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52화
31. 유명인 (2)
3
“괜찮겠어요?”
나의 물음에 가비는 눈을 크게 뜨며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안 될 거 없죠?”
스티브와 친분이 있는 사진작가가 커다란 카메라를 가지고 와서는 대기 중이었다. 나와 노우민 그리고 가비가 일하는 모습을 자연스레 찍을 거라고.
손님들이 있을 때도 사진을 찍을 예정이었는데, 당연히 블로그에 올려도 될지 물어볼 예정이었다.
스티브와의 인터뷰는 어제 대부분 끝낸 상태.
짝.
스티브가 손뼉을 한 번 치고는 미소를 머금은 채 다가왔다.
“오늘도 건강상담을 받으러 많이들 오실까요? 가능하면 그것도 꼭 사진에 담고 싶은데.”
“글쎄요, 아마 한두 분이라도 오시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요즘 하루에 20명 내외로 오시거든요.”
“만약에 아무도 안 오면 제가 건강상담을 받죠 뭐.”
스티브의 너스레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럴 수도 있죠.”
“그나저나 꽤 놀랐습니다. 자국에서는 유명하신 분이었다니…….”
“아닙니다. 절대 유명하고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방송에 몇 번 나온 거죠. 이상한 일에 휘말리면서 기사가 몇 개 뜨긴 했었지만요.”
“하하하, 처음에 거짓말인 줄 알았다니까요. 경쟁업체, 아니, 경쟁업체도 아닌 곳에서 일부러 함정을 파고…… 위험에 처한 외노자들을 구하고.”
“그러게요. 다시 돌아보니 정말 별일이 다 있었네요.”
카메라가 있으면 나도 모르게 의식을 하게 된다. 그걸 최대한 의식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장사에 집중하려니 이상하다.
예전에 방송에 나오거나 아이튜브 영상을 촬영할 때도 겪었던 거지만, 신경이 쏠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느새 손님들이 몰리기 시작하자 금세 카메라의 존재를 잊고 일에 열중하게 됐다. 가장 카메라를 의식하던 노우민조차 막상 바빠지니 김밥을 마는 데만 집중했다.
4
스티브와 사진작가가 돌아갔다.
사진 편집에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블로그는 최대한 빨리 올릴 생각이라고.
이에 따라 나도 바빠졌다.
“여보세요?”
―어, 웬일이냐?
오랜만에 오정득과의 통화였다. 내 세무사 노릇을 하고 있으니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긴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같이 일을 하는데도 서로 바쁘다보니 그렇게 됐다.
“부탁이 좀 있어서.”
―너는 인마, 부탁 있을 때만 연락하지?
“미안하다.”
―야, 왜 그래. 장난이잖아.
“나도 장난이야 새꺄. 너한테 미안할 게 뭐 있어.”
―에라이……! 무슨 일인데?
“다른 게 아니라, 블로그 하나만 좀 예쁘게 꾸며달라고.”
건강 관련 정보를 담은 SNS 계정들을 2개 운영할 계획이었다. 국내 대형 플랫폼의 블로그와 아웃스타그램.
아웃스타그램이야 그냥 올리기만 하면 되지만, 블로그는 가독성을 위해 틀을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별걸 다 시키고 그러네.
“한국 들어가면 밥 살게.”
―나 고급 인력이야. 비싼 밥 사야 돼.
“알았어, 먹고 싶은 거 다 드세요.”
―대충 원하는 스타일 있어?
“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
―피곤한 놈이네.
“부탁한다. 알았지?”
―알았어! 내 메일로 계정이나 보내놔.
그렇게 길지 않은 전화통화를 마쳤다.
나는 예전부터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좋은 사람들이 항상 곁에 있었으니까. 단지 그걸 제대로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부터 조금이라도 더 이타적인 삶을 살고 싶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즐거운 삶을 사는 것도 다른 사람들 덕분이었으니까.
5
일주일 뒤.
나는 아리랑 김밥에서 거의 손도 까딱하지 않았다. 그저께 하루는 교회 쪽에서 들어온 대량 주문을 소화하느라 쉴 틈이 없었지만.
평균적인 매출은 조금 줄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에 입소문을 타고 몰려들었던 효과가 사그라졌으니까. 그리고 100명이 왔을 때 100명 전부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법.
아무리 마진을 줄이고, 정성을 쏟아 부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미슐랭 3스타를 받은 음식조차도 모두가 맛있다고 하지는 않는다.
사실 매출이 조금 줄었다고는 해도 처음 목표치보다 훨씬 웃돌고 있었다. 결국 잘 되고 있었다.
테이블도 3개뿐이고, 배달도 안 하는, 사실상 테이크아웃 전문인 자그마한 가게라는 걸 생각하면 대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는 곧 돌아가도 될 듯했다. 노우민은 역시나 잘해주고 있었고, 가비도 금세 속도가 붙어 노우민보다 조금 느린 수준으로 김밥을 말 수 있었다.
잠깐 한가한 시간.
“우민아.”
“대표님.”
우리는 거의 동시에 서로를 불렀다.
“먼저 말해.”
“먼저 말씀하세요.”
우리는 또다시 말이 겹쳤고, 이내 피식 웃었다.
“뭔데 그래?”
나의 물음에 노우민은 하하 웃다가 말했다.
“저희…… 직원을 한 명 더 뽑으면 어떨까 해서요.”
나도 같은 말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조금은 의외였다. 노우민은 자신의 몸을 조금 더 굴려서라도 돈을 벌려는 타입이었으니까.
크게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는데. 예전에 하던 일에 비하면 육체적으로도 편했고, 다양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할 수 있으니 근무환경도 나았다.
계속 사람들을 대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 힘들 수도 있긴 했다. 간혹 억지를 부리는 진상 손님도 있었고.
“그래? 그게 낫겠어?”
“예. 그리고 영업시간을 조금 늘릴까 해서요. 당장은 아니고, 새로 들어오는 직원도 어느 정도 일을 할 수 있게 되면요.”
역시나. 그럼 그렇지.
“벌써 영업시간을 늘릴 생각을 해? 너무 힘들지 않겠어?”
“한 타임은 가비 씨가, 다른 타임은 새로 들어오는 직원이 맡으면 될 거 같아요. 저는 유동적으로 가장 바쁜 시간들에 들어와서 일하고요. 한 달 정도 매출 추이를 보고 아르바이트생도 하나 더 쓸 수도 있고요.”
노우민은 아리랑 김밥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듯했다.
“그래,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옳다고 생각되는 대로 해봐.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냥 나한테 얘기만 해줘, 어떻게 할 건지. 뭔가에 부딪치는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나한테 말하고.”
“네, 알겠습니다.”
스티브의 블로그에 글이 올라간 지 며칠 되지 않았다. 조회수는 계속해서 오르는 중이었고. 그런 부분을 노리고 응했던 것은 아니지만, 홍보 효과도 확실히 있겠지.
인터뷰에 응한 대가로 받은 돈은 두당 200달러였는데, 촬영 협조까지 해서 총 1,000달러를 받았다.
노우민과 가비가 200달러씩 고스란히 가지게 했고, 남은 600달러는 가게의 공금으로 뒀다가 필요할 때 쓰라고 일러뒀다. 같이 간식을 사먹든 저녁식사든 뭐든 회식 같은 걸 할 수도 있었고.
“대표님.”
노우민이 다시 나를 불렀다.
“왜?”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뭔데?”
“이건 가비 씨 아이디언데요.”
나는 가비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
“말해.”
“저희 배달도 할까 합니다.”
“배달?”
“예, 직원을 따로 뽑는 건 아니고요. 여기도 배달대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수수료를 조금 내야 되긴 하지만, 최소 주문금액 설정하고 주문 들어온 거 만들어놓기만 하면 되니까 좋을 거 같아요.”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웬만해서는 노우민의 결정에 맡기기로 한 가게이기도 했고.
“그래, 그럼.”
“감사합니다.”
노우민이 고개를 꾸벅였고, 가비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분명히 매출이 오를 거예요.”
내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매출이 너무 높아지면 안 좋은 거 아니에요? 일만 바빠지는데.”
농담조로 말했지만 어느 정도는 속내를 알고 싶은 마음이었다.
가비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여기가 잘 될수록 저한테도 더 좋은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요?”
“그렇죠. 맞아요, 그럴 겁니다.”
“제가 나중에 2호점을 낼 수도 있는 거고요.”
“그럴 수도 있겠죠. 사실 저희 나름대로 그와 관련된 시스템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요?”
“네.”
나는 노우민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나중에 우리 점장님한테 물어보시면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아직까지 2호점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카페 웰웰과 같은 시스템이었다. 자신으로 인해 매장이 늘어날 경우 해당 매장의 일정 수수료를 가질 수 있었다. 이곳의 노하우를 빼서 독립하기보다는 계속 함께 크자는 취지였다.
자신이 세운 회사가 아닌데도 수수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으로 다가설 게 분명했다. 완전히 혼자서 독립을 해야 된다는 부담감도 덜 수 있었고.
6
노우민은 신규 직원을 뽑는 것 때문에 힘들어 했다. 공고를 올리니 지원자가 제법 몰렸다. 조건이 나쁘지 않은 탓이었다. 그렇다고 일이 쉬운 것도 아니었지만.
김밥을 마는 일이라 그런지 한국인들도 몇 명 섞여 있었다. 하지만 전부 노우민보다 나이가 많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중요치 않다지만,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부린다는 게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분위기를 흐릴 수도 있었고.
나는 아예 관여하지 않았다. 전적으로 노우민에게 맡겼다. 녀석은 이따금씩 눈빛으로 SOS를 요청했지만, 나는 끝까지 돕지 않았다.
노우민은 마음이 여린 부분이 있었다. 타지에서 혼자 가게를 이끌어나가려면 독한 부분도 있어야 했다. 나빠지는 게 아니라,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판단할 줄도 알아야 됐다.
노우민과 가비가 김밥을 말면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가비의 의견대로 배달대행 효과는 제법 있었다. 매출은 소폭 상승했는데, 가게를 직접 찾아오는 손님들의 수는 조금 줄어들었다. 그만큼 배달대행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
그러고 보니 카페 웰웰도 배달대행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었나?
한국에 돌아가면 전체적으로 한 번 싹 돌아봐야겠다.
나는 2주 뒤에 귀국할 예정이었다. 처음에 최대치로 생각했던 기간보다는 짧았지만, 실질적으로 머물 거라 생각했던 기간보다는 길어졌다.
덕분에 나도혜는 슬슬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짜증나는 징징거림은 아니고, 귀여운 떼쓰기였다. 나도 그녀가 보고 싶었다.
오늘도 건강상담을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큰 짐을 덜어낸 듯 웃으며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내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연한 회색 정장을 입은 금발 여자가 다가왔다. 30대 중후반 저도로 보였다. 당장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들 중에서는 마지막 건강상담이었다.
나는 여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어디가 안 좋은지 살폈다. 크게 문제는 없었다. 그래도 확실히 개선해야 될 점이 있었으니 영양불균형이었다.
“어서 오세요.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내가 웃으며 인사를 건네자 여자는 맞은편에 앉아서는 크고 새하얀 치아를 드러냈다.
“사실 건강상담 때문에 온 건 아니고요, 사장님과 얘기를 좀 하고 싶어서 왔어요.”
“어떤 거 때문에 그러시죠?”
여자가 씩 웃으며 명함을 내밀었다.
이사벨라 서먼.
이사벨라는 지역 방송국의 PD였다.
내가 조금 놀란 기색을 드러내자 이사벨라는 다시 한 번 생긋 웃었다.
“아주 독특한 음식점이 있다고 해서 찾아왔어요. 그 스티브라는 사람이 올린 포스팅도 봤고요. 저희 쪽에서 먼저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이사벨라는 콧잔등에 주름이 가도록 웃고는 말을 이었다.
“괜찮으시다면 저희가 여기를 소개하는 방송을 좀 했으면 하거든요. 괜찮으시죠?”
그녀는 내가 당연히 방송에 출연할 거라 단정을 짓고 묻는 듯했다.
나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거리다 되물었다.
“정확히 어떤 목적으로, 어떤 프로그램에서, 어떤 걸 다룰지를 알아야 대답을 해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