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69화
34. 행복 (1)
1
한마디.
사실상 단어 하나.
두 글자.
나의 ‘저녁?’이라는 대답은 나도혜의 아버지와 식사 약속을 잡는 것까지 이어졌다.
나도혜는 추진력과 결단력 하나는 알아준다. 그녀의 그런 성향은 이런 부분에서도 묻어났다.
나도혜의 아버지인 나수한도 핏줄을 증명하듯 속전속결로 약속에 응했다.
그 약속은 바로 내일이다.
금전적인 부담이 없기에 고급스러운 식당을 예약하려고 했다. 고민하는 점이라면 한식이냐 중식이냐 일식이냐 양식이냐, 그 정도였다.
아무래도 한국 사람이니까 한식으로 가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민을 하던 중에 답은 가까운 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다온이 있었다.
작은아빠가 도맡아서 운영을 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웰빙 헬스케어의 브랜드 중 하나다. 대표는 나고.
제대로 대접하기 위해서는 다온에서 하는 게 옳다고 여겼다. 가장 꽉 채운 한 끼를 내는 동시에 나에 대해서도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내가 식당만 운영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본적으로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식품 업체라고 할 수 있었다.
다온은 그 일부였다. 내 손을 많이 거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내 일부였다. 이를 통해 나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다고 여겼다.
다온에 왔다.
내일 식사 자리에 나올 코스를 가장 완벽하게 하기 위해 일종의 점검이었다.
다온은 여전히 우수한 매출을 올리고 있었고, 사람들의 평도 좋았다.
작은아빠는 어떻게 보면 나보다도 훨씬 꼼꼼하고 확실한 사람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다온에 온 것은 스스로에 대한 문제였다.
다온을 의심해서가 아니었다.
대표라는 놈이 본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아야 될 것 아닌가.
미국에 다녀오고 하느라 다온에 들러서 식사를 하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었다.
똑같은 메뉴 구성을 오늘도 먹고 내일도 먹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당연했다.
전에는 라면 따위만 며칠 동안 먹은 것도 부지기수인데, 이게 대수이겠는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작은아빠는 쉬는 날이었다. 내일 예약돼 있다는 것만 알지, 오늘 내가 들른다는 사실은 모른다.
내일은 내가 식사 자리를 가지고 있어서 쉬기로 돼 있는데. 작은아빠가 이틀 연속으로 쉬는 건 좀 의외였다.
쉬는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작은아빠가 그렇게 쉬길 바랐다. 충분히 쉬면서 일을 하는 게 좋다고 여겼다.
단지 작은아빠의 성격상 이틀 연속으로 쉬는 경우는 드문데.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별다른 소식은 없었으니 괜찮겠지.
작은아빠와 함께 다온의 시작을 이끌었던 권호순은 새로운 매장 오픈 준비에 들어간 상태다.
진작 실행돼야 했던 부분이었다.
다온 2호점.
기존 계약서를 파기하고, 새로운 계약서를 작성했다.
다른 브랜드들의 시스템과 같이 다온 역시 인센티브에 대한 부분도 동일했다.
권호순이야 요식업에 상당히 오랜 기간 몸을 담근 사람이었으니 걱정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버틸 수 있던 것도 정직하고 성실하고 깨끗한 조리 덕분이었으니까.
덕분에 오늘 다온 2호점에 있는 주방장은 모르는 사람이었다. 얼마 전에 작은아빠가 직접 뽑은 사람이었으니 실력은 확실하겠지.
나름대로 유명세를 탈 만큼 탄지라 홀서빙 직원은 단번에 나를 알아봤다. 처음에는 모자라도 눌러쓰고 들어가서 그냥 손님인 척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관뒀다. 나중에 알게 된다면 배신감마저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시험을 받아서 좋아할 사람은 없겠지.
개의치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굉장히 불쾌함을 느낄 수도 있기에 숨기지 않았다.
특별할 것은 없었다. 친절한 응대를 받고, 내일 식사 자리 코스와 동일하게 주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례로 음식이 깔렸다.
“음.”
냄새부터 좋았다. 작은아빠나 권호순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맛도 떨어지지 않았다. 역시 깐깐한 작은아빠가 뽑은 사람다웠다.
다 좋았다. 그럴 뻔했다. 메뉴 자체도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구성이었다. 구성에는 문제가 많이 보였다.
무친 시금치 위에 으깬 두부를 올린 밑반찬.
흔하게 볼 수 있는 반찬이었다. 두부와 시금치의 비린맛을 완벽하게 잡았고, 고소함만을 살렸다.
냄새가 침샘을 자극하고 한 입만 먹어도 밥을 불렀다. 심심한 듯 간이 적절하게 된지라 밥도둑이라는 별명을 가져도 될 수준이었다.
문제는 건강하지 않았다.
시금치도, 두부도 건강에 좋은 식품이다.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두 식품은 함께했을 때는 궁합이 나쁘다.
시금치에는 옥살산이라는 성분이 있는데, 두부의 풍부한 칼슘 흡수를 방해한다.
게다가 과다섭취를 할 경우 결석을 유발할 수도 있다.
건강한 사람들에게야 큰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이와 관련된 질환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나쁠 수 있다.
무쌈. 마치 월남쌈처럼 절인 무를 얇게 썰어 그 안에 여러 가지 채소들을 쌌다. 그냥 먹어도 새콤달콤하고 아삭아삭한 식감 덕분에 호불호를 크게 나뉘지 않는다. 채소를 맛있게 먹는 방법이다.
하지만 건강하게 한답시고 레시피에 변화를 준 듯하다. 무를 절이지 않았다. 생무를 기술적으로 얇게 썬 뒤 채소를 싸고, 이걸 소스에 찍어먹는 방식이었다.
좋다. 이건 이거대로 더 요리라는 느낌을 들게 했고, 맛도 있었다. 맛은 좋았다. 하지만 문제다.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지만, 이로운 영양소들을 파괴하니 의미가 사라진다.
안에 함께 들어간 오이와 당근이 문제다. 오이와 당근은 김밥에도 흔히 들어가는데 뭐가 문제냐고 생각할 수 있다.
정확히는 생당근과 생오이를 함께 넣었을 때가 문제다. 생당근에 들어 있는 아스코르비나아제는 오이의 비타민C를 파괴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당근을 익혀 먹든지, 식초를 첨가하면 된다. 그러니 애초에 레시피는 바꿀 필요가 없었다. 무를 절일 때 당근도 살짝 했던 건 맛이 아니라 영양소 때문이었는데.
그나마 눈에 띄게 나쁜 구성은 이 정도에서 그쳤다.
이따 말해둬야지.
모듬 생선구이가 나왔다.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게 보기만 해도 군침이 나게 했다.
문제는 다온의 생선구이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점이 하나 사라졌다.
바로 마늘.
생마늘이나 생양파는 원하면 내주는 곳이었지만, 생선구이에는 아예 구운 마늘이 함께하기도 했다.
맛의 호불호를 위해 마늘을 함께 굽지는 않는다. 하지만 생선살을 찍어 먹는 소스로 마늘이 듬뿍 들어간 걸 함께 내놓곤 했다.
생선과 마늘은 궁합이 좋은 식품이다. 기본적으로 둘 다 건강에 좋은 식품이기도 하고.
나름대로 다온의 시그니처 메뉴인데 이런 식으로 빠지다니.
나는 일단 조용히 식사를 마쳤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있는 주방장에게 궁합이 나쁜 음식들과 궁합이 좋은 음식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다온의 실질적인 운영은 작은아빠가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온은 지점마다 약간의 차이를 가지게 될 예정이었다.
나의 생각이 무조건 옳으리란 법은 없었다. 나의 방식이 다 들어맞는 건 아니었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거를 건 거르자는 게 내 생각이었다.
너무나 기본적인 부분들은 물론, 건강식을 파는 식당의 정체성만 잃지 않으면 어느 정도 유연성을 가지고자 했다.
아예 대표 메뉴들은 고정되지만, 재량에 따라 시험적인 메뉴들을 내볼 수 있는 것도 특색이었다. 어디까지나 건강한 음식에 한해서.
아직까지도 다온은 본점이자 1호점밖에 없었다. 그러니 작은아빠 마음대로였다. 메뉴에 대한 결정도 작은아빠가 했으리라.
작은아빠는 더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자 이러한 선택들을 했다고 여겼다. 그러니 일단 작은아빠와 얘기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2
다온의 간판은 꺼져 있었다.
조금 늦은 시간이었지만, 작은아빠와 만났다.
날씨도 선선하니 잠깐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는 것도 괜찮으니까.
내일은 따로 얘기할 시간도 없을 테고.
“조져야겠네.”
작은아빠가 인상을 구기고 말했다.
“일단 그 부분들은 내가 시정할게. 야, 솔직히 시금치랑 두부가 같이 먹으면 안 좋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몸에 좋은 거랑 좋은 거를 같이 먹는데… 참나.”
“그게 그렇더라고요. 신기하죠, 참.”
“그러니까 말이야. 무쌈 같은 경우는 나름대로 더 특색을 주려고 했었지. 어떤 사람들이 그냥 고깃집 가면 나오는 무쌈 맛이라고 그러니까 힘 빠지더라고. 우리 공산품 아니고 전부 하나하나 다 재서 하는 건데.”
“알죠. 근데… 삼촌도 아시겠지만, 어디를 가서 뭘 하든 불만은 나오잖아요. 비평이든 악평이든 안 좋은 소리가 나오면 귀를 기울이긴 해야겠지만, 또 그거에 전부 흔들리면 안 되니까요.”
“알지, 아무튼 그 부분들은 내가 바로 시정할게. 미안하다.”
“아휴, 미안은요.”
작은아빠는 블랙커피를 홀짝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이렇게 식당 앞에서 커피라고 하면 보통은 믹스커피였는데. 작은아빠도 좀 더 건강을 생각하게 된 듯하다.
“그나저나 왜 또 이렇게 나오셨대요?”
나의 물음에 작은아빠가 인상을 살짝 찡그린 채 대답했다.
“너 왔다고 하니까. 내일 오기로 했었는데 왜 나왔나 하고.”
“그럼 전화를 하시지.”
“내일 메뉴 준비도 있고 하니까 일단 나와봤지. 가게 뒷정리도 좀 하고.”
“곧 주무셔야 하는데 커피 드셔도 괜찮아요?”
“난 카페인이 별로 들지를 않나봐. 커피는 그냥 맛으로 먹는 거야.”
작은아빠는 가볍게 한숨을 내쉰 뒤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 나 참, 이상하네. 왜 소스를 지 마음대로 뺐지?”
생선구이에 곁들여지는 마늘소스는 작은아빠가 변경한 적이 없었다. 주방장이 멋대로 뺀 것이었다.
“하이씨, 못 참겠다.”
“예?”
작은아빠는 그 자리에서 휴대폰을 들어 주방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깐의 정적, 신호음이 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연결이 되자마자 작은아빠가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어, 어. 난데, 늦은 시간에 미안해. 통화 괜찮아?”
통화가 이어졌고, 작은아빠는 인상을 살짝 찡그린 채 꽤 오랫동안 말했다. 거의 나무라는 것에 가까웠다.
그래도 비교적 차분하게 통화가 이어지는 듯했다. 늦은 시간이었는데 내 생각보다 통화가 길어졌다. 한참 동안 통화를 이어가던 작은아빠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그냥 내일부터 나오지 마십쇼.”
처음에는 반말로 시작했던 통화의 마무리는 존대로 끝났다.
존대로 시작해 반말로 끝나는 것만큼이나 나쁜 경우다.
작은아빠가 새로 뽑은 사람은 솜씨는 있었다. 하지만 피곤한 스타일이었다.
평소에 작은아빠가 쉬는 날에도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열의로 받아들였지만, 너무 사사로운 것 하나하나 전화해서 다 물어보니 작은아빠도 슬슬 짜증이 나던 차였다고.
“괜찮으시겠어요? 사람 새로 뽑으려면 그것도 일인데.”
내가 염려를 내비치자 작은아빠는 손을 내저었다.
“상관없어. 같이 일하는 게 열 배는 더 피곤하다. 소스도 왜 뺀 줄 알아? 자기 생각에는 그게 맞는 거 같아서 뺐대. 아니, 내가 없는 날에만 생선구이에 마늘 소스가 안 나간 거야. 정신병자 아니냐? 그럼 누구한테는 소스가 나가고, 누구한테는 안 나간 거잖아. 그럼 그냥 가게 입장에서 소스 빼먹고 안 내준 거고.”
그때 작은아빠의 휴대폰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