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49화
30. 한인(9)
소소한 이야기였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본 것도 예의상 한 말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가 이어질 줄이야.
여기서 놀라운 점은 내가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줄 알던 사람이었나.
가비가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탓도 있었지만.
“오신 적이 있어서 아시겠지만, 저희 가게가 한가한 편이에요. 그런데 한 번은 웨이트리스 중 하나가 아파서 출근을 못 했어요.”
“그리고요?”
“그래서 그날 사장이 일을 좀 도와줬죠. 그렇게 바쁜 시간이 싹 지나갔는데, 손님들이 팁을 두고 가잖아요? 근데 사장이 거기서 절반 가까이를 빼고 주는 거예요. 내 팁에 손을 댄 것 자체가 어이없는데, 돈을 빼고 주더라고요.”
가비는 당시를 떠올리며 이가 갈린다는 듯이 어느새 인상을 팍 찡그리고 있었다.
“그래서 말했죠, 뭐 하는 거냐고. 그러니까 자기 몫이래요. 그래서 무슨 당신 몫이 있냐고 그러니까 일을 도와주지 않았냐, 나도 같이 서빙을 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이 팁에 자기 몫도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흠……. 그거 참.”
“그러니까요! 한 거라고는 접시 몇 개 치운 거밖에 없으면서 팁의 일부분도 아니고 반을 가져가려고 하니까 얼마나 어이가 없겠어요? 그래서 대판 싸우고 나왔죠.”
팁 문화라는 게 참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팁은 어디까지나 마음에 우러나서 수고해 주는 게 고맙다는 의미로 주는 보너스, 어디까지나 팁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해야 됐다.
애초에 정해진 급여를 받고 일하면 가비가 겪은 일이 생길 수가 없었다.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기분 나쁜 일이 생기는 날도 있는 거죠. 김밥 먹을래요?”
가비는 씩씩거리다 김밥 메뉴로 시선을 옮겼다.
“네, 먹을래요.”
“드시고 싶은 거 말씀하세요.”
가비와 소피 그리고 마른 여자는 김밥을 1줄씩 골랐다.
당연히 그냥 주려고 한 거였는데, 세 사람은 계산을 하겠다고 돈을 내밀었다.
“오늘은 그냥 드시고, 다음에 또 와주시면 되죠.”
내가 손사래를 치자 가비는 팔을 쭉 뻗어 돈을 내밀었다.
“이러지 마요 진짜. 그리고 오늘 부탁이 있어서 온 건데 어떻게 이것까지 얻어먹겠어요.”
“뭐…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나는 생긋 웃으며 돈을 건네받았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아하하하.”
세 사람은 손바닥 뒤집듯이 바뀐 내 태도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그런데 부탁하실 게 있다고요?”
“네.”
가비가 마른 여자를 가리켰다.
“이 친구가 사장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소피가 눈을 크게 뜨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알려주신 거 대박이었어요. 진짜 효과가 있었어요. 평생 달고 다니던 비염이었는데, 이제 아무렇지도 않은 수준이에요. 오늘 아침에는 처음으로 코를 풀 필요가 없었어요!”
“잘됐네요. 효과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기적이에요 이건! 저는 진짜 평생을 아침마다 코가 막혀서 고생했단 말이에요. 조금만 매운 음식이나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 콧물이 질질 흐르고요. 진짜 너무 감사해요!”
소피는 얼굴에 미소를 듬뿍 적신 채 말을 이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하죠? 뭔가 필요하신 게 있나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다 할게요.”
“뭘 바라고 한 게 아니에요. 가끔 생각나실 때 오셔서 김밥이나 한 줄 드시면 감사하고요.”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저희 김밥들도 전부 건강에 좋은 재료들을 위주로 만들고 있으니 간단하게 식사를 하실 때 웬만한 샌드위치나 햄버거 같은 것보다는 훨씬 나을 거예요.”
“네! 맛있기도 되게 맛있더라고요.”
나는 세 사람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런데 부탁할 게 뭔가요?”
가비와 소피는 눈짓으로 마른 여자를 가리켰다. 그녀는 여전히 뭔가 탐탁지 않다는 얼굴이었다.
“뭐 문제라도 있나요?”
여자는 기대도 안 한다는 듯이 한숨을 내쉰 뒤에 말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는 얘네들이 끌고 와서 온 것뿐이에요.”
“네, 알겠습니다. 그래서 어떤 고민이 있으신 건가요?”
“그게…….”
“아, 건강상담이니까 안쪽에 앉아서 얘기하실까요?”
“아뇨, 그럴 것까지는 없는데.”
“그렇게 길지 않을 거예요. 계속 거기 서서 얘기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다른 손님이 오실지도 모르니까.”
여자는 결국 내 안내에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가비와 소피는 가게 안에 들어온 김에 김밥을 먹어야겠다며 자리를 잡았다.
나와 마주앉은 마른 여자는 묘하게 불만 섞인 얼굴이었다.
“그냥 피부가 고민이에요. 중학생 때부터 얼굴에 뭐가 많이 나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안 없어져서요. 여유가 생기는 대로 병원에 갈 생각이에요.”
나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다 물었다.
“성함이?”
“……제나요.”
“피부는 정확히 언제부터 그러셨죠?”
“아마 15살… 그쯤부터요.”
“붉은 기도 그때부터 돌았나요?”
제나는 손을 뺨으로 가져가며 대답했다.
“네.”
그녀의 피부 트러블은 피부 자체에만 있지 않았다.
“평소에 화장실은 잘 가시나요?”
“네?”
나의 물음에 제나는 조금 불쾌하다는 듯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건 왜 물어보시죠?”
“제나 씨 피부를 위한 질문입니다.”
“……그냥 평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디테일한 건 여쭤보지 않을게요. 하지만 불규칙하시죠?”
“그걸 정해놓고 가는 사람도 있어요? 어떻게 미리미리 준비해서 맞춰서 가요?”
“장 건강이 좋으면 일정한 시간에 가기도 합니다.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자고 일어나서 아침마다 가는 게 좋은 편이죠. 물론, 특별히 변비나 설사 없이 주기적으로 가기만 한다면 괜찮아요.”
그때 시선이 따가운 게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김밥을 먹던 가비와 소피가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두 사람을 본 나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하하하하, 미안해요. 필요한 거라서.”
두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가로젓고는 다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제나와 눈을 마주쳤다.
“본인은 어떠시죠?”
“……조금 불규칙한 거 같기는 해요. 탈이 날 때도 좀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고.”
“그렇죠? 그럴 거예요. 피부과 의사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피부 트러블과 장은 별개라고 해요. 그럴 수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반대되는 의견도 있어요. 장내의 독소가 피부에서 그 증상이 드러날 수도 있다고요. 의견이 분분한 내용입니다.”
“저는 장 건강이 문제라는 건가요?”
“피부 트러블의 종류에 따라서도 갈리는데요. 저는 제나 씨의 경우 복합적이라고 봅니다. 피부 자체의 문제도 있고, 장 건강의 문제도 있고요. 얼굴에 열감이 자주 올라오죠?”
“네,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주로 제대로 화장실을 가지 못했을 때, 장 건강이 유난히 나쁜 상태일 때 얼굴에 열이 오르고 피부 트러블이 생기기도 하고 그럴 거예요. 술을 먹은 다음 날에 심해지는 경우도 있을 거고요.”
제나는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나는 곧바로 말을 이어나갔다.
“이건 제법 간단하게 고칠 수 있어요.”
“어떻게요?”
“식습관을 완전히 고치면 훨씬 나아질 겁니다.”
“피부까지 좋아진다고요?”
“예. 확실히 좋아질 거예요. 피부 자체의 문제도 좀 있을 수 있는데, 그건 일단 다른 부분을 개선한 다음 다시 봐도 될 것 같거든요? 뭐… 그래도 몇 가지 말씀을 드리긴 할게요.”
곧바로 종이를 꺼내 제나가 지켜야 할 것들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당연히 깨끗한 세안이 기본입니다. 하지만 화학성분이 들어가지 않은 천연 비누 같은 걸 써보세요. 피부가 약해지고 민감한 상태니까요. 그 다음 자극적이지 않은 제품으로 보습을 하는 것도 기본이고요.”
“그것만 하면 돼요?”
“여드름이 조금 심한 부분은 티트리 오일을 써보세요. 면봉 끝에 소량만 묻혀서 살짝 찍어주듯 사용하시면 됩니다. 다만, 자극적일 수 있으니 사용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나는 배를 가볍게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제나 씨의 경우 장 건강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병은 장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장 건강은 중요합니다. 여드름이 없는 사람에 비해 여드름이 있는 사람은 소장에 유해균이 10배나 많이 증식돼 있다는 연구 발표도 있었거든요.”
“그럼 어떻게 하면 되나요?”
“일단 유산균 챙겨 드시면 좋습니다. 염증 자체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조금 전문적인 얘기인데, T세포 활성을 조율해서, 염증성 사이토카인의 방출을 억제하는 능력인 걸로 보이는 부분인데요, 확실히 효과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의심으로 가득했던 제나는 어느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그것만 하면 정말 좋아질까요?”
“아니죠.”
“네?”
제나는 당황한 듯 눈을 빠르게 깜빡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나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아까 말씀드렸죠? 식습관을 다 바꾸셔야 된다고요.”
제나의 평소 식습관은 한국 기준으로 최악이었다.
인스턴트식품이나 패스트푸드가 주를 이뤘다. 샌드위치나 햄버거에 채소가 많이 들어간 걸 먹었으니 괜찮다는 반응이었다.
주식은 밀가루와 육식.
동서양인의 장이 소화력에 차이가 있다고 한다. 거기서 오는 차이가 있을 게 확실한데, 제나는 완전히 백인 여자였지만 소화기관은 동양인과 닮아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인스턴트나 패스트푸드는 말할 것도 없고요, 유제품이랑 밀가루도 끊으셔야 합니다. 그럼 확실히 좋아질 겁니다.”
“전 유당불내증 같은 것도 없는데…….”
“그 정도는 아니죠. 하지만 통곡물 샌드위치 같은 걸 먹었을 때랑 피자를 먹었을 때의 차이가 확실히 있었을 거예요.”
제나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요.”
“가능하면 통곡물로, 더 관리가 가능하다면 쌀을 드셔보세요. 그것도 현미 같은 걸로요. 녹색 채소도 많이 드시고. 아, 그리고 물도 많이 드셔야 합니다. 물을 너무 안 드세요.”
“네, 네.”
“커피랑 주스 같은 음료들은 물이 아니에요. 미네랄워터로 하루에 2리터 이상 꼭 드세요. 그럼 정말 깜짝 놀랄 변화들이 일어날 겁니다.”
“꼭… 열심히 꼭 실천해 볼게요.”
“네, 좋은 결과 있길 바랄게요. 제가 말씀드린 대로 전부 실천하신다면 분명히 효과가 있을 겁니다. 요즘 할리우드스타들도 밀가루 대신 쌀을 먹는 경우가 많아졌잖아요. 아니면 설탕을 넣지 않은 오트밀로 탄수화물을 대신하기도 하고요.”
“탄수화물을 아예 끊는 건 어때요?”
“그건 추천하지 않아요. 일단 탄수화물을 통해 상당량의 식이섬유를 섭취하니까요. 장 건강을 생각해야죠. 그리고 다이어트를 원하신다고 해도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각종 필수 아미노산과 비타민 등을 적절히 계산해야 합니다.”
나는 제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제나 씨의 경우 그렇게 살이 찌지도 않았잖아요. 제가 말씀드린 식이요법은 평소 제나 씨의 식습관에 비하면 분명히 다이어트에 도움이 될 거예요. 적절한 운동만 더해진다면 감량 효과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몸무게만 줄어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그쵸? 더 건강하고 예쁜 몸을 가지는 게 목적이잖아요.”
제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아요. 진짜 열심히 해볼게요.”
그때 소피가 웃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렇게 안 온다고, 안 믿는다고, 사기꾼이라고 하더니 아주 열성신자처럼 변하셨네?”
“시끄러워. 듣고 보니 전부 맞는 말이니까 그렇지.”
제나는 괜히 짜증을 내고는 나의 눈치를 살피다 생긋 웃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말 몇 마디 해드린 것밖에 없는데 감사는요. 하시다가 궁금한 점이나 무슨 문제 있으면 저한테 말씀하시고요.”
“네, 그럴게요.”
그렇게 모두를 보내려는데 제나가 나의 눈치를 살피다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런데 저기…….”
“네, 말씀하세요.”
“저도 이거 여기서 먹고 가도 되죠?”
제나가 김밥을 가리켰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