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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146화 (146/174)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46화

30. 한인 (6)

8

“예?”

두 귀로 똑똑히 들었지만,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남자는 내가 조였던 복부를 문지르며 씩 웃었다.

“이번에 교회 사람들끼리 모여서 놀러 가는데, 가는 길에 김밥 같은 거 먹으면 좋겠다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마침 김밥을 하신다니까.”

“날짜만 미리 말씀해 주시면 준비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하임리히로 응급처치를 하던 상황에서 어느새 김밥 얘기로 넘어가고 있었다.

자연스레 깜짝 놀라 몰려들었던 사람들도 피식피식 웃으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남자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이야.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네요. 미국 땅에서 강건희 대표님이 목숨을 구해주지를 않나, 새로 시작하는 사업이 딱 맞아 떨어지고……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신 듯합니다.”

“하하하, 그럴 수도 있겠네요.”

갑자기 종교적인 얘기로 훅 들어와서 조금 당황했지만 웃어 넘겼다.

나는 아직까지도 특정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어떤 종교도 부정하지 않는다. 사후세계를 알게 됐으니 어찌 부정하겠는가.

종교들은 결국 같은 가르침을 전한다.

나는 ‘깨닫고, 선하게 살며, 사랑으로 가득한 것’이 본질이라고 여긴다.

남자의 딸이 인상을 찡그리며 핀잔을 줬다.

“뭐만 하면 다 하나님이, 하나님이.”

남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확 굳었다. 조금 전에 툴툴 거리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진심으로 화가 나 보였다.

“뭐라고 그랬어? 너 요즘 교회도 잘 안 나가고. 신앙이 그렇게 흐려져선 안 돼. 알아?”

“내가 언제 그걸로 뭐라고 했어? 아무한테나 그러지 말라는 거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어.”

“하나님 얘기를 하는데 왜 싫어해?”

“아휴……. 그건 아빠 기준이고.”

“참나. 내 참……!”

나는 씩 웃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버님.”

“네, 네? 예, 대표님.”

“예수님께서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따님은 더 아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남자는 조금 당황한 듯 헛기침을 했다.

“험험, 그렇죠. 그래도 요즘 우리 딸이 교회도 열심히 안 나가는 거 같고 그래서 마음에 안 들었는데…….”

그는 다시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말했다.

“어디 하나님 얘기를 하지 말라는 둥 그런 소리를 해? 너 또 교회 빠지기만 해.”

여자는 질색을 하며 말했다.

“내가 애야?”

“그럼, 아직 애지.”

“내가 무슨 학생도 아닌데 그런 것까지 컨트롤을 해. 그리고 내가 무슨 신앙생활을 안 했어? 집에서 성경공부도 하고, 기도도 자주 드려. 자꾸 무슨 교회 안 나간다고 뭐라 그러고.”

“당연히 예배드리는 게 제일 중요하지. 교회를 안 나가는 게 어떻게 기독교인이야? 무늬만 기독교인인 거야 그건. 응? 척만 하는 거라고.”

“교회 나가서 꼭 사람들이랑 우르르 몰려다녀야 교인인 건 아니지.”

남자가 갑자기 나를 끌어들였다.

“대표님, 대표님도 교인이시죠? 제 딸이 하는 말씀 들으셨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난처함에 절로 웃음이 흘렀다. 하지만 애초에 한 번 끼어들었으니 그냥 슥 빠질 수는 없었다.

“우선…… 제 종교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겠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을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예, 말씀해주십쇼.”

“참…… 정치 얘기나 종교 얘기는 어디 가서 함부로 하는 게 아닌데…….”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말했다.

“이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장소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예배나 교회에 부정적인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니니 오해하지는 마시고요. 다른 방법도 있다는 거죠.”

“무슨 방법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얘기를 잘 해야 됐다. 자칫 잘못하면 김밥 200줄이 날아갔다. 사실 김밥 200줄, 내 입장에서는 팔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하지만 다음에도, 다다음에도 200줄을 팔 수 있는 기회까지 함께 날리는 거였다. 그리고 200줄을 구입하면 그걸 먹어본 손님들이 따로 찾아올 수도 있었다.

남자가 성직에 업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닌 듯했지만, 교회에서 직책을 맡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미국의 한인 사회는 한인 교회를 중심으로 굴러간다는 말이 반 농담처럼 있는데,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인 것은 분명하다.

신앙심이 없는데도 자리를 잡기 위해 일부러 교회에 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할 정도니까.

가능한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내 사업 그리고 노우민을 위해서.

“성전이라는 게 꼭 건물인 건 아니잖습니까.”

“흠…….”

남자는 조금 놀란 듯 눈을 살짝 크게 떴다가 금세 근엄한 얼굴을 하고는 아랫입술을 내밀었다.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예수님은 언제나 지켜보고 계시고, 신자와 함께하시지 않습니까? 진심으로 기도를 드리는 곳이 있다면 그곳이 교회 아니겠습니까. 자신 스스로가 교회가 되고, 예수님이 함께하신다면 그것으로 된 거 아니겠어요?”

내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던 생각과 지식은 아니었다. 할아버지에게 2번째로 능력을 전수 받으면서 받은 영향인 듯했다.

영어를 한국어처럼 할 수 있게 된 것처럼 여러 가지 지식들이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

남자는 조금 떫은 얼굴로 말했다.

“저는 그래도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는 게 올바른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일요일 하루만이라도, 교회에 나가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기간 신념을 가지고 믿어온 게 있을 터.

조금 전에 처음 본 내가 뭐라고 떠든다고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니, 애초에 사람이 누군가로 인해 바뀌던가.

스스로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다.

더군다나 종교의 영역은 함부로 입을 놀릴 분야가 아니기도 하고.

그래서 더 조심스레 말하긴 했지만.

“그런데요.”

남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거리며 말했다.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교인이면 교회에 나가야 하는 건 맞지만, 불가피하게 그래야 할 때가 있을 수도 있고요. 성경의 말씀대로 살고, 진짜 믿음이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러셨잖습니까,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고요.”

“하하, 맞습니다. 그러셨죠.”

그는 웃다가 천천히 여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뭐…… 네 뜻이 그러하다면 그렇게 해라. 그래도 교회를 너무 그런 시선으로만 바라보지 마. 어디를 가나 잘못된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야. 거기 휘둘릴 필요 없다.”

“아빠가 할 소리야? 맨날 교회 사람들 챙기느라 정신없으면서.”

“좋은 분들이니까 그렇지. 너도 학교생활하고 일도 하고 하면서 겪어봤으니 알 거 아니냐? 다 사람마다 다른 거야.”

“알았어.”

“그래.”

남자는 여자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아이고…… 이거 참, 별 얘기를 다 하게 됐네요.”

“원래 말이라는 게 꼬리에 꼬리를 물잖습니까.”

“역시나 강 대표님은 뭐가 달라고 다르네요.”

“저라고 뭐가 다르겠습니까, 다 똑같은 사람인데.”

“다른 건 몰라도 성품이 훌륭하신 건 보였습니다. 너무 조심스럽게, 부드럽게 말씀하시니 성질 내고 있던 제가 부끄럽더군요. 그것도 생명의 은인 앞에서 말이죠.”

그는 머쓱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게다가 처음에 대표님하고 얘기하면서도…… 참. 저부터 반성하고 변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살려주셨는데 감사해야죠. 다른 것도 감사하고요.”

여차저차 말 몇 마디를 더 나누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남자는 그 자리에서 김밥 200줄을 예약했다. 나는 직접 와서 맛도 보고, 메뉴를 보고 결정하라고 했지만 남자는 무조건 주문하겠다고.

결과적으로 잘 풀린 셈이었다.

자리로 돌아왔을 때는 정인혜와 노우민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표정들이 왜들 그러시나?”

내가 말하자 정인혜가 웃으며 입을 뗐다.

“삼겹살집에서 김밥 파는 사람은 세상에 대표님밖에 없을 거예요.”

“아니, 뭐…… 그런 의도가 있던 건 아니었어요. 어쩌다 그렇게 된 거지.”

“아무튼 멋있었어요. 대단했고요. 실제로 하임리히로 사람 구하는 거 처음 봤어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잖아요.”

“그걸 행동으로 옮긴다는 게 쉬운 건 아니죠.”

“하하, 별 말씀을…….”

나는 노우민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넌 왜 그렇게 쳐다보냐?”

“대표님.”

“엉?”

“교회 다니세요?”

“넌 나를 하루 이틀 본 것도 아닌데 그걸 이제 와서 물어? 나 교회 가는 거 본 적 있냐?”

“없죠.”

“그런데 뭘 물어봐. 그리고 정치나 종교 얘기는 하는 거 아니야.”

노우민은 멋쩍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너무 잘 아시길래 그냥 신기해서요. 분명히 교회 다니시는 흔적을 본 적이 없는데 그렇게 말씀하시길래.”

“뭘 잘 알아. 내가 몇 마디나 했다고. 아무튼 먹던 거나 마저 먹자.”

중간에 흐름이 깨져서인지 식사 자리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내일이야말로 정식 오픈.

들어가서 푹 쉬고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거라 여겼다.

9

출근하는 길.

“대표님…….”

노우민이 가게 쪽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어…….”

“저거 저희 가게에 줄 선 거 맞죠?”

“그런 거 같은데……?”

가게 앞에 최소 30명 이상이 줄을 서 있었다. 대부분이 한국인으로 보였다. 미국인들도 5, 6명 정도는 있었고.

우리는 걸음을 서둘러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가장 앞줄에 서 있는 20대 초반의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영어로 물었다.

“지금 바로 돼요?”

밥은 어제 예약을 해두고 나갔기에 준비돼 있었다. 하지만 재료 손질을 할 시간이 필요했다.

“20분 정도는 기다리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여자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최대한 빨리 좀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나는 씩 웃어 보였다.

미리 와서 기다린 손님들을 위해 노우민에게만 일을 맡기지 않았다. 우리는 바로 재료 손질을 하며 준비를 시작했다.

나와 노우민이 최대한 빠른 속도로 김밥을 말아대니 줄은 빠른 속도로 줄었다. 가장 번거로운 부분은 매번 장갑을 벗고 계산을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카드나 돈을 만진 뒤에는 어김없이 손을 씻거나 소독을 한 뒤 다시 장갑을 꼈다.

나중에 노우민이 혼자 장사를 하면 이 같은 문제는 더 커질 게 분명했다.

아리랑 김밥의 규모에 계산대만 맡을 직원을 뽑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지금 내가 있으니 괜찮았다. 아직 며칠 더 두고 봐야 했다. 매일 이렇게까지 줄이 길게 이어지지는 않을 거라 생각됐다.

그나저나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설 줄이야.

7, 80%가 한국인인 것으로 봐서는 이유가 뻔해 보였다.

어제 그 남자가 홍보해 준 거겠지.

그나저나 아침부터 이렇게 줄이 길어지게 할 정도라니, 발이 얼마나 넓은 걸까.

문득 남자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장사에만 집중했다.

김밥을 말고 팔고를 반복하던 중에 이상한 점이 있었다.

아침 시간이었는데 몇몇 사람들이 김밥을 받고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몇몇은 아예 가게 내부에 자리를 잡았는데, 식사를 마치고도 자리를 지키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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