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종, 군밤의 왕-7화 (7/320)

2. 분란의 씨앗은 동백꽃과도 같구나 (3)

가회방 재동(嘉會坊 齋洞)에는 한 그루 아름드리 백송(白松)이 있으니, 전하기를 처음 이 나라가 왕업의 기틀을 다질 때 심었다고 하는 고목이다. 그 옆에는 몇 년 전에 집주인이 가지를 얻어다 심은 동백이 있었다, 아직 뒤뜰 응달에는 녹지 않은 눈이 꽤 남아있었지만. 동백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벌써 붉은 꽃망울을 여럿 매달고 있었다.

“대저 난(亂)이란 동백과도 같은 것이라네. 동지(冬至)도 지나고 음기가 조금씩 거둬졌지만 아직 봄인지 아닌지 기연가미연가 할 때 먼저 열리지. 그러면 이제 아, 우리 세상이 왔구나, 하고 온갖 봄꽃이 따라서 피는 것이야. 우리 개화당이 피울 꽃도 한 번 개화(開花)하면 저도 꽃을 피워보겠다고 나서는 이들이 마구 나타나겠지.”

사랑방에 앉아 백송과 동백을 지켜보는 것은 다름아닌 박규수(朴珪壽),이 집의 주인이자 소위 ’개화당‘이 꾸려지자 누가 말하지도 않았지만 어느새 당수로 여겨지는 이였다.

“허나 우리 당이 피울 꽃이 가장 성대할진대 무엇이 걱정이겠습니까. 꽃봉오리가 추위에 얼어붙지 않고 피어오르게끔 북돋아주기만 하면 될 일이지요.”

옆에 앉은 유홍기(劉鴻基)가 말했다. 박규수, 오경석과 함께 작년에 무리를 지은 개화당의 중역을 맡은 이였다. 지금 이 셋은 작금의 도성 정세와 개화당의 향후 나아갈 길을 논하기 위해 모여 있었다.

“우리가 지금 손을 잡은 이가 누구인데,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 오히려 꽃이 너무나 탐스럽게 피어서 꺾어가려는 자들이 많을 듯해 더 우려되는 것이야. 나는 작년 진주에 안핵사(按覈使)로 내려가 직접 보았다네. 난민(亂民)들 대부분은 그저 주리고 지쳐 들고 일어난 이들이되, 간혹 그 가운데 승냥이 같은 자들이 한둘씩 있었지. 세상이 어지러워지니, 그 난세 속에서 무슨 모진 짓을 해서라도 내 원하는 바를 이루겠다 하는, 그런 눈빛이 형형한 자들이 어디를 가든 천에 하나씩은 꼭 있었다네.”

“그러나 영감, 안타깝지만 사람이 사는 이상은 꼭 그런 무리가 있게 마련입니다. 하다못해 요순(堯舜) 임금의 대에도 공공(共工)과 환두(驩兜)가 전횡하고 삼묘(三苗)의 무리가 성세를 어지럽혔다 하지 않습니까.

오경석도 한 마디 거들었다.

”그리고 아무리 그런 무리들이 있다 한들 우리가 세도(勢道)를 얻는다면 어찌 함부로 방자한 행동을 하겠습니까. 잘 단속하고 타이르면 될 일입니다.”

“나는 사실 그것이 더 걱정일세. 우리가 세도를 얻은 뒤 김문과 같이 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겠는가? 김 충문공(忠文公. 김조순(金祖淳)의 시호.)도 일세의 명신(名臣)이었건만 그 후손들은 지금 장동에 또아리를 틀고 있지 않는가?”

“영감의 헤아리심이 참으로 깊습니다. 허나 아직 대문 밖에 범이 있거늘 승냥이를 염려하오리까. 우선은 범을 잡을 궁리를 먼저 하시지요.”

“후, 대치(大致) 그대의 말이 옳네. 우선은 그 궁리에 몰두하도록 하세나.”

그러나 박규수의 속마음에는 계속 응어리가 남았다. 그를 크게 쓰려 했던 효명세자(孝明世子)가 안타깝게 일찍 떠난 뒤 첫 20년은 칩거하고, 또 그 뒤 20년은 세도가에 눌려 외직을 전전하였던 그였다. 권력을 쥔 이들에 대한 냉소가 이미 마음 한 구석에 굳어진 지가 오래인데, 생각지도 않게 자신이 바로 그런 자리에 올라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냉소의 대상이 바뀌니 끊임없이 스스로 의심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자신도 지금껏 뒷마당의 순한 염소인 척 하고 있던 승냥이가 아닐까. 아니, 지금 도성의 이름 있는 이들 중에 승냥이 아닌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새로 보위에 오를 주상이야말로 한 마리 범과 같은 이어야만 하리라. 그는 자신과 개화당을 위하여, 그리고 이 나라의 오백 년 왕업을 위하여 저자의 군밤장수 소년이 능히 승냥이들을 다스릴 수 있기를 속으로 기원하였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나라를 다시 일으킬 수 없을 것이요, 그가 꿈꿔왔던 개화(開化)는 한낱 물거품이 되리라.

봄의 시작을 알리는 훈풍(薰風)이 분지도 꽤 되어 신록(新綠)이 그 선명함을 잃을 즈음, 장동 김문의 다음 동량이 될 삼병(三炳)이 본격적으로 대립하기 시작하였다. 어떻게든 흥선군이 집권한 뒤에도 김문의 세력을 유지해보려던 김병학·김병국이 자기편을 모으고자 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들은 너무 종친들을 박하게 대하면 안 되니 이제라도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상감이 즉위 초에 내세웠던 경장(更張)의 뜻을 뒤늦게나마 받들어 시행하자는 명분을 내세웠다.

지금이라도 그간 쌓아왔던 구원(舊怨)을 조금이라도 덜어서 도성이 한바탕 뒤집힌 후에도 목숨이나마 부지하게 하려는 의도였으나, 그러한 속사정을 모르는 이들이 보면 영락없는 편가르기였다. 가문의 분열을 두려워한 김좌근이 자기 아들을 후원하는 대신 어설프게 양측의 화해를 주선하였기에 대립은 격화되어, 곧 김문 아래에서 붙어먹던 무리들까지 사류(思流. 사영 김병기의 무리)와 영류(潁流. 영초 김병학·영어 김병국의 무리)로 갈려서 서로 헐뜯기 시작했다. 서로 켕기는 것이 있다 보니 대놓고 상대를 비난하지는 못하고, 다만 뒤에서 누구는 두길보기(양다리) 하는 사람이니, 누구는 생긴 것이 살모사 상이니 필히 신의를 배신할 자라니 하면서 김문의 원로들을 움직이려 노력하던 것이다.

이대로 가면 가문이 풍비박산의 화를 면하기 어려울 것을 짐작한 김좌근은 사세가 이에 이르자 비로소 양아들을 밀어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쇠한 원로들 중 김좌근의 전횡에 은근한 불만을 품었던 이들이 영류를 지지하는 쪽에 서 버렸고, 도정궁 이하전의 일로 그렇잖아도 많이 쌓인 원한이 더해졌던 풍양 조문을 필두로 여흥 민문(驪興 閔門) 등 여러 유력가들 역시 대놓고 영류와 손을 잡았다. 심지어 그의 아들 김병기조차 초기의 뜨뜻미지근한 대응에 혹 속뜻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그를 의심하는 눈치였다.

마치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도성의 분위기가 흉흉해지면서, 곧 무슨 일이 터지리라는 것을 어린아이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어린아이 티를 벗지 못한 열세 살 김옥균(金玉均)은 가문에 불화가 생기면 자신이 나중에 뜻을 펼칠 기반이 줄어드리라 여겨 홀로 근심하였다. 꽤 조숙하여 슬슬 여인의 모습을 갖추던 같은 열세 살 민자영(閔玆暎)은 이번 일로 파혼하게 될 유력가가 많을 것이니 자신이 끼어들 자리가 생기리라 짐작하여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어린아이들도 이럴진대 대세의 흐름에 물어뜯을 때와 사릴 때를 기막히게 아는 어른들은 오죽할까. 그들은 곧 누가 이 집안싸움에서 우위에 설지를 관망하기 시작했다. 어느 한 쪽이 거꾸러질 것 같으면 다른 쪽에 서서 한몫 챙기려는 이들도 있었고, 무너진 이들의 빈자리를 잽싸게 채울 궁리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이 기회를 틈타 한탕 거하게 하고 멀리 도망할 생각을 하는 자도 있었으니, 거친 숨을 헐떡대며 장의동 뒷골목을 질주하고 있는 장한익(張漢翼)은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허억, 이리, 이리 오너라! 긴히 하옥대감께 올릴 말씀이 있다!”

가까스로 솟을대문에 도착한 장한익이 외쳤다. 아무리 인정(人定) 가까이까지 사람과 보화가 오가는 김좌근의 저택이라지만 시각은 삼경(23시 ~ 익일 01시), 혹 도둑이 들까 경계하는 문객 한둘과 머슴 외에는 사람이 없을 때였다. 초조하게 발을 구르던 장한익이 월담을 고민하는데, 그제야 문이 열렸다.

마당에서 한두 각쯤 기다렸을까, 사랑채에 호롱불이 켜지고, 자신을 데리고 온 문객이 턱을 까딱였다. 사랑채에 드니 간소한 의관을 한 김좌근이 정좌하여 있었다.

“무예별감(武藝別監)으로 있는 장가라 하였더냐? 경교(景敎, 김병학)의 문인(門人)인 네가 흉흉한 시국에 굳이 밤에 찾아온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은 아닐 터, 어디 말해 보거라.”

“예, 대감. 실로 참흉한 일이 있어 왔사옵니다. 흥선군 이하응이 망극하게도 김문의 두 자제분을 꼬드겨, 제 아들을 추대케 하려 한다 합니다.”

“무어라? 네 지금 네 입에서 무슨 말이 나왔는지는 알고서 그러는 것이렷다? 증좌(證佐, 증거)는 있느냐?”

“어찌 감히 이러한 대사(大事)로 농을 하겠나이까. 여기 이 서찰(書札)을 보시옵소서.”

조심스레 장한익이 건넨 서신을 집어 펼쳐본 김좌근의 표정이 바로 어두워졌다. 이 필체는 분명 김병학의 것이었고, 뒤에는 서명까지 되어 있었다. 얼핏 읽어보니 소름이 돋았다. 오위장 이재두(李載斗)에게 보내는 편지로, 지난 임술년에 있던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일(역모)의 증좌를 감추어두고 있음을 알고 있으니 내어놓으라는 내용이었다. 임술년 역모라면 작년 김문근(金汶根)이 주도하고 그 자신과 김흥근(金興根)이 거들어 도정궁 이하전을 무고(誣告)하여 죽게 만든 일을 말한다. 그때 공식적으로 역모를 고변한 자, 즉 후대의 시쳇말로 얼굴마담이 바로 이재두였다. 이미 끝난 일의 증좌를 요구할 리가 없으니, 이 말인즉 자신을 비롯한 김문의 원로들이 역모를 무고하도록 사주한 그 증거를 내놓으라는 뜻이다,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사류와 영류의 다툼이 아직 한때의 붕당처럼 겉으로까지 드러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아직 누구도 김문이 장악한 군권에 손을 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잘못 손을 대 군권이 조금이라도 다른 쪽에 넘어갔다가는, 사류고 영류고 함께 공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암묵적 합의를 어기고 저 어린 두 놈이 대놓고 오위장을 저들 편으로 동참시키려 한 것은 실로 가문의 존망을 노름의 밑천으로 삼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편지의 내용은 갈수록 가관이었다. 김병학 그놈은 감히 옥체를 논하면서, 불측한 일이 일어났을 때 ‘성심(聖心)이 구름재에 있음’을 기억하라며 이재두에게 자신의 손을 잡을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보위를 이을 후계가 누구여야 하는지는 아직 김문 내에서 얘기조차 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구름재’, 즉 논란의 중심에 있던 흥선군의 차자 명복을 입에 올리는 것은 무슨 뜻이겠는가.

궁궐 안의 눈과 귀가 아직 멀쩡히 살아서 그에게 매일같이 보고를 올리는 판이다. 금상의 미령(靡寧)하던 옥체가 하늘의 보살핌이 있어 차도를 보이고 있다 들었다. 그런데 감히 벌써 후계를 이야기함은, 곧 조만간 금상이 붕어할 일을 만들겠다는 뜻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안 되겠다. 내 입궐하여 즉시 상께 말씀을 올리고 비답(批答)을 받아야겠다. 나라의 영상으로서, 사직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대의멸친(大義滅親)의 마음으로 골육도 잘라내어야 할 것이야.”

물론 그가 말하는 사직이라 함은 장동 김문, 그것도 자신이 위에 올라선 사직이었지만, 지금껏 김문이 일궈놓은 것이 가문 뿐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도 옳은 일이었다 굳게 믿는 김좌근에게 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장 별감, 너의 공이 크구나. 내일 날이 밝으면 일의 시비가 가려지고 엄중한 처결이 내려질 터, 그때 네 공을 아뢰어 반드시 은전(恩典)이 있도록 하겠다.”

“대감의 크신 은혜에 감읍(感泣)할 따름이옵니다. 다만 흥선군의 패거리 중 불량한 이들이 많아 후환이 두렵사오니 벼슬보다는 보화로 은혜를 내려주시도록 안배해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적당히 얼버무리고는 급히 의관을 정제하였다. 가마에 오르기 전에 자신을 수행하는 문객 이조명(李兆暝)에게 귀띔하기는 잊지 않았지만.

“저 장 별감이 등에 비수를 맞고서도 오직 우국충정으로 예까지 왔구나. 편히 쉴 수 있도록 방을 마련해놓고 엄히 봉하여 잡인의 왕래를 금하도록 하여라.”

당연히 장한익의 등은 멀쩡했다. 그것을 멀쩡하지 않게 만들어, 지금까지 한 것 외에 더 이상 아무것도 발설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이조명의 일이었다. 물론 멋모르는 장한익은 자신이 받게 될 포상으로 어디 먼 곳으로 도망쳐 호의호식할 생각만 하면서 이조명을 따라 저택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지만.

창덕궁.

입궐하여 독대를 청한 김좌근은 무언가 이상함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수문장이 문을 여는 것부터 기별을 넣은 내시들이 움직이는 것까지 모든 것이 너무나 느리게 돌아갔다. 마치 자신이 붙잡혀 있는 사이 수상한 일을 획책하려는 것처럼...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장동 김문이 바로 이런 망측한 일이 자신들 모르는 새 꾀해지는 일이 없도록 궁궐에 심어놓은 사람이 몇이며 뿌린 재물은 몇 관인가. 그들로부터 아직 아무런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그에게 다시 한 줌 희망이 되었다.

하기야 세간에서 제 양아들과 함께 삼병으로 칭해지는 병학·병국이라지만, 그 둘 모두 아직 미숙함이 있고, 흥선군의 용렬함이야 비록 요 몇 달 간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하나 변함이 없다. 그들이 이 정도로 면밀하게 무언가를 준비했을 리도 없고, 그런 준비를 김좌근의 눈과 귀를 피해서 할 수 있었을 리도 없다. 지금 그는 아끼던 친족들까지 관여하여 자신의 가문을 무너뜨리려는 음모에 맞서고 있는 중. 평정심을 잃는 것도 당연하다.

마침내 ‘주상 전하 납시오’하는 나지막하지만 울림 있는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지며 발소리가 들려온다. 김좌근은 노구를 일으키고는, 임금이 정좌한 자리를 향해 예를 갖추었다.

“영상, 무슨 일로 이 밤에 나를 찾으셨소?”

“전하, 이 늙은이가 감히 성총(聖寵)을 저버리고 가솔을 단속치 못해 망극한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나이다.”

김좌근은 최대한 공손하게, 멸사봉공(滅私奉公)하는 충신을 연기하며 역모를 고변하였다. 이야기를 다 들은 임금은 잠시 고민에 빠진 듯하더니, 말하였다.

“영상, 고개를 드시오.”

“어찌 감히 죄지은 몸으로 용안을 마주보오리까.”

그래도 재차 권하기에 김좌근은 고개를 들어 침침한 눈으로 용안을 살짝 보았다. 그리고 머리에 철퇴를 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용안이 그가 그간 조회 때 잠시 보았던 것과는 판이하게, 누렇게 뜨고 입술은 파리한 것이 오히려 작년보다도 더 사색에 가까웠던 것이다. 김좌근이 잠시 당황하여 입만 뻐끔거리고 있는데, 임금이 차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하, 내 영상이 말을 잃는 것을 다 보게 되는구려. 그 동안 여러 신료들이 부족한 내게 너무 마음을 써 국사를 돌보지 못할까 염려하여, 여인네들이 쓰는 분을 발라서 병색을 감추었소. 영상의 충심은 잘 알겠으나, 사리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소. 내 이렇게 병색이 완연하여 차도가 없던 차에 흥선군의 차자 명복이 총명하고 효성이 깊다 들었소. 그리하여 사직을 잇고 열성조의 대업에 누를 미치지 않고자 양자로 입적하기로 하였소. 그런데 누가 누구를 추대한다는 말이오?”

“그, 망극한 말씀이오나... 양자를 들이심은 언제 성단(聖斷)을 내리신 것이옵니까? 대저 그러한 일은 나라의 대사로, 마땅히 묘당(廟堂)에 하교하시어 신료들이 혹 깊으신 뜻에 누가 되는 면이 없지 않을까 살피도록 하심이 도리이옵니다.”

“그보다, 영상이 제신(諸臣)의 우두머리 된 이로서, 행실에 모범이 되지는 못할망정 흉참한 일을 무고(誣告)하려 한 것이야말로 도리에 어긋날 것이오. 여봐라, 이조참의는 들라.”

문이 열리고, 김좌근이 여기 있으리라 상상도 하지 못한 이가 들어왔다.

“이조참의 박규수 입시(入侍)이옵나이다.”

“영규(領揆. 영의정) 된 자가 이러한 황당한 난언(亂言)으로 종친을 무함(誣陷)하였다. 이를 어찌하여야 하는가.”

하문하니 박규수가 뜸도 들이지 않고 바로 대답하였다.

“『대전(大典)』을 상고하면 이는 곧 반좌(半座, 무고)의 죄로, 감히 성덕(聖德)에 누를 끼치는 난언을 퍼뜨렸으니 장(杖)이 일백 대에 유(流. 유배) 3천 리요, 정상(情狀)을 조사하여 혹 더욱 사특한 의도가 있었다면 참(斬)에 적산(籍産. 가산 적몰)의 형을 더함이 마땅함을 아뢰옵나이다.”

김좌근은 눈앞이 캄캄해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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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근의 문객 이조명은 허구의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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