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33화
28. 대박 사업가 (8)
나도혜는 평소에 볼 수 없던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토록 침울한 그녀의 표정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조금은 복잡한 기분이었다. 그게 표정에서 그대로 드러났는지 나도혜는 지금 상황이 미안하다는 듯 웃었다.
“제가 별 소리를 다하죠?”
“아니에요, 지금 얘기들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할 게 뭐가 있어요. 아무튼…… 나온 얘기니까 끝까지 할게요. 괜찮죠?”
“당연하죠.”
“그냥 상실감을 그런 걸로 채웠나 싶기도 해요. 아니면 언제나 저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엄마였는데, 그런 사람이 사라지니까 뭐라도 잘해서 남들한테 인정받고 싶었던 거 같기도 하고.”
안쓰러우면서도 신기했다.
내게 나도혜는 완벽한 사람처럼 보였다.
말 그대로 무결점.
금수저에 빼어난 외모 그리고 자신의 일에 있어서도 성공.
겉으로만 봤을 때 누구나 부러워할 그런 여자였다.
그런데도 속에서는 나름대로 압박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다.
누구나 고민은 있다더니.
하긴, 재벌 중에서도 자살을 하는 경우가 있으니까.
나도 이건 안다.
돈을 벌어보니 확실히 알 수 있다.
돈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전부는 아니다.
엄청 중요하다는 건 맞지만.
“아무튼…… 어쩌다 얘기가 여기까지 왔는지는 모르겠는데, 대표님한테 여러 가지로 많이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나는 멋쩍게 웃었다.
“저도 감사드리는 게 많죠.”
“그런데 대표님도 뭐 하실 말씀 있으셨던 거 같은데. 아니에요?”
“아, 있죠, 있어요.”
“뭐예요?”
“제가 이번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나도혜가 눈을 크게 뜨며 화색을 띠었다.
“진짜요?”
그녀는 자신의 일처럼 생글생글 웃었다.
“어떤 사업이요? 이번에도 건강에 관련된 거겠죠? 먹는 건가요?”
“아, 네. 김밥이요.”
“김밥이요?”
나도혜는 의외라는 듯 눈을 살짝 크게 떴다가 잠시 시선을 위에 두며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다 다시 밝은 얼굴을 하며 입을 뗐다.
“괜찮은 거 같네요. 김밥이면 이것저것 다 들어가니까 완전히 건강한 음식으로 만들 수도 있고요.”
“그렇죠. 그 부분을 노렸어요.”
“맛만 있으면 잘 되겠네요.”
“그럭저럭 맛은 잡아가는 거 같아요. 기본적으로 밥에 간만 잘 맞춰도 중간은 가겠더라고요.”
“김밥에도 따로 간을 해요?”
“모르셨어요? 뭐…… 만들기 나름이긴 하지만요.”
나도혜가 민망하다는 듯이 웃었다.
“스스로 식사를 챙기기는 하는데, 아무래도 다이어트에 치중된 음식들이 대부분이었던 거라서……. 샐러드나 그냥 삶기만 하거나, 오븐에 넣기만 하면 알아서 다 구워주니까요.”
“요즘도 그렇게만 드세요?”
“아무래도 바쁘다보니 사서 먹거나, 간단하게 과일이랑 샐러드, 적절한 단백질을 챙겨주는 정도일 때가 많죠.”
대회에 나가는 게 아닌데도 몸매를 유지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었다. 피나는 노력으로 일궈낸 결실이었다.
“대표님이 직접 김밥 마시려나? 그건 아니겠죠? 나도 김밥 좋아하는데.”
“제가 계속 운영할 곳은 아니라서요. 그래도 레시피는 제가 만들죠. 저도 할 줄은 알고요. 언제 한 번 말아드릴게요.”
“정말요?”
“그럼요, 어려운 것도 아니고.”
나도혜는 웃는 얼굴로 물었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매장 어디에 내시려고요?”
“아, 그게요.”
나는 짧은 머뭇거림을 흘렸다가 말했다.
“미국에서 하게 됐어요. LA 쪽에…….”
조금 전까지 방글방글 웃던 나도혜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그녀는 애써 웃었는데, 찡그린 미간은 여전했다.
“미국…… 이요?”
“네.”
“아예 거기로 영영 가시는 거예요?”
“아니죠, 조금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다른 친구에게 맡길 거라서요.”
“그래요? 그럼 매장만 그쪽에 내시는 거예요?”
“처음에 자리 잡을 때까지는 제가 그쪽에 잠시 다녀와야 될 거 같아요.”
“얼마나요?”
“최소 1개월 반에서 최대 3개월 정도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시군요.”
나도혜는 급격히 어두워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리다 테이블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정적이 흘렀다.
이렇게나 직접적으로 불쾌함을 드러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나는 눈치를 살피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원장님……?”
그때 나도혜가 조금 벌게진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언제까지 원장님이에요?”
그녀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네……?”
“언제까지 계속 그렇게……!”
나도혜는 다소 격앙돼 보였다. 아니, 툭 건들면 폭발할 듯했다. 벌게진 그녀의 눈이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제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다음에 뵙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에 관련된 것들은 메일로 부탁드립니다. 웰니스 쪽이야 제가 매일 들르니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을 듯하네요.”
“잠깐만요.”
내가 말했지만, 나도혜는 듣지 못한 것처럼 그대로 핸드백을 챙겨 몸을 돌렸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장님…….”
그때 나도혜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또…….”
그 한 글자에서 오만 감정이 다 전해졌다.
나도혜는 그 자리에서 한숨을 내쉬고는 가게 문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뭔가 크게 울리면서 머리가 핑 돌았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뒤로 다가서서 팔을 잡아당겼다.
“놓으―”
나도혜가 미간을 찡그리며 목소리를 내는 순간이었다.
나는 입술로 그녀의 입을 막아버렸다.
나도혜는 잠시 당황한 듯 굳었다가 내 가슴팍에 손을 가져다 댔다. 밀어내려는 듯한 힘이 느껴졌다. 하지만 곧 손에서 힘이 빠졌다. 그리고 이동해서는 내 뒷목을 감쌌다.
길지 않은 키스였다.
천천히 입을 떼고 나도혜와 눈을 마주쳤다.
이번에는 그녀가 나의 뒷목을 확 당겨서 키스했다.
우리는 사춘기 커플처럼 그 자리에서 키스만 한참 동안 이어나갔다.
11
나와 나도혜는 조금 상기된 얼굴로 다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번에는 마주앉지 않았다.
나란히 앉아서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게 싫었어요. 원장님이라고 하는 게 꼭…… 그냥 계속 그런 호칭이 선을 긋는 거 같아서. 그리고 미국에 가는 걸 결정하기 전에 나한테 언질이라도 줄 수 있었잖아요. 이미 정해놓고 통보하는 식으로 말하니까…….”
“그랬어?”
내가 웃으며 말하자 나도혜가 놀란 토끼 눈을 했다.
“뭐예요? 갑자기 왜 말이 짧아져?”
“뽀뽀도 한 사이에 존댓말 하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아니, 그래도…….”
“우리가 많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는데.”
“뭐야, 진짜. 갑자기 왜 능글거리고 난리야. 원래 이래요?”
“원래 이런 게 아니라, 조금 전부터 이렇게 된 거지.”
“참나…….”
이제야 마음에 확신이 들었다.
손을 꼭 잡고 있는 게 이렇게나 좋을 줄이야.
왜 진작 이러지 않았는지.
좋게 생각했다.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밥도 뜸을 충분히 들여야 더 맛있다.
우리 관계는 기초공사를 튼튼히 했고, 이제 쌓아 올려갈 때라고 생각했다.
“미국 가서 얼마나 있다가 올 거예요?”
내가 되물었다.
“언제까지 존댓말 할 거야?”
“……몰라, 요.”
“미국에 오래 있지는 않을 거야. 최대한 빨리 올 거고, 자주 연락할게.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언제 가는데?”
“여권 나오고 하면 금방.”
“신청은 했고?”
“응.”
“가서 양년이랑 바람나면 죽일 거야.”
나는 헛웃음을 쳤다.
“양년이 뭐야, 양년이.”
“아무튼 내가 한국에서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다는 거 잊지 마.”
“그럴 리가 없잖아.”
나도혜를 가볍게 안으며 뺨에 입을 맞췄다.
나도혜는 조금 쑥스러워하는 것 같더니, 괜히 인상을 찡그리며 구시렁거렸다.
“뭐야…… 입에 먼저하고 볼에 나중에 하는 사람이 어딨어……. 순서가 잘못됐어, 순서가.”
나는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웃기만 했다.
연애 세포가 다 죽었다느니 그런 소리는 거짓말인 듯하다.
연애 세포라는 건 내 안에 있는 게 아니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상대방과 나 사이에서 생기는 거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가지고 있던 연애 세포가 다시 활동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연애 세포가 생기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 사업인 미라클 헬스케어만 대박이 나는 게 아니었다.
청춘사업도 대박이 나고 있었다.
12
인천공항.
“다 잘 챙겼지?”
나의 물음에 노우민은 여권만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 잘 챙겼어요. 몇 가지는 동생들한테 부치라고 했어요.”
“기분 어떠냐?”
“그냥 아직도 실감이 안 나고 그래요. 처음으로 미국에 가는데 그게 일을 하러 가게 되는 걸 줄은…….”
“그러게. 나도 그렇다.”
“대표님께서 해외에 처음 가신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요. 어떻게 나가지도 않고 다 준비를…….”
“인복 덕분이지, 인복 덕분.”
미국에 연결점이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직접 가지도 않고 매장을 알아보는 것과 거래처를 트는 것은 애로사항이 많았다.
돈을 쓰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는 있었다. 대리인을 쓰면 됐으니까. 하지만 누구를 믿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내가 직접 두 눈으로 보는 것과는 분명히 달랐고.
어느 정도 일을 진행시키고 있는 중에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미국으로 가는 걸 알게 된 사람들 덕분이었다.
바른 농부단 대표인 엄현석이 온라인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미국 농부가 있었는데,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고.
엄현석이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과 일을 진행하는 건 아니었지만, 다른 아는 사람을 연결해줬다.
연락을 몇 번 주고받았고, 꽤나 큰 농장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만나볼 가치는 충분했다.
다른 부분에서 크게 도움을 준 것은 나도혜였다.
그녀는 미국에서 피트니스 대회에 출전한 적도 있었고, 원래 금수저인지라 해외 곳곳에 다양한 인맥들이 있었다.
우리의 행선지는 LA.
나도혜의 고등학교 시절 친하던 친구 하나가 LA에 살고 있었는데, 그 사람과 친한 친구 중에 부동산 중개인이 하나 있었다.
덕분에 계약하기에 나쁘지 않아 보이는 매장 몇 군데를 소개받을 수 있었다. LA에 도착하고 최대한 빨리 확인해 볼 예정이었다.
다섯 다리만 건너면 다 알 수 있다더니, 사람들 덕을 많이 보고 있었다.
이것도 언젠가 다 갚아야지.
“오빠, 조심히 다녀와.”
강인나도 따라와 있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 가게 잘 보고 있어.”
“걱정 마.”
당연하게도 진료 일정까지 변경하며 따라온 나도혜가 내게 가까이 다가섰다.
“자주 연락해야 돼?”
“걱정하지 마.”
“양년 조심하고.”
“또 그런다.”
우리 사이는 제법 가까워져 있었다.
그러면서도 서로의 공간을 확실히 존중해주는 상태였다.
서로의 일이 분명히 있고, 바쁘기에 자주 만나기는 어려웠다.
그나마 함께 일 때문에 의논할 것들이 있어 얼굴을 볼 수는 있었지만, 진짜로 일 얘기를 나눠야만 했다.
오히려 이런 부분에서는 나보다 나도혜가 집중력이 좋았다.
내가 조금만 다른 길로 새려는 것만 보여도 그녀가 눈을 흘기며 제재했다.
좋았다.
빠르게 불타버린 뒤 꺼지는 연애는 처음에 모든 걸 쏟는다. 그리고 각자의 생활마저 망가트린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게 이성적으로 다루며 계산해서 행동할 수는 없는 거지만, 그래도 선이라는 걸 지켜볼 수는 있으니까.
사생활과 일의 영역을 지키면서 연애에 집중할 때는 이가 썩을 것처럼 달콤하게 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내가 나도혜와 연애를 하는 게 신기하다는 듯이 노우민은 눈알만 바삐 굴렸다.
반면에 강인나는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이 능글거리는 웃음을 지었다.
어느새 비행기에 오를 시간이었다.
나와 노우민은 배웅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새로운 사업을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