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173화 (173/174)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73화

34. 행복 (5)

9

“네, 그럼 내일부터 바로 출근하시는 걸로.”

내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고, 눈앞의 덩치 큰 남자는 더 활짝 웃으며 고개를 꾸벅였다.

“네, 내일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강인나가 생긋 웃어 보였다.

“잘 부탁드려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새로운 직원을 뽑는 일은 너무나 쉬웠다.

경제호황이라고 해도 어려운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다. 어디 모두가 여유로웠던 적이 있던가. 더군다나 요즘처럼 경기가 안 좋을 때는 목마른 사람들이 더 많아지게 마련이다.

고용인 입장에서도 부담이 되는 시기인 건 마찬가지. 그래도 나는 여유로운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조건을 좀 더 좋게 했다.

엄청난 조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원자들이 몰렸다. 공고를 올린 지 하루만에 100명이 넘게 지원할 정도였다.

카페 부매니저로서 2년 이상의 경력이 있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채용하겠다는 말을 써뒀음에도 그랬다. 이 말을 붙인 덕에 경력이 없는 지원자들이 수십이나 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웰웰의 운영은 강인나가 맡고 있었다. 당연히 모든 과정에는 강인나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됐다.

내일부터 함께 일하기로 한 직원이 갔고, 자리에는 나와 강인나만 남았다.

“괜찮은 거 같지?”

“응, 카페에서 일해본 적도 있다고 하고, 아예 웰웰 3호점을 목표로 한다고 하니까 더 괜찮은 거 같아.”

“덩치도 크고 말이야.”

“그것도 고려했어?”

“CCTV 때문에 괜찮겠지만, 가끔 이상한 사람들 있잖아. 그런 사람들은 눈앞에 뭐가 있어야 안 그러거든.”

강인나는 하얗고 빼빼마른 팔을 드러내 보였다.

“요즘 나 운동하는 거 몰라? 그런 진상 오면 내가 해치울 수 있어.”

녀석은 이두를 자랑하듯 팔을 들이밀었다. 최근에 남는 시간에는 격투기와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사실 특수한 케이스를 제외하고 여자가 남자를 힘으로 이기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강인나가 운동을 하는 게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 일단 정신적으로 안정이 되면 그것으로도 충분한 셈이었다. 체력을 단련해서 맞서지는 못해도 도망이라도 칠 수 있을 테고.

강인나는 내게는 친동생 같았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조금은 딸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일찍 사고를 쳤다면 그럴 수도 있을 나이 차이기도 했고.

개성 있는 외모와 발랄함으로 인플루언서이자 모델이 된 녀석이 대단하면서도 걱정된다. 성접대 제안 같은 안 좋은 일을 겪을 줄이야.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건데.

만약 내가 지금과 같은 능력이 없었다면, 악덕 중소기업에서 일하던 시절의 나였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나는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었을 테니까.

재산을 축적하고 사회적 지위를 올리려는 마음이 이해가 간다. 위기의 상황에서 힘이 되니까. 내가 돕고 싶은 사람을 도울 수 있으니까.

그런 말이 떠오른다.

힘이 없는 정의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아무 의미가 없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건 사실이다.

돕고 싶은 마음도 그렇다. 직접 돕지 못하면, 그저 마음에서 그친다.

숭고한 마음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거 하나로는 세상을 살 수 없다.

그래서 감사한다.

지금 내가 있을 수 있게 한 모든 것에 감사한다.

10

보다 많은 부분에서 선한 영향력을 퍼트리고자 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덕분일까.

예상치도 못한 부분에서 모든 게 빵빵 터졌다.

아리랑 김밥이 퍼지고 있고, 헬코푸 레스토랑이 들어갈 미국이 아니었다.

의외의 반응이 오게 된 곳은 바로 동남아였다.

시작은 전혀 관련이 없을지도 모르는 데서부터였다.

숙모가 운영하고 있는 행복 건강즙 2호점에서 일하고 있는 야야와 짜 덕분이었다.

야야와 짜가 노동력 착취 및 감금에 학대까지 받은 정황이 태국에서는 뒤늦게 화제가 됐다.

이는 태국에서뿐만 아니라, 베트남과 필리핀, 말레이시아에서도 어느 정도 유명한 사건으로 퍼졌다.

처음에는 한국에 대한 비난이 꽤나 컸는데, 내가 악덕사장에게 이단옆차기를 먹인 영상이 퍼지면서 또 달라졌다.

세상 어디에나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는 걸로 퍼졌다.

여기에서 야야와 짜는 태국 온라인 커뮤니티에 여러 가지 인증샷들을 남기고,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남겼다.

물론, 좋은 쪽으로.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단순히 인터넷에서 그치지 않고, 태국의 방송국에서 한국까지 와 인터뷰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연히 그 인터뷰 대상에는 나와 숙모도 포함됐다.

영어로 인터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소통 문제는 없었다.

이는 내가 야야와 짜를 도운 데서 그치지 않았다. 미라클 헬스케어라는 회사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야야와 짜가 한국 건강즙을 만드는 곳에서 일하고 있었으니까.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 사람들이 관심을 쏟은 것이 건강즙은 아니었다.

일단 카페 웰웰에 관심이 쏟아졌다. 인테리어와 한국 스타일의 음료들과 디저트까지. 동남아에도 나름대로 케이팝이나 한국음식에 대한 관심이 원래도 있었다. 이미 동남아에 진출하여 잘 되고 있는 업체들도 많았고.

온갖 열대과일들이 잔뜩 있는 동남아에서 카페는 경쟁력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가 이상으로 의미가 있었다.

여기서 나는 핵심적인 하나를 생각해냈다.

바로 빙수.

팥빙수뿐만 아니라, 다양한 과일을 이용한 빙수를 만들 수 있었다. 100% 건강식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기본적으로 당이 많이 들어가니까.

하지만 충분히 몸에도 좋은 것을 함께 먹으며 나쁘지 않은 시원한 간식을 만들 수 있었다.

동남아에는 물론이고, 아리랑 김밥이 진출해 있는 미국 쪽으로도 자연스레 이어질 수 있었고.

우선 북미에 웰웰 진출도 계획에 두는 동시에 동남아의 관심은 다른 것들에도 쏟아졌다.

한국 음식들. 어쩌면 코헬푸 레스토랑은 북미만이 아니라, 적어도 태국과 필리핀 그리고 베트남에는 무조건 진출해야 될 듯했다.

아니, 백성열이 운영할 코헬푸와는 또 다르겠지. 다온과 코헬푸의 중간 정도이거나, 또 다른 브랜드를 내야 할지도.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는 법. 나는 노를 젓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모터를 장착하고 싶었다.

사람만 찾으면 됐다. 동남아 쪽에 진출하여 장사를 해줄 사람들을.

나는 멀리서 찾지 않았다.

원래 한국에서 돈을 벌어서 귀국한 다음 카페를 차리는 게 목표였던 야야도 있었고, 벌써 한국 음식도 곧잘 만드는 짜가 있었다.

두 사람의 성실함은 이미 입증돼 있었다. 숙모가 함께 일하면서 쭉 지켜봤으니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충분하다고 여겼다. 직원들을 봅을 때도 면접이나 잠깐 보는 게 전부지, 일하는 걸 지켜보고 채용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직원을 뽑는 것도 아니었다.

가맹점주를 찾는 일이었다. 나의 직접적인 투자금이 들어가고, 수익도 나눠야 되는 등 일반적인 경우와는 다르다. 그래도 짜나 야야만큼 검증이 된 경우도 적다고 생각한다.

나는 길게 고민하지 않고 제안을 했다.

“야야는 카페, 짜는 코리안 레스토랑 해보는 거 어때?”

두 사람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을 했다.

“태국에서 카페랑 식당 운영하는 게 어떻겠냐는 거야.”

두 사람은 당연히 그렇게 되기만 한다면 좋다고 했다. 더 바랄 게 없다고, 꿈이라고.

나는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투자금을 대고, 여러 가지 노하우들을 전하면서 지분을 가지는 것이었다. 그래도 실질적인 사장은 당연히 야야와 짜. 인센티브 시스템도 동일했다. 두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과 카페의 직원이 2호점, 3호점을 낼 때마다 돈을 벌 수 있는 것까지.

두 사람은 묘한 얼굴을 한 채 나를 바라봤다.

어쩌면 이 시스템이 마음에 안 드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두 사람은 거의 대성통곡을 했다. 그리고 한국어, 영어, 태국어로 고맙다는 말만 1천 번은 듣고 나서야 울음을 그쳤다.

우는 모습들이 어찌나 짠한지.

기쁨의 눈물이라는 게 보기 쉬운 게 아닌데.

나도 왠지 모르게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이 모든 게 가능했던 것은 ‘이미지’ 덕분이다.

내가 의도를 한 거든 아니든 뭐든 사람들은 결국 이미지를 보고 판단했다.

좋은 이미지 덕분에 기회가 생겼다.

이미지 하나가 가지는 파급력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나도혜 덕분에 건강주스 사업이 잘 됐고, 강인나의 활력과 발랄함은 크게 도움이 됐었다.

바른 농부단 등과 같은 곳들과 상생하고, 홈페이지에 얼굴을 드러내 신뢰감을 심는 전략은 꽤나 잘 먹혔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이미지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놀라게 됐다.

이미지가 가지는 힘은 생각 이상으로 엄청났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행한다면 더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선한 영향력을 미쳐야 한다.

이는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내게도 좋은 영향력을 미치게 되니까. 그렇게 나의 이미지를 깎고 다듬고 쌓아 만들어가는 것이다.

11

숙모는 ‘으라쌰 식자재’ 대표인 이일우와 함께 살게 됐다.

마음 같아서는 제대로 결혼식을 올렸으면 했는데, 두 사람 모두 자신들 나이에 그런 건 남사스럽다며,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함께 사는 게 아니라며 조용히 혼인신고와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박종만의 결혼 그리고 숙모의 혼인 덕분에 내게 불똥 아닌 불똥이 튀었다.

“이제 우리도 진짜 날 잡아야 되지 않겠어?”

나도혜는 결코 무겁지 않게, 생긋 웃으며 물었다.

하지만 내게는 가볍게만 다가오지는 않았다.

진짜로 결혼식을 준비해야 되는 시기가 왔다.

꽤나 자세히 이야기를 했고, 나름대로 알아보기는 했었다. 하지만 날짜까지 잡으면서 현실로 다가와 있지는 않았으니까.

겁이 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걱정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래도 처음이니까.

뭘 하든 처음은 설레기도 하고 조금 두렵기도 하고 그러니까.

혼자 사는 삶에 익숙해져 있었다.

시간만 나면 나도혜와 붙어 있었고, 때로는 며칠을 함께 지낼 때도 있었지만, 결혼이라는 건 평생 함께 사는 것을 의미했으니까.

당장 내일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부 예측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평생을 생각하겠는가.

그러다 나도혜가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순간 흠칫 놀라며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나도혜는 생글생글 웃으며 눈을 마주쳐왔다.

“아직 확신이 없어? 고민돼?”

웃으면서 묻는 것치고는 굉장히 무서운 질문이었다.

이럴 때 잘해야 한다.

나는 정신줄을 꽉 붙잡고 대답을 내놨다.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런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그냥… 모든 게 처음이잖아. 그래서 그냥 현실감이 없어서 그래.”

나도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지, 처음이지. 나도 그렇고. 그래서 다행 아니야?”

“어?”

“두 번째거나 세 번째면 좀 그렇잖아.”

생각지도 못한 농담에 나는 피식 웃었다.

재미있는 건 그 실없는 농담 한마디에 나도혜와 결혼해야겠다고 더 확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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