –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 무언가 방도가 마련될 일은 없을 터였다. 오늘 그가 저 이복명이라는 서사(西士)를 만나고 오도록 남종삼을 시킨 것은, 그만큼 오갈 이야기가 특히 중차대한 사안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전에 저들의 우두머리라는 장경일과 서신을 주고받을 때에 비하면 확실히 왕래하는 빠르기가 비할 바 아니어서, 꽤나 진전이 있었다.
조선 땅에 있는 모든 천주교도들의 우두머리 된다는 장경일(張敬一. 베르뇌 주교) 앞으로 지금쯤 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서한에는, 조정에서 필히 반대가 있을 것이니 군함을 이끌고 올 것을 주문하라는 요청이 담겨 있었다.
물론 요새 전국을 뒤흔드는 ‘대원위분부’ 공문들과 마찬가지로, 저 요청도 실은 협박에 가까웠다. 협조해주면 고맙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피치 못할 사정으로 너희 교도들을 모조리 잡아 없앨 수밖에 없다. 이런 말뜻을 그리 어렵지도 않게 일러주었으니, 저 눈 파란 자들이 정녕 사람이 아닌 도깨비라 목이 열두 개쯤 되지 않는 이상은 그의 뜻에 따르지 않고 못 배길 것이다. 처음에는 자신들은 오직 저들의 교(敎)에 맞게 행동할 따름이라며 뻗대었지만, 몇 차례 어르고 달래니, 마지못해 포교를 허용하기에 앞서 먼저 군함을 불러와 통교(通交)의 명분을 만들어주겠다고 동의한 것이다.
한창 조정이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을 때, 강화도 지척에 저들의 대함(大艦)이 출몰하면, 비로소 화친의 명분이 생긴다. 아무리 요 근래 화포를 정비하고 군적의 내실을 다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소기의 성과가 나타나려면 한참 멀었다. 조정 신료들이라고 이를 모르지는 않을 터. 죽기를 각오하고 항전하자고 할 만큼 강단 있는 사람은 아마 이항로 외에는 없을 것이다. 나머지는 당장의 굴욕을 참고 북벌(北伐)을 꾀하던 마음으로 잠시 나라의 문을 열자 할 것이고, 박규수의 무리들은 마치 제 세상 된 양 기뻐하며 여기에 동참하리라. 마음이 모질지 못한 아들 녀석도 사람이 죽고 다치는 것을 꺼릴 테니 적당히 구슬린다면 따라올 것이다.
팔도 각지의 유림은 아직도 자중지란 속에서 헤매고 있고, 그에 따라 기껏 포섭해온 이항로도 딱히 더 자신의 편으로 끌어안고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상경한 지 이제 석 달이 채 안 된 이항로에게는 조금 매정한 감이 있지만, 그가 정 완고하게 반대하여 지부상소라도 할 기세라면 적당히 내치거나 몰래 응달에서 핍박하여 도로 벼슬을 내려놓게만 하면 될 일이다.
그러니 이제 장경일로부터 답신이 오고, 불씨를 당길 채비가 되면 유후조를 시켜서 허통의 문제를 거론케 할 것이다. 그리 되면 임금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자신이 더 좋은 해법이라 여기는 무언가를 내세우고자 분발할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쓴 편지가 충청도 어딘가에 있을 장경일을 거쳐 북경에 주둔한 법국 함대에 가서 닿기까지 여론을 끌어주기만 하면 된다. 자신이 다 짜놓은 판 위에서 엄연히 한 나라의 임금인 아들을 장기말 노릇하게 만드는 일이었지만, 대원군은 이것이야말로 낳아준 부정(父情)이라 여겼다. 아들인 주상은 버거워할 짐을 대신 짊어져 주는 것이 어찌 부정이 아니겠는가?
일이 그렇게 되면 척사(斥邪)와 통교 사이에서 누구든 택일해야 할 것이고, 갑작스런 흐름에 모두가 당혹스러워하는 사이 먼저 앞서나가 법국과의 교섭과 통상을 주장하는 것이다. 박규수쯤 되면 날래게 제 정신을 차리고 숟가락을 올리려 할 수도 있겠지만, 멀리서 법국 함대가 오기까지의 모든 일이 누군가의 손바닥 위에서 일어난 일임은 짐작조차 못할 터이니 쉽게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먼지가 걷힐 즈음에는 법국과의 교섭을 도맡는 것은 김문도, 박규수의 개화당도 아닌 자신의 심복들 몫이 될 것이다.
그러고서 만약 일이 틀어진다면, 그때 가서 척화(斥和)의 기치를 내걸면 될 일이다. 어차피 듣자하니 서양에 나라가 법국만 있는 것은 아니요, 영길리도 있고, 북양에 접한 또 다른 나라로 보로서, 멀리 대서양(大西洋)의 미리견도 있다. 그깟 화포쯤이야 저들에게서 들여오면 된다.
개화당이 서책으로 친 장난질 덕에 지금쯤이면 이 나라에서 식견이 있다 하는 모든 이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오랑캐들에게 문호를 열지, 말지의 문제는 장차 이 나라를 어찌 다시 세울지, 어떤 나라로 만들어갈지를 가히 결정하리라는 것을. 마치 불꽃처럼, 한 번 이 일로 다툼이 벌어진다면 나라 전체를 불사를 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저 불이 삼매진화(三昧眞火)마냥 번져오르기를 기원하며 기름을 부을 지도 모른다. 허나 지금 지금 제 손아귀에서 가냘프게 타오르고 있는 저 꼬맹이 불꽃처럼, 이 불길을 다스릴 수만 있다면 마치 나라 전체에 목줄을 채운 것과 같이 될 것이다.
문득 장난기가 들어, 아직껏 서한의 절반도 다 태우지 못한 불꽃을 향해 입김을 훅 불었다. 불이 맥없이 꺼져버리는 것을 보며 흥선군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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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원군 집권기가 중요한 이유는, 그 시기가 외세의 개입에 의해 개혁을 위한 선택의 폭이 제한되기 이전이었다는 점이다. 중국 및 조선의 실패, 그리고 일본의 성공은 이 시간의 문제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김영수, “근대 한국의 실패와 정치적 리얼리즘” (2003) p.39.
베르뇌 주교가 북경의 클로드샤를 달레(Claude-Charles Dallet)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집권 직후부터 아내 민씨를 통해 천주교와의 접촉을 주도적으로 시도한 정황이 보입니다. 당시 조선 내에 있는 외국인 신부들의 머릿수까지 다 알고 있음을 밝히면서, 북경의 프랑스 공사에게 함대를 이끌고 종교의 자유를 청하러 오도록 청탁해달라고 요구하였다는 것이 베르뇌가 밝히고 있는 민씨(즉 흥선군)의 편지 내용입니다. 그러나 정세에 대한 어두움, 대원군의 정치적 협력자였던 풍양 조문에 대한 장동 김문의 반격 등이 겹쳐 이러한 일련의 시도는 끝내 병인박해로 이어지고 맙니다.
원 역사에서 『한국통사』를 쓴 박은식은, 대원군 집정기가 나라의 국운을 도로 세우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때였지만 다만 ‘배움’이 부족하여 모든 일을 그르쳤다고 한탄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개화당이 미숙하게나마 일찍 전면에 등장하여 중국을 거친 것이라 하나 어쨌든 서양에 대한 지식을 널리 퍼뜨리고 있습니다. 고작 책 한 두 권이 무엇이 그리 중하냐 여기실 수 있지만, 실제로 그 책이 없어서 개화 초기에 애를 많이 먹었지요. 알고 싶어도 알 길이 없으니 그저 가지고 있는 단편적이고 편향된 지식만으로 속단할 수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