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종, 군밤의 왕-5화 (5/320)

2. 분란의 씨앗은 동백꽃과도 같구나 (1)

이 나라 조선의 헐떡이는 심장 한양에 계해년(1863) 새해가 밝았다. 결코 순탄치 않았던 임술년이었지만 조선은 또 한 해를 겨우 견뎌내었다. 민란은 어영부영 무마되었고, 정사를 개혁하겠다고 세워진 삼정이정청(三政釐整廳)은 고작 정책보고서 한 권(三政釐整節目)만을 내고서 해산되었다. 가뭄과 홍수가 어김없이 이어졌기에 나라의 곳간과 백성의 살림은 공히 곤궁해졌다.

돈녕도정 이하전은 끝내 저지르지도 않은 역모를 주도하였다는 죄목으로 사약을 마셔야 했다. 임금은 제주도 위리안치로 형을 정하여 그 목숨만은 붙여두려 하였으나, 보름 넘는 시일 동안 비변사의 대신들과 기로소의 노신들, 삼사의 언관들이 모두 나서 이하전을 엄벌할 것을 청하자 끝내 그 뜻을 접어야만 했다.

그러나 나라의 살림이 거덜 나든, 종친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든 도성의 사람들은 양천(良賤)·반상(班常)을 막론하고 관심을 주지 않았다. 어차피 도성에서 부(富)의 흐름이란 나라의 재정과 따로 놀게 된지 오래였다. 암만 국운이 기운다 할지라도 설마 자신이 이승에 발을 붙이고 있는 동안 그런 참흉한 일이 일어나겠느냐 하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심정이었다. 그저 올해는 지난해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친족들의 집을 돌며 세배를 하고, 용한 점쟁이를 찾아가 그 해 사주를 보고, 그러고도 주머니에 여유가 있다면 정선방(貞善坊) 저자의 명물 효자율(孝子栗, 효자 밤)을 맛보러 인파를 헤치고 줄을 설 따름이었다.

가가(假家, 노점)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좌판 양 옆으로 널찍한 베에 큼직하게 글씨를 써서 내걸었기에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한 폭에는 “밤운구쟈효물명셩도 (도성 명물 효자 군밤)”, 다른 한 폭에는 “소밧니아는이는업셩효 (효성 없는 이는 받지 않소)”라 언문으로 쓰여 있었다.

“거참, 볼 때마다 절묘하단 말이지, 어린 녀석이 어째 저런 생각을 다 했을꼬?”

사제(師弟)의 연을 내세워 공으로 군밤 한 주먹을 받아낸 오경석은 그 온기를 느끼며 구름재로 가는 언덕길을 넘어가고 있었다.

“주상께서 하사하신 은과 비단을 처분해서 차린 것이니, 도의에 맞게 처신함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오경석의 옆에는 아직 약관(弱冠)이 채 되지 않은 듯한 젊은이 하나가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재작년 급제해 예문관 대교(待敎)로 있는 조성하(趙成夏)였다. 신정왕후 조씨의 조카이자 풍양 조문(趙門)의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로 평소라면 고작 역관에게 존대할 일은 없겠지만, 자신보다 품계가 높을뿐더러 작년부터 흥선군의 비호를 받아 암암리에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개화당(開化黨)’의 실세인 오경석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그게 절묘하다는 것 아니겠소. 실제 의도야 어쨌든 부모를 봉양한다는 핑계를 대야 하니, 어디 감히 하루에 정해진 양 이상을 더 내어놓으라고 행패를 부리겠소이까? 그것이야말로 부모의 이름에 먹칠하는 게 되어 버리는데?”

“아닌 게 아니라 하옥 대감의 눈에 들고자 비법을 얻어가려는 잡배들이 모두 단호하게 퇴짜를 맞았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어린아이가 한다고 깔볼 건 아니지요, 확실히.”

사실 귀남이 저 거창한 표어를 내건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임금이 내려준 은자와 비단으로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형상에 맞추어 리어카와 드럼통 화통, 그리고 자신의 손에 익은 기타 집기들을 만들었는데, 주문제작으로 비싼 돈을 들여 만들고 나서 보니 정작 본인은 글공부를 하느라 군밤을 구울 시간이 그리 많지 않고, 졸지에 그의 사업 파트너가 된 덕만은 아무래도 솜씨가 저만 못한 데다 연장까지 익숙하지 않으니 영 굼떴던 것이다.

이때 귀남이 떠올린 것은 맛이 별로이거나 양이 부족할 때 내거는 비장의 기술, 한정판매와 애국 마케팅이었다. 물론 이 시기에 태극기를 건다고 먹힐 리가 없으니, 대신 적당히 스승에게서 배운 것 중 효(孝)를 꺼내 둘러대기로 한 것이었다. 어쨌든 조선은 선비의 나라이니 이것도 애국 마케팅처럼 꽤 잘 먹혀들어갔다. 한 번 마케팅 전략을 잡으니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물론 그렇게 해보았자 군밤장수일 뿐이라고 비웃는 이들이야 있겠지만, 입으로는 그렇게 말해도 혀는 정직한 법. 툴툴대던 선비들이 어느새 단골이 되어 돌아왔다. 하지만 귀남의 속은 모르고 대신 귀남이 모르는 주변 사정을 아는 오경석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종친의 자제가 장사치 노릇을, 그것도 무슨 귀물(貴物)도 아니고 한갓 군것질거리를 만들어 파는 건 체면이 상하는 일 아닙니까? 흥선군 대감께서 내버려두시는 내막이 궁금하군요.”

주변을 살짝 살핀 오경석이 대꾸했다.

“그대도 나름 풍양 조문의 사람인데, 지난해 상감께서 은자를 사여(賜與)하셨을 때 장동 김문에서 오간 이야기에 대해 듣지 못했소? 그것을 가계에 보태었든, 다른 종친들과 나누었든, 하다못해 저자로 나가서 행인들에게 뿌려주었든 뒷말이 나왔을 터인데, 지금 저렇게 당당하게 장사 밑천으로 삼아버렸으니 트집을 잡으려야 잡을 수 없게 된 것 아니겠소. 게다가 명분만 효(孝)를 내세운 게 아니라 아예 밤 굽는 기물 일체를 새로 만들어버렸으니 은자를 빼돌려 다른 데 썼다고 의심할 구석도 없애버렸고.”

“허, 어린아이의 심려가 퍽 깊습니다. 과연 흥선군 대감께서 기별을 넣으실 만큼 영특하군요.”

“자, 그 얘기는 중인환시(衆人環視) 하에서 논하기에 서로 폐가 될 법하니, 구름재댁에 얼른 가서 마저 하도록 합시다.”

동의하는 듯하면서도 조성하는 썩 수긍하지는 않는 눈치였다. 그러나 아직 주위에 인적이 있었기에 혹 듣는 귀가 있을까 우려한 오경석이 말을 끊었다. 어느덧 목적지인 이하응의 집에 도착한 그들은 바로 사랑채에 들었다.

“올 새해 만사여의(萬事如意) 하십시오, 대감.”

“그대들도 형통(亨通)하고 무탈한 한 해 되기 바라오. 그래, 소하(小荷) 자네가 온 것은 필경 통명전(通明殿, 대비가 머무는 침전)에서 전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서이겠지? 한 번 들어보세나.”

낡은 보료 위에 앉아 화톳불을 뒤적거리던 흥선군이 말했다.

“예, 제게 말씀하시기를, 음, 자칫 무엄한 언사가 될 수 있으나 우선 말씀하신 대로 옮기겠습니다. ‘정녕 강화도령 뒤에 군밤도령이라는 말이 나오게 하고 싶으냐’라고 하시었습니다.”

“허, 대비께서 새해 벽두부터 농을 하실 줄이야. 전해주시게. 그런 말이 나오도록 해야 우리가 원하는 대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범을 잡으려면 조용히 하고 먹잇감인양 다가가야지, 몇 리 밖에서부터 꽹과리 치고 나발 불면 백 년을 기다려도 손 쓸 도리가 없네.”

오경석도 거들었다.

“내가 글공부 스승 노릇을 하면서 본 바로도 얼핏 보기에는 별 생각 없는 맹랑한 아이 같지만 그 속에 기개와 영명함이 있는 아이요. 사제의 정은 차치하고 말하더라도 흥선군 대감 말씀마따나 우리가 노리는 바를 이루기에는 그나마 나은 방도라 보오.”

아이의 아버지와 스승이 그렇다는데, 그 앞에서 ‘군밤장수 노릇 하는 아이가 영명하다면 얼마나 영명하겠느냐’ 하고 면박을 줄 수는 없는 노릇. 게다가 지금 논의되고 있는 것은 풍양 조문의 미래가 걸린 대업이다. 아무도 직접 언급하지는 못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은 이 나라의 다음 주상이다. 아직 나이도 어리고 품계도 미천한 그로서는 감히 사견을 내세울 수 없었다. 그저 이곳 구름재와 구중궁궐 속 통명전을 잇는 보기에 번듯한 전령일 뿐.

“좌우지간 그렇게 말씀하시고서는, ‘입으로 못할 말을 하게 하는구나. 너는 가서 내 말을 그대로 전하여라.’라 덧붙이셨습니다.”

그러자 흥선군과 오경석이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거의 함께 외쳤다.

“되었다!” “옳거니!”

어안이 벙벙한 조성하에게 오경석이 설명했다.

“이제 풍양 조문도 우리의 대업에 함께하게 되었으니 설명드리겠소. 대비마마께서 허투루 그런 말씀을 덧붙이셨겠소? 말씀을 그대로 전하라 하신 것은, 곧 그 말에 숨은 뜻을 보라는 의미요.”

“그리고 못 정(釘)자는 곧 고무래 정(丁)과 통하니, ‘입(口)’으로 ‘못(丁)’할 말이란 곧 ‘가(可, 口+丁)’하다는 말씀일세. 즉 강화도령 뒤에 군밤도령이라는 말이 나옴이 가하다는 뜻일세.”

“하하, 소하 자네 이제 보니 사람 애를 닳게 하는 재간이 있구만? 중요한 이야기는 한 번에 몰아서 하지 않고 저렇게 끊다니. 순간 걱정하였지 않나.”

본인이 전달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전혀 고민조차 하지 않았던 조성하도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장의동. 김좌근의 저택.

세배를 위해 ‘병(炳)’자 항렬의 장동 김씨 자제들이 모두 모였다. 오늘 부로 나이도 환갑을 넘어 미수(美壽, 66세)에 달한 김좌근은 여전히 정정했다. 하도 천수를 누릴 것이라 아첨을 들어서 그런 것일까? 백발이 성성한 것을 제외하면 풍채로 보나 근골로 보나 젊은이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웃는 얼굴로 세배를 받고, 사람 좋은 할아버지처럼 덕담을 건넨 뒤, 눈짓을 한 번 하니 이미 가문 일부에서 ‘삼병(三炳)’이라 불리게 된 떠오르는 실세 김병기와 김병국·김병학 형제를 제외한 모두가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비웠다.

왁자지껄한 소리가 문지방 뒤로 사라짐을 확인한 김병기가 거두절미하고 말했다.

“아버님, 흥선군의 차자 이명복을 둘러싼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통명전에 풍양 조문의 조성하가 출입하였는데, 금상의 옥체에 대해 망령된 이야기를 하면서 명복을 함께 언급했다고 합니다.”

금상의 옥체에 대한 망령된 이야기에 종친이 얽혀있다면 나올 법한 얘기는 불문가지(不問可知)다. 김좌근은 잠시 눈을 감고 수염을 쓰다듬더니, 물었다.

“경교(景敎), 경용(景用) (병학·병국의 자(字)),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늘 그렇듯 병학이 먼저 나섰다.

“성존(聖存. 김병기의 자(字)) 형께는 죄송한 이야기입니다만, 형께서 온전한 이야기를 전해듣지 못하신 듯하여 덧붙이고자 합니다. 제가 듣기로는 명복이 참람된 이야기에 얽혀 입에 오른 것은 사실이나, 우리 사직의 기둥 되시는 대비마마께서 지엄하게 흥선군의 청을 거절하였다 합니다.”

김좌근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아들아. 내 노쇠하였지만 아직 귀는 멀지 않았단다. 내 너의 재종백부 되는 유관(游觀) 대감 (김흥근(金興根))에게서도 이미 전해들은 이야기다. 경교의 말이 옳다.”

“허나 아버님, 흥선군이 감히 우리와 상의하지도 않고 도를 넘는 청을 넣은 것이 문제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소자가 문객들에게 듣기로, 명복 역시 꽤 영명해 마치 어릴 적의 흥선군을 보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러하냐?”

다시 김병학이 나섰다.

”성존 형께는 거듭 죄송합니다만, 제가 듣기로는 명복이 종친의 상궤(常軌)를 벗어난 언행을 하기는 하지만, 이는 그저 어리석은 소년의 치기(稚氣)이지 무슨 기개나 영명함 따위는 아닌 것 같다 합니다.”

김병국이 거들었다.

“그리고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안타까운 일이 닥친다 할지라도, 남연군(南延君)의 가계에서 종친을 입적하는 것은 어차피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수순입니다. 흥선군도 사람일진대 욕심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지요. 그가 아들을 위해 청탁을 넣는 것이 비단 이번만은 아니지 않습니까? 작년에는 장남의 등과를 위해 성존 형께도 찾아간 바 있는 것으로 압니다.”

김병기가 눈을 흘기며 언성을 살짝 높였다.

“경교, 경용. 그대들은 대체 흥선군 그 자와 무슨 연이 있어 그리도 싸고도는가? 평소 교유(交遊)하던 사이라 하나 그 자의 속을 모두 알 수는 없지 않느냐.”

“그만.”

근엄한 김좌근의 목소리에 뭐라 더 쏘아붙이려던 김병기도 말을 그칠 수밖에 없었다. 김좌근이 다시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마치 구렁이와도 같은 차갑고 깊은 미소였다.

“군밤 굽는 아이 하나 때문에 이 무슨 꼴이더냐. 내 듣기로 금상께서는 올 겨울 들어 부쩍 용태가 호전되시었다 한다. 아무리 흥선군이 우리 김문의 등을 노리고 있다 할지라도 아직 때가 한참 이르니, 오히려 성급하게 움직이다 빈틈을 드러냄이 걱정될 뿐이다.”

병국·병학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그러나 모름지기 조선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되는 법.

“허나 발밑은 항상 챙겨서 보고 다녀야 하는 법이다. 일이 터진 다음 대비하면 만시지탄(晩時之歎)에 지나지 않아. 우리 김문이 나라의 동량(棟樑)이 된 것은 감히 사직과 우리 가문을 어지럽힐 생각을 품은 무리를 먼저 색출하였기 때문이지, 그들이 도전해올 때까지 기다렸기 때문이 아니다. 경교·경용 너희는 흥선군을 매우 신임하는 모양인데, 그러니 직접 너희가 가서 돌아가는 형세를 보고 오너라. 혹 너희 벗이 추호나마 외람된 생각을 품고 있다면... ”

병국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방을 울리는 듯했다.

“그릇된 길을 걷지 않도록 돕는 것도 벗의 책무겠지. 그렇지 않으냐? 너희 모두 새해는 만사형통하려무나.”

언제 그랬냐는 듯 인자한 미소를 짓는 김좌근이었다. 그러나 그 뒤에 실린 협박, 흥선군이 문제를 일으킨다면 결코 가만히 넘어가지 않겠다는 그 위협에 짓눌린 병국과 병학 형제의 눈에는 미소가 미소로 보이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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