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171화 (171/174)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71화

34. 행복 (3)

내일은 박종만의 결혼식이었다.

손에 쥐고 있는 결혼식 대본은 몇 번이나 들여다보느라 꼬깃꼬깃해져 있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긴장이 되는지.

나도혜는 그런 내가 재미있다는 듯이 계속해서 웃었다.

“왜 그렇게 계속 웃어?”

나의 물음에 나도혜가 되물었다.

“왜? 웃으면 안 돼?”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귀여워서 그래, 귀여워서. 그렇게 긴장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이던 사람이 결혼식 사회 보는 걸로 이러니까.”

“실수하면 민폐니까.”

“그런 것도 재미야. 너무 긴장하지 마.”

“그래야지.”

“그나저나 박 대표님이 그렇게 결혼을 하실 줄은 몰랐네. 우리 직원도 그렇고.”

“그러게.”

이상하게 잠시 정적이 흘렀다. 무겁거나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단지 우리도 결혼식에 대하여 확실한 가닥을 잡아나갈 필요가 있었다.

이번에 박종만의 결혼식에 다녀오면 좀 더 본격적으로 결혼식을 위한 준비를 하게 될 거라 확신했다.

5

“신랑 입장!”

내가 힘 있는 목소리를 냈고, 턱시도를 빼입을 박종만이 더 힘차게 걸어들어왔다.

강연보다 더 긴장했지만, 강연만큼 어렵지는 않았다.

결혼식 순서부터 뭐라고 말해야 할지 전부 적혀 있는 대본을 앞에 두고 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국 실수를 하고 말았다.

같은 줄을 두 번 읽고 말았다.

박종만은 그 상황도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고, 신부인 백은진은 장난스레 눈을 흘겼다.

나는 진땀을 빼며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아이고, 실수를 했네요.”

워낙 환한 조명이 우리 위로 내리쬐고 있어서 하객들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웃음소리라도 좀 흘러나오면 괜찮을 텐데.

그럭저럭 무난하게 마무리를 하고, 여느 결혼식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단체 사진을 찍은 뒤,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

박종만과 백은진은 행복해 보였다.

나는 자연스레 옆에 있는 나도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나 아까 실수해가지고…….”

운을 떼자 나도혜는 빙그레 웃으며 내 등을 두들겼다.

“괜찮아, 사람들 다 그냥 웃던데.”

“그래? 그랬어? 소리가 안 나서.”

“큰 실수도 아니고, 그럴 수도 있잖아. 다들 웃으면서 괜찮게 넘어갔어.”

“그럼 다행이네. 다른 사람들 즐거우면 됐지 뭐.”

박종만과 백은진이 입을 맞추는 사진을 찍었다.

“사회자 분, 이쪽으로 와주세요.”

사회자라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박종만과 힘 있는 악수를 하며 다시 한 번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

우리도 이렇게 해야겠지.

어느새 나도혜가 옆으로 다가와 있었다.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문득 ‘남의 결혼식장에서 꼴값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혜도 비슷한 타이밍에 비슷한 생각이 들었는지 ‘밥이나 먹으러 가자’며 팔짱을 끼고 이끌었다.

뷔페가 다 비슷하다지만, 결혼식 뷔페 치고는 맛있었다.

사람들 모두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식사를 하며 신랑과 신부에 대한 칭찬을 늘어놨다.

어쩌면 결혼식에서 가장 중요한 건 하객들을 대접하기 위한 음식일지도.

결혼식 진행이 아무리 재미있고 즐거워도 밥이 맛없으면 욕먹는 거고, 결혼식이 다소 지루하거나 해도 밥이 맛있으면 결혼 잘했다고 좋은 말이 남는 듯하다.

6

“그래?”

국제전화 중이었다. 사실 요즘은 휴대폰 앱을 통해서 무료로 통화할 수 있으니 세상이 정말 좋아졌다.

―네, 어떻게 할까요?

음질도 깨끗하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네가 잘 알겠지.”

―제 생각에는 괜찮을 거 같아서요. 사실 김밥 마는 것만 두고 보면 저랑 큰 차이도 없고요. 그리고 먼 거리가 아니라서 지속적으로 관리도 할 수 있어요.

통화 중인 사람은 노우민이었다. 아리랑 김밥의 2호점을 낼 생각인 듯했다. 그리고 3호점과 4호점도 동시에 뉴욕 맨하탄과 브루클린에서 낼 예정이라고.

생각지도 않게 아리랑 김밥이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서양 쪽에서도 밀가루보다 쌀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중인 탓도 컸다.

가장 좋은 건 아무래도 통곡물이고.

통곡물은 섬유질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장내 미생물과 염증 반응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기억 T세포 수치도 증가한 게 발견되기도 했다.

아리랑 김밥은 기본적으로 건강식임을 강조하고 있으니 관심이 커질 수밖에.

웰빙 열풍이 분 지도 꽤 됐고, 이제는 심화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셈이다.

개인적으로 채식주의를 비난이나 비판할 마음은 없다. 뭐든지 결국 자신의 선택이니까. 무분별하게 패스트푸드만 잔뜩 먹는 것보다는 깨끗하고 절제된 식단이 낫겠지.

건강과는 별개로 이념을 위해 채식을 고수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모든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가장 건강한 식단이라고 믿는다.

아리랑 김밥에도 채식 메뉴가 있다.

기본적으로는 육류가 먹고 싶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에 마련한 메뉴다. 좀 더 가볍고 산뜻하게 식사를 하고 싶을 때가 있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이는 채식주의자들을 배려한 것이기도 했다. 세상 전부가 연결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 그만큼 뭐든지 다양하다. 메뉴도 수십, 수백 가지를 갖출 필요는 없지만 다양해서 나쁠 건 없다.

이게 제대로 먹혔다. 건강을 위해 채식주의를 고집하는 사람이든, 고기의 맛을 좋아하지만 동물들을 먹는 게 잔인하다고 생각해서 채식주의를 고수하는 사람이든, 좀 더 다양한 맛을 즐기길 원하는 것은 같다.

채식주의는 아무래도 한국보다는 서양 쪽이 먼저다. 채식주의를 고수하는 인구가 상당히 많다. 이들에게는 김밥이 비교적 생소한 식품이고, 영양학적으로나 맛으로나 떨어지지 않아서인지 일종의 유행이 되기 시작했다.

SNS에서 100% 채식인 김밥을 먹는 인증샷이 많이 올라왔고, 아리랑 김밥은 일종의 핫플레이스 됐다.

노우민도 곧바로 다양한 소스를 곁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선택권을 늘렸고, 추가금을 더하면 소스를 더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있었다.

나도 같은 생각을 했는데, 먼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노우민은 곧바로 소스 개발에 들어가며서 내게 결재를 맡았으니까.

아리랑 김밥에는 다양한 연락들이 오고 있었다. 노우민을 통해 많은 문의들이 왔고, 대표인 나는 여러 제안들을 받기도 했다.

일단 미국 내에 지점들을 늘리는 데 집중할 계획이었다. 물론, 까다로운 조건은 유지할 예정이었다.

매장을 늘리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돈을 벌 필요가 없는 부자는 없다고. 결국 돈을 벌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은 없다는 셈.

많이 벌면야 좋지. 단지 눈앞의 이득을 따라다니다가 전부 놓칠 수도 있다. 넓게 보는 것이었다. 이런 마음도 지금 충분히 넘치게 벌고 있어서 가능한 거겠지만.

아리랑 김밥의 호재는 아리랑 김밥에서 멈추지 않았다. 시너지 효과를 냈는데, 바로 다온이었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다른 브랜드들도 함께 조명을 받았는데, 그중 김밥처럼 한식을 파는 다온에 관심이 쏠린 것이었다.

어쩌면 지금 미국에 진출할 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식이 삼겹살이나 갈비와 같은 코리안 바비큐만 있는 것도 아니고, 김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릴 기회였다.

하지만 섣불리 손을 댈 일은 아니었다. 일단 재료가와 공급의 차이도 있고, 여러 가지 변수들이 많았다. 메뉴 자체도 주고객들의 입맛을 고려하여 바뀌어야겠지.

아직은 생각만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결혼을 앞둔 상태에서 내가 다시 미국으로 갈 수는 없었으니까.

다온은 현재 작은아빠가 운영하는 1호점 외에 권호순이 2호점을 열기로 돼 있었다. 그것도 며칠 남지 않은 상태.

이러한 상태에서 2호점을 열고 싶다는 사람이 연락을 해왔다. 이제 겨우 31세인 남자였는데, 자세한 이야기를 만나서 하기로 결정했다.

그게 오늘 저녁이었다.

직접 만나서 자세히 얘기를 나눠봐야 알겠지만, 왠지 모르게 좋은 결과가 기대됐다.

그런 말이 있다.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 실망할 일도 없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기대감이 가져다주는 행복감은 꽤나 크다.

그런 두근거림이 없으면 삶이 너무 밋밋하지 않겠는가.

먼저 사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않는 대로 괜찮다. 그때 다시 생각해보면 될 문제다. 계획성이 철저한 사람이라면 미리 대비해둘 수도 있고.

다온의 3호점에 관한 이야기가 잘 풀리지 않아도 괜찮다. 이미 있는 걸로도 잘 굴리면 되는 문제니까.

7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백성열이라고 합니다.”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훤칠한 청년이었다. 다온 1호점에서 편하게 보기로 했는데, 백성열은 정장을 쫙 빼입고 왔다.

나도 나름대로 구색을 갖추기는 했지만, 비교적 편하게 입고 왔는데.

“반갑습니다. 강건희입니다.”

굳이 옷차림에 대해서 언급하지는 않았다. 자칫 잘못하면 지적을 하는 것처럼 비춰질까 봐.

우리는 가장 구석지고 조용한 자리에 마주앉았다.

“식사하셨습니까?”

나의 물음에 백성열은 웃으면서 배에 가볍게 손을 얹고는 대답했다.

“아니요, 다온 본점에서 뵙게 되니까 아무래도 대표님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는 영광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너스레와 아부가 적절히 섞여 있는 게 듣기 나쁘지 않았다.

일단 첫인상은 합격.

“그럼 코스로 드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이죠.”

“다 잘 드십니까?”

“그럼요, 다온에서 파는 음식들 다 좋아합니다.”

“전부 드셔보셨어요?”

백성열이 입가에 미소를 흠뻑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럼요. 음식을 먹어보지도 않고 3호점을 내고 싶다는 제안을 드릴 리가 없죠.”

“그것도 그러네요.”

“사실 여기 사장님하고도 몇 번 얘기를 나눴던 적이 있습니다. 웃으면서 장난스레 3호점 얘기가 나왔었는데, 진지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많이 알아보기도 했고, 추구하는 바도 저와 맞고요.”

“그런가요? 어떤 점이요?”

백성열은 미리 준비라도 하고 왔는지 말을 하는 데 막힘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맛에 충실한 것도 당연하고, 저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한식집 가려고 하면 좀 찾기 어렵잖아요? 한식집이 없는 건 아닌데, 사실 패스트푸드점이나 여러 가지 퓨전음식을 하는 곳 아니면 고깃집 같은 곳들이 훨씬 많이 보이잖아요.”

그는 교정을 한 듯 깔끔한 치아를 드러내며 말을 이었다.

“진짜 ‘한식집’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곳들이 적어져서 슬펐거든요. 막상 또 정통 한식집이라고 하는 곳들은 접근성이 좀 떨어지는 경우들이 많았고요. 주변에서 보이니까 가는 게 아니라,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점이요. 그리고 가격도 만만치 않은 경우가 많고요.”

“뭐… 사는 곳에 따라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죠.”

“이건 가맹점주의 입장에서 말씀을 드리자면, 인센티브 제도가 굉장히 좋다고 생각했어요. 본사의 이익을 줄여서라도 가맹점주들을 챙겨주시는 거니까요.”

“그건 그렇죠. 저는 가족 같은 기업을 지향하지만, 반대로 지양하기도 하거든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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