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41화
30. 한인 (1)
1
가게 안쪽의 자그마한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는 가비와 그녀의 친구가 자리했다.
노우민은 혼자서 이따금씩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김밥을 말아주는 중이었다.
가비의 친구는 자신을 소피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기대감이 피어오르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진짜 나아질 수 있어요?”
그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열심히 관리하신다면 확실히 좋아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일단 만성적인 것도 그렇지만, 감기부터 나아야겠죠?”
“네, 감기가 너무 안 떨어져요. 매번 타이레놀 먹는 것도 싫고.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일단 잘 자고, 잘 드셔야 합니다.”
나의 말에 소피의 가느다란 눈썹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거야 당연히…….”
“오늘 몇 시간이나 주무셨죠?”
“음… 한 6시간 조금 넘게 잔 거 같아요. 어제 늦게 자서…….”
“그쵸? 면역력에 가장 크게 관여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수면입니다. 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잠빚은 반드시 따라옵니다. 그러니까 매일 최소 7시간 이상은 주무세요. 8시간도 좋고요.”
소피는 어느새 표정이 풀어져서는 물었다.
“더 자도 돼요?”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9, 10시간씩 잘 수도 있겠죠. 하지만 몰아서 자는 습관은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뭐든지 지나치면 안 좋고요. 8시간이 가장 이상적인 수면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운동량이 많거나 피곤한 날에는 30분 정도 낮잠을 자면 좋고요.”
“그럼 제가 감기에 걸린 것도 잠이 부족해서일까요?”
“그것 하나만이 원인은 아니겠죠. 감기야 원인이 워낙 다양하니까요. 하지만 영향은 미쳤겠죠.”
나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말을 이었다.
“감기에는 평소보다 긴 수면 그리고 풍부한 영양 섭취가 필수입니다. 평소보다 비타민 섭취도 늘리고, 따뜻한 음식과 차가 도움이 많이 됩니다.”
“대충 알고는 있던 것들이네요.”
“하지만 실천은 하지 않으셨죠?”
“그러니까요…….”
소피는 무안한 듯 웃었다.
나도 함께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말했다.
“매일 허니레몬티를 한 잔씩 드시면 좋을 겁니다. 생강을 약간 추가해서 먹으면 효과가 더 좋고요.”
“아! 좋아해요!”
“잘 됐네요.”
나는 종이에 간단한 레시피를 적으며 말을 이었다.
“치킨 수프는 좋아하세요?”
“그냥… 자주 먹지는 않지만, 싫어하지도 않아요.”
“사람들이 감기에 걸렸을 때 괜히 치킨 수프를 먹는 게 아닙니다. 도움이 되니까 챙겨 드세요. 가능하면 인스턴트 말고 직접 해서요.”
“네, 네.”
“뭐…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인스턴트라도 먹는 게 좋고요. 치킨스톡(닭고기와 뼈, 여러 가지 채소를 푹 끓여 만든 국물)을 활용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소피는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사람들이 괜히 많이 먹는 게 아니었구나.”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죠?”
나는 소피가 미국인인 것을 고려해서 민간요법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실제로 치킨 수프나 치킨스톡, 레몬 등은 미국인들에게 아주 가까운 것들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사골 국물, 김치, 마늘을 얘기한 거나 다름없었다.
“가벼운 감기는 지금 말씀드린 것만 지키셔도 금방 나아질 겁니다.”
나는 소피와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어려운 건 만성적인 비염인데요.”
“코로 숨 쉴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이 역시 여기가 미국이고, 소피가 미국인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됐다. 대추나 감초, 수세미, 유근피나무 같은 것을 추천할 수는 없었으니까.
안타깝게도 소피의 비염이 한 방에 나을 무언가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위중한 병일 때는 기적적으로 깨끗이 치료될 민간요법이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는 그나마 효과가 있는 것들을 복합적으로, 최선을 다해 면역을 키우는 게 한계였다.
하지만 생명에 지장을 주지 않는 가벼운 질환들도 이러한 현상이 있을 수 있었다.
소피의 경우가 그랬다.
“일단 식염수로 코 세척하는 법 아세요?”
내가 묻자 소피는 질색을 했다.
“해본 적은 없지만, 본 적은 있어요.”
“요즘은 아이튜브 같은 데 찾아봐도 바로 나오죠? 가능하시면 따라해보시는 것도 좋을 겁니다.”
“그건… 고민 좀 해볼게요.”
“비염 개선을 위해서는 하셔야 될 겁니다.”
소피는 장난스레 징징거렸다.
“그럼 해야죠.”
“유산균 따로 챙겨드세요?”
“유산균이요? 아니요?”
“프로바이오틱스가 알레르기성 비염 증상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거든요. 꼭 비염 때문이 아니어도 도움이 되니 챙겨 드시는 걸 추천합니다.”
“네, 그거야 어렵지 않죠.”
“그리고 스피루리나도 도움이 될 거예요.”
소피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그래요? 전혀 몰랐어요.”
“스피루리나 역시 유산균처럼 다방면에서 몸에 도움이 되니 드시면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녹차도 좋고요.”
나는 벽과 테이블 등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청결하고 적당한 습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너무 건조해도, 습해도 안 좋아요. 본인의 관리도 중요하지만, 환경적으로도 신경을 쓰셔야 합니다.”
“네, 네. 이제 방법을 알았으니까 열심히 해볼게요.”
그때 가비가 실실 웃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효과 있는 거 확실해요?”
“관리를 하고 안 하고의 차이는 크죠.”
“그냥 한국 음식 사장님인 줄 알았는데 정말 독특하시네.”
“여러 일들을 하고 있죠.”
나는 장난스레 으스대듯 씩 웃어 보였다.
가비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지각하겠다!”
그녀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해요! 우리 빨리가야겠어요!”
나는 하하 웃었다.
“뭐가 미안해요, 얼른 가봐요.”
“조만간 또 올게요.
“네, 조심히 가요.”
소피도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는 서둘러 움직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갑자기 찾아와서는 갑자기 떠나갔다.
오랜만에 건강상담을 하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내 능력은 관여한 모든 제품들에도 영향을 미쳤고, 궁극적인 목표에 번지고 있었다.
하지만 큰 차이가 느껴졌다.
역시 직접 고민을 가진 사람과 마주앉아 상담을 통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2
오후 6시가 조금 넘자 재료가 모두 소진됐다. 이벤트 효과가 생각 이상이었다. 예정보다 가게 문을 일찍 닫아야 했다.
나는 노우민과 함께 뒷정리를 하다가 눈이 마주쳤다.
“내일도 해야지?”
내가 묻자 노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우민아.”
“네, 대표님.”
“지금 추세로 봐서는 내일 오전이면 기존에 하기로 했던 양 다 채우거든.”
“네, 네.”
“어떻게 할래?”
“저야 대표님 뜻에 따라야죠.”
“내가 없을 때는 네가 여기 책임자야. 중요한 부분들, 어려운 부분들 혹은 의견을 나누고 싶은 점은 언제든지 나한테 전화해도 돼. 그렇게 우리가 의논을 하면서 더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도 있을 거고.”
나는 사뭇 진지해져서는 노우민과 두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그런데 모든 걸 일일이 그렇게 할 수는 없잖아. 그래서야 너한테 맡긴 의미가 없고. 그치?”
“네, 네. 그렇죠.”
“그러니 혼자 결정할 줄도 알아야 한다. 네가 그런 걸 못한다는 건 아니야. 단지 좀 더 익숙해지라는 거지.”
“네, 알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할래?”
“내일 찾아오시는 손님들까지는 쭉 하는 게 어떨까요?”
내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되물었다.
“그럴래?”
“네, 그게 나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오전에는 이벤트를 했는데, 오후에는 그게 끝나면 그냥 판매하면 괜히 먹기 싫을 거 같거든요.”
“맞는 소리다.”
“그리고 시간을 조금 조정했으면 합니다.”
“시간을? 어떻게?”
“이쪽에 유동인구가 없지는 않지만, 주로 이 주변에서 출퇴근을 하는 사람이나 거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장사잖아요? 그래서 내일은 꼭 저녁에 오가는 사람들한테까지도 어필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둘 중 하납니다. 오늘처럼 아침부터 영업을 시작하고, 재료를 많이 준비해서 저녁까지 해도 괜찮을 거 같아요. 아니면 오늘은 오전에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보기도 했고, 당분간은 영업시간을 조절할 계획이었으니 조금 늦게 오픈해서 저녁까지 해보는 걸로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괜찮은 생각 같다.”
“그런가요?”
“응, 그렇게 시간대별로 사람들의 유입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할 수 있고. 겨우 이틀로 통계를 내는 건 무리겠지만, 그래도 참고는 해볼 수 있겠지. 개인적으로는 당분간 점심이랑 저녁 장사를 하게 될 걸로 본다. 아침은 아침에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그때 해도 늦지 않아.”
노우민이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좋은 거 같습니다.”
“그래, 그럼. 내일 재료 들어올 거 전화 좀 돌리고, 집에 가기 전에 따로 마트도 좀 들르자.”
“네, 대표님!”
그렇게 우리는 다시 뒷정리에 집중했다.
3
“어디 가세요?”
노우민이 조금 당황하며 물었다.
“일일이 보고해야 되냐?”
내가 되묻자 노우민은 더욱 당황하며 양손을 내저었다.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나는 피식 웃었다.
“장난이야 인마, 뭐 그렇게 놀라냐.”
“대표님은 은근히 사나운 면이 있어서 무서워요.”
“내가 뭐가 사나워.”
“실제로 과거가 좀…….”
“이 새끼!”
내가 달려들어 노우민에게 헤드락을 걸었다.
마치 편한 동네 형과 동생 같은 사이였다.
나도 편하게 지내는 게 좋았다. 모두와 그럴 수가 없었기에 더 특별하게 느껴졌고.
가족 외에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아직까지는 참으로 운이 좋았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 모두 너무 좋았으니까.
“그런데 진짜 어디 가시게요?”
노우민의 물음에 나는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전화 좀 하려고. 커피도 한잔하고.”
“커피 드시면 잠 안 오지 않으세요?”
“나는 괜찮더라고. 10잔을 먹어도 잘만 자.”
“조심히 다녀오세요.”
“바로 앞인데 뭐, 조심하고 말 게 어딨냐.”
그렇게 집을 빠져나오는 동시에 나도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지 않아 전화를 받았다.
―응, 여보세요?
나도혜가 밝은 목소리를 냈다.
순간 놀라웠다.
그냥 전화를 받았을 뿐이었다.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도 않았고.
그런데 그 짧은 목소리가 내게 큰 안정감을 가져다 줬다. 심지어 일 때문에 딱히 힘들지도 않았는데.
나는 입가에 미소를 흠뻑 적신 채 물었다.
“뭐 하고 있어?”
―나? 병원이지. 지금 거기 몇 시지?
“여기는 이제 자정 좀 넘었어.”
―많이 피곤하지? 안 자?
“곧 자야지. 자기 전에 전화한 거야.”
―밖인 거 같은데?
“현관에서 전화 거는 거야. 원룸이다 보니까 전화 내용이 다 들리잖아. 그래서 나왔어.”
―잘했어.
“뭐 특별한 건 없고?”
나는 손님이 하나도 없다가 이벤트를 시작하고 재료를 소진한 것까지 신나게 이야기를 늘어놨다.
그러다 아차 싶은 생각 에 말했다.
“미안, 재미없지? 다른 얘기로 넘어가자.”
―아니야 재밌어. 자기가 하는 얘기면 다 재밌어.
“나도 그래.”
무조건 내 편인 사람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입가에는 미소가 절로 번져 있었다.
잠도 부족한 상태에 바쁘게 움직이며 하루 종일 일했기에 컨디션이 마냥 좋지는 않았는데, 피로가 한 번에 날아간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