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40화
29. LA 아리랑 (7)
“새로운데요?”
여자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좋은 방향으로요.”
노우민은 머쓱한 듯 웃으며 물었다.
“진짜요?”
“네! 재료가 많이 들어갔는데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이렇게 익힌 쌀은 롤이나 초밥 먹을 때만 먹어봤는데, 이렇게도 어울리네요.”
줄곧 지켜보고 있던 나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밀가루에 비해 소화도 훨씬 잘되실 거예요. 백미 말고 현미와 여러 가지 잡곡이 섞인 걸로 드시면 건강에도 더 좋아요. 맛도 백미와는 다른 맛이 있고요. 물론, 밥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재료들의 조합에 따라 맛과 영양도 완전히 달라지고요.”
“사장님이신가 봐요?”
“이 브랜드의 대표입니다. 여기 책임자는 이 친구고요.”
나는 노우민의 등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여자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물었다.
“하나만 더 먹어봐도 될까요?”
나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첫 손님이니 특별히 하나 더 드릴게요.”
여자는 스페셜 김밥을 하나 더 먹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우리를 보며 말했다.
“진짜 맛있어요. 빵 대신 쌀을 사용한 샌드위치 같네요.”
“그렇게 볼 수 있죠.”
“겉에 둘러싸고 있는 이 검은 건 뭐죠?”
“김이라고 하는 건데, 해초류입니다.”
“아! 초밥 중에 본 거 같아요. 맞죠?”
“네, 하지만 일본산하고 한국산은 종류가 완전히 달라요.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나는 몸을 돌려 재료들을 보관하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여자에게 줄 선물을 챙겼다.
다시 자리로 돌아간 내가 여자에게 내민 것은 작은 조미김 2봉지였다.
“이건 김에 참기름을 베이스로 여러 가지 기름을 발라 구운 뒤 소금으로 간을 한 겁니다. 보통 한국에서는 밥이랑 같이 먹는데요, 그냥 간식처럼 따로 먹어도 괜찮아요.”
여자가 조금 놀란 듯이 물었다.
“저 주시는 거예요?”
“그럼요.”
“너무 고마워요. 다행이네요.”
“네? 뭐가 다행이에요?”
“사람이 염치라는 게 있잖아요. 시식회로 김밥도 공짜로 받아가면서 다른 선물까지 그냥 받기만 할 수는 없잖아요.”
달리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애매해서 그냥 웃어 보이기만 했다.
여자가 말했다.
“김밥 종류별로 한 줄씩 전부 주시겠어요?”
노우민이 당황하며 말했다.
“구입…… 하시겠다는 건가요?”
“당연하죠.”
내가 웃으며 말했다.
“만약 김을 드려서 그런 거라면 안 그러셔도 돼요.”
“그런 거 아니에요. 2개 먹어보고 마음을 정한 거예요. 제 입맛에는 너무 잘 맞아서요. 남편하고 애들도 좋아할 거 같네요.”
“맛있게 드셔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여자는 메뉴에 있는 김밥들 전부를 사갔다.
종류가 전부 다른 김밥들을 한 줄씩 싸는 건 시간이 제법 소요되는 일이었다. 나도 노우민을 도와 함께 김밥을 말았다.
노우민은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는지 김밥을 마는 속도는 나보다도 빨랐다.
여자는 김밥들이 들어 있는 묵직한 봉지를 들고 흡족하는 미소를 지었다.
“안녕히 계세요. 또 올게요.”
“네, 맛있게 드세요!”
노우민은 습관적으로 고개를 90도로 숙여 인사했다.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세요!”
여자는 조금 놀란 듯하더니 양손을 모아 합장하며 생긋 웃어 보였다. 나름대로 동양인에게 예의를 갖춘 인사를 한 걸로 보였다. 저것도 편견이긴 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나와 노우민은 하이파이브를 하며 씩 웃었다.
“먹히네?”
“먹히네요!”
“여기 사람들도 다 똑같은 사람이네.”
“그러니까요. 김밥이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것도 아니고요.”
“이제 진짜 시작이다. 열심히 해보자.”
“네, 대표님!”
“그런데 마지막에 인사는 뭐야?”
“네?”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시라고 한 거.”
노우민이 멋쩍게 웃었다.
“아, 그거요. 저 나름대로 인사를 생각해 봤어요. 이상한가요?”
“아니, 좋아. 엄청 좋아. 우리의 모토 아니냐. 맛있고 건강한 식품.”
“뭐…… 유명한 말이긴 하지만, 저희랑 딱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아까까지만 해도 쫄딱 망할까 봐 조금은 걱정됐는데, 단숨에 자신감이 붙었다.
“어, 저기 손님 오신다.”
내가 말하자 노우민은 각을 잡고 서면서 얼굴에는 미소를 한껏 머금어 보였다.
오픈 행사로 시식회를 시도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16
“음! 으음! 음!”
민머리에 근육질인 남자는 고개를 끄덕거리다 엄지를 세워 보였다.
우리는 오는 사람들에게 김밥 1줄을 무료로 주고, 그 자리에서 1개를 시식할 수 있게 했다.
오후 3시가 조금 넘어 있었고, 지금까지 27명이 왔다. 그중 21명이 무료로 받는 것 외에 김밥을 1줄이라도 구입했다.
일단 맛을 보면 구매로 쉽게 이어졌다.
“사랑에 빠진 거 같네요.”
남자의 말에 당황한 노우민이 ‘네?’ 하고 되물었다.
“이거요. 큄밥―이랑요.”
“하하하하, 괜찮죠? 정확한 발음은 김―밥입니다.”
“귐밥?”
“네, 김밥.”
“영양 밸런스도 훌륭한 거 같고, 재료도 굉장히 신선하네요. 이제 샌드위치 대신 이거 먹으러 여기 올 거 같습니다.”
“자주 와주세요.”
“꼭 그럴게요.”
아리랑 김밥을 차린 목적을 제대로 이루고 있었다.
신선하고 건강한 재료로 맛과 건강을 둘 다 잡는 것.
덕분에 원가율이 높아 순이익은 떨어지지만, 그만큼 박리다매로 많이 팔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까지 하는 건 아직 시기상조지만.
그래도 근거가 있었다. 실제로 가격이 저렴해서 좋다는 칭찬도 많이 들었으니까.
오픈행사를 하는 동안은 마이너스를 생각했는데, 플러스를 노려볼 수도 있을 듯했다. 그래봤자 겨우 마이너스를 벗어난 수준이겠지만.
그렇게 행사를 이어가던 중이었다.
멀리서 여자 2명이 다가왔다.
한 사람이 눈에 익었다.
가비였다.
그녀는 친구로 보이는 금발 여자와 함께였다.
“어서 오세요.”
노우민이 활짝 웃으며 맞이했다.
가비는 나를 보며 이를 드러냈다.
“오늘 오픈하면 오픈한다고 연락을 줘야죠.”
“오게 하면 와서 사라는 거 같아서요.”
“돈 받을 생각이었어요?”
나는 씩 웃으며 맞받아쳤다.
“세상에 공짜는 없죠.”
“너무하네. 나한테 공짜 커피 얻어마셨으면서.”
“농담이죠. 마침 행사 중이니까 먹고 싶은 거 골라요. 특별히 2줄 드릴 테니까.”
노우민은 조금 당황하며 나와 가비를 번갈아 쳐다보고는 물었다.
“아는 사이세요?”
“알아가는 사이지.”
“예? 하지만 대표님 애인…….”
나는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녀석의 등짝을 쳤다.
“당연히 친구로서 알아가는 거지 인마.”
가비는 그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이 깔깔 웃었다.
“전 임자 있는 남자 건드리는 그런 여자 아니에요.”
“아무튼 이렇게 찾아와줘서 고마워요. 일하는 곳 가서 밥 먹으면서 시간되면 들르라고 하려고 했죠. 그런데 어떻게 오실 생각을 했어요?”
“그때 얘기했던 것도 기억났고, 마침 지나가는 길이었거든요.”
“잘 오셨어요. 골라보세요. 아니, 아예 종류별로 하나씩 만들어드릴게요. 가져가서 드셔보세요.”
가비가 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어떻게 다 먹어요. 너무 많아요.”
“거기 일하시는 분들하고 나눠드시면 되죠.”
“그래도 돼요?”
“저희 가게 홍보 좀 해달라는 거죠.”
그때 가비의 옆에 있던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아마 사장이 엄청 뭐라고 할 텐데. 다른 가게 음식 사왔다고.”
“아, 그러네.”
사장 때문에 김밥을 가져가는 게 곤란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고 생각하는 찰나였다.
가비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꼭 가져가야겠다. 요즘 이상한 걸로 괜히 트집 잡고 그러는 거 마음에 안 들었는데.”
그녀는 나를 보며 생긋 웃었다.
“그럼 눈치 안 보고 감사히 받을게요. 대신 맛있으면 꼭 또 올게요.”
“자주 보겠네요.”
“네?”
“맛있을 테니까요.”
“자신감 넘치시네.”
“그런데 그쪽 가게 사장이 다른 데서 산 음식을 가져가면 뭐라고 해요?”
“당연히 원래는 안 그러죠. 그런데 요즘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는지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면서 짜증을 부리더라고요. 무슨 생리에 설사 겹친 사람처럼.”
나는 웃으며 물었다.
“전 남자라서 그 고통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끔찍하긴 하겠네요. 예민해질 수밖에 없을 테고.”
“사장도 남자에요.”
“네?”
“근데 그렇다니까요? 만약 우리 여자들이 겪는 고통까지 느꼈다면 이미 직원 중 하나가 접시로 머리를 후려쳤겠죠.”
옆에 있던 여자가 피식 웃으며 가비의 팔을 툭 쳤다.
“너무 그러지 마.”
“장난이지, 장난.”
가비는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희 사장님 좋은 분이니 너무 오해하지 마세요. 아마 지옥에서는 가장 좋은 사람일 거니까요.”
한바탕 웃으며 얘기를 하고 나니 어느덧 김밥이 전부 준비됐다.
나는 김밥을 전부 건네며 말했다.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세요.”
“하하하, 네. 그래야죠.”
가비는 지갑을 꺼내들어 돈을 내려고 했고, 나는 양손을 내저으며 만류했다.
“공짜라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이걸 어떻게 다 그냥 받아요.”
“마케팅입니다, 마케팅.”
“그래도…….”
“꼭 다른 분들도 맛보게 해주세요.”
“알았어요, 제가 동네방네 다 소문내고 다닐게요.”
그때 노우민이 김밥 몇 개를 접시에 담아 내밀었다.
“가시기 전에 한 번 드셔보세요. 어떠신지.”
가비는 서슴없이 손을 뻗었다.
“그럼 난 이거.”
그녀는 곧바로 김밥을 입에 넣고는 오물거리며 눈을 크게 떴다.
“음! 으음!”
김밥을 먹은 가비가 커다란 눈으로 나를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예상외의 맛이에요. 이런 맛일 줄 몰랐는데. 엄청 맛있어요.”
“다행이네요.”
“너도 먹어봐.”
가비가 옆의 여자를 툭 치며 말했고, 노우민은 기다렸다는 듯이 접시를 내밀었다.
여자는 웃으며 손을 저었다.
“아니야, 난 괜찮아.”
“왜? 먹어봐.”
“먹어도 어차피 지금 아무 맛도 안 느껴져.”
나는 여자를 유심히 쳐다봤고, 바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코 막혀서 그래요?”
여자는 조금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알았어요? 코 막힌 소리를 내서 그런가?”
“그냥 유추해 본 거예요.”
“원래 비염도 있는데 감기까지 걸려서요. 잘 안 떨어지네요.”
“몇 가지 방법 좀 알려드릴까요?”
“어떤 거요?”
“비염도 완화하고, 코감기 빨리 낫는 법이요.”
여자는 기대도 안 한다는 듯이 웃었다.
“한 번 말씀해 보세요.”
“받아 적는 게 좋을 걸요?”
여자가 조금 당황한 듯 어색한 미소를 지었는데, 노우민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희 대표님이 한국에서는 건강상담으로 꽤 유명하세요. 티비에도 여러 번 나왔고요.”
가비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요? 유명한 사람이에요?”
나는 멋쩍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그냥 한국에서 알아보는 사람들이 조금 있는 정도.”
여자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녀는 사뭇 진지한 얼굴을 하고 물었다.
“진짜 나을 수 있어요? 감기야 언젠가는 낫겠지만, 평생 비염을 달고 살아서 고민이 많거든요. 가능할까요?”
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100% 낫는다는 보장은 못 드리죠.”
“역시…… 그렇겠죠? 병원에도 가고 별 이상한 허브에 뭐에…… 별의별 걸 다 했었는데도 아무 소용이 없었거든요. 그럼 괜찮아요. 어쩔 수 없죠.”
“포기하기는 이르죠.”
“네?”
“100% 낫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지금보다 나아진다는 보장은 드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