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126화 (126/174)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26화

28. 대박 사업가 (1)

1

삶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나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이 결과로 이어진다.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선택을 강요당하는 건지도 모른다.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니까.

선택을 하면 반드시 결과가 따른다. 그 결과는 책임이라는 것도 업고 있다.

지금 나는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중년 남자가 씩씩거리며 야야와 짜를 향해 다가가는데 벌써부터 어깨가 들썩이며 손이 올라간다.

필시 폭력이 이뤄질 것이 보인다.

야야와 짜에게 특별한 감정은 없다.

조금 전에 알았으니 그럴 수밖에.

딱하다는 마음은 있다.

한국에 와서 사기를 당하고 학대받은 것이 안타깝다.

내가 한 짓이 아닌데도,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신경이 쓰인다.

괜히 죄스럽고, 뭔가 보상해주고 싶다.

이미 할 만큼 하고 있다.

돕는 중이다.

연민은 쉽게 지치는 법이다.

여기저기서 연민을 다 거둬들이고 다니면 답이 없다.

내가 안고 있는 연민꾸러미에서 어떤 걸 흘리고 다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계속 위로는 쌓는다.

연민이 쌓여 시야를 가리게 된다.

결국 스스로 해야 한다.

연민이 아니라, 우러나는 마음으로 움직여야 된다.

잠시 품어보는 연민이 아니라, 스스로의 보람을 위해 하는 게 낫다.

사람은 어쩔 수 없다.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 자신과 동일시할 수 있는 가족을 가장 끔찍이 생각한다.

촌수도 없는 배우자, 나의 분신과 같은 부모님과 자녀, 핏줄이 이어진 가족들 등.

자신을 위해 좋은 일을 한다면 끊임없이 할 수 있다.

내가 좋으니까.

결국 원하는 것을 해야 한다는 소리다.

한 번의 삶에서 원하는 것을 전부 이루지는 못해도, 그걸 하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언제부터인가 생각 구조 자체가 바뀐 나는 사람들을 돕는 게 좋다.

그 무엇보다 즐겁다.

돕고 나서 보람찬 기분, 사람들의 칭찬과 고마움의 표시가 좋아서 그렇다.

지금도 내가 원하는 걸 하려고 한다.

바뀌었다고 하지만, 과거의 나 역시 나다.

중년 남자가 야야와 짜를 향해 손을 치켜들었다.

야야와 짜는 그 상황이 너무나도 익숙한 듯 자연스레 고개를 숙이고 양손으로 머리를 가렸다.

‘짝’과 ‘빡’의 중간쯤 되는 소리와 함께 욕설이 울렸다.

“이 개 같은 년들! 누구를 엿 먹이려고! 왜? 갈 데가 없디? 이런 씨부럴 년들―”

남자가 다시 손을 치켜드는 순간이었다.

아마 경찰들도 이미 움직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나였다.

“야 이 새끼야!”

내가 목소리를 높이자 남자와 야야 그리고 짜가 나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나는 그대로 뛰어들어 남자의 안면을 노리고 이단옆차기를 했다.

텅!

안면을 노렸지만 남자가 몸을 웅크리면서 팔을 걷어찼다.

“어억!”

남자는 그대로 쓰러져 신음했다.

“아이구, 아이구 나 죽네…….”

나는 쓰러진 남자를 향해 울화를 토해냈다.

“네가 사람 새끼냐? 어? 사람 새끼야? 쓰레기 같은 새끼야! 인두겁을 뒤집어쓰고 그러는 게 아니다! 너 같은 새끼는―”

내가 주먹을 치켜들었고, 쓰러져 있는 남자가 양팔로 얼굴을 감싸며 곡소리를 냈다.

나는 주먹을 내지르지 못했다. 어느새 달려온 경찰 중 하나가 내 팔을 감싼 탓이었다.

“그만하세요! 이것도 폭행입니다!”

경찰은 내 팔을 거세게 당기지 않았다. 그냥 감싸고만 있었다. 그리고 눈으로 말했다. 더러워도 참으라고. 이러면 똑같은 사람이 되는 거라고.

나는 천천히 팔을 내리면서도 씩씩거렸다.

나 역시 폭행을 저지른 순간이었다.

경찰이 나를 있는 힘껏 제압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운이 좋았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건지 질책하는 이는 없었다.

2

식품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27명 중에서 24명이 불법 체류자였다. 야야와 짜 그리고 다른 베트남 여자 한 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본국으로 돌려보내질 예정이었다.

나 역시 조사를 받아야 했다.

남자를 걷어찬 죄에 대해서는 어떻게 흘러갈지 애매했다. 내가 얻어맞은 남자가 고소를 하면 소송을 진행해야 됐고, 아니면 조용히 넘어갈 수도 있었다.

이 일은 사흘 뒤에 본격적으로 시끄러워졌다.

출입국 관리 사무소에서 나온 직원들 중 하나가 당시 상황을 전부 카메라에 담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유출시킨 것이었다.

내가 남자를 향해 달려들어 발차기를 먹인 장면 전부가 인터넷에 돌았다.

당연하게도 반응은 뜨거웠다.

처음에는 나를 향한 따가운 질책들이 쏟아졌다.

아무리 범죄자라도 경찰도 아니고, 경찰이어도 문제가 될 법한 폭력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곧 이어서 남자의 죄목들이 떠오르며 단번에 나는 영웅이 됐다.

남자는 임금 체불 등의 노동력 착취, 감금, 폭행, 사기 등의 혐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식품위생법에도 걸렸는데, 유통기한이 지난 재료들을 사용한데다가 주력인 인스턴트 식품에서 기준치를 수십 배 초과하는 대장균이 검출됐다.

사람들이 유독 분노하는 것 중 하나가 먹는 것으로 장난을 치는 것이다.

사실 외국인 노동자가 학대를 받았네, 어쩌네 해도 와 닿지 않는다.

그냥 ‘딱하구나’하는 생각을 가지며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뉴스들 중 하나다.

연민은 쉽게 지친다는 말에 딱 들어맞는다.

하지만 우리가 직접 먹는 음식은 다르다.

먹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부분이니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이번에 체포된 남자와 완전히 상극이었다.

내가 가진 사업체가 가장 자신 있는 점이 위생과 청결이었으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대비됐다.

마치 깨끗한 놈이 더러운 놈을 두드려 팬 것과 같았다.

게다가 남자가 작고 마른 야야와 짜를 향해 손찌검을 하는 모습도 고스란히 담긴 탓에 내 편이 많기도 했고.

남자 측에서 나를 고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걸 변호사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워낙 죄가 무겁고 여론이 안 좋은 상황에서 남자가 나를 고소했다가는 더 나빠질 테니까.

법이라는 게 원래 원리원칙에 의해 굴러가야 하지만, 마냥 그렇지도 않다.

분명히 여론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는 경우가 왕왕 보인다.

판사 또한 사람이다. 기계처럼 망치를 땅땅 두드리지 않는다.

이래저래 잘 풀렸다고 볼 수 있었다.

의도했던 바는 아니지만, 내가 가진 모든 사업체들의 매출도 상승했다.

좋게 생각했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면 그 결과도 좋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사 즉각적으로 이뤄지지 않더라도 모든 일에 대한 결과가 내게 돌아온다고 믿는다.

3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숙모가 물었다.

“글쎄요…….”

나는 잠시 고민했다.

야야와 짜는 현재 숙모의 집에서 지내는 중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함께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두 사람은 실제로 합법적인 체류자였고, 학위나 경력도 전부 사실이었다.

어찌 보면 개탄스러운 현실이었다.

특히 야야의 경우 대학까지 졸업했지만, 비싼 돈을 들여 한국까지 와서는 육체노동이 대부분인 일을 하려는 중이었으니까.

이유는 단순했다.

돈.

태국 대졸자의 경우 평균 월급이 한화로 50만 원에서 70만 원 사이.

내 회사에서 일할 경우 주 5일에 최저시급을 줘도 월 200만 원은 거뜬히 가져간다.

일반적으로 고된 공장 같은 곳에서 긴 근무시간을 가지며 일을 하면 그 이상으로 벌고.

태국보다 급여가 많게는 5배 이상도 가능하니 선호할 수밖에.

“우리 어차피 직원 새로 뽑아야 됐고, 자격들도 되잖아. 애들도 부지런하고 착한 거 같던데…….”

숙모는 도저히 야야와 짜를 쳐낼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무조건 쳐낼 이유가 없기도 했고.

애초에 도와주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 번 손을 내밀었으면 끝까지 물에서 건져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알았어요.”

내가 말하자 숙모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결국 남을 도와주는 것인데도 저렇게나 좋은 걸까.

일순 숙모에게 존경심마저 들었다.

‘저럴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아직도 멀었다.

“하지만 3개월 수습기간을 가질 거예요.”

“그럼 90%만 주게?”

“그건 아니죠.”

“어?”

“계산은 확실히 해야죠. 줄 거 다 줘야죠. 대신 3개월 수습기간 동안 일 제대로 못 익히고, 자격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자를 거라는 거예요.”

숙모가 활짝 웃었다.

“내가 제대로 가르칠게.”

“수습기간 중이라도 제대로 못 하면 자를 거고요.”

“그야 당연하지.”

“집은 어떻게 하게요? 계속 숙모 집에서 먹고살게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몇 달만 같이 지내면 되지 않을까? 그럼 돈 모아서 살 만한 방 구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야야랑 짜 지금 어디 있어요?”

“집에 있을 거야.”

그때 사무실 밖에서 한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처음 하는 거 맞아? 엄청 잘하네!”

사무실 밖을 내다봤다.

행복 건강즙 2호점의 작업장.

짜가 부끄럽다는 듯이 웃으며 현란한 손놀림으로 과일을 손질 중이었다. 야야는 자신의 몸보다도 커 보이는 대야를 옮겨 물을 버리고 있었고.

숙모가 화들짝 놀라며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

“아니, 왜 나와서 일을 하고 있어. 집에서 쉬어야지! 스탑! 스탑! 일하지 마! 노 워크!”

나는 그 광경을 보며 피식 웃고 말았다.

4

행복 건강즙 2호점 사무실.

맞은편에는 야야와 짜가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조금 겁을 먹은 듯한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이 보는 앞에서 이단옆차기를 날렸으니 그럴 수 있었다.

안 그래도 학대받던 사람들인데, 나도 그 남자와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입 안에 쓴맛이 돌았다.

다시 한 번 스스로가 인성적으로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부터 하는 얘기들을 잘 통역해 줘요. 짜는 다 못 알아들으니까. 알겠죠?”

야야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일단…… 한 가지 물어볼게요. 두 사람 의견이 중요한 거니까. 여기서 일하고 싶어요?”

그 순간 야야와 짜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네! 진짜 하고 싶어요!”

“여기서 일할 수 있다면 소원이 없을 거 같아요.”

나는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그러면 안 되죠.”

야야와 짜는 다소 놀란 듯 커다란 눈을 깜빡거렸다.

나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여기는 거쳐 가는 직장이어야지, 고작 이 정도 일자리로 소원이 없으면 되겠어요?”

“아, 하하…….”

야야는 안도한 듯 웃다가 짜에게 태국어로 지금 상황을 설명했다. 짜도 얘기를 듣고 나서는 피식 웃었다.

“여기서는 일한 만큼 벌 수 있어요. 절대 임금 체불 같은 문제도 없을 거고, 쉬는 날도 확실히 지켜질 거예요.”

내가 말하자 야야는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저희 여기서 일할 수 있는 건가요?”

“저는 두 분을 채용하고 싶은데, 조건을 들어봐야 되지 않겠어요?”

“좋아요, 무조건 좋아요. 꼭 일하게 해주세요.”

짜도 기가 막히게 알아듣고는 어설픈 영어로 말했다.

“원해요! 일! 저는 일을 원해요!”

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무조건 하고 싶을지는 얘기 다 듣고 나서 결정하세요. 조건이 있으니까요.”

어린아이처럼 활짝 웃던 야야는 금세 긴장한 얼굴을 했다.

“어떤…… 조건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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