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31화
28. 대박 사업가 (6)
나는 깜짝 놀라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작은아빠는 그 모습이 재밌다는 듯이 낄낄 웃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내가 묻자 권호순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지금 당장은 아니고요.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면 제가 다온 2호점을 하고 싶습니다. 당연히 그전에 여기 형님하고 같이 다온 본점을 꾸려갈 사람은 구해둬야겠죠.”
“아니……. 평생은 아니어도 꽤 오래 하실 줄 알았는데…….”
“며칠 안 됐지만 확신이 들었거든요. 다온은 계속 잘될 겁니다. 초심만 잃지 않으면 지금보다 손님이 늘면 늘었지, 줄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이건 단순히 오픈빨이 아닙니다. 제가 이래 봬도 어머니 가게에서 20년 넘게 일했잖습니까.”
나는 약간의 헛웃음을 얼굴에 머금은 채 작은아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알고 계셨어요? 반응 보니까 알고 계셨던 거 같은데?”
“그치, 같이 일하면서 얘기했어.”
“그래서 2호점을 내기로 한 거예요?”
“확정인 건 아니지. 우리끼리 ‘무조건 이렇게 하자’ 하면서 결정을 내린 것도 아니고.”
권호순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나와 눈을 맞췄다.
“지금 형님께서는 적어도 다온에 있는 메뉴들에 한해서는 제가 하는 거랑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어요. 인정하기는 싫지만 어떤 메뉴는 저보다 나으시죠. 특히 고기 요리는요. 비빔밥 같은 건 제가 조금 나은 거 같고요.”
그는 나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늦어도 6개월…… 빠르면 한 3개월 뒤부터는 다온 2호점에 대한 계획을 또렷하게 그려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당연히 대표님의 승인이 있어야 되는 부분이고요.”
“아시겠지만, 2호점을 내시는 게 본점에서 일하시는 것보다 수익이 높으리란 보장은 없어요. 이래저래 부담이 크실 겁니다. 인테리어도 통일해야 돼서 그 비용도 만만치 않을 거고요.”
“그래도 모아둔 돈이 좀 있습니다. 어머니 가게를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도 있고요. 제가 대표님과 만난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다온에 큰 애정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같이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과분한 대우를 해주셨고요.”
권호순은 확고한 눈빛을 보였다.
“당연히 다 같이 잘되면 좋고, 기본적으로 다온을 더 크게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습니다. 분명히 그렇게 될 거라고 믿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약간의 보완도 필요할 걸로 보이지만요.”
“보완이요?”
“앞으로 차차 점심 메뉴도 몇 가지 늘리기로 했잖습니까?”
“그랬죠.”
“근데 그것들은 사실 다온만의 특색이 담겨 있지는 않잖아요? 지금 생각하는 게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같은 것들이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사실이죠.”
“제 생각인데……. 면 요리가 하나 들어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밥이냐 면이냐,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게 크거든요.”
“특별히 생각하신 거 있나요?”
“글쎄요……. 면 정도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재료를 더 들이지 않고 싶은데.”
개인적으로 면식을 좋아한다.
어릴 때 가장 좋아했던 음식이 짜장면이었던 사람은 셀 수도 없이 많겠지.
하지만 면식이 건강에 좋냐고 묻는다면 글쎄.
개인차는 있다.
하지만 결코 밀가루가 백미보다 건강하다고 할 수는 없고, 백미는 현미 및 여러 잡곡보다 좋을 수 없다.
작은아빠도 이미 그 문제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는지 이야기를 꺼냈다.
“최대한 건강하게 만들긴 하겠지만, 역시 면은 우리랑 잘 안 맞지? 메밀면 이런 건 좀 나을 거 같기는 한데.”
나는 무릎을 탁 쳤다.
“그럼 그런 걸 만들면 되겠네요.”
“응?”
“쌀면으로 가죠.”
“쌀면으로?”
“예. 근데 쌀로만 만든 걸 건강하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현미랑 잡곡 좀 섞어서 해보죠. 시중에 있는 것도 있잖아요?”
권호순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그러면 되겠네요. 약간 재료비가 올라가긴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겠어요.”
“이익은 조금 줄어도 됩니다. 저희 쪽으로 남는 영업 이익은 25%만 맞추면 돼요. 경우에 따라서, 특정 메뉴나 제품에 따라 더 낮아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요. 그리고 남는 돈은 전부 식품과 제품에 쏟을 겁니다. 물론, 거기서도 남는 돈이 있긴 하겠죠. 그 부분은 직원들 복지 같은 거에 부을 거고요.”
작은아빠가 조금 놀라며 물었다.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마진을 그렇게 낮춘다고?”
“네. 지금 먹고사는 데 지장 없잖아요. 한 달 만에 벌 거, 한 1개월 반……. 길면 2개월에 걸쳐서 벌면 되죠. 결국 그게 기회를 만들고 더 많이 벌게 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돈 이전에 저희 음식을 먹고 사람들이 건강한 게 중요하고요.”
나의 단호함에 작은아빠가 조금 놀란 듯했다. 지금도 다른 음식점들에 비해 마진이 상당히 낮은 편인데 더 낮춘다는 폭탄선언을 한 거였으니까.
하지만 작은아빠는 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그러자고 시작한 거니까. 언제 지금 같은 삶을 꿈이나 꿨냐. 그냥 빚만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렇게만 되면 뭐든 하겠다고, 더 착하게 살겠다고 생각했었지. 그리고 넌 모르겠지만, 네 할아버지가 그런 분이셨어.”
나는 마음속으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라고 생각했다.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죠.”
“그치, 그렇지. 그 정신을 이어가야지. 그렇게 살아야지.”
권호순은 잠시 눈치를 살피다가 주먹을 꽉 쥐어 보였다.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셋이서 의기투합을 하는 게 좋았다.
통장에 늘어나는 잔고보다 더 힘이 됐다.
이미 충분한 돈을 벌고 있어서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긴 했지만.
인심은 곳간에서 난다더니, 나만 봐도 정말 그랬다.
“그런데 면만 삶아서 팔 수는 없잖아? 잡곡면에다가 뭘 넣어야 되지?”
작은아빠의 의문에 권호순이 말했다.
“일단 향이 좀 세야죠. 맛이. 쌀 베이스에 잡곡 섞어서 하면 밀가루 냄새는 안 나겠지만, 또 특유의 향이 날 거예요. 100% 그렇습니다. 그게 식욕을 떨어뜨리는 향이나 맛은 아니긴 할 겁니다. 하지만 익숙하지가 않거든요. 밀가루 냄새는 ‘밀가루면이 원래 그렇지’하면서 먹지만, 잡곡면에 대한 반응은 갈릴 수 있거든요.”
나는 잠시 생각하면서 메뉴를 눈으로 쭉 훑었다. 또 다른 재료들을 늘리지 않고 지금 가지고 있는 베이스에서 할 수 있는 것들.
“답 나왔네요.”
내가 씩 웃어 보이자 작은아빠와 권호순이 시선을 집중했다.
“두 가지 하면 되겠어요.”
권호순이 우려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두 가지나요? 한 가지면 될 거 같은데.”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이에요. 삼계국수랑 비빔국수.”
작은아빠가 화색을 띠었다.
“삼계국수 괜찮네. 어차피 삼계탕 파니까.”
“삼계탕이랑 육수를 똑같이 갈 수는 없을 거 같고, 사실 닭곰탕이나 닭칼국수에 가깝다고 봐야겠죠. 대신 고기는 다르게 쓰면 좋을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반계탕처럼 닭 반 마리에 면이 들어가면 푸짐하고 좋을 거 같네요. 아니면 닭다리 하나, 닭 날개 하나, 가슴살까지 따로따로 넣거나요.”
권호순이 눈을 반짝였다.
“어느 쪽이든 괜찮을 거 같습니다. 양도 푸짐하고 괜찮겠어요.”
“제 생각에는 좀 큰 닭으로……. 최소 11호 이상, 최대 13호 이하, 그 정도 닭의 다리랑, 가슴살, 날개 따로 넣는 게 좋다고 봐요. 반계탕은 특성상 먹을 때 조금 불편하니까.”
“찬성입니다.”
작은아빠가 물었다.
“그런데 비빔국수는 어떻게 하려고?”
“비빔밥 재료 있잖아요. 거기서 소스 베이스만 더하면 되죠.”
“어울릴까?”
“괜찮을 거라고 봐요. 관건은 면을 좀 가늘게 뽑을 수 있냐가 문제지.”
권호순이 말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면을 통일하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요.”
“그래요?”
“네, 솔직히 칼국수 면을 매번 치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들거든요? 거기다 밀가루면도 아니라서 식감의 차이도 있을 거예요. 잡곡이 들어가니 거칠고 쫄깃한 맛도 떨어지겠죠. 차라리 중면 정도로 뽑아서 후루룩 넘기는 게 낫다고 봐요.”
작은아빠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럼 되겠다. 개인적으로 칼국수 좋아하지도 않거든.”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확실히 괜찮겠네요. 비빔국수에는 면발이 좀 가느다란 게 어울리기도 하고.”
순식간에 신메뉴가 결정됐다.
바로 판매에 들어갈 수는 없다. 면 뽑는 기계를 알아보는 것부터 시작해 레시피도 만들어야 하니까. 베이스가 되는 메뉴들이 있어서 레시피야 금방 완성되겠지만.
“그럼…….”
권호순이 나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다온 2호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당연히 가맹점들이 늘어난다면 좋죠. 특히나 권 주방장님께서 맡아주신다면 더욱 믿음이 가고요. 지금 다온 메뉴들을 권 주방장님보다 잘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없잖습니까?”
“그럼 승인하시는 겁니까?”
“당연하죠.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본점이 완전히 자리를 잡고, 후임자도 결정된 상태에서 인수인계가 확실히 이뤄져야 합니다.”
“물론이죠.”
“조만간 기존 계약서 파기하고 새로운 계약서 써야겠네요.”
“그렇게 되도록 해야죠.”
어느새 술기운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예전에는 쉴 때가 가장 좋았는데, 언젠가부터 일을 할 때가 가장 좋았다.
나도 사람인지라 쉬고 싶고, 뒹굴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활기가 넘치고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는 일을 할 때였다.
어차피 해야 될 일이라면 가능한 즐겁게 하는 것이 좋겠지.
9
집으로 가기 위해 대리운전을 불렀다.
뒷좌석에 앉아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나도혜였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바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저예요.
“알고 있습니다.”
―뭐야, 재미없게.
나는 피식 웃었다.
“어쩐 일이세요?”
―지금 뭐 하고 계세요?
“집에 가는 중이에요.”
―어디 계시다가요?
나는 다온에서 일종의 회식을 했던 것과 신메뉴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얘기를 들은 나도혜가 물었다.
―그럼 술 좀 깨고 가셔야 되지 않겠어요?
“지금도 다 깼어요.”
―업무적인 부분에서는 안 그러시더니 이런 데서는 왜 그러세요?
“네? 제가 뭘요?”
―눈치 없게 굴잖아요. 시간 되시면 잠깐 커피나 한잔해요.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이제는 정말 많이 편해졌는지 장난과 진담이 뒤섞인 핀잔을 주기도 한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 네, 네. 좋죠. 그래요.”
―그럼 근처 가서 다시 전화드릴게요.
“네, 그래요.”
벌써 오후 1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이 늦은 시간에도 특별한 이유 없이 커피를 마시기 위해 만나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특별히 말이 오가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상 연애 중이라고 봐야 되는 걸까?
나도혜도 마음이 없으면 이럴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잡생각들이 많았고,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 확신.
내가 나도혜에게 올인을 할 준비가 됐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다.
분명히 매력적인 여자였다. 외모부터 그랬다. 과거의 내가 머릿속에서 그리던 이상형과는 달랐다.
하지만 적어도 외적으로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오히려 넘치는 사람이었지.
이상형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매력으로 이상형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성격도 맞고 말도 잘 통한다. 그녀와 이야기를 한 번 시작하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특별한 얘기를 주고받는 게 아닌데도 그렇다.
어떤 특별한 무언가를 하는 것도 아니고, 취미를 공유하는 것도 아니다.
나도혜의 취미가 뭔지도 모른다. 아마 웨이트 트레이닝? 취미라기보다는 일의 영역에 가까워 보이기도 하지만.
그게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냥 같이 있으면 즐거운 사람이라는 뜻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신은 없다.
대체 왜일까.
연애라는 걸 해본 지가 너무 오래돼서 그런가.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릿속을 어지럽히는데 차가 멈췄다. 그리고 대리기사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강 대표님, 어디에 세워드리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