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47화
30. 한인 (7)
길게 줄을 잇고 있던 손님들이 다 끝났을 때였다.
그제야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던 손님들이 내게로 몰려들었다.
“같이 사진 한 장 찍어주세요.”
가장 앞으로 다가온 여자가 휴대폰을 손에 꼭 쥐고 말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8명.
요즘 세상에, 내가 할리우드 스타도 아닌데 같이 사진을 찍자고 이렇게 기다리나?
조금 당황스럽지만 당연히 웃는 얼굴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
2번째 손님과 마주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아마도 대학생.
나는 자연스레 함께 사진을 찍어줄 준비를 했는데, 남자가 머쓱하게 웃으며 물었다.
“저, 대표님… 혹시…….”
“예, 말씀하세요.”
“건강상담을 받을 수 있을까요?”
조금도 예상치 못한 질문에 눈을 살짝 크게 떴더니, 남자는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말했다.
“갑자기 이런 부탁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예전에 관련 기사도 보고 했었거든요. 무료로 건강상담을 해주시고, 좋은 일도 많이 하시는 거 보고 혹시나 해서 여쭤봤습니다.”
그는 나의 눈치를 살피며 침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시다시피 미국은 의료비가 너무 비싸서 병원에 가는 게 좀 많이 부담되거든요. 바로바로 진료를 볼 수 있는 곳들은 진짜 질이 낮은 편이고요. 그래서, 혹시나 해서…….”
“당연히 해드려야죠. 제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당연히 해드릴 수 있습니다.”
나는 씩 웃어 보였다.
남자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말인가요?”
“네, 정말로요.”
“감사합니다. 미국은 진짜 의료 수준이 굉장히 높기는 한데, 솔직히 보통 사람들은 진료 보는 게 무서울 정도거든요. 진짜 그냥 감기 걸려도 타이레놀, 배가 아파도 타이레놀, 암이 걸려도 타이레놀이에요.”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디가 불편하신지 봐드릴게요.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네, 네.”
나는 다른 손님들을 향해 물었다.
“혹시 지금 줄 서서 기다리고 계시는 분들 중에 저랑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리시는 분?”
그러다 한 여자가 손을 들었다.
“저요.”
“얼른 이리 오세요. 찍어드릴게.”
“근데 건강상담도 받고 싶어요.”
“앗, 그럼 기다리세요.”
나는 다시 모두를 훑어보며 물었다.
“전부 건강상담을 받고 싶으신 건가요?”
다들 그랬다.
내가 이곳에 김밥집을 열었다는 게 한인들 사이에서 소문이 돈 듯했고, 바로 몰려온 것이었다.
나를 맹신한다기보다는 의료비를 아껴보고자 하거나, 그래도 한국에서 나름대로 유명한 사람이 왔다고 하니 반쯤은 호기심으로 찾아온 듯한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가장 먼저 줄을 서 있던 남자부터 마주앉아서 건강상담을 해줬다.
“특별히 걱정되는 부분이나, 신경 쓰이는 게 있나요?”
내 능력은 여전했다.
얼굴만 봐도 특별히 도드라지는 증세가 있다면 바로 보였다. 특히 만성적인 질환이거나 위중한 건 100%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모양새를 위해서, 좀 더 성의 있는 모습을 위해서 굳이 물어보는 과정을 거쳤다.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제가 목이 자주 아파요.”
“목이요?”
“예.”
그의 목에도 이상이 있긴 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목이 아니었다.
“목이 어떻게 아프신데요?”
“잔기침도 자꾸 나오고, 쓰리고 그래요. 그리고 가슴도 좀 답답하고 그래서 걱정이 많이 돼요. 혹시 폐에 이상이 있거나 한 건 아니겠죠?”
“폐가 걱정되는 뭔가를 하시나요?”
“제가 흡연을 해서요…….”
나는 남자와 눈을 마주치며 빙그레 웃었다.
“그게 걱정되는데 담배를 피우면 안 되지 않을까요?”
“그건 그런데… 끊기가 어려워서…….”
“가능하면 단박에 끊으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그래야 끊을 수 있어요. 줄여가면서 끊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 한 번에 끊으시는 경우가 많죠. 특정한 계기를 겪으면서 굳은 결심을 하곤 하는데요.”
대부분 금연의 사유는 공포다. 아픔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
“대부분 본인이 건강에 이상을 느끼거나, 주변 사람이 아픈 걸 보고 그러죠.”
“그런… 가요.”
“예. 지금까지 주변에서 끊으라고 해도 못 끊으셨잖아요. 그쵸?”
“그렇긴 하죠.”
“이번 기회에 끊으세요. 어쨌든 본인의 선택으로 비싼 돈까지 쓰면서 피운다는 건 기분 좋으려고 피우는 거잖아요? 그렇죠? 스트레스도 풀고, 습관도 됐고.”
“네, 맞아요.”
“그렇게 돈 주고 걱정하면서 피울 가치가 있을까요?”
남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끊기 어렵고… 안 피우면 집중도 잘 안 되고…….”
“그것도 금방 적응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담배 피우신 거 아니잖아요? 그전에도 할 거 다 했잖아요. 그렇게 겁내면서 태우실 거면 끊으세요.”
“노력해보겠습니다.”
“처음부터 연초를 끊는 게 힘들면 대체품을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전자담배로 해보시는 건 어떻겠어요?”
“전자담배요?”
“예. 당연히 아예 안 피우는 것보다는 나쁘겠지만, 연초보다는 훨씬 낫다고 봅니다.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는 건 액상형이에요. 그건 증기잖아요? 불에 태우는 연기를 마시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봅니다. 가능하면 끊으시는 걸 권장하지만, 어려우시면 대체품을 쓰는 게 조금 나을 수 있다는 거예요.”
나는 종이에 관련된 내용을 간략히 적으며 말을 이었다.
“아직까지 일부 불량품을 멋대로 사용한 경우들 말고, 제대로 된 제품을 사용했을 시 인체에 미치는 악영향을 제대로 나온 바가 없기도 하고요. 물론, 니코틴의 과용은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자제하셔야 하고요.”
“네, 네. 그럼 오늘부터라도 전자담배로 갈아타서 참아보겠습니다.”
“예, 그러다 전자담배도 끊으셔야 하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 괜찮은 건가요? 뭔가 흡연 때문에 혼나다가 전자담배 추천만 받은 거 같아서…….”
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아직 끝이 아닙니다. 그거 아세요? 지금 목 아프고, 가슴 답답한 거, 담배 때문에 그런 거 맞습니다.”
순간 남자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지, 진짜 폐에 문제가 있는 걸까요?”
“잠시만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의 등 쪽을 두드렸다. 정확히는 광배근의 바깥쪽.
퉁퉁.
가볍게 두드린 뒤 물었다.
“아프세요?”
“아니요, 딱히요.”
“괜찮으시고…… 실례 좀 하겠습니다.”
나는 그의 상의 뒷자락을 잡고 물었다.
“좀 걷어도 되겠습니까?”
건강상담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기에 남자는 조금 망설이는 듯하다가 말했다.
“네, 네.”
나는 남자의 상의 뒤쪽을 걷었다.
“제가 귀를 가져다 댈 건데, 당황하지 마세요. 청진기가 없어서 그런 거니까.”
“네, 네.”
딱히 달갑지는 않았다. 남자의 맨살에 얼굴을 대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그래도 치료의 일환이니까.
나는 남자의 등에 귀를 댄 채로 말했다.
“자, 숨 깊게 들이마시고, 길게 내쉬고 반복해보세요.”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청진기만큼 정확할 수는 없지만, 남자의 상태를 판단하기에는 충분했다. 어차피 폐에 문제가 없다는 사실 정도는 얼굴만 봤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나는 남자의 등에서 귀를 떼고는 옷을 내려준 뒤,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자… 일단 숨소리는 괜찮으세요. 폐에 이상이 있을 확률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 정말입니까?”
“예.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럼 목 아프고 가슴 답답하고 그런 건 대체 왜…….”
“역류성 식도염입니다.”
“역류성 식도염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네. 혹시 밤에 자기 전에 뭐 드시고 그런 경우 많으신가요? 매운 음식이나.”
“아니요, 딱히요. 가끔 그럴 때가 있긴 한데… 자주는 아니에요.”
“일단 자기 3시간 전에는 물 외에 아무것도 드시지 마세요. 이거 중요합니다.”
“네, 네.”
“그리고 결정적인 이유는 담배입니다. 담배 많이 피우면 좀 헛구역질 나오고 역겨울 때 있죠?”
“네, 가끔 연달아서 피우면…….”
“담배가 폐에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신체 전체에 부담을 줍니다. 그러니까 담배는 꼭 끊으셔야 합니다. 지금 목이 아픈 것도 위산이 역류하면서 생기는 증상이고, 그에 따라 가슴도 답답한 느낌이 들고 그러는 거예요.”
“아…….”
“그러니 담배만 안 피우시면 증상이 상당히 완화될 겁니다. 그래도 관리는 좀 해야겠죠.”
나는 종이에 남자가 지켜야 할 것들을 적으며 말을 이었다.
“물 충분히 드셔주세요. 한 번에 많이 마시는 게 아니라, 적당히 자주 마시는 게 좋습니다. 당분간은 식사 30분 전과 식사 30분 후에는 물을 조금 자제해주시고요. 매운 음식, 짠 음식, 튀긴 음식도 자제하세요.”
“네, 네.”
“과식도 자제하시고요. 그렇다고 너무 안 드셔도 문제가 됩니다. 금식이 필요한 상태는 아니거든요. 오늘 하루는 가장 베스트가 따뜻한 차만 좀 드시다가 이른 저녁에 미음이나 흰죽 같은 것만 조금 드시면 제일 좋아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역류성 식도염에 가장 좋은 것 하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위 건강에 정말 좋고, 그 외에도 효과가 많으니 꼭 챙겨드셔야 할 식품입니다.”
“그게 뭔가요?”
“양배춥니다.”
“양배추요?”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 보였다.
“네, 생 양배추 있죠? 양배추만 잘 챙겨 드셔도 속이 금방 편해집니다. 생강도 좋은 편이고요. 여기서 흔한 다른 것 중에서는 레몬밤 정도가 있겠네요. 그래도 저는 양배추를 가장 추천하는 편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한국이었으면 양배추즙으로 챙겨서 드셔도 괜찮은데, 이쪽은 어떤지 잘 모르겠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걱정 많이 했는데 마음이 편해졌어요.”
“역류성 식도염도 우습게보시면 안 됩니다. 당장 생명에 직결되는 문제는 아니어도 만성이 되면 삶의 질이 상당히 떨어져요. 다른 질환들을 유발할 수도 있고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관리하세요. 담배 꼭 끊으시고요.”
“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가볍게 웃다가 물었다.
“제가 농담 같지만, 진심으로 한마디 해도 될까요? 이렇게 건강상담을 해주는 사람과 손님 사이 말고, 동네 형쯤의 입장에서요.”
“네? 아, 네. 말씀하세요.”
“뼈 삭아 인마, 담배 끊어.”
남자는 생각지 못했는지 눈을 휘둥그레 떴다가 이내 빵 터졌다. 그는 한참을 웃다가 말했다.
“진짜 그런 말씀을 하실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네요.”
나도 낄낄 웃었다.
“웃으면서 말씀드리지만, 진짜 중요한 거예요. 알았죠?”
“네, 오늘부터 바로 금연하겠습니다. 전자담배는 피울 거라서 완전한 금연은 아니지만… 그래도 노력하겠습니다.”
“그래요, 잘 생각했어요.”
“그럼 또 오겠습니다. 김밥 진짜 맛있었어요.”
남자가 양손의 엄지를 들어 보였다.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였다.
“네, 조심히 들어가요.”
자리에서 일어나는 남자를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제가 감사합니다.’
건강상담을 할 때가 가장 행복했다.
가능하면 이것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