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67화
33. 권위 (5)
장담할 수 있는 일은 없는 듯하다. 뭐든지 100%라는 것은 없다. 아마도 그렇다.
특히 사람의 마음만으로,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 것은 더욱 그런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단언하거나 확언하는 걸 가능하면 아낀다.
눈앞에 있는 김영기는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다.
100% 장담은 할 수 없다. 하지만 방치한다면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염증을 가지고 있었다.
전립선염이었다.
일반적으로 전립선염을 앓는다고 해서 암으로 발전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의사마다 의견이 분분히 갈리지만, 전립선염은 전립선염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냥 그 증세가 심해지면 염증이나 전립선 비대증으로 상당한 불편감과 고통을 초래하므로 치료가 필수이긴 하지만.
증상이 워낙 확실한 병인지라 치료를 받지 않을 수가 없다. 잔뇨감이나 이물감, 통증 등 다양하니까.
다만, 김영기는 건강 상태가 썩 좋지 않아 보였다. 특히 전립선. 지금도 배뇨 시 통증이나 잔뇨감이 심할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나의 능력으로 인해 보였다.
얼른 건강 관리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전립선암에 걸릴 수도 있었다. 전립선암이 아니더라도 건강상 문제를 겪을 것으로 보였다.
만약 지금과 같은 생활습관을 유지하는데 별 이상 없이 지낸다면? 그것이야 말로 신이 도왔다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눈앞에 있는 김영기는 신이 도움을 주기에는 너무 악한 사람이었다.
만약 신이 도움을 준다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것이리라.
“뭐라고 말을 좀 해봐. 답답해 죽겠네. 내가 모델이라도 해줘? 그럼 되겠어?”
김영기의 말에 나는 고개를 살짝 비틀며 눈을 강하게 깜빡였다.
“뭐라고요?”
나의 되물음에 김영기가 말했다.
“내가 모델이라도 해주면 되겠냐고. 장사하는 사람이잖아? 물건 많이 팔아야지? 안 그래?”
“하…….”
“지금 이러는 것도 기회 잡아서 좀 쥐려고 하는 거 아니야.”
김영기는 엄지와 검지를 붙여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며 눈을 희번덕거렸다.
“다 이거 때문에 그러는 거잖아. 챙겨준다니까? 그러니까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말자. 나이도 젊은 사람이 왜 그래?”
“그쪽한테 이런 식으로 반말 들을 정도로 어리지 않습니다. 아니, 처음 보는 사람이면 존대하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저는 초등학생한테도 존댓말 씁니다. 그게 기본이죠.”
“하, 나 진짜…… 반말해서 기분 상했어? 그래서? 계속해 보시겠다고?”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짓눌렀다.
참으로 어려웠다. 아주 과격한 생각까지도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김영기를 바로 들쳐 메고 중탕기에 거꾸로 꽂아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행복 건강즙 1호점이었다.
모든 게 시작된 나의 소중한 곳.
할아버지의 정신이, 할머니가 거친 손으로 힘겹게 꾸려갔던 곳이었다.
모든 기적들이 이곳에서 시작됐고, 지금의 내가 있었다.
웬만한 사람이었다면 화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안타깝게 생각하려고 했겠지.
하지만 나는 아직 아량이 부족한지 김영기를 포용할 그릇은 못 됐다.
그래도 기본은 잊지 않았다.
“법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이렇게 나오시겠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죠. 조카 같은 애한테 입에 담지도 못할 말들을 해놓고는 너무 당당하시네요. 부디 법의 심판을 받아 마음을 고치시길 바랍니다.”
“이 새끼가 진짜…….”
김영기가 위협적으로 턱을 내밀며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살기를 내비쳤다.
말 그대로 살기였다. 진짜로 김영기를 죽여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감정을 고스란히 내비치며 눈을 희번덕거렸다.
김영기는 움찔하더니 들어 올렸던 손을 슬그머니 내렸다.
나는 뿌드득 소리가 울릴 정도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치아 건강에 좋지 않은 짓인데.
이제는 뭘 해도 건강과 연관지어 생각한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욱더.
이것도 직업병인가.
나는 천천히 코로 길게 숨을 내쉰 뒤에 입을 열었다.
“더 이상 할 말 없습니다. 나가시죠. 행패를 부리시면 경찰 부르겠습니다. 그걸 원하시지는 않을 테죠.”
“너 이러고 조용히 넘어갈 수 있을 거 같아? 엉?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 거 같으냐고! 이런 구멍가게 운영하면서 아주 어? 세상 무서운지 모르지? 이 X만한 시장 바닥에 처박혀 있으니까! 아주 X벌, 세상을 모르는 거 같은데!”
김영기는 마구 소리를 지르다가 이내 헛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내가 진짜 어이가 없어서…… 당신 진짜 이러다 인생 끝나. 무슨 말인지 알아? 세상을 좀 넓게 봐야지, 그렇게 편협한 시각에 갇혀서는 아무것도 안 돼. 어쩌면 당신이 처음에 내지른 거, 내 입장에서는 좀 X같았지만, 당신한테는 기회였어. 어쨌든 엮었으니까, 두둑하게 한밑천 챙길 수 있었다고.”
그는 이마에 주름을 잔뜩 잡고 말을 이었다.
“건강 프로그램 몇 번 나오고 그러니까, 응? 나랑 똑같이 TV 나오는 사람, 그렇게만 보여? 응? 내가 그쪽이었으면 이런 식으로는 안 했지. 아무튼, 알았어. 그래. 한 번 가보자고, 응? 끝까지 가보자고. 후회할 거야.”
“지금 이러실 때가 아닙니다.”
“뭐?”
나는 철칙을 지켰다.
“가서 건강검진이나 받아보세요. 상태가 별로 안 좋아 보이십니다. 자칫 잘못하면 큰 병으로 번질 수 있으니까 검진 받으십쇼.”
“뭐? 이 새끼가 진짜!”
철칙을 지키면서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된 듯했다.
갑자기 건강을 들먹거리니 저주라도 퍼붓는 기분이 들었는지 김영기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피웠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일은 없었다.
당연하겠지. 평소의 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다니려고 노력하지만, 그렇다고 인상이 마냥 부드럽지는 않다.
꾸준한 운동으로 체격도 좋은 편이다.
김영기 입장에서는 폭력을 행사하는 순간 일이 더 꼬일 게 뻔했고, 계약서라도 쓰고 스파링을 붙는다고 해도 나한테 게임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 짖는 거다. 원래 겁 많은 개가 짖는 법이다.
“할 말은 다 한 거 같네요.”
나는 조용히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1, 1, 2를 누르려고 했다.
그제야 김영기가 씩씩거리며 문을 걷어차고 나갔다. 당연히 저 부분도 손해배상 청구를 할 생각이었다.
이미 직원들은 전부 몰려 나와서 지켜보고 있었다.
김영기는 누가 봐도 억지로 화를 누르는 말투로 말했다.
“소란스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여러분도 가능하면 빨리 다른 직장 찾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기 사장이 아주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네요. 제가 어디서 이렇게 소리 지르고 하는 사람이 아닌데, 도저히 안 돼요. 곧 여기 가게 망할 겁니다. 그럼.”
나는 가게를 빠져나가는 김영기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천천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잘 있었다.
주머니에서 빼든 것은 녹음기였다.
별의별 일을 다 겪으면서 언제나 생활화 된 부분이었다.
8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내가 휴대폰에 대고 말하자 수화기너머로 변호사의 쾌활하고 힘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보내주신 자료들 전부 확인했습니다. 확인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나는 조용히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아마 조만간 김영기는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게 될 거다.
장담한다.
좀처럼 마음에 평온이 찾아오지 않는다. 강인나에게 이 같은 사실에 대해 얘기를 하려다가 말았다.
어린애처럼 이제 우리가 더 큰 엿을 먹일 수 있다며 신나서 얘기하는 건 전혀 좋지 않은 행동이라 생각됐다.
강인나는 현재 일에서 최대한 멀어진 채로 조금이라도 더 평온하고 즐거운 일상을 보내길 바랐다.
그래야 했다.
김영기의 관심은 내게로 전부 돌렸으니 됐다.
아까 눈빛을 봐서는 김영기 측에서도 변호단을 꾸려서 법적 공방을 이룰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결과가 정해진 게임이었다. 증거가 너무나 명확했으니까.
어디에나 썩은 곳은 있다. 의외로 김영기가 무거운 처벌을 받는 일은 없을 수도 있었다. 세상이 그렇지 않은가.
유전무죄 무전유죄.
이러한 경우를 너무도 많이 봐왔다. 김영기에게 대단한 인맥이 있을지도 모르지.
상관없었다.
법적으로는 처벌하지 못해도 사회적으로 할 테니까.
김영기는 너무 많은 증거들을 남겨뒀다.
대중들의 시선을 싸늘해질 거다. 연예인을 업으로 삼은 그에게 있어서 최대의 벌이다.
나는 카모마일 차를 마시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그리 좋아하는 차는 아니었다.
하지만 심신의 안정은 확실히 도왔다. 그래서 일부러 마셨다.
조금 있으면 또 건강상담이 잡혀 있었으니까.
이렇게 직접 만나서 이뤄지는 건강상담은 그리 잦지 않기 때문에 특별히 자세한 얘기를 듣지는 않았다.
시간약속만 정확하게 잡은 뒤 만나서 상담을 하면 끝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한 중년 남자가 휠체어를 밀고 들어왔다.
휠체어에는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기껏해야 스물이나 됐을까. 아마도 중년 남자의 딸인 듯했다
나는 황급히 가게 문을 열어 그를 도왔다.
“감사합니다.”
중년 남자가 고개를 조아렸다.
나는 애써 웃어 보였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휠체어에 앉은 여자는 많이 불편해 보였다.
“상담실이 협소해서 조금 불편할 것 같은데, 괜찮으시다면 여기서 상담을 진행해도 괜찮을까요?”
가게 출입문을 들어오자마자 있는 테이블을 가리키며 물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습니다.”
나는 카운터로 고개를 틀었다.
“지나 씨.”
그렇게 이름만 불렀을 뿐인데, 이지나는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이고는 알아서 상담실 안쪽으로 들어섰다.
주방까지는 거리도 있고, 시야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상담에 크게 방해가 될 것은 없었다.
나는 중년 남자 그리고 휠체어를 타고 있는 여자와 마주 앉았다.
일단 중년 남자의 건강 상태는 양호했다.
약간의 위염 그리고 간 수치가 조금 높은 것만 빼고는 괜찮았다.
당연하게도 오늘 상담을 받으러 온 사람은 휠체어를 탄 여자였다. 여자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말을 하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말을 하는 것에 무리가 있다기보다는 몸이 불편하니 모든 게 힘든 것이었다.
우리는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상담에 들어갔다.
남자는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애가…… 올해로 딱 스물인데…… 아홉 살에 뇌성마비 판정을 받고는 이런 상태입니다. 병원에서도 별다른 치료 방법은 없는 듯하고요. 그래서 계속 이렇게 살아왔는데…… 딸이…… 딸이 너무도 불쌍해서…….”
그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한 채 말을 이었다.
“그래서, 혹시라도, 조금이라도 나아질 방법이 없을까 해서, 그래서 이렇게 찾아뵙게 됐습니다. 부담을 드리려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어떤 약을 써서 하는 치료가 안 되니, 선생님께서 하시는 그런 보다 근본적인 방법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여…….”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예,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일단 제가 따님을 좀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여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평소와는 다르게 보는 것만으로 단번에 병명을 알 수는 없었다.
이럴 때는 간단한 촉진 등으로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뇌성마비라고 하셨죠? 조금 살펴보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에게로 다가섰다.
“실례 좀 할게요.”
그리고 여자의 손목과 팔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이상했다.
분명히 근육이 잔뜩 긴장돼 있기는 한데, 뭔가 반응이 다르게 느껴졌다.
뇌성마비 환자를 실제로 접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그 차이를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이상한 점은 호르몬 불균형이었다. 게다가 뇌성마비는 인지기능이나 지적능력이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여자는 오히려 똑똑한 편에 속해 보였다. 이것저것 짧게 물어본 것에도 상당히 조리 있게 말했다.
이거…… 아무리 봐도 뇌성마비가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