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54화
31. 유명인 (4)
내게 지목을 당한 남자는 조금 당황하면서 웃었다.
남자가 곧바로 손짓을 했다.
“이쪽으로 오셔서 앉으세요. 바로 진행하시죠.”
결국 나와 덩치 큰 남자가 마주앉아서 건강상담을 하게 됐다.
남자는 자리에 앉아서도 멋쩍은 듯 계속 웃었다.
“제 건강이야…… 뭐 뻔하지 않나요?”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일단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하는지 알고 계시죠?”
“그러니까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샘이라고 불러주세요.”
“그래요, 샘. 반갑습니다. 그럼 이제 건강에 대해 얘기해 볼까요?”
“예, 부탁드립니다.”
샘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계속 싱글벙글 웃었다.
나 역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물었다.
“조금 아까 뻔하다고 했죠? 어떤 게 뻔한 거 같은가요?”
“하하, 그거야 뭐…….”
샘은 머쓱한지 테이블 위로 모은 양손은 꼼지락거리며 말을 이었다.
“살이 쪘으니까요. 도넛을 너무 많이 먹은 탓이겠죠.”
“비만이 건강에 위협이 될 거라는 점을 알고 계시는군요?”
“당연하죠.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겠어요?”
“살이 쪄서 특별히 불편하신 부분이 있나요? 건강에 이상을 느끼거나요.”
“그게…….”
샘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솔직히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이런 체격이었거든요. 평생을 이렇게 살았는데 뭐가 더 편하고 불편한지 알 리가 없죠.”
“그럴 수 있겠네요.”
“사장님께서는 특별히 소견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그냥 다이어트가 필요할 거라는 뻔한 말씀을 하실 생각인가요?”
샘은 생각 외로 날카롭게 질문을 해왔다. 이 방송의 연출도, 작가도, 진행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가장 압박이 되면서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질문을 해왔다.
여기서 나의 평가가 갈리는 거였다. 유명세를 떨치고 싶어서 어떠한 특별함에 집착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래봤자 지역방송이었고. 미국에서 한국인이 조그마한 김밥 가게를 하면서 건강상담을 해준다는 이야기를 많이 볼 리도 없을 테지.
내가 인정받으려 하는 이유는 선한 영향력을 가능한 널리 뻗치고 싶은 마음이었다. 사람들이 내게 관심을 가져야 건강관리 팁에 대한 자료들도 볼 테니까.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일단 크게 건강이 나빠 보이지는 않습니다.”
나의 말에 샘이 화색을 띠었다.
“그렇습니까? 헤헤헤헤.”
“하지만 관리가 필요하십니다.”
“뭐……그렇죠.”
“잠깐 손목 좀 이쪽으로.”
“손목이요?”
샘은 의아해하면서도 손목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손목을 가볍게 쥐고는 집중했다. 그러다 손을 떼고는 씩 웃어 보였다.
“됐습니다.”
“음……?”
“비만이라는 게, 비만 그 자체로 문제가 된다기보다는 여러 가지 합병증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는 거 알고 계시죠?”
“네, 그렇죠.”
“지금 약간 염려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거요?”
“얼굴에 홍조가 심하십니다.”
“이거요?”
샘은 낄낄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아기 때부터 항상 볼이 발그스레했어요. 얼굴이 빨간 사람들을 얼마든지 있잖아요. 그걸 보고 건강을 판단하는 건 무리 아닌가요?”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얼굴이 붉다고 건강의 적신호인 건 아니죠. 하지만 샘 씨는 조금 관리가 필요하신 상태인 거 같아요.”
“그래요?”
“예. 살이 찌신 정도나 얼굴이 유난히 붉으신 부분 같은 것을 봤을 때 거의 확실하거든요. 잠깐 바지를 걷어주시겠어요?”
“바지는 왜요?”
“많이는 아니고 발목만 보이면 됩니다.”
샘은 의아해하면서 바지를 접어 올리고 양말을 살짝 내려 발목을 보였다.
역시나.
푸른 핏줄이 꽤나 많이 보였다. 발목 안쪽에 마치 자잘한 번개가 친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다 다시 샘과 눈을 마주쳤다.
“여기 보이시죠?”
“네.”
“이게 다 모세혈관인데요,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샘 씨는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두꺼운 지방층을 가지고 있는데 왜 더 잘 보일까요?”
“글쎄요……? 핏줄들이 자기주장이 강한가? 하하하!”
나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모세혈관 확장증으로 보이는데요. 당장 이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게 보이고요. 하지만 이러한 증상이 종아리까지 퍼지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 하지정맥류가 되는 거죠.”
“아.”
“제가 이러한 얘기를 드리는 이유는 홍조도 원래 타고나신 부분도 있다고 하셨지만, 혈관질환의 영향도 있을 거라는 얘깁니다. 살이 찌신 거나 식습관 등을 생각해봤을 때 당뇨의 징조일 수도 있고요. 심장질환 또한 원인이 될 수 있고요.”
샘은 어느새 미소를 잃고는 조금 심각해져 보였다. 아마 평소에도 모르고 있지는 않았겠지. 아니, 확실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듣는 건 다르다. 특히나 가족이나 가까운 주변 사람이 걱정으로 한마디 건네는 것과 처음 보는 사람이 냉정하게 사실을 나열하는 건 또 다르고.
“그럴…… 수도 있군요.”
“당장 걱정하시라고 드린 말씀은 아닙니다. 하지만 관리를 하지 않으면 정말 돌이킬 수 없게 될 수도 있죠.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가끔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즐길 수 있는 운동을 하시라는 거죠. 물론, 음식의 종류를 어느 정도는 가리셔야 될 것 같긴 하지만요.”
나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음식을 많이 가리시나요?”
“아니요, 웬만한 건 다 잘 먹습니다.”
“그럼 더 쉽겠네요. 처음에는 양은 비슷하게 하되 몸에 좋은 음식들 위주로 드시는 겁니다. 그렇게 시작해보세요.”
“네, 실천해보겠습니다. 알면서도 안 하고 있었는데…… 뭔가 이렇게 막상 얘기를 들으니까 겁이 좀 나네요.”
샘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말했다.
“이렇게 사람들이 보고 있는 데서 얘기를 들으니 공개처형을 당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하하하하, 공개처형이라뇨.”
“아니, 진짜로요. 의사가 얘기했을 때도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렸는데, 더 이상 그럴 때가 아니라는 걸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제가 단계별로 실행하기 좋게 식단을 알려드릴게요.”
나는 칼로리는 그대로 가되 음식의 종류를 바꾸는 법, 그 다음으로 영양성분의 구성을 바꾸는 법, 그 다음에는 칼로리까지 제한을 하는 법 순으로 식단을 짜줬다.
현실적으로 실천하기 쉬운 방법을 알려준 것이었다. 어느 정도 적응을 해나갈 수 있도록. 운동에 대해서는 간단한 것만 첨언을 하는 정도였다.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든 재미를 붙이고 꾸준히 하는 겁니다. 손에서 놓는 순간 금방 멀어집니다. 계속 붙들고 있어야 합니다. 아시겠죠?”
“예.”
“진짜로요. 운동을 하기 힘든 날이어도, 10분이라도 하는 거예요. 아침과 점심을 좀 많이 먹거나 건강하지 않은 음식을 먹었더라도, 저녁이라도 건강하게 소식을 하는 거고요. 절대 그냥 보내는 날이 있으면 안 돼요. 습관이 돼야 합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건강상담을 마쳤다.
그다음에는 전체적으로 정리를 하는 수준에서 진행을 하는 남자가 말을 이어나갔다. 나도 몇 마디를 더 거들며 촬영을 마쳤다.
가장 보람이 있던 순간은 촬영을 마치고 나서야 왔다. 몇몇 사람들이 내게 건강상담을 요청해왔다.
나는 당연히 흔쾌히 응했는데, 여기서 추가적인 촬영으로 이어졌다. 모든 건강상담 관련 장면들을 촬영하고, 편집을 해서 전부 쓸 예정이라고.
크든 작든 누구나 고민이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건강에 관해 걱정하고 고민한다. 자신은 건강하더라도 주변사람들 중에 꼭 있기 마련이다. 세상 어디를 가든 마찬가지다.
다시금 진심으로 세상에 아픈 사람이 하나도 없길 바라게 되는 하루였다.
9
통화를 하는 중이었다.
―그건 아쉽게 됐네요.
“그러게요. 그래도 세상이 좋아져서 귀국하고 나서도 볼 수는 있을 거 같네요.”
―그럼요, 저희 방송국 사이트에서도 보실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지역방송에 나가는 방영분을 보기 전에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아리랑 김밥은 충분히 자리를 잡아나가고 있었다.
이미 아르바이트생 하나를 더 뽑았다.
생각 이상으로 장사가 잘 되고 있었다.
건강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기도 했고.
행복 건강즙 1호점에서 건강상담을 하던 시절보다 더 많았다.
나는 분명히 한국에서 훨씬 유명한데도, 건강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인 지금이 더 많았다.
하루에 최소 30명 이상이었다.
나는 계속 자리에 앉아서 건강상담을 해야 됐다.
애초에 테이블은 3개밖에 없었지만, 아리랑 김밥은 사실상 테이크아웃과 배달전문점처럼 되고 있었다. 하지만 조만간 허가가 떨어지는 대로 가게 앞에 테이블을 둘 생각이었다.
김밥을 사자마자 적당한 곳에서 먹는 사람들이 꽤 많이 보였다. 테이블을 많이 둘 수는 없겠지만, 여유 공간에 자리를 마련하면 이용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꽤 될 거라 생각했다.
현재 몰리는 손님들이 전부 건강상담 때문은 아니었다. 건강상담만 받으러 와서는 김밥은 구매하지 않는 사람들이 70% 이상이었다.
오히려 호재로 봤다. 나의 건강상담과 무관하게 오롯이 김밥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내가 귀국한다고 해도 아리랑 김밥의 매출은 유지될 것으로 보였다.
“와, 이제 정말 잘 마시네요. 저보다 더 잘하시는 거 같아요.”
노우민이 말하자 가비는 생글생글 웃으며 더 빠르게 김밥을 말았다.
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좋은 쪽으로.
10
“고생 많으셨습니다.”
노우민의 말에 내가 피식 웃어 보였다.
“뭘 고생까지야…….”
“대표님께서 저희보다도 훨씬 바쁘신 거 같아요. 진짜 건강상담을 받으려고 끊임없이 오니까요.”
“그러게. 많이들 찾아주시더라. 감사하게도.”
“감사해요?”
“그래.”
“무보수로 일하시는 건데도요?”
“그럼. 누군가한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냐. 내가 쓸모가 있다는 게 좋다.”
“본받겠습니다.”
“나 같은 사람 본받지 말고 더 잘나고 훌륭한 분들 많이 계시다.”
노우민은 피식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나저나…… 너 인혜 씨하고는 어떻게 됐어?”
“아, 인혜 누나요?”
정인혜와 꽤나 친해진 모양이었다.
“응.”
“그냥 잘 지내고 있죠.”
“예전에 좀 이런저런 이야기 오가지 않았어?”
“솔직히…… 그 조금은 요상한 제안에 흔들리기도 했는데, 저는 아닌 거 같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별 말이 없으니 인혜 누나도 더 말이 없었고요. 그냥 친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그런데 갑자기 왜요?”
“아, 나는 또 네가 양다리 걸치나 해서.”
“네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귀신을 속여라 인마.”
“예? 무슨…….”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꼭 내 입으로 말해야 되냐?”
“아, 그게…….”
노우민은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말을 이었다.
“아직 뭐 그런 사이는 아니고…… 매일 보면서 같이 일하다 보니 조금 친해지긴 한 거 같아요.”
“좋은 사람인 거 같으니…… 잘 해봐. 뭐, 내가 끼어들 건 아니지만.”
“예, 뭐…… 하핫.”
노우민은 쑥스러운 듯 웃음으로 때웠다.
나는 괜히 녀석과 어깨동무를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벌써 미국에서 지내는 것도 익숙해졌는데,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려니 기분이 이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