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160화 (160/174)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60화

32. 금의환향 (6)

“아리랑 김밥이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 톤이 조금 올라갔다.

어떻게 기자가 아리랑 김밥에 대해 알고 전화를 한 거지? 딱히 홍보를 한 적도 없는데? 크게 사업을 벌인 것도 아니고 한인 타운 근처에 그 자그마한 가게를?

조금 이상했다. 내가 이런저런 일들에 휘말리고 방송에도 얼굴을 내비쳐 유명세를 타긴 했지만, 그렇다고 벌이는 사업마다 엄청난 화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애초에 돈독이 올라서 사업에 모든 걸 쏟아 붓고 있지도 않았고.

단순히 돈만 보고 움직였다면 기회는 더 있었다. 제법 화제가 돼서인지 가맹점 문의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조심스럽다. 특정 가맹점 한 군데서 문제가 생기면 거기서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브랜드 전체의 이미지를 망친다. 무엇을 하든 이미지는 중요하다. 이미지가 전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동일한 제품이나 서비스라도 이미지가 좋으면 소비자가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달라진다.

우리의 이미지는 ‘바른’이다.

바른 농부단과 함께 시작을 했을 때부터 그렇게 정해졌다.

나의 목표와도 들어맞는다.

세상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 선한 영향력.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을 뻔했다.

역시나 욕심은 있다.

이타심 하나로 일을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기적이지 않으니 괜찮다고 여긴다.

할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냥 하라고. 너무 얽매이지 말라고.

―네, 대표님. 미국 지역방송에도 나오신 걸로 아는데 맞으시죠?

“아, 네. 맞습니다.”

―관련해서 인터뷰를 하고 싶은데 괜찮으실까요?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네, 좋습니다.”

13

기자와의 만남에서 특별할 것은 없었다. 인터뷰가 별거 아니라는 뜻은 아니었다. 단지 기자와 대면하는 게 너무 쉬워졌다. 이제는 정말 익숙하게 느껴졌다.

내가 뭐라도 된 것처럼 인터뷰를 진행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긴, 할아버지와의 만남 이후로 주눅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남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능력 하나를 손에 쥐니 태도부터가 달라졌다. 예전에도 가진 게 없어서 그랬지, 크게 낯을 가리지 않기도 했고.

할아버지와의 만남은 참으로 적절한 타이밍에 이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세상이 무서운 걸 충분히 알았을 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았을 때였으니까.

그때도, 지금도 미성숙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그 정도가 훨씬 심했으니까.

아직도 과거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걸 느낀다.

행복 건강즙 2호점에서 일하고 있는 야야와 짜가 감금에 가까운 상태로 노동력 착취를 당했을 때, 두 사람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는 사장을 보고 차지 못했던 것만 봐도 그랬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잘한 짓은 아니어도 해야 한다고 느꼈다. 아마 시간을 되돌리더라도 비슷한 행동을 취했겠지. 이단옆차기는 아니어도 달려가서 멱살은 잡았을 거다. 그 순간을 생각하면 금세 부글부글 끓었으니까.

벌써 30대 후반에 이르렀지만,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든다. 나는 20대 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거 같은데 나이만 먹었다고. 아직 그대로인 거 같은데 시간을 흘러버렸다. 그래서 능력을 얻었을 때 더 치열하게 매달렸던 것 같기도 하다.

인터뷰를 진행한 기자는 꽤나 많은 준비를 해왔다. 일단 미국 지역방송에 나간 내용을 꽤나 디테일하게 알고 있었다.

“어떻게 다 아셨어요? 아직 방송 안 나갔을 텐데?”

내가 묻자 기자는 옅은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사실 가족이 그쪽에 살거든요. 강 대표님이 거기서 김밥집을 내셨고, 방송국에서 촬영까지 해갔다는 걸 전해 들었어요.”

“아……. 그런데 조그만 김밥집 하나 차린 게 인터뷰까지 할 일인가, 하는 생각도 좀 드네요. 저야 좋은데, 기사거리가 아닌 거 같다는 생각도 들어서.”

“작은 김밥집인데 미국 지역방송국에서 촬영까지 했다는 게 더 대단한 거죠. 돈 들이부으면 누구나 다 관심 가지지 않겠습니까. 21세기에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시키신다는 게 더 대단한 거죠.”

나는 조금 당황하며 웃어 보였다. 실제로 당황했다기보다는 의도적으로 그런 척을 했다.

“그건 진짜 잘 되고 난 다음에 할 얘기 아닐까요? 이제 오픈해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나가는 수준입니다.”

“이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일단 이 인터뷰 자체가 미국 지역방송이 방영되고 난 뒤에 나갈 예정입니다.”

“그때라고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은데요. 가게 규모에 비해 기대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식으로 기사가 나가는 건 좀 그렇습니다.”

“아…….”

기자는 조금 당황한 듯 말을 잇지 못하고 나의 눈치를 살폈다. 아마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았던 듯하다. 사업체의 입장에서 긍정적인 내용의 기사라면 무조건 환영하기 마련이니까.

기자의 나이는 아직 어려 보였다. 기자 생활을 기껏해야 2, 3년이나 했을까? 취업이 빨랐어도 5년을 넘지 않았을 터. 이런 쪽으로 오래 다룬 게 아니라면, 경우에 따라 아무리 오래 일했어도 나처럼 긍정적인 기사를 거부하는 경우는 마주하지 못했을 수도.

기자가 조금 당황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자신의 일을 위해서지만, 그래도 내게 좋은 방향을 제시한 셈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무례하게 굴 생각도 없었고,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얘기를 했는데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둘 다 웃으면서 인사를 나누며 헤어질 방법을 생각했다.

기자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다. 그러다 뭔가 떠올랐는지 눈썹을 들썩거렸다. 하지만 쉽사리 입을 열지는 않았다.

“말씀하실 거 있으면 편하게 말씀하세요. 제가 무조건 기사 나가는 게 싫다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단지 제가 직접 미국에서 운영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식으로 기사가 나가면 오해를 살 수도 있고, 사람들 반응이 나쁠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내가 말하자 기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러고는 조심스레 다시 말했다.

“원래 이 부분도 나갈 거였기는 한데, 건강상담에 초점을 맞춰보는 건 어떨까요? 미국에 계신 교민 분들은 물론, 외국 분들의 건강상담도 해주신 거잖아요. 대표님께서 예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노력해오고 계신 거 잘 알고 있습니다.”

“네, 그렇죠.”

“그럼 이 부분으로 강조해서 기사를 올려도 될까요?”

“그 부분만 조명해서는 기사를 내시기가 곤란하신 거 아닌가요? 그 부분도 다뤄주시긴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처음 의도 자체가 아무래도 사업 쪽이신 거 같았는데.”

“예, 그건 그렇지만…….”

기자는 말끝을 흐렸다. 얼굴에 근심이 가득해 보였다. 기사 하나를 날리는 것 문제가 아니겠지. 기자도 결국 회사원이다. 위에서 뭐라고 할 게 분명하다.

“이런 건 어떨까요?”

내가 운을 떼자 기자가 눈을 마주쳐오며 집중했다.

나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메리카 드림을 이룬 건 아니니까,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다…… 뭐, 그런 거요. 아메리카 드림을 향해 가다, 이런 식으로.”

“계속 말씀해주시겠어요?”

“제목은 저렇게 걸고, 가게 규모에 비해 매출이 나쁘지 않게 나오고 있다는 정도로, 비교적 단기간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으로 가주시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제가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미국에 갔지만, 이게 운도 따랐고 기본적으로 손해를 감수할 뒷받침이 됐다는 이야기가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허황된 이야기를 늘어놔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책 하나, 기사 하나를 보고는 갑작스레 인생의 목표를 틀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내가 파급력이 커서가 아니다. 좋은 면만 보고 뛰어드는 이들도 있다는 것이다.

한때 오지로 여행을 다니는 게 유행한 적이 있다. 국가에서 여행 자제를 권고한 국가임에도 떠나는 것이다.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며. 실제로 그 말만 믿고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가 큰 사고가 날 뻔하거나, 실제로 사고가 난 경우들이 있다.

이건 나만의 경험을 담아낸 자서전을 내는 게 아니다. 그럴 깜냥도 안 되고. 기사다. 사실만을 전달해야 하는 기사.

나는 운과 자본력 그리고 그걸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건강상담도 매출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 전부가 기사에 실리기를 원했다. 기자는 조금 우려를 표했다. 오히려 나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지 않겠냐고.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상관없습니다. 사실대로만 나간다면요.”

그래서 처음에 시도했던 마케팅 방법도 전부 설명했다.

기자는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기자는 처음 의도했던 것과는 다소 다른 방향의 기사를 쓰게 됐지만 만족하는 듯했다. 오히려 더 좋은 기사 나올 것 같다며 자신의 입으로 말하기도 했다.

“앞으로 기사 스타일 자체를 조금은 틀어볼까 합니다. 자극적인 것보다는 정확한 사실을 담고, 사람들이 더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그런 기사요. 처음에는 전보다 조회수가 떨어질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럴 가치가 있을 것 같네요.”

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진심은 통하는 법입니다. 항상 그렇지 않더라도, 변하지 않고 계속 밀고 나간다면 분명히 빛을 볼 날이 옵니다. 세상에 그늘진 곳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아직 빛이 드리운 곳도 많거든요. 그리고 빛은 어두운 곳에서 볼수록 더 빛나 보이는 법 아니겠습니까.”

이것으로 해피 엔딩이었다. 혹은 해피 스타트.

14

“네, 네. 당장은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일정을 조절해야 돼서요. 네,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인터뷰, 방송 출연, 강연 요청 등 끊임없이 연락이 왔다.

주제는 둘 중 하나.

사업적인 쪽 혹은 건강 쪽.

아리랑 김밥의 매출이 점점 오르는 중이었다. 방송을 타고 난 뒤에는 확실히 더 뛰었고. 아르바이트생도 둘이나 더 늘렸다. 좁은 가게에서 모두가 함께 일하는 것은 아니었고, 배달할 사람이 부족한 부분이었다.

미국도 한국에서 배달대행 서비스가 있었으니 그쪽을 이용해도 됐지만, 이용량 자체가 많을 때는 계속 주기적으로 일하는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을 쓰는 게 이득이었다.

기사 하나로 큰 화제가 됐다기보다는 여러 가지가 맞물려 불이 붙었다. 전체적으로 나쁠 게 없었지만, 부작용도 있기는 했다.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는 식으로 기사들이 나오기도 했다. 크게 악영향을 미칠 내용은 없었지만, 일일이 정정해달라고 연락을 취했다.

기자들과 연락해서 기사를 정정하는 게 이리도 어려운 일일 줄이야. 몇몇은 말을 빙빙 돌리면서 버티려고 했는데, 그런 사람들에게는 법적인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아마 내가 일반적인 소비자나 개인사업자였다면 꿈쩍도 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법적인 대응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알아서인지 이상한 기자들은 금세 꼬리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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