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144화 (144/174)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44화

30. 한인 (4)

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여자가 눈을 빠르게 깜빡거리며 고개까지 떨었다.

“어머! 어머! 어머! 말하는 것 좀 봐.”

“손님 기분 나쁘시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저희는 이미 손해를 감수하면서 가게를 알리기 위해 이렇게 이벤트를 하고 있는 겁니다.”

“누가 그걸 모른대요? 그거 도와준다고, 저 혼자 먹는 것도 아니고 1줄만 더 달라는 거잖아요. 다른 사람들도 없는데, 융통성이 있어야죠. 홍보를 해준다는데.”

“세상에 비밀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도 마음 같아서는 1줄이 뭡니까, 10줄이라도 더 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희도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잖습니까. 그냥 정상가로 판매하는 것들도 마진 거의 안 남기고, 건강한 식품 저렴하게 제공해드리고 있는 겁니다.”

“김밥 1줄에 5달러씩 하는데 그게 뭐가 저렴해요. 충분히 비싸구만.”

속에서 끓어오르는 것을 애써 누르며 말했다.

“손님께서도 잘 알고 계시잖습니까. 저희 김밥에 들어가는 재료들 따로 마트에서 구입하셔도 상당합니다. 농수산물은 한국보다 저렴한 미국에서조차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듭니다.”

“아무튼 그래서, 이거 고작 김밥 1줄 더 못 주겠다는 거예요?”

“손님께 그냥 드리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그거 5달러 덜 번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고요. 제가 손님에게 1줄 더 드리지 않는 건 다른 손님들을 기만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눈썹을 바삐 위아래로 움직였다.

“무슨 기만까지 나와요?”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러니 결정하십시오. 1줄은 그냥 두고 가시거나, 계산을 하셔야 합니다.”

“아니, 참…… 고작 김밥 1줄 이게 뭐라고 그렇게까지 그래요?”

“고작이 아닙니다. 생계와 꿈이 걸린 겁니다.”

“참나…….”

여자가 김밥을 꺼내 신경질적으로 툭 놨다.

“됐어요, 그럼. 안 먹어요.”

그녀는 그대로 구시렁거리며 몸을 돌렸다.

“사람이 장사를 하려면 융통성이 있어야지, 저래서야 원…….”

놓고 간 김밥은 1줄뿐이었다.

노우민은 멀어져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저러면서 가져갈 건 또 가져가네요.”

“그러게 말이다.”

“참……. 별의별 사람이 다 있네요.”

“잊었냐? 내가 지금까지 겪었던 것들을 생각해봐라. 저런 사람은 약과지. 화낼 필요도 없어. 사과할 필요도 없고. 그냥 단호하게 굴어. 저자세로 나가지 마. 손님이 왕이라는 건, 손님답게 굴 때다.”

“네, 알겠습니다.”

노우민은 뭔가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표정이 왜 그래?”

“저 아줌마가 이상한 소문내고 그럴까 봐요. 저희가 불친절하다느니, 어떻다느니…….”

“그럴 수도 있겠지. 아마 스타일상 그럴 거야.”

“괜찮을까요?”

“뭐…… 좋은 일은 아니지만, 아마 한인 타운 쪽 사는 사람 아니겠어? 우리가 겨냥하는 손님들이 그쪽에 몰려 있는 것도 아니고, 별로 큰 영향을 주진 못할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라.”

나는 노우민의 등을 탁탁 쳤다.

“세상에 별의별 이상한 사람들이 많은데, 예전에는 나도 그런 사람들 생각만 해도 참 화가 많이 나고 그랬거든? 어떻게든 엿을 먹이고 싶기도 했고.”

노우민이 조금 놀란 듯 나를 쳐다봤다.

나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그냥 가엾게 생각해. 이까짓 일로 화를 내고 저렇게 받아들이지를 못하잖아. 사는 게 얼마나 피곤하겠냐? 뭐만 해도 화가 날 텐데. 그러니까 그냥 가엾게 생각해라.”

“네……!”

나는 여자가 놓고 간 김밥을 집어 들었다.

“이건 못 파는 거니까 우리가 먹자.”

노우민이 피식 웃었다.

“왜 웃냐?”

“저 김밥 엄청 좋아하거든요?”

“그럼 잘됐네.”

“그리고 거짓말이 아니라 저희가 만드는 김밥이 정말 세상에서 제일 맛있더라고요. 제 입맛에는 그래요. 대표님하고 맛집들도 여러 군데 다녀봤잖아요. 그래서 미국에 올 자신감도 더 있었고요.”

“왜 이렇게 서론이 길어?”

내가 웃으며 묻자 노우민은 더 크게 웃었다.

“그런 제가 김밥이 질릴 줄은 몰랐어요.”

“먹기 싫냐?”

“아뇨, 먹으면 먹죠. 여전히 맛도 괜찮고요. 그런데도 제가 김밥이 질릴 줄은 몰랐어요.”

“이제 신제품 만들 때 외에는 김밥 먹을 일이 없어야지.”

“예?”

“다 팔아버려서 남는 게 없으면 또 먹을 일도 없잖냐.”

“아, 맞네요. 그러게요.”

나와 노우민은 김밥 1줄을 나눠먹기 시작했다.

“아, 내가 너한테 못한 얘기가 있다.”

“네? 어떤 거요?”

“깜빡했어.”

“말씀하세요.”

“너희 어머니께서 꿈에 나왔다.”

일순 노우민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내 녀석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해?”

“꿈이라는 게 뭐…… 무의식이라는 말도 있고, 자기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나 어떤 뭐…… 그런 것들 있잖아요.”

나는 피식 코웃음을 쳤다.

“네가 정리는 제대로 못했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네, 네. 아시죠?”

“근데,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예?”

“꿈이라는 건…… 뭐 네 말대로 그냥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으면 그거에 관해 꾸는 경우도 있고, 그냥 개꿈도 있고, 무의식에 깔려 있던 게 뒤섞여서 발현될 수도 있고…… 그런 건 맞지.”

나는 노우민과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진짜 영적인 세계와 연관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노우민이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표정을 지었다.

나는 녀석의 표정 변화를 캐치하고는 웃으며 물었다.

“너 지금 내가 사이비 같은 건가, 미국에 잘못 온 건가, 하고 생각하지?”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런 차원이 아니야. 너는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된다고 생각하냐? 그냥 무로 돌아간다고 생각해?”

“글쎄요…….”

“그거에 대해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야. 종교에 따라서도 갈릴 거고. 그치?”

“그렇죠.”

나는 눈썹을 한 번 들썩인 뒤 말했다.

“나도 뭐라고 확신할 수는 없어. 어떤 종교적인 얘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야. 하지만 임사체험이라든가, 간증이라든가, 진실여부는 알 수 없지만 수많은 얘기들이 나오잖아.”

“네, 네.”

“나는 사후세계가 있다고 믿어.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가족들을 다시 재회할 거라고 생각한다. 네 어머니께서도 기다리고 계실 거다. 언제나 너랑 형제들 전부 지켜보고 계실 거다.”

“……그러실까요.”

“그럼. 그리고 내 꿈에 나와서 말씀하신 게 너무 생생했거든.”

“뭐라고 하셨나요?”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여쭤봤지. 왜 아들 보러 안 가시고 나한테 먼저 오셨냐고. 그러니까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였대. 그게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애들 잘 지내고 있는 건 이미 지켜보고 있다고. 다들 생각 이상으로 너무 잘 지내줘서 고맙다고, 자기보다 훨씬 낫다고.”

노우민은 깜짝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문자 그대로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다.

“그거…… 진짜 저희 어머니께서 하실 법한 말씀이세요.”

“내가 말했잖아, 진짜로 어머니께서 꿈에 나오셨다니까.”

“또 뭐라고 하셨어요?”

“그냥 잘 부탁한다고 그러시더라. 그리고 계속 고맙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 그래서 나도 걱정 말라고 말씀드렸지. 나중에 너랑 다른 애들도 만나러 올 거라고, 그때까지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잘 지내고 있으래.”

“……더 열심히 살아야겠네요.”

내가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입가에는 웃음기를 묻히고 말했다.

“아, 맞다. 너희 어머니께서 그것도 말씀하셨다.”

“네? 어떤 거요?”

“너 옛날부터 고생만 했다고, 일만 하면서 살았다고. 재밌게 좀 살라고.”

나는 노우민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러니까 직원도 뽑고, 네 시간도 가지면서 살라는 거야. 매출 안 나와도 네 월급 보장해준다는 거고. 어머니께서 직접 오셔서 당부하셔가지고.”

“하하……. 그래도 제 월급도 못 챙길 정도로 매출이 안 나오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게 돼야지.”

“그리고 새로 직원 뽑는 부분은…… 물론, 대표님께서 결정하시는 거지만, 가능하면 우선 저한테 맡겨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손님들 오는 시간이랑 그런 거 봐서 많이 생각했는데요. 일단 아침부터 점심시간 때까지 그리고 저녁에만 오픈하는 방식으로 할까 해요. 거기서 낮 시간대에 안 해서 아쉬움을 표하는 손님들이 많아진다거나…… 뭐 여러 가지로 여유가 생기면 그때 직원을 고용해도 늦지 않을 거 같아요.”

“그럼 일단은 혼자 하겠다고?”

“예.”

노우민은 꽤나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서 내일부터 정식 장사를 할 때 가능하면 대표님께서는 지켜보시기만 하시게끔 해보려고요.”

“혼자 감당이 되는지 보겠다는 거지?”

“예. 제가 혼자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손님들이 몰려서 직원을 써야 되면 당연히 엄청 좋은 거고요.”

“그래, 네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보자.”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그렇게 마지막 오픈행사가 지나가고 있었다.

6

나름대로 입소문은 번진 듯했다.

오픈행사 마지막에 무료로 나간 김밥이 367줄.

즉, 367명이 왔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최소 40%, 최대 60%는 허수로 봤다.

한 번 오고 평생 오지 않을 사람들 그리고 가족이나 친구가 말해서 공짜 김밥을 받으러 온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

“어떻게…… 끝나긴 했네요.”

노우민은 후련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녀석의 등을 툭 치며 웃었다.

“이제 시작이야 인마, 다 끝난 것처럼 그러지 마.”

“네, 네. 그럼요.”

“그럼…… 오늘 저녁은 회식할까?”

“회식이요?”

“어, 코리아 타운 쪽 가서 삼겹살이나 먹을래?”

노우민이 눈을 번뜩였다.

“좋죠!”

“어? 이렇게까지 좋아할 줄은 몰랐는데.”

“뭐…… 미국 와서 딱히 양식만 먹고 그랬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완전 한국식 식사가 생각나긴 하더라고요. 그 식당에서 먹는 맛, 그맛 아시잖습니까.”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 알지. 삼겹살에 소주도 가볍게 한잔할래?”

“좋죠.”

“그래, 들어가서 일찍 자면 되니까.”

우리는 집에 들러서 씻은 다음 식사를 하러 가기로 했다.

나는 가기 전에 나도혜와 전화를 하려고 했는데, 시간대가 맞지 않아 문자로 만족해야 됐다.

틈만 나면 문자에 전화에 영상통화까지.

엄청 많은 나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은 나이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연애의 모양새가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내 멋대로 금수저들은, 소위 말하는 뭔가 유명세가 있는 사람들은 다르다고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나도혜가 맞춰주는 걸지도 모르지만.

“가시죠.”

씼고 옷을 갈아입은 노우민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 출발하자.”

그렇게 우리는 저녁식사를 하러 나갔다.

7

코리아 타운은 참으로 기묘한 곳이었다. 한국 같으면서도 한국 같지 않았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전부 한국인이라서 확실히 미국 같지도 않았지만.

우리는 꽤 유명하다는 삼겹살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평소의 나였다면 사실상 정식오픈인 내일을 앞두고 외식에 술을 먹으러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김현자가 꿈에서 나와 노우민이 고생만 하지 않기를 바란 게 머릿속에 강하게 남았다.

나는 짧으면 1개월, 길어야 3개월 안에 귀국할 예정이었다.

그때부터는 진짜 노우민 혼자서 아리랑 김밥을 운영해야 됐다.

내가 있을 때라도 녀석에게 여유를 주고 싶었다. 그나마 이곳에 와서 알게 된 정인혜가 노우민과 미묘한 사이로서 주기적으로 연락을 하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노우민이 완전히 혼자는 아니었으니까.

녀석이 메뉴를 이리저리 훑어보는 중이었다.

테이블 위의 휴대폰이 울렸다.

노우민의 것이었는데, 발신자는 정인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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