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가장 무서운 칼날 (3)
기나긴 여름 해가 마침내 하직인사를 올리고,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 집집마다 저녁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둘째 도련님’ 얘기를 해 달라며 천덕만이를 졸졸 따라다니던 민자영도 운현궁 건너편 자기 집으로 쏙 들어갔다. 하필 심부름을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떡하니 걸려서, 저 당돌한 계집아이에게 괴롭힘 아닌 괴롭힘을 당하던 터. 그새 남장을 잘도 터득해서 요새는 티도 거의 나지 않는데다가, 민자영이 기거하는 감고당(感古堂)은 운현궁이 확장공사를 하면서 거의 이웃집에 가깝게 되어버린 바람에 피하기도 마땅찮았다.
허나 뒷문으로 조용히 들어와 오늘은 무얼 하며 농땡이를 피울까 고민하던 찰나, 저와 전생에 무슨 악연이라도 있는지 놈이 아범에게 떡하니 걸려 싸리비를 잡고 마당을 열심히 쓸어야만 했다. 안채에서도 사정은 비슷해, 부대부인 민씨와 간만에 수다를 떨던 고양댁 박마르타(Martha. 이명복의 유모)도 집안 정리에 한몫 거들겠다며 손수 마루를 닦고 있었다.
금상 전하의 잠저(潛邸)요, 떠오르는 권세의 중심 대원군의 집이니 평소에도 어지간하면 정갈히 관리되는 편이었지만, 바로 그 집주인이 퇴궐하던 길에 급하게 전갈을 보내 귀한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라 하니 이처럼 온 식구가 동원되어 부산을 떨게 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훠이~ 물렀거라’ 하며 가갈(呵喝)하는 소리가 울렸다. 대원군이 입궐했다가 돌아온 것이었는데, 잽싸게 싸리비를 치워놓고 행랑으로 들어가려던 덕만이 언뜻 보니 옆에 웬 나이 지긋한 어르신을 모시고 왔다. 그 기세등등하던 대원군도 나름대로 예를 차리는 듯해, 어지간히 대단한 어르신인가보다 했다.
덕만의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운현궁이 맞이한 손님은 바로 오늘부로 동부승지(同副承旨)를 제수받아 단번에 당상관에 오른 산림의 거두 이항로였다. 상경하여 거처할 집을 구하기 전까지 제자 양헌수에게 신세를 지려던 차, 마침 권학도감의 일로 잠시 궐에 들렸다가 물러나던 대원군과 마주친 것이다. 그렇잖아도 대원군이 자신이 출사할 마음을 먹게 한 사람이요, 현재로서는 조정에서 같은 편에 서 있는 입장이니 언제고 한 번쯤 운현궁을 찾을 마음을 먹은 터였다. 그렇기에 둘은 별 실랑이 없이 함께 운현궁으로 돌아온 것이다.
“비답의 내용이 뜻하신 바와 달라 놀라지는 않으셨는지요.”
흥선군이 공손하게 말을 꺼냈다. 나이도 나이거니와, 당색을 불문하고 어쨌든 조선 뭇 선비의 존경을 받는 이항로다. 쉽게 대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한낱 촌로(村老)로 있다 과분한 벼슬을 받게 되었으니 성은에 감읍할 뿐, 무슨 놀람이 있겠습니까. 다만 필히 서원을 훼철하시거나 존치하시리라 여겼는데 이처럼 기이한 대책을 전교하셨으니, 향촌의 어리석은 무리들이 경거망동하지는 않을까 우려할 뿐입니다.”
“그 일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정학(正學)을 널리 펴시려는 뜻이 명명백백하거늘 누가 감히 왈가왈부하겠습니까.”
“그러나 모름지기 나라의 정사는 덕(德)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요, 마땅히 그에 따르는 올바름이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부자(夫子. 공자)께서도 소정묘(少正卯)를 주살하시었는데 이것이 성인의 덕이 모자란 탓이었겠습니까? 서원의 일도 마찬가지로 그간 밝은 도를 어둡게 만든 무리를 내버려두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소정묘는 공자가 노(魯)나라의 사법을 맡은 대사구(大司寇) 자리에 앉자마자 처형한 대부의 이름이다. 즉 이 건과 관련하여 누가 되었든 처벌하여 국법의 위엄을 보였어야 했다는 뜻이다.
“이는 임술년(1862)의 일 (도정궁 이하전의 역모 고변)의 구원(舊怨) 때문만이 아닙니다. 지금 나라에 안타깝게도 도학을 닦는 이는 적고 사특한 이단을 숭상하는 자들은 많습니다. 혹세무민하는 무리들의 뿌리를 뽑지 않는다면, 어찌 나라의 근본이 바로 서겠습니까? 보듬는 덕에는 응당 위정척사(衛正斥邪)의 단호함이 겸전되어야 할 것입니다.”
위정척사라. 기실 대원군의 입장에서도 서학을 탄압함은 썩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비록 아내 민씨가 천주교인이라고는 하나, 풍양 조문처럼 문중의 태반이 그쪽에 발을 담그고 이는 것은 아니었다. 척사(斥邪)의 기치를 든다면 이미 서원의 일로 장동 김문의 통제를 벗어난 유림을 확고하게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주상께서는 선생의 뜻을 가납(嘉納)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며칠 전 비답을 내리신 날 입궐하여 심중(心中)을 여쭈었더니, 하교하시기를 나라에 피가 흐르는 것은 원치 않으신다더군요.”
실로 그러하였다. 권학도감의 설치를 명한 그날, 익문사의 일을 천하장안에게 나누어 시킨 뒤 입궐하여 아들 녀석에게 무슨 생각으로 서원을 늘리라 말하였는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정말 저런 답변이 돌아오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자신이 국운을 다시 흥성케 하기 위해 이런저런 계획을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사람을 해치거나 원한을 쌓는 일 없이 시무(時務)를 처리할 방도가 여럿 있다면서 조잘대며 한참을 떠들었다. 듣자하니 선왕이 와병 중일 때 병구완하면서 둘이 고민하면서 생각해낸 것들이라 하였다. 개중에는 물론 꽤나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도 있어, 아직까지는 그의 머릿속에만 있는 『대전회통(大典會通)』에 담아둔 계책도 몇 가지 있었다.
“그러나 간특한 이들이 원한을 품을 것을 꺼려 응당 내쳐야 할 무리를 온존케 함은 결코 군자의 덕이라 할 수 없습니다. 대원군께서도 아마 이 서생이 올린 글의 대략을 들어 아시겠지만, 이 땅에 불씨(佛氏)의 폐단이 완전히 거두어지지도 않았거늘 참람되게도 천주학(天主學)을 자칭하는 것들이 횡행하고, 또 얼마 전부터는 더욱 세간을 혼란케 만드는 동학(東學)이라는 무리가 일어났다 들었습니다. 이들을 지금 베어내지 않는다면 훗날 그 요설에 넘어간 무리들이 준동할 때 함께 베어야 할 터이니, 이야말로 어지지 못한 일일 것입니다.”
“저 또한 나라의 위엄을 세워야 함을 아뢰었지만, 후...”
“무어라 하교하셨습니까?”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목을 쌓아올려야 설 수 있는 나라라면 차라리 망해 없어지는 것이 가하지 않겠느냐’ 하시더이다.”
“허...”
이 나라가 원 역사대로라면 앞으로 마흔여섯 해 뒤에 옆 나라에게 삼켜져 없어질 것을 아는 귀남이었기에 쉽게 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듣는 이로서는 한 나라의 임금 된 이가 망국을 거론함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아이의 몽상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무게가 너무나 막중했다.
“가볍게 내리신 전교는 아니시겠구려.”
“선생의 말씀이 맞습니다. 주상의 깊은 뜻이 저처럼 확고하니, 신하된 이로써 마땅히 따라서 왕업에 보탬이 되어야겠지요.”
“하지만 그렇다면 어찌 지금 사직과 명도(明道)를 해치려 드는 이들을 뽑아 없앤다는 말이오? 능히 그들을 누를 수 있는 위엄이 있어야 하거늘!”
“저 역시 그리 여겼습니다만, 또 되새겨보니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더이다. 실없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겠습니다만, 선생께서는 혹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칼날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갑작스레 재담(才談)거리로 삼을 법한 이야기를 하니 답을 낼 수 있을 리 없었다.
“바로 칼집에서 한 번도 꺼내지 않은 칼의 날입니다. 벨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지요. 금상의 치세도 이와 같이 한다면, 아무도 베지 않고서도 모두 벤 것과 마찬가지가 되도록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항로는 통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흥선군도 이 고아한 선비 앞에서는 차마 말할 수는 없었다. 그저 다 심계가 있다고 장담해둘 뿐.
생각이 여기에 미쳤을 때, 그날 그는 얼마나 설렜던가. 주상이 이처럼 선량하니, 그 뒤에서 행악(行惡)해야 하는 것은 고스란히 흥선군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저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은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지만, 옆에서 '저 사람의 말 한 마디면 네 목이 달아난다' 하고 일러주는 이가 있다면 모두가 두려워하며 부디 저 사람이 계속 가만히 서 있기만을 빌 것이다.
그리고 그는 왕실이 존엄함을 잊어버린 이 나라 조선의 어리석은 백성들에게, 그들의 모골이 송연해지고 간담이 서늘해질 때까지 그 사실을 상기시켜 줄 것이다. 살아서는 그림자에 가려진 나라의 대들보가 되고, 죽어서는 성군(聖君)의 자애로운 아버지가 될 테니 이 어찌 훌륭하지 않은가! 그 옛날 김좌근의 발밑을 기면서 뒷골목 일을 도맡던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이 죽 떠오르며, 마치 이것이 제 삶이 점지받은 팔자 같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이것 참, 당했습니다그려.”
“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대치(大致) 자네의 잘못도, 역매(亦梅. 오경석의 호)의 잘못도 아니네.”
재동 사랑방. 박규수의 집에 뒤늦게 서원의 일을 전해들은 다른 중진들이 모였다.
“주상 전하께서 개화의 뜻에 찬동하셨다 들었는데, 어찌 이러한 처분을 내려주셨을지요? 혹 대감께서는 짐작하시는 바가 있으십니까?”
개화당의 세 중역 중 박규수가 우두머리요, 오경석이 여러 사람을 잇는 거간꾼이라면 유홍기는 모사(謀士)라 할 만하다. 애초에 서원 철폐의 일로 대원군-그때는 아니었지만-을 견제하자는 꾀를 낸 것도 유홍기요, 오경석을 세자시강원에 두어 몰래 동궁으로 양이(洋夷)들에 관한 책을 집어넣자고 한 것도 유홍기였다.
“내 그때 상감께서 군밤을 하사해주신 이야기는 하지 않았던가? 그때 말씀하시기를, ‘배울 것이 있으면 배워야 한다’고 하교하시었네. 혹 이것도 그러한 깊은 뜻으로 내리신 처분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한동안 조정에서 대원군을 막을 이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 참, 정사를 운현궁에서 돌보게 생겼군요.”
“말조심하게! 어심(御心)을 온전히 헤아리지도 못했거늘 어찌 그런 언사를 하는가!”
유홍기도 평소 제 성격이 나왔음을 알았는지, 무어라 덧붙이고자 연 입을 도로 다물었다.
“대치의 말이 심했다고 하나, 지금 우리가 궁지에 몰린 것은 사실입니다. 대감. 저도 추사 선생 아래서 수학한 사숙들과 그 제자들에게 주욱 연통을 돌려보았는데, 하나같이 이미 깊게 궁구(窮究)하는 바가 있어 출사하려는 뜻은 없다고 하더이다.”
“그때 자네가 데려왔던 화서 선생의 제자들은, 혹 그때 이후로 기별이 없던가?”
최익현과 양헌수의 이야기였다.
“송구스럽습니다, 대감.”
결국 환국 이후로 거의 한 해가 지나가고 있건만, 개화당의 당여라 부를 만한 이들은 고작 이들 셋이 전부였다. 선왕의 능묘를 정하는 일에서도 양보하고, 기껏 끌어들이려 한 산림은 오히려 이항로가 출사하고 권학도감에 한 자리를 꿰어차면서 영영 멀어졌다. 그간 끌어들인 이들 중 그나마 재주나 집안이 되는 자들은 이제야 급제하여 성균관 생도로 있을 뿐이다.
환국에 대비해 미리 이런저런 문중들과 흥선군 사이 연을 이어주는 거간 노릇이야 꽤 했지만, 막상 환국이 지나니 그렇게 모은 사람들은 개화당이 아니라 떠오르는 권력인 흥선군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그 외에도 어떻게든 끈을 대어놓으면 떨어질 콩고물이 있으리라 생각해 뜻을 펼치는 데 필요한 재물을 대어주겠다 하는 자들은 몇몇 있었지만, 그런 모리배들을 어찌 당여라 부르겠는가.
그때, 유홍기가 밝은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대감, 그렇다면 장계취계(將計就計)의 방도가 있을 것입니다.”
“듣고 있네.”
“대원군께서 장돌뱅이들을 모아다 익문사라는 것을 만들고자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겉으로 보이기 위해서라도 곧 전국 팔도에 난립할 서원들에 책들을 나누어주겠지요?”
“물론 그렇겠지.”
“하하. 이건 아마 높은 자리에만 계셨던 분들께서는 알 리 없으실 겁니다. 장담컨대 지금 이 나라 백성 중 팔 할은 언문이나 떠듬떠듬 읽으면 다행일 게고, 나머지 이 할 중에서도 진서(眞書. 한문)를 제대로 다루는 이가 반절이 안 될 겁니다.”
유홍기의 사람됨에 흠결(欠缺)이 있다면, 꼭 이렇게 좋은 생각이 나면 바로 털어놓지 않고 듣는 이의 애를 닳게 하는 버릇이리라. 물론 듣는 박규수와 오경석의 속이 타건 말건 유홍기는 제 할 말을 늘어놓았다.
“... 해서, 지금 전국에 생길 서원들 중 적잖은 곳은 원생들은 물론이요 훈도(訓導) 노릇 할 사람들조차 언해(諺解)되지 않은 경전을 제대로 못 읽으리라는 것이지요. 뜻풀이나마 겨우 할까요.”
“이보게. 이러다 인정(人定) 되겠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건가?”
그렇잖아도 안주인 되는 사람에게 요새 외유가 잦다고 쪼임을 당하던 오경석이 채근했다.
“선묘(宣廟. 선조) 조에 율곡(栗谷) 선생이 『격몽요결(擊蒙要訣)』을 지으셨듯, 우리도 그렇게 까막눈을 겨우 면한 무리들도 쉽게 읽을 만한 글을 써서 퍼뜨립시다. 주상 전하의 뜻이 실로 학문을 권면하는 데 있으시니, 제때 지어서 바치기만 하면 익문사를 시켜 전국에 널리 전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영환지략』 같은 책을 적당히 간추려 집어넣자는 얘기로군.”
“거기서 마칠 일입니까. 역매의 지인들에게 기별을 넣으면, 벼슬이야 고사할지언정 이런 일에는 기꺼이 참여할 것입니다.”
“음, 그것도 훌륭한 생각이네. 고산자(高山子. 김정호)만큼 팔도의 지리에 통달한 이는 없고, 기화당(氣和堂. 최한기)만큼 천문(天文)을 잘 아는 사람도 드무니까.”
“그리고 경세치용(經世致用)의 명분을 내세워서, 환재 대감께서 이를 직접 주상께 올리는 것이지요. 암만 권학도감에 화서 선생 같은 분이 버티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쓰임새가 많게끔 책을 써내기만 하면 막지 못할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고리타분한 경서보다야 영길리(영국)가 이렇고 미리견(미국)이 저렇고 하는 얘기가 더 재미있기 마련이지요.
그렇게 책을 전국에 퍼뜨리기만 하면, 고매한 서생들이라면 모를까 어지간한 호민(豪民)들이라면 우리 편을 들게 될 것이고, 또 우리 당과 같은 생각을 가졌지만 서책을 접할 수 없던 동지들도 모을 수 있겠지요. 이것이 제가 생각한 계책입니다.”
듣고 보니 그럴듯해 박규수와 오경석 둘 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확실히 이들은 모두 학자의 기질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김문이나 흥선군처럼 조정에서의 권세를 놓고 다투는 이들과 정면으로 붙으려 했으니 상대가 될 턱이 없었다. 이제 그들이 본업으로 삼는 배움으로 다시 저들과 한 판 씨름을 할 생각을 하니 어두웠던 마음이 밝아지는 듯했다. 물론 멀리서 치는 인경 소리에 오경석의 표정은 도로 어두워졌지만.
그날의 의론을 마치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오경석을 먼저 보내준 뒤 –그의 집은 같은 가회방(嘉會坊)이라 멀지 않았다- 박규수와 유홍기는 약주를 한 잔씩 걸쳤다. 장대한 기골로 유명하던 연암의 후예답게 박규수 역시 두주불사(斗酒不辭)의 주량을 가지고 있어, 유홍기가 먼저 취해 사람 모양의 대추가 되었다.
“그런데 대감. 갑자기 궁금한 게 있는데 말입니다... 혹시 주상께서 이 모든 일을 미리 안배하신 건 아니실까요? 그냥 해본 생각입니다만.”
“만약 그렇다면 우리 같은 안작(雁雀)들이 감히 헤아릴 수 없는 대붕(大鵬)이시겠지!”
적당히 취기가 올랐던 박규수가 맞장구를 쳤고, 이윽고 두 사내는 '우리 주상께서 실로 대붕이시다!' 운운하며 웃고 떠들었다. 즐거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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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의 아내인 여흥부대부인 민씨는 천주교인이었습니다. 실제 역사에서 흥선대원군이 베르뇌 주교를 통해 프랑스와 접촉하려 했을 때 가운데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한편, 함께 간략하게 언급된 고종의 유모는 세례명 마르타(Martha)로만 알려진 실존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