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32화
28. 대박 사업가 (7)
순간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를 아세요?”
내가 묻자 대리기사가 멋쩍게 웃었다.
“네, 네. 티비에서 몇 번 뵀어요.”
“아, 진짜요. 하하, 제가 뭐라고 알아봐주시고…… 감사합니다.”
“그럼 저기 혹시…….”
“네, 말씀하세요.”
“사진 한 장 같이 찍어주실 수 있나요?”
나는 헛웃음을 쳤다.
“사진요? 제가 뭐라고…….”
“그래도 유명인이시잖아요. 그리고 저도 언젠가 사업을 하고 싶거든요. 우상이십니다. 한 장 같이 찍어주세요.”
결국 차에서 내려 함께 사진을 찍었다.
대리기사는 히죽히죽 웃었다.
“그런데 되게 검소하시네요.”
“네? 뭐가요?”
“대표님 정도면 억 소리 나오는 차 모셔도 되잖습니까. 그런데 국산차 몰고 다니시니까요. 아, 혹시 이건 관공서용인 건가요?”
나는 웃으며 양손을 내저었다.
“아니요, 차는 이거 한 대뿐입니다.”
“의외네요. 티비 나오시고 성공하셨으니까…….”
“그렇게 대단치는 못해서요. 그리고 저한테 사치할 돈으로 어려운 분들 도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역시……!”
대리기사가 쌍따봉을 날렸고, 나는 멋쩍게 웃다가 지갑을 꺼내 들었다.
“대리비 얼마였죠?”
“15,000원입니다.”
잠시 망설이다가 3만 원을 내밀었다.
“이거 얼마 안 되지만 골목까지 들어오시느라 고생하셨으니까.”
“어이쿠, 감사합니다.”
“예, 조심히 들어가세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대리기사가 자리를 떴다.
팁을 주는 것이 그리 익숙하지는 않았다. 사실 한국에서야 대부분의 것들에 팁이 포함된 금액이나 다름없기도 했고.
15,000원.
가진 것에 비해 정말 작은 돈이다.
그렇다고 우습게보지는 않는다.
이 돈으로 어느 나라의 가난한 누구는 며칠을 먹을 수 있다느니, 그런 이야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15,000원의 무거움을 아니까.
돈 1만 원이 아쉬워서, 그걸 아끼느라고 고생해본 적이 있다.
길을 가다가 풍기는 음식 냄새에 걸음을 잠시 멈췄다가 돈 때문에 다시 걸음을 옮기는 설움.
비싼 음식이면 그렇게 서럽지 않았겠지.
돈 몇 푼에 아끼고 또 아끼던 게 어쩔 때는 구질구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기에 허투루 쓰지는 않는다.
아마 내가 혼자만의 힘으로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면 굉장히 치사한 인간이 됐을 거다.
돈의 무거움과 무서움을 너무나 잘 아니까.
베풀 줄 모르는 사람이었겠지.
하지만 할아버지와 많은 사람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고, 덕분에 베풀 줄도 안다.
대리기사에게 나를 알아봤다고 괜히 마음이 쓰여 애매한 팁 15,000원을 건넸다고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다.
줄곧 해왔던 생각이다.
매일매일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팁을 주고 느낀 것은 생각보다 아깝지 않다는 점이었다.
지금 내가 가진 것에 비해 큰 액수가 아니었고, 웃으며 고맙다는 말을 하는 표정이 생생하기 때문이겠지.
나중에 대리기사가 다른 데서는 ‘강건희 보기보다 짜더라’, ‘겨우 15,000원이 뭐냐’ 등의 말을 할지도 모르는 거긴 하지만.
아마 그런 사람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일부러 마지막이 돼서야 아는 척을 했으니 나름대로 나를 배려했던 거라 생각한다.
꼬아서 생각하려면 끝이 없으니 좋게 생각하려고 한다.
이것도 새로운 버릇이다.
언제나 부정적인 생각부터 떠올렸던 나였다.
이제는 무슨 상황이든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려 하고 있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변할 수가 있나.
분명히 내 일인데도 신기하다.
너무 신기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휴대폰을 힐끗 쳐다봤다.
나도혜가 동네에 오면 연락한다고 했었는데.
먼저 전화를 걸어볼까.
잠시 고민하다가 천천히 역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기다리기로 했다.
몇 걸음 떼지 않아서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저 지금 도착했어요. 근데 역 부근에 있는 카페가 닫았네요? 혹시 아시는 곳 있으세요?
“글쎄요, 근처에는…….”
―일단 만나요. 어디서 뵐까요?
“그럼…….”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장소를 말했고, 나도혜는 흔쾌히 응했다.
10
행복 건강즙 1호점.
나는 나도혜와 테이블을 가운데 놓고 마주앉아 있었다.
“커피가 좀 괜찮은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예전에 나름대로 괜찮은 기계 들였거든요.”
“좋네요. 맛있어요.”
나도혜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가게 내부를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말했다.
“제가 여기는 처음 오지 않나요?”
“그렇죠. 오실 일이 없었죠.”
“생각보다 더 아담한 곳이네요. 대단하세요.”
“좀 작긴 하죠.”
“이런 가게에서 그렇게 큰 성공을 일구셨다는 게 정말 대단하세요.”
“큰 성공은요, 이제야 매장 몇 군데 운영하는 건데요 뭐. 그래도…… 이렇게 빠르게 지금 상황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어요. 제가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못 했고요.”
“앞으로 더 잘 되실 거예요.”
나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그렇게 되게 만들어야죠. 원장님도 앞으로 하시는 일 다 잘 되실 거예요.”
“저는 사실 이미 잘된 느낌이에요.”
“뭐…… 성공하시긴 했죠.”
“아니요,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럼요?”
“저는 한의사로서의 지식은 꽤 뛰어나다고 생각해요. 아직도 갈 길이 멀고, 여전히 공부 중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자신이 있거든요. 한의학 외의 의학 관련 공부도 많이 했고요. 사실 의대를 재입학할 생각도 했었어요.”
조금 의외였다.
“그래요? 당연히 한의학에만 관심이 있으실 거라 생각했는데.”
“왜요?”
“뭐…… 방송에도 한의사로서 나오셨고, 아버님도 한의사시고 하니…….”
“그렇긴 하죠. 아버지 영향이 없다고 할 수도 없고. 근데 제가 의대에 들어가야겠다고 결심했던 순간이 있었어요.”
“무슨 일이었나요?”
“어머니께서 많이 편찮으셨고, 투병을 하시다가 결국 돌아가셨거든요.”
“아……. 유감입니다.”
나도혜가 생긋 웃어 보였다.
“벌써 10년 가까이 된 일인 걸요. 당시에 한의학에 대해서 회의감을 느꼈어요.”
“왜 그러셨나요?”
“아버지께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어머니는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셨고요.”
나는 달리 할 말이 없어 침묵을 지키며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래서 3학년 때 의대를 가기 위해 준비했어요. 반수였죠. 하지만 운이 따라줬는지 의대에 갈 점수가 나왔고요. 제 선택에 달린 거였죠.”
“그런데 안 가셨잖아요.”
“그랬죠.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병원이라고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현대의학의 힘으로도 안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렇죠.”
“당연히 현대의학으로 안 되는 걸 한의학만으로 해낼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래서 지금도 여러 가지 공부를 하는 중이고요. 하지만 가끔, 가끔은 일반 병원에서 불가능한 걸 한방병원이나 그 외의 다른 방법으로 해내는 경우들이 있잖아요. 저도 그런 기적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나도혜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미소를 지었다.
“아직까지 그런 일을 해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가끔 피부과에서도 안 되던 게 저를 찾아와서 좋아졌다고 만족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럴 때는 굉장히 만족스러워요.”
“앞으로 그런 일을 더 많이 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러길 바라요. 그리고 일반 병원에서 치료가 안 되는 부분들은 다른 방법들을 사용해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위험한 것만 아니라면 말이죠. 병세가 심해지기 전에 관리 차원으로 하는 방법들도 좋고요.”
“그렇죠, 제가 하는 게 그런 종류잖아요.”
나도혜가 생긋 웃었다.
“맞아요, 대표님의 건강상담이 굉장히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도 여러 가지로 더 노력을 해보고 있어요. 경우에 따라서는 일반 병원보다 한의학이 나을 수 있다고 믿고요. 물론, 적지 않은 한의사들이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이나 무분별한 약 판매 등 물의를 일으키는 게 많아서…….”
그녀의 미소는 어느새 커피처럼 쓰게 변해 있었다.
“그래서 인식이 별로 안 좋은 건 알고 있어요. 그래도 믿어주시는 분들도 있고,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계시다가 바뀌는 분들도 있고…… 계속 노력해 보려고요.”
가만히 얘기를 듣던 내가 물었다.
“그런데 아직 열심히 달리시는 중인데 어째서 벌써 만족을 하셨다고……?”
“아, 그거요.”
나도혜는 민망하다는 듯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쩌다보니 이야기가 다른 길로 샜네요. 저는 이쪽 분야에서는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었어요. 그런데 대표님을 만나고 주스 사업을 시작했잖아요. 누구보다 잘 아시다시피 소위 말하는 대박이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요.”
그녀는 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면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이니까 그냥 말씀드릴게요. 저는 금전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고민하면서 살아본 적이 없었어요. 그냥 태어날 때부터 유복했고, 그게 당연하다고 여겼죠. 그래서 돈에 대한 집착도 딱히 없었고요. 돈을 더 벌고 싶다는 그런 생각은 안 했었어요.”
“그러실 수 있죠.”
“그냥 주스 사업 같은 경우 스스로에 대한 가능성을 엿보는 일이었던 거 같아요. 물론, 정말 몸에 좋은 음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죠. 하지만 자아실현에 대한 욕심이 더 컸던 거 같아요. 방송 출연에 힘을 쏟고, SNS도 열심히 하고…….”
나도혜는 조금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 것들이 전부 집착이었던 거 같아요. 인정받고 싶은 그런 마음이요. 그리고 지금은 그걸 해낸 기분이고요. 전부 대표님 덕분이에요.”
“제 덕분은요. 같이 해낸 거죠.”
“사실 대표님께서 하신 일이 훨씬 많잖아요. 동업자로서 이런 말을 하면 부끄러운 건데,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잖아요.”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나 원장님의 영향력이 상당했으니까요. 홍보도 쉽게 됐고요.”
“저보다는 인나 씨 효과가 컸을 걸요? 이제는 완전 SNS스타던데요?”
“그러게요, 그냥 그쪽 길로 가도 될 거 같은데, 카페는 계속 한다고 하네요.”
내가 피식 웃자 나도혜도 따라서 웃었다.
“아무튼, 그렇게 이쪽 일 말고도 뭔가 해내고 싶었던 거 같아요. 이제는 그게 좀 채워진 기분이고요.”
“그전에도 여러 가지 해내셨잖아요.”
나는 팔에 힘을 주는 포즈를 취하며 씩 웃었다.
“피트니스 대회에서도 우승하셨고.”
“아…… 그랬죠.”
나도혜는 부끄럽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실 처음에는 건강을 챙기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건데, 그게 그렇게까지 이어지더라고요. 그것도 뭔가 이뤄내고 싶다는 욕심이고요.”
“조금 의외네요.”
“뭐가요? 운동해서 근육 만든 거요? 그런 소리 많이 듣기는 해요. 얼굴이랑 딴판이라고.”
“하하, 그것도 그건데, 그냥 원장님께서 뭔가를 이뤄내는 것에 집착을 했다는 게 조금 의외에요.”
“집착이라…….”
나는 당황하며 양손을 내저었다.
“아, 그 단어에 너무 집중하지는 마시고요. 안 좋게 말하려던 의도는 없었습니다.”
“괜찮아요, 집착했던 거 같아요. 제가 왜 그렇게 집착했는지 모르겠어요. 아니, 알 거 같네요. 시기도 분명하고. 아마도 엄마가 곁에서 사라지면서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