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157화 (157/174)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57화

32. 금의환향 (3)

6

공항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한국에 온 기분.

뭔가 붕 뜨는 감각이었다. 그리움보다는 어색함이라는 감정이 먼저 들었다.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왔다고 해서 마늘 냄새가 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몇몇 나라들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특유의 냄새가 난다고도 하던데.

공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사람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Welcome Back! 강건희!]

문구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활짝 웃었다.

나도혜가 플래카드를 들고 서 있었다. A4용지 한 장에 써서 들고 있는 거니 플래카드라고 하기는 조금 애매했지만.

내가 다가서자 나도혜는 웃으면서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에 따라 나도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고민됐다. 거울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미묘한 표정이었으리라.

이런 얼굴도 할 줄 알았었나.

그래도 나도혜에 대해 꽤 깊이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도 모르는 점이 많았다. 표정조차 처음 보는 게 있었으니까.

스스로 재미있다고 느낀 점은 단순히 그녀에 대해 알아가고 싶은 게 아니었다. 나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알고 싶은 만큼 알려주고 싶었다.

“금방 온다더니.”

나도혜는 괜히 내 가슴팍을 주먹으로 치고는 안겼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묵직했다. 분명히 가볍게 친 것 같았는데 왜 숨이 턱 막히는지.

역시 프로라고 불릴 만큼 운동을 열심히 했던 사람은 다르다.

“뭐 먹고 싶어? 먹고 싶은 거 있어? 많이 피곤한가? 일단 가서 쉴래?”

나도혜가 눈을 크게 뜨고 말을 쏟아냈다.

나는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저기…….”

“응? 왜 그래? 설마 다시 미국에 가야 한다느니 그런 말은 아니지?”

“아니, 아니지. 아니야. 그런 건 아닌데, 지금 잠깐 어디 좀 들러야 될 곳이 있어.”

“어디? 왜?”

나도혜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눈만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애써 웃으며 몸을 살짝 틀었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던 여자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여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옆자리에 계셔서 이런저런 얘기를 좀 나눴었는데…….”

여자의 이름은 정진주.

나는 정진주의 상황을 간략히 설명했다.

나도혜는 설명을 듣기 전부터 정진주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전후사정을 듣고 나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그럼 당연히 가야지. 난 또 무슨 얘기라고.”

나는 정진주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소곤거렸다.

“미안.”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당연한 거지. 얼른 가자.”

나도혜의 말에 나는 조금 놀라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같이 가게?”

“그럼 얼마 만에 보는 건데 혼자 가려고 했어? 그건 안 되지.”

“아니, 나는 괜찮지만…….”

사실상 일을 하러 가는 셈이었다. 돈은 못 버는 일. 그것도 수개월 만에 재회한 순간에.

나도혜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듯했다.

“나도 괜찮아.”

“그럼 빨리 다녀오자.”

“오래 걸려도 괜찮아.”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당황케 한다.

“그래?”

“그럼. 이것도 데이트지.”

“데이트야?”

“그럼, 데이트가 별건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어디 가면 그게 데이트지. 그리고 뭔가 잊고 있나본데, 나도 사람 치료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어.”

“그렇지.”

결정됐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일부터 시작이다.

내가 평생을 바칠 일.

단순히 직업으로서의 일이 아니라, 나의 꿈이고 사명.

7

짐도 풀지 않고 정진주의 동생부터 만났다.

정진주의 동생인 정진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정진아는 너무 말라 있었다.

정진아와 짧지 않은 상담시간을 가졌다.

이 일을 반복할수록 느낀다.

아픈 사람들은 하고 싶은 말이 많다.

그 누구도 공감할 수 없는 고통과 두려움의 공감을 원한다.

이 부분만 덜어내도 훨씬 좋아진다.

몸의 병은 마음의 병을 부르고, 마음의 병은 몸의 병을 부르는 법.

정신적으로 안정이 되면 병에도 차도를 보일 확률이 높다.

나는 귀 기울여 정진아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나도혜도 옆에서 이야기를 거들었다.

정진아는 나도혜의 존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안정감을 갖는 듯했다.

나도혜가 국내에서 한의사들 중에서는 제법 유명한 편이기도 했고, 언론에 얼굴을 자주 비추니 신뢰가 가는 모양이었다.

이 와중에 안타까운 건 정진아를 아무리 보고 있어도 치료법이 떠오르지 않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끝이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전에 완치가 된 경우에도 완벽한 치료법이 떠오르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결국 삶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적어도 사람 중에서는 그렇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적은 일어나고 있다.

소위 말하는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

의사가 희망적으로 봐도 수개월 정도의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건강을 회복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나는 이 기적이 좀 더 잦기를 바랄 뿐.

그렇기에 할 수 있는 걸 한다.

적어도 여생을 좀 더 편안히 보낼 수 있게, 웃으면서 지내고, 마지막을 정리할 수 있게 돕는다.

“아무래도 완치는 어렵겠지요?”

정진아의 물음에 입술이 붙어버릴 뻔했다.

나는 의지로 입술을 뗐다.

“당연히 쉽지는 않겠죠.”

웃으며 말하자 정진아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 그러고는 이내 나와 눈을 마주치며 부드럽게 웃었다.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셔야죠. 벌써 가시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잖아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너스레를 떤다.

지금까지 겪고 있는 병의 심각성이나 위중함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얘기했다. 굳이 되짚지 않아도 알고 있는 부분이다.

밝은 면을 보기로 했다. 옆에서 사신이 낫을 들고 웃고 있어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것이다. 재미가 없어서 떠나 버리도록.

“약방의 감초라는 말이 있잖아요?”

내가 운을 떼자 감초라면 지겹도록 다뤘을 나도혜가 고개를 돌리는 게 주변 시야로 보였다.

나는 정진아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감초라는 게 어디에나 들어가잖습니까? 특유의 향과 단맛을 위해서도 있지만, 그만큼 효능도 좋기 때문이거든요. 물론, 과하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지만요.”

“네, 네, 그렇죠. 뭐든지 과유불급이죠.”

“지금 함부로 약을 쓰기는 좀 그렇잖아요? 저는 최대한 치료를 잘 받으실 수 있게 식이요법을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감초를 달인 물을 주기적으로 조금씩 드시면 도움이 될 듯해요. 아침에 미지근한 감초 달인 물을 드시면 좋을 겁니다.”

“그것만요?”

“당연히 여러 가지 열심히 하셔야죠. 감초 달인 물도 드시라는 거예요. 항염과 항암 효과도 있고, 해독을 해주는 기능이 있으니까요.”

“감초는 어디서 사야 할까요? 여기 선생님께 가면 되나요?”

정진아의 물음에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 나도혜가 대답을 내놨다.

“그러실 필요는 없고요, 감초는 어느 약재상에서나 다루니까 구하시기 쉬워요. 단, 저품질의 수입산을 조심하셔야 돼요. 감초는 단단하고 무거우면서 섬유질이 적고, 단맛이 강한 게 좋은 거예요.”

정진아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끊임없이 필기를 이어가며 말했다.

“제가 항암에 좋은 식품들 몇 가지를 알려드릴게요. 드시기에도 불편하지 않은 것들로. 생각 좋은 거 아시죠? 음식을 드시는 게 힘드실 텐데, 생강이 혈액순환과 위 질환에도 상당히 좋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실 거예요. 그리고 맵지 않은 고추도 식단에 곁들이시면 좋고요. 미역귀 같은 걸 찬에 추가하셔도 좋습니다.”

정진아가 빙그레 웃었다.

“먹는 데 취미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는데, 이제 취미 좀 붙여봐야겠네요.”

“그럼요. 잘 드셔야 합니다. 이건 티비에도 몇 번 나왔는데, 노루궁뎅이버섯이라는 게 있습니다.”

“알아요, 예전에 여기 이 의사 선생님이 소개해준 적도 있잖아요.”

정진아는 나도혜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도혜는 활짝 웃으며 장단을 맞췄다.

“그걸 또 기억해주시네요?”

“아, 그럼요. 티비에서 볼 때마다 ‘저런 며느리 있으면 참 좋겠다’ 하면서 봤거든요.”

나는 어떤 영양소가 어떤 작용을 해서 도움이 된다는 그런 이야기들을 길게 늘어놓기보다는 부작용 같은 게 있기 힘든 식이요법 위주로 이야기를 늘어놨다.

말하는 것들 중 무엇을 골라서 먹어도 도움이 될 그런 식품들.

“쑥이랑 톳도 참 좋아요.”

나는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밥도 콩도 넣고 여러 가지 잡곡도 넣어서 드시고요. 브로콜리랑 도라지 같은 것도 드시고, 자극적이지 않게 구수한 청국장도 드시면 좋고요. 일단 잘 드셔야 합니다. 체력이 받쳐줘야 하니까요.”

“꼭 잘 챙겨먹을게요.”

“네, 꼭 그러셔야 돼요. 가끔 달달한 거 당기고 그러시면 딸기나 포도 같은 과일도 챙겨드시고요. 아보카도라고 숲속의 버터라는 별명을 가진 게 있어요. 마가린 같은 거.”

“그런 게 있어요? 맛이 상상이 잘 안 되네. 티비에서 봤던 거 같기도 하고…….”

“이번 기회에 한 번 드셔보시는 것도 괜찮겠죠? 꽤 맛있어요. 전 좋아합니다. 식후에 따뜻한 녹차도 한 잔씩 드시고요.”

“챙겨먹을 게 많네요.”

“제가 여기 다 써놨으니까, 드시고 싶은 걸로 골라서 드시며 되죠. 여기 있는 것들뿐만 아니라, 몸에 좋은 식품들이 얼마나 많아요. 나쁜 것도 많지만요. 잘 골라서 드시면 분명히 회복에 도움이 될 거예요. 궁금하신 부분이 있으면 연락처 남기고 갈 테니 언제든 연락주시고요.”

정진아는 손을 내저었다.

“아휴, 바쁘신 분한테 어떻게 그래요.”

“진짜 괜찮아요. 그러니까 언제든 연락주세요. 그리고 지금 말씀드린 것들은 특별히 도움이 될 거라 생각되는 식품들을 말씀드린 거니까, 꼭 챙겨드셔야 합니다.”

“알겠어요.”

“먹는 걸로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는 병이 있잖아요. 부념ㅇ히 도움이 될 거예요.”

“꼭 그렇게 할게요.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감사는요. 꼭 쾌차하시길 바라요.”

“그래야죠.”

우리는 정진아와 정진주의 감사인사에 함께 연신 고개를 꾸벅거리다 빠져나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나와 나도혜 둘 다 아무 말도 없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손을 꼭 잡고 있었다.

8

차를 타고 동네로 와서도 나와 나도혜는 틈만 나면 손을 꼭 잡았다. 이상하게도 대화는 거의 없었는데, 그 어느 때보다도 서로의 마음속 깊이 자리한 느낌이었다.

짐을 정리한 뒤에 내가 나도혜와 눈을 마주치며 씩 웃어 보였다. 분위기를 환기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나도혜가 선수를 쳤다.

“항상 이런 기분이었구나.”

“응?”

“나는 항상 건강상담을 하는 게 진짜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어. 보람차고 좋은 일. 그래서 멋지고 뜻깊은 일이라 생각했고.”

나는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냥 조금, 뭐, 그렇지.”

“근데…….”

“근데 뭐?”

“생각보다 홀가분하고 보람차고 그런… 행복하기만 한 일은 아니네.”

“응?”

“생각보다 훨씬 무거운 일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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