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68화
33. 권위 (6)
나는 여자의 손목을 잡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불편하시면 소리를 내주세요.”
팔과 등, 허리, 허벅지 옆, 발목과 종아리를 짚어보는 수준이었다.
나름대로 촉진을 하면서 여자가 뇌성마비가 아니라는 확신이 더욱 강해졌다.
나는 남자에게로 시선을 옮기고 물었다.
“혹시 따님께서 지금도 병원을 다니시나요?”
“예,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가죠.”
“혹시…… 병원을 옮기신 적은 있나요?”
남자는 나의 질문에 조금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저희 지역에서 가장 큰 대학병원에 다니고 있어서 그런 필요성은 못 느꼈습니다.”
“음……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이 조금 당황스러우실 수도 있겠지만, 너무 놀라지 마세요. 그리고 100% 확정을 지어서 말씀드리는 건 아닙니다.”
“어떤…… 거 때문에 그러시는지?”
“따님께서 앓고 계신 병이 뇌성마비가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줄곧 무표정하게 있던 여자도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를 바라봤다.
나는 두 사람과 눈을 가볍게 마주치고는 말했다.
“제가 볼 때는 뇌성마비가 아니라 세가와병인 것 같습니다.”
“그게 뭔가요?”
“도파 반응성 근육긴장 이상이라는 건데요. 세가와병도 균형을 잡을 수 없고, 근육의 이상이 생기면서 점점 생활이 어려워집니다. 따님께서는 오랫동안 치료를 받지 않아서 상태가 많이 안 좋아진 듯하고요.”
“뇌성마비가 아닐 수도 있다구요? 정말로요?”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제가 볼 때는 그렇습니다. 뇌성마비였다면 보통 인지기능이나 지적능력에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따님께서는 오히려 지적능력이 뛰어나신 편이잖습니까.”
“네, 그렇죠. 얘가 공부 잘하거든요.”
“잠시 따님의 상태를 좀 더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나의 물음에 남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시 살펴봐도 확실했다. 하지만 단언할 수는 없었다. 뭐든지 함부로 단언을 해서는 안 된다. 특히나 크게 실망할 수 있는 이런 일은 더욱.
“뇌성마비가 아닐 수도 있다는 소리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예? 진짜로 그 세가와병인가 뭔가 그거인 겁니까?”
남자가 대답을 재촉했다.
여자도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기대감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일단 서울까지 오신 김에 다른 큰 병원에 가셔서 검사를 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세가와병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 그 세가와병이란 건 좀 낫습니까? 딸이 조금이라도 편해졌으면…… 그럴 수만 있다면 원이 없습니다.”
“세가와병이 맞다면 따님께서는 다시 걸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때까지도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크게 뜨고 있는 두 눈으로 얘기는 충분히 됐다.
남자는 덜덜덜 떨면서 물었다.
“그, 그, 그, 그게 정말입니까?”
“일단 검사를 받으러 가보시죠. 금방 결과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도파민 관련 문제라서 소량의 도파민 약물만 투약해도 금방 나을 수 있습니다. 딱히 부작용이나 합병증의 염려도 없습니다.”
“그, 그럼 바, 바로 가보겠습니다. 얼른 검사를 받아야……!”
나는 여자의 다리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리고 눈을 마주쳤다. 확실했다.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능력이 빗나간 적은 없었다.
얼마나 긴 시간 동안 고통을 받았을까. 그것도 너무나 억울하게 겪지 않아도 될 고통에 빠져 있었다.
남은 시간을 1초라도 더 빨리 행복하게 지내길 바랐다. 그렇기에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진단을 받고 치료에 들어가면 이번 주…… 아니, 며칠 내로라도 바로 걸을 수 있을 겁니다.”
나의 말에 남자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양손을 어떻게 할 줄 몰랐다.
“허억……!”
여자가 처음으로 소리를 냈다. 크게 뜬 두 눈에는 눈물이 촉촉하게 맺혀 있었다.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죠. 모셔다드리겠습니다.”
9
이틀 뒤.
여자는 세가와병이 맞았고, 도파민 약물 치료를 시작하고 바로 걸을 수 있게 됐다.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걸음을 내디디는 순간에는 나도 함께 있었다.
나는 부녀가 오진을 한 병원에 소송을 거는 것도 돕기로 했다. 직접적으로 나서는 것까지는 아니었다. 변호사를 소개해주고 수임료의 부담을 덜어주는 수준이었다.
당연히 내게 변호사 수임료가 부담될 리는 없었다. 그 부담을 더욱 덜어낼 수 있던 것은 나도혜 덕분이기도 했다.
게다가 변호사도 화제가 되는 사건인데다가 승소가 확실해서 수임료를 상당히 낮게 잡았다. 오히려 내게 고마워했고, 수임료는 국선 변호사보다 조금 비싼 수준이었다. 사실상 말이 안 되는 거래였지만, 수임료를 더 비싸게 낼 수는 없었다. 변호사가 끝까지 거절했으니까.
이 일은 생각 이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왔다.
10
[10년 넘게 뇌성마비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여성의 사연]
[10년 넘게 누워서 지내던 여성이 이틀만에 걷다]
[미라클 헬스케어 대표 강건희 ‘건강이 최고입니다’]
[‘진짜 기적을 보았다’ 미라클 헬스케어 대표 강건희]
[뇌성마비 오진으로 병상 신세였다가 건강상담 받아서 다시 걷게 되다]
나에 대한 뉴스 기사들이 쏟아졌다. 공중파 뉴스에서 인터뷰도 했다. 또다시 검색어 1위를 차지하게 됐다.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는 일이 또 있을 줄이야.
한 번 검색어에 오르자 과거에 있었던 일들도 연달아 검색 순위에 올랐다. 오해가 있던 것들도 전부 해결이 된지라 좋은 얘기들뿐이었다.
씁쓸한 점이 있다면 지금은 헤어진 아이튜브 커플 이야기도 다시 부상했다. 여자 쪽이야 그나마 내게 고마움을 표할 정도로 미련이 없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좋은 일은 아닐 텐데.
남자의 경우 잘못된 일을 했지만,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비난을 쏟아내고 욕을 해도 되는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고.
별로 좋지 않을 일로 다시 거론되는 데 부정적일 거라 생각하다가도, 그때 그 일이 있었을 때도 곧바로 아이튜브를 하는 걸 보면 좋아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화제가 되면, 그로 인해 인지도가 올라가면 돈이 되기도 하는 세상이니까.
바람직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요즘 세상인데.
가끔은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일만으로도 충분히 바쁜데 자꾸만 뭔가 생긴다. 누군가는 엄청나게 부러워할지도 모르는 종류의 좋은 일들 뿐이다. 그래도 가끔은 힘들고 지친다는 생각도 든다.
신체적으로는 아무 문제도 없지만, 정신적으로 지치는 느낌이 없지는 않다. 아마 내가 지금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면 힘들었을지도.
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이런 마음을 혼자 품어두고만 있지는 않았다. 공개적인 인터뷰에도 어느 정도 드러냈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은 그걸 좋게 봤다. 마치 내가 뭐라도 된 양. 나는 그냥 내 마음을 얘기한 거고, 사후세계를 알게 되면서 이렇게 된 것뿐인데.
감사한 마음 그리고 어쩌면 조금은 두려운 마음 덕분이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을 하늘이 알고 있는데 어찌 막 살겠나.
할아버지가 물려준 위대한 유산을, 내게는 과분한 선물을 받고도 열심히 살지 않을 수가 없다.
인두겁을 뒤집어쓰고 있으면 그래야 한다.
늦은 밤이 돼서야 모든 일정을 마칠 수 있었다.
“연예인이네, 연예인.”
맞은편에 앉은 나도혜가 생긋 웃었다.
오늘은 카페 테이블 대신 집에 있는 접이식 테이블이다. 내가 피곤할지도 모른다며 나도혜가 배려했다.
나는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연예인은 무슨 연예인이야.”
“웬만한 연예인보다 인지도가 높겠는데?”
“이런 걸 원했던 건 아닌데…….”
“그래도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게 맞는 거 아니야?”
“그렇긴 하지. 사람들이 좀 더 내가 올리는 건강 관련 정보들에 관심을 가질 테니까.”
“그런 건 어때?”
“뭐?”
나도혜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우리 주스랑 즙 팔고 있는 거.”
“응, 그거 뭐?”
“즙이랑 주스마다 효능 적어놓고 하잖아. 건강 관련 정보 볼 수 있는 곳들 적어서 함께 보내는 거지.”
나는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효과가 있을까? 미미할 거 같은데.”
“한 사람이라도 그거 보고 들어오면 의미가 없지는 않잖아.”
“그럼 그냥 종이만 달랑 넣기는 좀 그러니까, 작은 사은품이라도 같이 넣어서 보낼까? 그럼 괜찮을 거 같은데.”
“응, 응. 그거 좋다. 즙이라도 한 팩 넣어서 보내면서 안내문 넣으면 되지.”
나도혜는 환경적인 영향으로 한의사가 됐다. 어머니가 편찮으셨던 것도 있고, 아버지의 직업이 직업인지라 택한 것도 있지만, 확실히 사람들이 건강했으면 하는 마음이 보인다.
끼리끼리 논다더니, 정말 잘 만났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나였다면 나도혜와 이렇게 될 일도 없었겠지.
과거는 과거라고, 과거는 좋은 추억 몇 가지만 기억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이 생각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과거에 얽매여 있어봤자 좋을 것은 없으니까.
하지만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된다. 과거를 들여다보면, 예전에는 뭘 어떻게 했는지, 특정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혹은 일을 그르쳤는지를 알 수 있다. 역사가 그렇듯이 과거는 일종의 오답 노트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같은 실수의 반복을 피하는 게 가능하다.
“그런데 괜찮아?”
나의 물음에 나도혜는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뭐가?”
나는 괜히 집을 둘러본 뒤에 말했다.
“그냥…… 어디 근사한 데서 데이트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닌가 해서.”
“근사한 데? 지금 시간에 레스토랑이라도 가야 돼?”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냥 누추한 집에 귀하신 분을 모시려니까 마음이 쓰여서.”
나도혜가 피식 웃었다.
“어디인지가 중요한가, 누구랑 같이 있느냐가 중요하지. 그리고 웬만한 식당보다 자기가 한 음식이 더 맛있어.”
좋은 여자다. 이성 관계를 떠나서 인간으로서 좋은 사람이다. 이런 부분을 생각하면 지금도 첫 만남이 희한하다. 첫 인상을 별로였는데, 이렇게나 좋아지다니.
어쩌면 그런 생각이 든다. 서로 너무 달랐던 사람이라서 거부감도 있었겠다고. 그러다 다른 점들에서 매력을 느끼고, 서로에게 조금씩 맞춰가면서 같아진 부분도 있고 원래 같은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다른 점은 달라서 좋고.
중요한 건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걸 받아들이고 나면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도 쉬워진다.
그나저나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치다보니 나도혜의 아버지가 유난히 선명하게 남았다.
우리는 결혼을 할 사이였다. 애인의 부모님을 마주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어날 일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장모님보다는 장인어른이 더 어렵다. 아마 대부분은 그렇겠지. 남자들은 장인어른이 더 어렵고, 여자들은 시어머니가 더 어렵고.
그때 나도혜가 입을 열었다.
“아, 맞다. 할 말 있었는데.”
“뭐?”
“이번 주 주말에 시간 돼?”
“주말에? 뭐…… 미리 약속 잡으면 시간이야 뺄 수 있겠지? 왜?”
“우리 아빠가 보자고 하시더라고. 점심이나 저녁 한 끼 같이 하자고.”
생각을 하자마자 바로 걱정하던 상황이 벌어졌다.
말도 행동이고 행동도 말이다. 결국은 표현하는 거니까. 그리고 둘 다 조심해야 한다. 그 표현이 죄가 될 수도 있다.
내 생각에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해야 하는 듯하다. 바로 생각, 마음이다. 생각으로도, 마음으로도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 내가 품고 사는 생각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방향은 다르지만 지금도 결국은 그렇게 됐다.
“어때? 점심이나 저녁 괜찮겠어? 바빠서 안 돼도 괜찮아. 다음에 뵈면 되니까. 어때? 시간 되겠어?”
나도혜의 물음에 나의 대답은 고작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