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148화 (148/174)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48화

30. 한인 (8)

10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중년 여자가 고개를 꾸벅거렸다.

나도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움직였다.

“아이고, 아닙니다. 그리고 선생님이라뇨, 저는 그냥 김밥집 사장입니다.”

“저한테는 의사 선생님보다 더 의사 선생님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꼭 해볼게요.”

“지금 건강 상태가 크게 나쁘지 않으니 조금만 관리하시면 금방 좋아지실 겁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감사합니다.”

마지막 손님까지 건강상담을 마쳤다.

옆에서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니 노우민이 히죽히죽 웃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왜 웃어 인마.”

“대표님은 대표님이다 싶어서요.”

“무슨 말이야?”

“오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대표님도 사람은 사람이구나.”

나는 몸을 살짝 틀어 노우민을 빤히 쳐다봤다.

“갈수록 이상한 소리를 하네?”

“하루 종일 딱 묶여서 재료 손질이랑 김밥만 말아야 됐잖아요. 어제 삼겹살 먹으러 잠깐 가서…… 아니, 거기서도 일을 하셨죠. 사람도 구하고, 영업도 하시고.”

“딱히 김밥 팔아먹으려고 그랬던 건 아니다.”

“알죠, 알죠.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건강상담을 하실 때의 대표님 모습이에요.”

“어땠는데?”

“대표님도 사람이신지라 조금은 지쳐 보이셨거든요.”

“그랬냐?”

노우민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피곤해 보이셨어요. 피곤한 게 당연하고요. 그 와중에도 손님들을 대할 때는 항상 일관되게 미소를 지으시면서 친절하시니 정말 존경스럽기까지 했고요.”

“그런데?”

“건강상담을 하실 때는 눈이 탁 뜨이시더라고요. 집중도가 다른 느낌이었어요.”

“그렇게 보였냐?”

“옛날부터요.”

행복 건강즙 1호점에서부터를 얘기하는 거였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노우민은 일과 관련된 사람들 중 가장 가까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마 함께 보낸 시간을 생각하면 녀석이 가장 길었다.

“그렇게 티가 났냐?”

나의 한마디에 노우민은 조금 놀란 듯하다가 웃으며 대답했다.

“네. 신기해요 정말.”

“뭐가 신기해.”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이잖아요. 그걸 그렇게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해요. 기부도 꾸준히 하시고…….”

“예전에는 아예 베풀 줄 모르는 사람이었거든. 그래서 이제야 조금씩 베풀기 시작한 거야. 그거 아냐? 기부도 세금 혜택 있는 거.”

“그래요?”

“그렇다니까. 나라는 사람이 그렇다. 이거밖에 안 돼. 남 돕는 것도 계산하고 도움이 되니까 하고 있는 기분이야. 좋은 사람이라는 게 되기가 참 어렵더라. 그래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되고.”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말이 부드럽게 나가지가 않았다.

괜히 내가 하는 좋은 일이란 결국 진심이 아닌 것처럼 말했다.

처음부터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니긴 했지.

노우민이 씩 웃으며 말했다.

“저도 대표님 본받아서 꼭 어려운 사람들 도우면서 살겠습니다.”

“너부터 챙겨라. 네 가족들부터 챙기고. 그래도 여유가 되면 도와. 그걸 무슨 의무처럼 생각하지 말고…… 마음에서 우러나서 할 수 있으면 해. 나도 그랬고.”

“예.”

녀석은 계속 싱글벙글 웃었다.

나는 헛웃음을 치며 물었다.

“왜 계속 웃어?”

“저는 대표님께서 원래 좋은 분이라서 좋은 일을 하신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말해도 월급 안 올려줘. 미니멈은 그대로야. 네 힘으로 벌어. 인센으로 쌓으라 이 말이야.”

“하하하하, 당연하죠. 무조건 저도 더 벌고, 대표님께도 도움이 되게 할 겁니다.”

“그런데 왜 자꾸 비행기를 태우냐.”

“진심입니다. 진짜 많은 사람들이 대표님이 알려주시는 방법을 실행해서 건강이 좋아졌잖아요. 저희 어머니 때도 그랬고요.”

“……그건.”

말이 더 나오지가 않았다.

김현자가 조금 더 편하게 세상을 뜰 수 있었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완치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표님이 아니었다면 어머니께서 정말 고생 많이 하시다가 가셨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표님 덕분에 편하게 가셨어요. 그러니 꿈에도 나오셔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겠습니까? 아들도 제쳐두고 대표님부터 뵈러 가셨는데.”

“하하하…… 그러셨지, 맞아. 아들 보러 안 가시고 나를 보러 오셨으니…….”

“그리고 건강상담을 하실 때,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어요. 그냥 손님이라서, 친절하게 대하자는 마음으로는 그런 표정이 안 나온다고 생각해요. 정말 즐거워하시는 게 보이거든요.”

나는 괜히 노우민의 팔뚝을 툭 쳤다.

“내 얼굴만 보고 있냐? 일이나 더 빡세게 해 인마.”

“제 입으로 이런 말씀드리긴 좀 그렇지만…… 열심히 하고 있지 않습니까?”

“뭐…… 그렇긴 하지. 우수한 직원이지.”

“아, 그걸 또 그렇게 받으시면 민망한데.”

노우민은 멋쩍게 웃다가 말했다.

“아무튼…… 대표님의 건강상담은 의미가 깊다고 생각해요.”

“그래?”

“네. 무엇보다 말이 힘을 가지잖아요.”

“그건 무슨 뜻이냐?”

“대표님께서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알려주실 때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아예 모르지는 않는…… 그런 건강 관리법을 말씀해 주실 때도 있잖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다들 잘 아는 민간요법인 경우도 많고. 요즘이야 정보를 떠먹여주는 시대 아니냐. 인터넷에 검색해도 나오고, 아이튜브로도 볼 수 있고, 각종 건강 프로그램에…….”

“그런데 그게 실천이 쉽지가 않잖아요. 그냥 또 온갖 건 몸에 다 좋다고 떠든다고 무시하기도 하고. 근데 대표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사람들이 잘 따르잖아요. 실제로 해보고 효과를 보고요.”

노우민은 눈을 크게 뜨고는 말을 이었다.

“행복 건강즙에서 한창 즙 나갈 때도, 사람들이 진짜 어디 좋아졌다고 와서는 막 얘기하고 가고…… 그랬던 것들이 기억나서요. 하면 되는 거잖아요.”

할아버지가 전수해 준 능력의 영향도 있었다. 나를 거친 것들은 분명히 효과가 증대됐으니까.

“그랬지.”

“사람들은 생각보다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말이야. 본인들도 알고 있는 건데, 남의 입을 통해서 확인해야만 안심하는 경우가 많지. 덕분에 나를 의지하면서 건강상담을 받으러 오는 경우도 있고.

“오해는 마세요. 대표님께서는 진짜 전문가시니까.”

“전문가는 아니지. 그냥 잡다하게 많이 알고 있을 뿐이야. 그래서 아는 부분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너무 겸손하시지만 말고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 아니겠냐.”

“스스로 잘 익은 벼라고 인정은 하시는 거네요.”

“쌔끼, 아주 이빨만 늘어가지고.”

그렇게 잠시 손님이 없는 사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리랑 김밥도 무사히 자리를 잡을 듯했다.

생각보다 빨랐다.

자리를 완전히 잡을 때까지 일을 도우면서 노우민을 도울 직원을 뽑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에는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11

오후 7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퇴근길에 김밥을 구입하는 손님들이 제법 몰려들었다.

아침, 점심, 저녁 매출이 비슷했다. 저녁은 아직 팔고 있으니 더 두고 봐야 했지만, 지금 추세라면 비슷할 것으로 보였다.

아침의 경우 건강상담을 위해서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며칠 더 지나봐야 통계가 나오겠지만.

사실상 오늘이 정식 오픈.

고작 하루 제대로 장사한 것으로 매출을 가늠할 수는 없었다.

또 첫 3개월, 그 다음 3개월, 그 다음의 6개월은 또 다른 법이었고.

손님들이 몰려들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한 번 쭉 빠진 다음 회복하기란 훨씬 더 어려운 법.

일정한 퀄리티 그리고 또 찾아오게 할 이유를 확실하게 만들어야 했다.

오후 8시가 조금 넘었다. 확실히 손님들의 발길이 확 줄었다. 분명히 대도시였고, 번화가에서도 가까웠다.

하지만 서울 한복판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앞으로 영업은 오후 8시까지만 하자. 오늘만 9시까지 하고.”

“그렇게 해도 될까요?”

“손님 몇 명 더 받자고 여기 있는 것보다 충분히 쉬고, 내일을 준비하는 게 낫다고 본다.”

“알겠습니다.”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영업하자. 중간에 오후 2시부터 5시까지는 브레이크 타임으로 하고.”

“바로 정하시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식 오픈은 오늘이어도 유동인구는 충분히 봤잖아. 중간에 3시간은 쉬어도 돼. 오후 장사 준비도 좀 더 해도 되고. 그리고 처음에는 직원 1명 쓰고, 나중에 여유 좀 더 붙으면 추가로 아르바이트생도 하나 쓰고.”

“2명이나요?”

“너는 재료 손질이랑 메뉴 개발, 전체적인 관리에 더 신경 쓰면 되지. 네가 아닌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은 어차피 혼자서 감당 못하니까, 네가 없는 시간에 가게 맡을 사람을 구한다고 보면 되지.”

“그럼 저한테 여기를 맡기는 의미가 없으시지 않아요?”

“그렇게 한다고 누가 놀래? 너도 나와서 일해야지. 2명 쓰는 건 그만큼 잘 될 때의 얘기야. 또 다른 무언가를 더 준비하려고 할 때고. 중간중간 가게 들러서 직원이랑 아르바이트생 풀어지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해.”

“네, 네.”

“이건 네가 처음부터 길을 잘 잡아야 한다. 내가 없을 때는 네가 여기 사장이나 다름없잖냐.”

“점장이죠.”

“그러니까.”

나는 손짓을 하며 말을 이었다.

“사장이 같이 일하는 가게가 돼야 해. 그게 아니고 그냥 종종 들러서 얼굴 비추면서 훑고 다니면 그냥 눈치 주는 거밖에 안 돼.”

“저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요.”

아차 싶었다.

나는 이내 피식 웃었다.

“그러게, 나는 일 다 맡겼었지.”

“하지만 무슨 말씀인지 알았어요. 대표님께서 그러시는 건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됐거든요. 오히려 매장에 계속 나와 계시면 그게 이상했을 거 같아요. 그럴 시간이 없으신 분이니까. 여러 매장들을 운영하셨으니까요.”

“뭐…… 알아들었으면 됐다.”

오후 8시 44분.

슬슬 가게 문을 닫을 준비를 하려고 하는데, 멀리서 여자 3명이 다가왔다. 2명은 익숙한 얼굴이었다.

가비와 소피였다. 두 사람은 얼굴에 미소를 한껏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그 옆에 함께 오고 있는 빼빼마른 체구의 한 여자는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나는 일단 웃으며 세 사람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가비가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오늘 장사는 어땠어요?”

“나쁘지 않았죠.”

“확실해요? 아침에 지나가다 보니까 줄 엄청 길던데.”

“그걸 봤어요?”

“네, 김밥이라는 게 너무 맛있어서 몇 줄 사려고 했는데 줄이 너무 길어서 포기했죠. 마지막 근무에 지각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마지막 근무요?”

가비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때 제가 일하던 곳 사장 얘기했던 거 생각나요?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닌데, 좀 치사하고 쪼잔하게 구는 면이 있다고.”

“그랬었죠.”

“한바탕 했거든요. 그래서 대판 싸우고 나왔어요.”

“무슨 일 있었어요?”

“팁 가지고 지랄을 해서…….”

그녀는 아차 싶은 듯 눈을 크게 뜨며 입을 가렸다. 그러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 실수. 벌써 너무 편해졌나 봐요.”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사장이랑 팁으로 싸울 일이 있어요?”

“저도 다른 웨이트리스랑도 아니고, 사장이랑 팁으로 싸울 일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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