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39화
29. LA 아리랑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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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김밥을 오픈한 지 40분이 조금 넘었다. 아직까지 손님이 하나도 오지 않았다.
자리는 제대로 잡았다. 사람들은 제법 지나다녔다. 단지 이곳에 관심이 없을 뿐.
새로 생긴 가게라 그런지 어느 정도 시선은 사로잡았다. 하지만 약간의 호기심 섞인 눈빛이 스치는 것에 그쳤다.
이제 겨우 40분이라고 해야 할지, 40분이나 지났다고 해야 할지.
오픈한 지 40분 만에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생각대로만 되나.
기다려야 되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밖으로 눈이 간다.
마케팅이 아쉽다.
내가 마케팅 전문가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운이 따라주면서 꽤나 재미를 봤다.
특히 SNS가 그랬다.
이미 나는 이름값이란 걸 가졌다.
한국이었다면 내가 새로운 브랜드를 낸다는 것만으로 찾아줄 고객들이 있었다.
하지만 낯선 이곳, 미국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많고 많은 자영업자 중 하나.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내가 확인하는 거라고는 바깥에 지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시계뿐이었다.
어쩌면 아침 장사가 별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하느라 바쁜 와중에 굳이 잘 알지도 못하는 생소한 음식을 메뉴로 택할 가능성은 낮았다.
그래, 아침 장사 자체가 별로인 것은 아니었다. 단지 처음부터 여러 계단을 넘으려 하는 중이었다.
당분간은 의미 없는 아침 장사에는 시간을 너무 들이지 않는 게 나을 듯했다.
내가 아니라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무언가를 할 때 나름대로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하는 줄 알았는데, 막상 부딪치니 아직도 멀었음을 느낀다.
손님들이 원한다고 생각해서 했던 것들이 결국 내 기준을 중심에 두고 있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했던 일들을 곰곰이 따져보면 대부분 그랬다.
고객들에 대한 생각을 하긴 했다. 배려에 신경 썼다. 하지만 나의 희생은 들어가지 않았다. 언제나 2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노력했다.
때로는 내가 불편하더라도 소비자의 입장만 생각해볼 수도 있었는데.
당장 내 몸이 좀 불편해지는 걸 감수해서 끌어올릴 수 있는 무언가가 보이지는 않았다. 쓸데없이 영업시간을 늘린다고 능사도 아니었고.
오히려 컨디션 관리를 적절히 해서 최상의 상품을 내놓는 게 옳았다.
무엇보다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해야 되는 일은 없다.
가장 중요한 게 건강이니까.
나는 마음가짐만 똑바로 하고 있으면 된다. 준비돼 있어야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이라는 게 그리 아름답게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현실은 용광로처럼 뜨겁다가도 빙하처럼 차갑다.
어느새 오픈한 지 1시간.
지금 내 현실은 손님이 1명도 없다는 것.
잠시 들러서 떠보는 사람조차 없다.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것부터 돌아봤다.
맛.
내 입에 맛있고 좋으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부 그럴 거라 생각했다. 아닐 수도 있었다. 나 이외의 사람들에게도 맛을 보게 하면서 노력했지만, 충분치 않을 수도 있었다.
그나마 다온의 경우는 여러 사람들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했지만, 나머지는 그렇지 않았다.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능력을 통해 만든 것들이었으니 어느 정도 자신이 있긴 했지만.
살면서 참으로 불만이 많았다. 나는 왜 이리도 가난할까, 왜 평범하지도 못할까, 뭘 하려고 해도 다 잘 안 되는 걸까.
어느 순간부터 나의 운은 확 트여 있었다.
사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되짚어보면 참으로 운이 좋았구나 싶다.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 사업에 있어서는 햇병아리에 불과하다. 그런 나의 눈으로 봐도 기가 막힐 정도로 운이 좋았다.
지금 아리랑 김밥에는 공격적인 마케팅이 필요하다.
일단 사람을 끌어 모아야 한다.
나와 노우민에게는 맛있지만, 여기 사람들의 입맛에는 어떨지 모른다.
맛에 대한 솔직한 평가가 필요하다.
“우민아.”
“네, 대표님.”
“우리 며칠은 돈 벌 생각하지 말자.”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문구점 가서 커다란 도화지랑 사인펜 굵은 거 좀 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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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메뉴 공짜!]
[오픈 기념 시식회입니다!]
[맛에 대한 솔직한 평가 부탁드립니다!]
[드시고 가세요! 음식 값은 리뷰로 부탁드려요!]
여러 문구들을 영어로 써 붙였다.
재미있는 것은 영어도 필체가 끝내줬다.
어떤 글씨를 쓰든 글씨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절박함에 시식회에 관한 홍보문구를 쓴 것뿐인데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얼마나 사람들이 몰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올 거라고 확신했다.
외국이어도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공짜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나와 노우민은 결의에 차 있었다. 이제 사람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오늘은 그냥 정상적으로 장사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럼 몇 명은 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칼을 손에 쥐었으니 뽑아야 했다. 뽑아들었으면 휘둘러야 했고.
노우민도 이게 얼마나 큰 결심인지 이해하는 듯했다. 녀석은 조금 전보다 훨씬 더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대표님.”
“왜.”
“시식회는 언제까지 하실 예정입니까?”
“200줄.”
“예?”
“시식으로 딱 김밥 200줄 나갈 때까지만 하려고 한다.”
“그럼 오늘 하루로는 힘들지도 모르겠는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래도 200줄 나갈 때까지는 무조건 한다. 최선을 다해 맛있게 만들어라. 200명 중에서 절반만 다시 와도 100명이다. 그 100명 중에서 김밥 1줄을 사는 사람도 있을 거고, 친구, 연인, 가족이 먹을 것까지 사는 사람도 있을 거다.”
“예,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하루에 김밥 50줄만 팔아도 겨우겨우 생활은 될 거다. 100줄만 팔면 그럭저럭 괜찮을 거야. 당연히 잘 될수록 좋고. 그러니 200줄만 내보자. 그중에 절반만 다시 찾아오게 하자. 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또 데려오면 200명이 넘을 수도 있는 거야.”
“예, 알겠습니다.”
나는 노우민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근데 무슨 말하려고 했던 거냐?”
“그게… 이번 시식회에 들어가는 재료비에서 절반은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됐어.”
“진심입니다. 제게 기회를 주셨는데, 모든 걸 대표님께서 준비하시고 저는 시키는 대로만 한다면 그건―”
내가 녀석의 말허리를 잘랐다.
“무슨 말인지 안다. 나중에 잘 되고 나서, 그때 다른 걸로 갚아라. 이 가게가 잘되면 너만 좋냐? 내가 대표야 인마.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잘 되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라.”
“……언젠가 은혜 꼭 갚겠습니다.”
“여기가 잘되면 그게 은혜 갚는 거다.”
“알겠습니다.”
나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노우민을 툭 치며 씩 웃었다.
“생각해보니 은혜랄 게 뭐 있냐? 네가 일 잘해서, 네가 필요해서 쓰는 건데. 잘 부탁한다.”
노우민은 금세 눈이 벌겋게 변해서는 나를 쳐다보다가 힘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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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40분이 조금 넘어가고 있을 때였다.
곱슬거리는 금발의 중년 여자가 선글라스를 쓴 채 천천히 다가왔다. 그녀는 내가 써 붙인 홍보문구들을 읽는 듯하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공짜로 그냥 주시나요?”
첫 손님이었다.
나는 활짝 웃었다.
“네, 그렇습니다! 오픈 행사입니다!”
“킘봡…? 큄밥?”
“김밥입니다. 롤과 비슷한 음식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노우민이 견본 사진들을 가리키며 말을 보탰다.
“여기 사진들을 보시면 좀 더 이해하시기 쉬울 거예요.”
김밥 사진도 꽤 신경 쓴 부분이었다. 한국에서 촬영을 해서 왔는데, 김밥 사진 1장에 6만 원씩 줬다. 사진 업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지라 적절한 가격인지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포트폴리오가 괜찮은 사진작가에게 의뢰를 했고, 고퀄리티 음식 사진은 7만 원이었다. 여러 장을 찍어서 장당 1만 원씩 깎아줬다. 건강즙을 1박스 따로 챙겨줬으니 사실상 조금 싸게 한 수준이었지만.
결과물은 만족스러운 편이었다. 적어도 눈으로 봤을 때만큼 맛있게 보였다.
여자는 메뉴와 사진을 쭉 훑어보더니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리랑 스페셜… 이게 재료가 가장 많이 들어가나 봐요.”
“네, 맞습니다. 들어가는 재료들 전부 좋아하신다면 드셔볼 가치가 있죠.”
노우민은 영어가 많이 늘었다. 발음이나 억양은 조금 어설픈 면이 있었지만, 의미는 확실하게 전잘했다.
나는 일부러 말수를 줄이는 중이었다. 내가 귀국하고 나면 노우민 혼자서 장사를 이어가야 했으니까.
“그럼 그걸로 포장해주세요.”
여자의 말에 노우민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아, 그게… 시식회라서…….”
녀석은 내게 눈빛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여자를 향해 포장은 안 된다고 말하려다가 잠시 멈췄다.
시식회라서 한 번에 사람들이 많이 몰릴 수 있었다.
현재 가게의 테이블은 고작 4개. 사실 이것도 손님들이 들어와서 식사를 하는 용도로 보기는 어려웠다. 경우에 따라 들어와서 식사가 가능할 뿐, 테이크아웃 전문점에 가까웠다.
사람들이 몰리면 수용이 불가능했다. 시식회를 한답시고 일을 벌여놓고 오히려 비호감이 될 수도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포장해드리겠습니다. 대신 따로 1개 드릴 테니 맛을 보고 평가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나의 물음에 여자는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그렇게 아리랑 김밥의 오픈행사 시식회가 시작됐다.
미끼도 달았고, 낚싯대도 살살 흔드는 중이었다.
첫 손님이라는 입질이 왔다. 이는 떡밥이기도 했다.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튼튼한 그물을 만들어 던질 준비만 하면 됐다.
노우민은 벌써 김밥을 말기 시작했다. 피나는 노력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김을 펼치고 밥과 재료를 순서대로 얹고 마는 데는 군더더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여자는 입을 벌리고 쳐다보다가 이내 선글라스를 이마 쪽으로 올리며 큰 눈을 드러냈다.
“와… 거의 예술이네요. 손이 어쩜 그렇게 빨라요?”
노우민은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만큼 자신 있습니다.”
녀석은 눈과 손에 측정기라도 있는 것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빠르게 김밥을 썰었다. 그리고 그중 1개는 손바닥 크기의 접시에 얹어 여자에게 내밀었다.
“다른 거 하나 더 마는 동안 드셔보시죠.”
여자는 재료가 꽉 찬 스페셜 김밥을 들여다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너무 커서 한 입에 들어갈지 모르겠어요. 보기에는 엄청 맛있어 보여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미소만 지어 보였다.
여자가 입을 크게 벌리고 김밥을 밀어 넣고는 오물오물 씹기 시작했다.
그 순간 노우민의 손이 잠깐 느려졌다. 녀석은 여자를 힐끗 보고는 다시 김밥 말기에 집중했다.
나는 마음을 졸이며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는 볼이 볼록해진 채 꼭꼭 씹고 있었는데, 약간 오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설마 입맛에 안 맞는 건가? 스페셜 김밥은 최대한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재료들을 택했는데.
마음 같아서는 맛이 어떠냐고 대답을 재촉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여자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계속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리기 시작했다.
좋은 사인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