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56화
32. 금의환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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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할 줄이야.
몇 달이나 미국에 있었다고 한국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색하다.
누가 들으면 비웃겠지.
어학연수를 다녀와서는 장기간 유학생인 양, 혹은 거기서 나고 자란 교포처럼 구는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당연히 그 사람들처럼 행동할 생각은 없지만.
자꾸만 앞좌석에 무릎이 닿는다. 이코노미는 불편하다.
한국까지 짧은 비행거리도 아닌데. 이 정도 불편함은 건강에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름대로 자세를 잘 잡으면 오히려 건강에는 좋을 수 있다. 사실 우리가 편하게 느끼는 자세들은 대부분 건강에 좋지 않다.
불편한 자세가 건강에 좋다. 허리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좌골이 엉덩이에 딱 맞닿게 않는 게 중요하다. 거북목이 되지 않도록 턱을 당기는 것은 기본.
문제는 키가 크거나 덩치가 큰 사람들은 이코노미가 건강에 좋지 않을 수 있음을 느낀다. 무릎이 앞좌석에 닿으니 다리를 제대로 모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옆에 사람이 있는데 쩍벌을 할 수도 없고.
체구가 작아도 가능한 자주 일어날 수 있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 단순히 화장실에 들락거리는 게 편하기 위함이 아니다.
스트레칭.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스트레칭. 자주 할수록 좋다. 장시간 앉아 있는 것은 몸에 좋지 않다. 관절과 근육은 말할 것도 없고, 혈액순환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하나하나가 건강과 연결되어 보인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을 어지럽혀도 불편함은 가시지 않는다.
갑갑하고 답답하다.
비즈니스는 물론이거니와 퍼스트 클래스도 내게 무리는 아닌데, 조금 편하게 와도 되는데 등의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오기 전에도, 아주 예전에도.
하지만 조금 다르게 봤다. 한나절만 조금 불편하면 큰돈이 굳는다. 정말 많은 걸 할 수 있는 돈이다.
건강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이러한 기회비용은 충분히 따져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한국에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아까부터 왼쪽에 앉은 중년 여자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왜 그러시죠?”
내가 먼저 입을 열자 여자는 조금 당황한 듯하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강건희 대표님……?”
“맞습니다. 강건희입니다.”
“아우, 진짜셨구나. 긴가민가해서. 실물이 훨씬 미남이시네.”
“하하하, 아닙니다. 그래도 기왕 칭찬해 주셨으니 감사히 받겠습니다.”
여자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받으신대, 어머머, 호호호호.”
농담 축에도 들지 못하는 너스레였지만, 여자의 반응이 좋으니 내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
“그나저나 바쁘실 텐데 어쩌다 지금 여기 계세요? 미국에 아는 분이라도……?”
“아는 사람이 있기는 한데, 처음에 같이 간 한 명 빼고는 전부 처음 안 사람들이었고요.”
“어머어, 역시 대단하시다.”
“대단은요, 그냥 조그만 김밥집 하나 차린 건데요.”
어색한 순간이 찾아왔다. 짧은 적막이 흐르며 달리 할 말이 없는 상황. 누구나 살면서 겪었을 그런 상황이었다.
나는 ‘이만 대화를 끝내요’라고 말하듯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 그 순간 여자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망설이는 듯한 얼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혹시 뭐 하실 말씀이라도……?”
내가 운을 떼자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아, 그게 저기…….”
그녀는 수줍은 듯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대표님께서 건강상담으로 유명하시잖아요.”
“유명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분들이 찾아와주시긴 하죠.”
자칫 잘못하면 과하게 느껴질 정도로 겸손하게 굴었다. 진심이기도 했고. 겸손이 미덕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고 믿었다. 자신감을 내비치는 것과 잘난 척은 또 다른 것이었고.
여자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 저는 가족이 아파서 귀국하는 거거든요.”
“아…… 그것 참…….”
또다시 정적이 흐르려고 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어디가 편찮으신지…….”
내가 운을 떼자 여자는 양손을 꼭 모은 채 입을 열었다.
“암이에요.”
“그런…….”
암이라는 놈은 참으로 무섭고 지독하다. 그런 놈이 감기처럼 흔하니 더 무섭다. 사망자 셋 중 하나는 암이 원인이라고 할 정도니까.
암의 원인은 너무나 다양하고, 어디에든 생긴다. 예방법도, 치료법도 완전치 않다. 참으로 잔인한 말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운이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가족 분께서 어떤 암에 걸리셨나요?”
“간암이요.”
“몇 기이신지?”
“3기고 어제 수술을 마쳤다더라고요.”
“수술은 잘되셨나요?”
“네, 다행히요. 제 동생인데…… 옆에 있어주고 싶었는데 늦어졌네요.”
“그래도 수술이 잘되셨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꼭 쾌차하실 겁니다.”
여자는 금세 눈물이 글썽글썽해져서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야죠. 꼭 그래야죠.”
“언니 분께서 이렇게 먼 길을 찾아오시니 분명히 큰 힘이 되실 겁니다.”
“말씀도 참 예쁘게 하세요. 고맙습니다.”
“말뿐인걸요.”
“제가 참 멀리 빙빙 돌아서 왔네요.”
“예?”
“이미 수술도 했고, 항암도 예정돼 있기는 하지만 여쭈고 싶은 게 있어서요.”
“네, 말씀하세요.”
“혹시 그거 아세요? 메가도스라고.”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알고 있죠.”
“메가도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고 계신가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해볼까 하더라고요.”
“그렇군요.”
“어떨까요?”
“일단은 수술을 하셨고, 항암치료도 예정돼 있으시면 담당의와 상담해 보시는 게 좋다고 생각됩니다. 그게 가장 우선이죠.”
여자는 슬퍼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얘기해도 치료에만 집중하라고 하지 않겠어요? 고용량 비타민 요법으로 치료하시는 분들은 또 따로 계시고…….”
“그렇긴 하죠.”
“마음은 어디로 기우시는데요?”
“모르겠어요. 동생도, 저도 모르겠어요. 해야 할 것 같다가도…… 그냥 단순히 비타민C를 많이 먹기만 하면 되는지, 정맥주사로 맞아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작용을 하는지…….”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비행기에 가지고 탄 가방을 뒤졌다. 여자는 조금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보고만 있었다.
내가 꺼내든 것은 펜과 노트.
“제가 일단 메가도스에 대한 설명을 좀 드릴게요.”
“네? 아, 네.”
“메가도스가 의견이 참 분분한데요. 먼저 말씀하신 정맥주사와 그냥 복용하는 게 어떤 차이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일단 복용 직후, 투여 직후에는 정맥주사의 비타민C 혈중농도가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하지만 10시간 정도가 지나면 메가도스로 복용한 쪽과 정맥주사를 맞은 쪽이 비슷해집니다.”
나는 말하는 내용들을 간략히 추려서 적어나가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10시간이 지난 다음부터는 메가도스가 정맥주사보다 더 높아집니다. 유지가 잘 된다는 거죠. 다른 말로 정맥주사로 비타민C 혈중농도를 높일 수 있는 건 초반 10시간일 뿐, 이후로는 메가도스가 높습니다. 하지만 암치료의 보조요법으로는 정맥주사를 맞는 쪽이 낫겠죠. 더 높은 고용량을 몸에 투여해서 치료 효과를 보려고 하는 거니까요.”
“그렇군요.”
“얼마나 자주 정맥주사를 맞을지, 복용도 할 것인지는 의논이 필요할 테고요. 그리고 메가도스에서 비타민 복용량을 두고도 말이 많은데요. 일반적으로 알려진 권장량 정도만 먹어도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 많은데, 메가도스의 시점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혈중농도만 확인해도 확실한 차이를 보입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거리다 노트를 힐끗 보고는 방긋 웃었다.
“글씨를 정말 잘 쓰시네요. 옛날에 과거시험을 보시면 무조건 장원이셨겠어요.”
나는 하하 웃다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예, 뭐…… 하던 얘기를 이어나가면 캡슐이나 타블렛과 같은 알약 형태보다는 가루로 드시는 게 좋습니다. 이 부분도 상관이 없다는 얘기가 꽤 있기는 한데,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식후에 물과 함께 가루로 적당량을 섭취하는 게 가장 옳은 방법으로 여깁니다.”
계속해서 노트에 필기를 해가며 말을 이었다.
“사실 항산화 기능으로만 치면 비타민A나 E 외에 다른 더 좋은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비타민C는 환원성이 강합니다. 화학반응에 잘 변한다는 건데요, 항산화도 결국 화학반응에 속합니다. 그래서 체내에서 혈류를 타고 쉽고 빠르게 항산화 기능을 수행하는 거죠. 기능만 치면 더 강한 다른 성분들보다 항산화를 더 잘해줄 수도 있다는 거죠. 다른 성분들을 도울 수 있고요. 이 부분은 어디까지나 참고만 해주세요.”
여자는 화색을 띠며 물었다.
“그럼 먹으면 좋다는 거죠?”
“그게…… 정답은 모릅니다. 제가 말씀드리리는 부분들은 이런 연구결과들이 있다는 거죠. 반대의 의견들도 물론 있고요. 메가도스 자체에는 부정적이지만 비타민C 복용 자체에는 긍정적인 의견들도 있습니다. 권장량 정도를 하루 세 번 정도 먹으면 좋다는 거죠. 비타민C는 수용성이고, 6시간 정도 지속된다는 얘깁니다. 그러니 아침, 점심, 저녁 식후에 적당량을 복용하는 걸로 추분하고 좋다는 뜻입니다.”
“어렵네요.”
나는 옅은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저도 그렇습니다. 일단 비타민C를 고용량으로 복용하는 건 어느 정도 리스크를 감수하는 겁니다. 가장 흔하게들 꼽는 문제가 결석이죠. 특히 신장이요.”
“그런…….”
“보통 하루에 1000mg 정도는 아무 이상도 없다고들 합니다. 안전한 용량이라는 거죠.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할 수는 없어요. 타고나게 결석이 잘 생기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으니까요.”
여자의 얼굴이 침울해졌는데, 나는 입가에 잠시 힘을 줬다가 말했다.
“대장암과 췌장암 등의 경우 고용량 비타민C 요법이 효과를 본 연구결과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비타민C만의 효과였는지에 대해 100% 확신을 할 수도 없죠. 사람에 따라 아무런 치료도 없이 암을 극복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인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쵸…… 암이라는 게 참 무서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가장 지독한 놈이죠. 제발 없어졌으면 하는 놈. 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뭔가를 없앨 수 있다면 암을 없앨 겁니다.”
나는 필기를 한 노트를 찢어서 여자에게 건넸다.
“이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도 건강상담을 하면서 비타민이나 몇몇 영양제들을 추천하는 경우도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적당량이었죠. 작은 습관들을 개선해주기 위한, 부족한 영양소를 채워주기 위한 거였으니까요.”
“예전에 암환자 분을 완치하셨다고…….”
“네, 그랬던 적도 있었죠. 하지만 그건 제가 완치시킨 게 아닙니다. 그분께서 암을 이겨내신 거죠. 반대로 온갖 노력을 다했으나, 결국 세상을 떠나신 분도 계십니다.”
“그랬군요…….”
“제가 직접 뵌 분도 아니고, 메가도스 같은 것은 아무래도 접근이 조심스럽습니다.”
여자는 고개를 살짝 꾸벅여 보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부분은 동생이랑 잘 고민해 볼게요. 쉬셔야 하는데 미안해요. 정말 고마워요.”
“아닙니다.”
나도 모르게 ‘덕분에 심심하지 않았는걸요’라고 말할 뻔했다. 대개의 경우 시간을 뺏어 미안했다고 할 때 적절한 말이었다.
하지만 가족의 목숨이 달린 이야기를 나눈 상태에서 할 말은 아닌 듯했다. 실제로 가볍게 시간 때우기로 한 말들도 아니었고.
여자는 양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몸을 살짝 틀어서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나를 방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전신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동생 분은 지금 어디 계신가요?”
“네?”
“만약 괜찮으시다면 제가 한 번 찾아뵙고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