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70화
34. 행복 (2)
“여보세요.”
작은아빠가 다소 거칠게 전화를 받았다. 방금 해고한 주방장의 전화였다.
통화는 약 3분 동안 이어졌다.
3분.
컵라면에 카레고 짜장이고 전부 완성시킬 수 있는 시간이다. 뭐 하나 그럴싸한 게 나올 수 있는 시간. 짧다면 짧지만, 길 수도 있었다.
그랬다. 작은아빠가 성질이 잔뜩 나서 이어가는 통화가 길게 느껴졌다.
“더 얘기할 거 없어. 내일부터 안 나와도 되니까 더 이상 연락하지 마.”
마지막은 칼처럼 잘랐다.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작은아빠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씩씩거렸다.
“왔던 손님들이 요청하면 또 만들긴 만들었더라고. 어휴 미친놈, 진짜 세상 넓다. 별의별 놈들이 다 있어.”
“뭐, 지금이라도 알았으니까 됐죠. 사람은…… 저도 좀 알아볼게요.”
“됐어, 너 일도 바쁜데. 미안하다.”
“아니에요. 그나저나 내일은 어떻게 하나 싶네요.”
“내가 내일 식사 끝내주게 준비할게. 걱정하지 마.”
“아니죠, 그럼 모양새가 이상하죠. 말도 안 되죠. 아니, 말도 안 되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모양새가 좀 그럴 거 같아요.”
“어? 그게 무슨 소리야?”
“말씀드렸었잖아요. 삼촌도 저희 집안 어른인데, 삼촌이 음식을 준비하는 건 말도 안 되죠. 전 삼촌이 내일 쉬실 거라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는데. 보게 돼도 나중에 상견례 느낌으로 봐야 되지 않겠어요?”
작은아빠는 고심하듯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생각해보니 그게 또 그렇네.”
“그쵸? 뭐…… 다른 방법이라면…….”
“호순이한테 연락할까?”
“내일 시간 되시려나…….”
“안 돼도 나와야지.”
“예?”
“그래도 돼. 그래야 되고. 기다려봐.”
작은아빠는 다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시원하고 호탕한 목소리가 몇 번 울렸다. 농담 섞인 욕설도 몇 번 있었고.
다행히 권호순이 내일 가게로 나와서 도와준다고 했다. 풀타임 근무도 아니고, 한 끼 식사 준비였으니 어려울 것도 없었고.
작은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그럭저럭 해결된 셈이었다.
3
다온 앞.
평소에 입을 일이 별로 없는 정장에 구두까지 신었다. 너무 고가품이라 자꾸 모셔놓게만 되는 손목시계도 착용했고. 머리에도 스프레이를 뿌려 단단히 고정했다.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의 아버지를 뵙는 일이었다. 당연히 좋은 첫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겉모습은 어디까지나 겉모습이다. 그게 내면을 대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나 휘황찬란하게 꾸밀 필요는 없어도 말끔해 보일 필요는 있다.
처음 보는 사람의 무엇을 보고 판단하겠는가. 겉모습이다. 실제로 겉모습과 내면은 다르다고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결해서 보기 마련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내면을 떼어놓고 봐도, 겉모습은 중요하다. 꼭 예쁘고 잘생기고의 문제가 아니다.
깔끔하고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 당연히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입술을 삐죽거리는 것보다 생글생글 웃고 있는 게 보기 좋지 않겠는가.
나이 마흔이 넘어가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전까지는 타고난 게 강하지만, 이후로는 살아온 인생에 따라 얼굴이 변한다고 한다. 하는 일이나 평소 생활습관에 따라 피부노화 차이는 있을 수 있다.
다만, 포인트는 이런 게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자기의 얼굴에 책임져라’는 성격과 성향 같은 것이다. 사람은 감정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표정이다.
자주 화를 내는 사람은 화를 내는 대로, 자주 웃는 사람은 웃는 대로 그 흔적이 얼굴에 고스란히 남는다. 세월이 오래 흐를수록 더 진하게.
덩치가 크고 조금은 강인한 인상을 가진 사람들은 쉽게 오해를 산다. 타고난 생김새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억울하도 별 수 없다. 처음 볼 때는 겉모습으로 판단하기 마련이니까. 사실 겉모습 외에 무엇으로 판단하겠는가. 알지도 못하는 내면으로 판단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이를 뒤집을 수 있는 게 있다. 그것도 아주 쉽게.
바로 표정이다. 생글생글 웃고 있는다면, 좋은 인상을 내비친다면 경계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깔끔하게 차려입는다면 더욱 그렇겠지.
내면을 갈고닦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외면을 놓아서는 안 된다. 가장 먼저 보여지는 거니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너무 신경 쓰며 살 필요도 없지만,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결국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고, 사회라는 틀에 녹아들어 살아가니까.
삶이란 게 그렇다. 하나하나가 다 그렇다. 간단한 듯하면서도 복잡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기다리던 중이었다. 검은색 세단 한 대가 섰고, 나도혜와 나수한이 내렸다.
나수한의 얼굴은 진작 알고 있었다. 그의 한의원은 국내에 수십 개에 달하는 지점을 가지고 있었으니, 인터넷에 검색만 하면 떴다. 나도혜를 검색해도 연관 검색어로 뜨기도 했고.
나는 나도혜와 눈만 살짝 마주치고는 나수한을 보며 있는 힘껏 미소를 지었다. 그랬다. 이렇게나 미소를 지으면서 최선을 다해본 적이 언제 있었는지. 최대한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예비 장인어른과 예비 사이의 관계.
이게 편한 사람은 세상에 몇 안 될 거라 장담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보통 그렇지 않은가.
사위는 장인보다 장모가 편하고, 며느리는 시어머니보다 시아버지가 편하다. 대개 그렇다. 이유는 모르겠다. 저마다 이유야 다르겠지만, 결론은 같다는 게 오묘한 부분이다.
“안녕하세요, 강건희라고 합니다.”
내가 인사를 건네자 나수한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고개를 꾸벅였다.
“잘 알고 있죠. 이렇게 만나게 돼서 반갑습니다.”
느낌이 좋았다. 아들뻘인, 그것도 예비 사위라고 만난 사람을 상대로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존대를 쓰는 게 그랬다.
초면인 사람에게 존댓말을 쓰는 건 기본이다. 한국에서는 그렇다. 설령 상대가 미성년자라도 조심스럽게 말해야 한다. 그게 예의다.
경우에 따라 초면일지라도 연장자가 편하게 말을 하는 것이 실례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긴 하다.
그래도 최대한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는 쪽이 보편적으로 더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은 분명하다.
나수한이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바로 악수를 하며 다시 한 번 고개를 꾸벅였다.
나수한은 이 만남이 싫지 않은지 껄껄 웃었다.
“안에 먼저 들어가 계시지, 왜 밖에서 힘들게…….”
“그냥…… 이렇게 맞이하고 싶었습니다.”
“그럼 들어가지요.”
나도혜는 나와 나수한의 가운데로 서면서 유도했다.
“얼른 가요. 엄청 배고프네.”
4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들이 가득했다.
나수한은 상 위로 펼쳐진 음식들을 보며 껄껄 웃었다.
“이거 너무 많아서 다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여기도 강 대표가 운영하는 곳이죠?”
“저희 브랜드이긴 한데, 실질적인 운영은 저희 작은아버지께서 하고 계십니다. 저는 전체적인 부분에서 조금씩 간섭만 하는 정도입니다.”
나는 미소를 머금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편히 말씀 낮추십시오. 제가 인사를 드리려고 이렇게 뵌 건데…….”
“허허, 이상하게 말을 놓기가 힘드네요. 나는 우리 딸이 이렇게 강 대표 같은 사람을 데려올 줄은 몰랐거든.”
나도혜는 나수한을 향해 눈을 흘겼다.
“내가 왜요? 뭐요?”
“예전에 선자리 알아봐주면 번번이 싫다고 하지 않았냐. 그리고 보디빌딩한답시고 외국까지 나가고. 난 그래서 운동하는 외국인 애인 데려오려나, 했었지. 아니, 그렇게라도 되면 다행이지, 결혼 안 할까봐 노심초사했다.”
“요즘 세상에 결혼하고 말고가 중요한가.”
“중요하지 그럼.”
“아빠도 별수 없다니까. 옛날 사람이야, 옛날 사람.”
“그럼 내가 요즘 사람이냐?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어. 가족이 있어야 돼.”
나도혜는 고개를 끄덕거리다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좋은 분 좀 만나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결혼하는 거 때문에 만난 자리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다.”
“난 아빠가 재혼했으면 좋겠다니까?”
“재혼은 무슨 재혼이야?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
나수한은 내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을 돌렸다.
“아무튼…… 덕분에 오늘 이렇게 훌륭한 식사도 먹고, 고마워요.”
나도혜가 피식 웃었다.
“갑자기 왜 말을 돌려요?”
“그러는 넌 왜 갑자기 존대야?”
둘이서 지낸 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사이가 유난히 좋은 부녀 같았다.
수십 개에 달하는 지점을 가진 한의원의 대표인지라 선입견이 있었다. 왠지 다소 딱딱하고 권위적일 거라 생각했다. 나수한은 전혀 그렇지 않아씾만.
생각해보면 그런 권위적인 아버지 밑에서 나도혜 같은 딸이 자랄 확률은 낮을 텐데.
우리는 천천히 식사하며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나수한은 1시간이 지나서야 말을 편하게 하기 시작했다.
“사실…… 자네가 우리 딸이랑 지금처럼 좋은 관계가 되기 전부터 관심이 많았어.”
“아, 그러셨습니까? 부끄럽네요.”
“부끄럽기는. 뭐…… 조금 시끄러운 일들이 있긴 했어도, 결과적으로 전부 좋았잖은가. 아무튼 앞으로 우리 딸을 잘 부탁하네. 나도 잘 부탁하고.”
여러 가지로 의미가 깊은 말이었다.
허락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사실 이렇게 만나러 오면서 허락을 구하러 온다는 마음은 아니었다.
결정은 나도혜가 하는 거니까.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들이다.
결혼은 남자와 여자의 만남이 아니라고, 가족과 가족의 만남이라 신중해야 한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겠지.
단지 우리는 그런 부분까지 크게 고려하지 않아도 됐다. 나야 부모님 두 분 모두 일찍이 돌아가셨고, 나도혜도 외동에 아버지인 나수한 하나뿐이었으니까.
일단 우리 셋만 잘 맞으면 됐다.
나는 큰 노력도 필요치 않았다. 제대로 뭘 한 것도 없는데 나수한이 너무 좋게 봐줬으니까. 조금은 쑥쓰러울 정도로.
나수한은 너그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른 거 바라는 거 없어. 둘이서 건강하게,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결혼식에 대해서도 꽤나 자세히 얘기를 나누게 됐다. 조금은 힘든 부분이었다. 원래 이런 식으로, 이렇게 갑자기 진행하게 되나 싶기도 했고.
그러다 나도혜와 눈이 마주치자 그러한 의문들은 싹 사라졌다.
그래, 나는 저 여자와 인생을 함께 꾸려나가고 싶다.
5
“생각보다 복잡하다. 괜히 다들 플래너 쓰는 게 아니구나.”
내가 말하자 나도혜가 피식 웃었다.
“그러게. 알아볼 게 한두 가지가 아니네.”
“그냥 플래너 알아볼까?”
“좀 더 알아보고. 메이크업 같은 것도 굳이 그 비싼 돈을 주고 받아야 되나 싶기도 하고, 드레스도 한 번 입고 말 건데…… 남들 입었던 똑같은 드레스도 싫고. 스튜디오 촬영 같은 것도 그냥 우리끼리 찍으면 되잖아. 똑같은 배경에 똑같은 자세로 사람만 바뀌는 것도 너무 싫어.”
“그것도 그래.”
“뭐…… 괜히 다들 그렇게 하는 게 아니구나 싶기도 하지만.”
“그것도 그렇고.”
나도혜는 양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아무튼 내일 준비나 해.”
“응, 그래야지. 괜히 떨리네.”
“강연도 했다는 사람이 뭐가 떨려?”
“강연보다 훨씬 더 떨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