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50화
30. 한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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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희 이만 가볼게요.”
가비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소피는 내게 고개를 꾸벅였다.
“또 봬요. 정말 감사합니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시네요?”
“이게 예의라고 들어서…… 아닌가요?”
“맞아요, 동양권에서는 그렇게 인사를 하죠.”
“친구 중에 한국인이 있거든요. 그 친구 집에 놀러갔을 때, 그 친구 부모님께 이렇게 인사를 드리니 좋아하시더라고요. 지난번에는 여러 가지로 경황이 없어서 그렇게 못했는데, 이렇게 하면 좋을 거 같아서…….”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왜 그렇게 죄를 지은 사람처럼 말씀하세요.”
“그런 의도는 아닌데,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어서…….”
“민감하게요? 어떻게요?”
“동양인은 뭐, 다 그렇게 하는 줄 아냐, 여기는 미국이다, 우리도 미국 사람이다 그러면서…….”
모든 것에 예민한 세상이었다.
말 한마디도 더 조심해야 하고, 새로운 개념들이 쏟아져 나와 몰랐는데도 욕을 먹는다.
새로운 성별의 개념만 수십 개에 달한다. 그걸 존중하지 않는다고 손가락질을 하기도 한다.
그 나라 문화권에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려 하며 존중한 게 인종차별이 되기도 한다.
세상이 언제부터 이렇게 복잡해졌는지.
이해와 배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나쁜 의도라는 걸 배제하고 바라본다면, 모르는 점은 가르쳐주면 되는 거다. 선입견과 편견을 가진 게 아니라, 나름대로 노력을 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러면 문제가 없다.
어쩌면 상대방의 의도보다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더 중요하다.
“저한테 그런 거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뭐가 어찌 됐든 나쁜 의도가 없다는 걸 아니까요. 절대 실수도 아니고요. 그리고 그냥 저 배려하신다고 익숙하지 않은 방법으로 인사를 하려고 노력하시지 않아도 되고요. 그냥 편하게 하세요.”
“이 방법이 나쁜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그런가요?”
“네, 이게 더 공손한 방법이라고들 하니까.”
제나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얼굴로 소피를 바라보다가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러고는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또 올게요.”
“언제든지 오세요.”
그렇게 세 삼이 자리를 뜨는가 싶었는데, 가비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이미 친구 사이나 다름없었기에 굳이 물었다.
“표정이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요?”
“네? 아…… 그냥, 이것저것 생각 좀 하느라고요. 괜찮아요.”
“뭐 때문에 그러는데요?”
“다른 게 아니라…….”
가비는 멋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막상 일을 때려치우니까 막막해서요.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하는데…….”
“가비 씨는 충분히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거예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지만 별 재주가 없어서요.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막막해요. 또 팁에 일희일비하는 일이나 해야겠지만…….”
그때 나도 모르게 노우민과 눈을 마주쳤다. 녀석은 내가 순간적으로 내비친 생각에 동의한다는 듯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고민을 바로 끝내고 가비를 향해 물었다.
“그럼 팁 없이 월급 받는 일하실 생각 있어요?”
“네?”
“요리…… 요리까지도 아니고, 손재주 좀 있으시면 가능한데.”
“무슨…… 말씀이신지?”
가비는 정말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커다란 눈을 깜빡거렸다.
나는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희 가게에서 일해볼래요?”
“여기요? 김밥집에서요?”
“네.”
“하지만…….”
그녀는 가게를 슥 훑어보고는 곤란하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이곳을 무시해서 하는 말은 아니고요. 이 작은 가게에서 벌써 두 분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근데 저까지 쓸 여력이 되세요? 그냥 자그마한 파트타임잡을 구하는 게 아니에요. 저는 한 달에 최소 천오백…… 아니, 이천 달러는 벌어야 돼요. 그래야 생활이 유지가 돼요.”
“드릴게요.”
“그쵸? 역시…… 네?”
“그 정도는 맞춰 드릴 수 있어요. 저희 쪽에서도 풀타임으로 일하실 분을 구하고 있고요.”
“급여를 맞춰주신다고요?”
“네. 물론, 일을 잘 소화해 내셔야 되지만요. 저는 곧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나는 노우민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럼 저 친구가 점장으로서 이 가게를 운영할 거예요. 추후 다른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을 하나 더 뽑을 수도 있고요.”
“진짜로 저를 고용하시겠다는 거예요?”
“생각 있으시다면요. 급여도 최대한 맞춰드릴 거고요. 물론, 그만큼 근무시간도 짧지는 않을 겁니다. 원하신다면 자세히 얘기해볼 수 있겠죠?”
가비는 얼굴에 웃음기를 머금은 채 고개를 빠르게 끄덕거렸다.
“생각 있죠. 당연히 있죠.”
“그럼 다시 들어오시겠어요?”
13
가비는 아리랑 김밥에 일하기로 했다. 앞으로 일을 배우면서 그녀가 잘 소화하는지 내 입장에서 확인이 필요했지만. 그녀도 자신에게 일이 맞는지 해봐야 알 수 있는 것이었고.
노우민은 가게 문을 닫기 위해 청소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새 직원을 갑자기 뽑게 됐네요?”
“그러게. 조금 충동적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긴 하는데.”
“괜찮겠죠. 좋은 분 같던데.”
“응. 근데 성격도 좀 있겠지?”
노우민이 하하 웃었다.
“그렇겠죠, 사장이랑 욕하면서 때려치우고 나온 거니까요.”
“내일 교육은 네가 시켜.”
“제가요?”
“앞으로 나보다는 너랑 계속 엮일 사람이잖아. 당연히 네가 가르치고, 고용인이라는 걸 알려줘야지.”
“알겠습니다.”
“다른 거보다 걱정은 하나밖에 없다.”
“어떤 거요?”
“근무시간이랑 이런 거야 탄력적으로 조정도 할 거고, 본인이 풀타임을 원하니 문제가 없을 거 같은데…… 김밥을 잘 말 수 있냐가 관건이지.”
노우민이 바로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게요. 이거 들어가는 재료가 많아서 원래 김밥 말 줄 아는 분들도 쉽지 않을 텐데. 손에 붙으려면 꽤 걸릴 걸요?”
“뭐…… 2, 3주 안에만 익힐 수 있으면 괜찮지. 사실 연습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잖아. 그 정도 노력도 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고.”
“못 말면 자르시게요?”
“당연하지. 이 작은 가게에서 계산만 시킬 수는 없으니까. 그 정도 급여를 주면서 쓸 이유도 없고. 뭐, 잘 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계산이나 다른 일들을 할 사람은 내가 빠지고 나서, 가게가 완전히 자리를 잡으면 그때 따로 구하고.”
“알겠습니다.”
노우민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말했다.
“가비 씨가 꼭 일을 잘하셨으면 좋겠네요. 저희 쪽에서 제안했는데, 일 못 한다고 자르는 것도 좀 그러니까요.”
“못 하는 거랑 안 하는 건 달라. 이건 학생들도 연습만 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야. 처음부터 달인처럼 빠른 속도를 원하는 게 아니잖아? 그리고 느린 건 느린 거대로 이점이 있어.”
“예? 뭐가요?”
“우리 김밥 특징이 뭐냐. 풍부한 재료야. 그걸 하나하나 세심하게 넣어서 천천히 말고 있으면, 그건 그거대로 보면서 기대하게 되는 효과가 있거든. 진짜 뭐가 많이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고, 정성이 들어간다고 느껴지고. 빠르면 빠른 대로 만드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가고. 할 수만 있으면 돼.”
“그럴 겁니다.”
아르바이트생을 뽑는 시기는 생각보다 빨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상담을 위해 찾은 손님들의 비율이 꽤 높긴 했지만, 주변에 김밥 전문점은 없어서인지 대체재가 없어서 사람이 꽤 몰렸다.
함께 일하다가 슥 빠지는 게 아니라, 내가 머무는 동안 완전히 모양새를 만들고 가야 좋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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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냈다.
가비는 첫날부터 김밥을 완벽한 모양으로 말았다. 속도는 굉장히 느렸지만, 그건 하면서 늘어날 부분이었다.
“원래 손재주가 좋은가 봐요.”
나의 말에 가비는 으스댔다.
“저는 라틴 여자라고요. 어릴 때 가장 먼저 배운 요리가 타코였고요. 그때부터 뭘 마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죠.”
“좋아요, 좋아. 계속 연습하면서 속도만 올리면 완벽하겠어요.”
“저는 라틴 여자에요. 느린 건 제가 못 참아요.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세요.”
모든 게 기우에 불과했다. 어쩌면 나와 노우민이 김밥 마는 기술을 고평가했던 걸지도.
가비가 갑자기 다가와 큰 눈으로 나를 지그시 쳐다보며 말했다.
“정말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 진짜 막막했거든요. 오히려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팁이 가장 잘 나오는 달에나 벌 수 있는 월급에…… 진짜 너무 고마워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열심히 할게요.”
“그만큼 일이 적지 않으니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저 친구가 실질적으로 여기의 보스니까, 잘 보조해 주세요. 아무래도 둘이서 일할 때가 많을 테니까요. 차차 다른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을 뽑긴 할 테지만, 메인으로 김밥을 마는 사람은 저 친구랑 가비 씨가 될 거니까요.”
“알겠습니다!”
고민거리 하나가 날아갔다.
나는 이제 김밥 마는 일에 관여하기가 어려워졌다. 소문이 제법 많이 퍼졌는지 건강상담을 받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늘었다.
여기서 조금 놀라운 점은 절반은 미국인들이었다. 한인 타운에 사는 한국인들이나 좀 올 거라 생각했는데, 그들의 지인들인 미국인들에게도 제법 소문이 퍼졌다.
아무래도 의료비가 부담스럽고, 자잘한 것들은 약국에서 약을 사는 것으로 대체하는 사람들이 많은 탓인 듯했다.
최근 미국에서 대체의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기도 했고.
내가 일러주는 건강 관리법도 결국은 대체의학이라 볼 수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상담료가 공짜라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겠지만.
아예 줄까지 세워서 건강상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예전에 한국에서 했던 것처럼 따로 예약을 받을 수도 없었다. 얼마 안 있으면 귀국할 예정인데 그런 시스템까지 갖추기는 애매했다.
오는 사람들마다 내가 귀국할 거라는 소식을 들으면 큰 아쉬움을 표했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내가 아는 건강 관리법들을 단순히 상담을 하러 오는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할 필요가 없었다.
가능한 많은 방법들을 동원해 널리 퍼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왜 이제야 이러 결심을 했는지. 좀 더 빨리 시작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무래도 조금은 두려웠던 듯했다.
건강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이미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거나, 적어도 호기심이라도 품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귀를 열고 나를 만나러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내가 방송 출연 등을 통한 게 아니라, 개인적으로 자료들을 올려봤자 보는 사람들만 볼 거라는 생각, 얼마나 보겠냐는 생각이 앞섰었다.
온갖 수단을 다 쓰면 됐다. 기부를 한다는 마음으로 사비를 쓸 생각도 있었다. 인터넷이 어렵게 느껴지는 중장년층이나 사회 빈곤층까지 생각해서 투자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음 분…….”
그때 줄을 무시하고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는 한 남자가 있었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사나운 인상에 약간 긴장하며 말했다.
“줄을 지켜주셔야―”
남자가 내 말허리를 잘랐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스티브라고 합니다. 당장 여기서 시간을 많이 뺏으려는 건 아니고요, 사장님과 이 김밥집에 관련된 이야기를 포스팅하고 싶은데, 괜찮으시면 이따가 인터뷰가 가능하신지 해서요.”
스티브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하지만 오히려 다른 분들을 배려해서 그런 겁니다. 건강상담을 위한 줄이지, 이런 이야기를 위한 게 아니잖습니까? 여기 명함 남기겠습니다. 언제든지 편하실 때 연락을 주시면 그때 오겠습니다. 이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한인이 되실 기회이니 꼭 문자든 전화든 이메일이든 연락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