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22화
27. 연습에 연습 (3)
“일단 메뉴부터 얘기하자.”
“네, 네.”
본격적으로 일 얘기가 시작되자 노우민은 눈을 반짝였다.
이거 하나만 봐도 녀석이 허투루 하고 있지 않음이 느껴졌다.
단순히 열심히 해서가 아니라, 즐기는 걸로 보였다. 눈빛부터가 달라졌다.
그만큼 녀석에게 영어공부는 어려운 듯하다. 그런데도 죽어라 해줘서 고맙고.
“네가 얘기한 아보카도랑 연어가 세계 10대 슈퍼 푸드들로 꼽혔던 거잖냐.”
“네, 네. 맞아요, 안 그래도 그거 검색해 봤었습니다.”
“거기 있는 것들을 사용하면 좋을 거 같은데?”
“예를 들면요?”
“일단 밥부터 다른 김밥도 내 볼 수 있겠지. 쌀에 귀리랑 현미 같은 걸 조금 섞어서 하면 괜찮을 거 같아. 뻑뻑하면 안 되니까 발아현미나 찰현미 같은 것도 있고. 그쪽에서 들이기 쉬운 것들을 이용해야 하니 잘 알아봐야겠지만.”
노우민은 어느새 메모장을 꺼내 열심히 받아 적고 있었다.
“퀴노아도 좋을 거 같다. 그쪽에서 유기농 구하는 게 어렵지도 않고, 요즘 건강 생각하는 사람들한테 유행하거든. 식물성 고단백 식품이기도 하고.”
“퀴노아는 제가 먹어본 적이 없네요. 무슨 맛이에요?”
“난 그냥 밥에 살짝 섞어서 먹어보니까 약간 좁쌀 느낌 나고 좋더라고. 밥의 맛에 크게 영향을 안 미쳐.”
“그럼 퀴노아가 1픽이네요.”
“1픽?”
내가 피식 웃자 노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무래도 건강에 좋은 것도 그렇지만 맛을 버리면 안 되니까요.”
“그리고 한국인 하면 뭐냐?”
“한국인이요?”
“한국 음식.”
“특징이요?”
“어.”
“음…… 고춧가루?”
나는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손을 저었다.
“아니지, 마늘이지.”
“아, 그러네요.”
“마늘도 활용하면 뭐가 좀 나올 거 같고. 건강식품 중에 유명한 게 아몬드도 있고.”
“김밥에 아몬드는 활용하기 조금 힘들지 않을까요?”
“아냐, 의외로 괜찮은 게 나올 수도 있을 거 같아.”
“아몬드로요?”
“일단 우리 입맛 기준으로만 생각하면 안 되기도 하고, 새롭고 건강에 좋은 걸 맛있게 만들면 베스트 아니겠냐.”
노우민이 피식 웃었다.
“그것도 그렇네요.”
“일단 생각난 게 좀 있긴 해.”
“어떤 거요?”
“마늘도 그냥 생으로 넣으면 싫어할 거 아니냐. 마늘이 한국에서는 무슨 채소처럼 먹지만, 외국에서는 향신료니까.”
“그렇……겠죠?”
“마늘을 프라이로 하는 거야.”
“프라이로요?”
“그러면 매운맛은 사라지고 고소하잖아. 원래 마늘빵 같은 것도 많이 먹고.”
“그렇죠.”
“여기서 아보카도를 쓰는데, 마늘 프라이를 할 때 기름으로 아보카도 오일을 쓰는 거지.”
“아보카도 오일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올리브유를 생각했는데, 올리브유는 고열에서 타잖아. 그럼 몸에 안 좋은 거 나오고. 아보카도 오일은 발연점이 높아.”
“자연스럽게 섭취할 수 있겠네요.”
“그렇지. 그리고 여기서 하나 더.”
“또 뭐요?”
“아몬드 드레싱을 쓰는 거지.”
“아몬드 드레싱이요?”
“어. 그걸 안에 넣을지, 위에 올릴지, 찍어 먹는 딥핑 소스로 할지는 생각해봐야겠지만.”
노우민은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더니 눈을 반짝였다.
“괜찮겠는데요?”
“그치?”
“네, 진짜로요. 엄청 고소할 거 같은데. 맛있겠어요. 근데…….”
“근데 뭐?”
“한식 느낌은 별로 안 나겠네요.”
“퓨전이지, 퓨전.”
“좋을 거 같아요. 이건 무조건 해야겠네요.”
“그러냐?”
“네, 아마 몇 번 말아보면 금방 맛도 나올 거 같아요. 뭐가 같이 들어가냐가 문제이긴 한데, 어차피 웬만한 건 같이 들어가도 마늘이랑 아몬드 드레싱 맛에 묻힐 거라서. 받쳐 주는 맛만 잘 살리면 될 거 같아요.”
나는 씩 웃었다.
“잘 생각했지?”
“지금 떠올리신 거예요?”
“응.”
“타고나신 거 같아요.”
“타고나긴 무슨.”
예전의 내가 이런 걸 떠올릴 수 있었을까?
장담컨대 못했다.
할아버지로부터 전수받은 능력 그리고 사업이 성공한 뒤 돈을 많이 벌어 이런저런 음식들을 먹어본 덕분이었다.
과거의 나는 웬만한 함바집 밥 수준의 절반도 따라가지 못하는 구내식당 혹은 라면만 먹고 살았으니까.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한 번은 구내식당 아줌마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을 그만뒀다.
그때 쾌재를 불렀다.
음식을 정말 맛없게 했었으니까.
이제는 좀 나아지겠지, 하고 기대를 했었다. 조금이라도 나은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 안 그래도 힘든데 먹는 낙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의 기대는 단번에 무너졌다. 경리 아줌마가 점심시간에 주방 아줌마로 변신했으니까.
당연히 식사의 퀄리티는 더욱 떨어졌다.
차라리 내가 음식을 해도 더 낫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었다.
“그런데 아까 음식 말고 다른 걸 준비하셨다고…….”
노우민이 조심스레 말했다.
“아, 그거. 너 내일모레 시간 좀 비워라.”
“모레요?”
“일 있으면 다른 날도 괜찮고.”
“아니요, 괜찮아요.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로 그러세요?”
“밥 먹게.”
“네?”
나는 피식 웃었다.
“네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전국에서 김밥 제일 잘 판다는 곳들 좀 가봐야 되지 않겠냐?”
“아……! 그렇죠.”
“분명히 배울 것들이 있을 거야. 나랑 쭉 돌아보자고.”
“네, 좋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들어가자.”
“네.”
그렇게 카페를 빠져나왔다.
차에 타기 전, 걸음을 멈추고 옆에 따라오고 있는 노우민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영어공부도 열심히 하고. 너도 이제 잘 알겠지만, 어디에나 진상은 있다. 진상이 아니라, 정당한 클레임도 있을 수 있고. 생각지 못한 요구사항들이 있을 수도 있어. 당연한 얘기지만 말 안 통하면 그걸 어떻게 받겠냐?”
“그쵸, 그쵸.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래, 들어가서 푹 쉬고.”
“네.”
“외할머니는 잘 계시지?”
“네, 어제도 통화했는데 정정하세요.”
“애들도 별일 없고?”
“잘들 있죠. 어제도 대표님 얘기 나왔었어요.”
나는 눈을 살짝 크게 떴다.
“내 얘기?”
노우민은 조금 당황하는 것 같더니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아, 그게…… 애들이 대표님께서 워낙 잘해주셔서…….”
“뭔데 인마.”
“저번에 대표님이 사 주신 게 맛있었다느니, 뭐라느니…… 저한테 대표님 밑에서 뼈를 묻으라고…….”
나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그런 얘기를 했어?”
“네, 뭐…… 애들이라서.”
“그럼 모레 애들도 데리고 나와.”
“네?”
“우리 김밥 먹으러 가는 거 같이 가고 싶으면 가자고 해. 나가는 김에 애들 놀 만한 곳들도 들르고 그러지 뭐.”
“아니요, 괜찮아요.”
“억지로 가자는 건 아니고, 애들이 원하면 같이 가자고 해. 애들은 김밥 말고 먹고 싶은 거 먹어도 되니까. 그냥 가는 김에 움직이는 건데, 뭐. 지방까지 돌기는 힘들 거니까, 서울 있는 가게만 돌 때 애들이랑 같이 움직이면 되지.”
노우민은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나의 눈치를 살피다 입을 열었다.
“한 번 애들한테 물어볼게요.”
“그래, 억지로 갈 필요는 없고. 같이 즐겁게 다닐 수 있을 거 같으면 가고.”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녀석이 갑작스레 90도로 인사를 했다.
“왜 이래, 인마. 뭐 그렇게까지 고맙다고.”
“제가 대표님 아니었으면 지금의 일이나 삶을 꿈이나 꿀 수 있었겠습니까.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꼭…… 꼭 다 갚겠습니다.”
“갑자기 왜 이래. 야,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집에나 가자.”
“정말 감사드립니다.”
“한 번 더 그러면 놓고 간다?”
“아이, 대표님도, 기름도 안 나는 나라에서 에너지 아껴야죠. 가는 길에는 태워주셔야죠.”
이제는 제법 능글거릴 줄도 안다.
“가자.”
그렇게 우리는 차에 올라 집으로 향했다.
내가 언제부터 베풀기를 좋아하고, 누군가를 이렇게 챙겼을까.
곳간에서 인심 난다더니, 옛말 틀린 거 하나도 없는 듯하다.
4
다음 날이었다.
다온의 오픈 첫날.
작은아빠와 권호순은 다른 직원들과 함께 주방에서 준비하느라 바빴다.
고모도 홀 직원들과 이것저것 상의하며 사뭇 진지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중간중간 얼굴에 웃음이 번지는 걸 보니 고모 특유의 친화력으로 벌써 모두 가까워진 것처럼 보였다.
오픈이기에 나와 있긴 했지만, 내가 벌린 사업들 중 가장 손을 대지 않을 곳이었다.
그렇기에 내 수익이 줄더라도 작은아빠와 고모, 권호순 그리고 직원들도 여럿 고용했다.
행복 건강즙 1호점과 2호점, 카페 웰웰, 건강 주스 웰니스까지.
내 손이 거의 안 타기는 했지만, 글루텐 프리 건강 제빵, 쿠키점도 있었다.
그런데도 떨렸다.
행복 건강즙 1호점은 작게 시작했고, 2호점이나 웰웰, 웰니스는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은 상태에서 시작했다.
결국, 행복 건강즙 1호점이라는 뿌리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다온은 모든 게 처음부터 시작이었다. 투자금이나 고용한 직원 수도 남달랐고.
내가 강남에 식당을 오픈하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나도혜가 말했던 대로 유동인구들이 오기에는 위치적으로 불리한 점이 있었다.
결국 마케팅이 얼마나 잘 됐느냐가 중요했다.
대박을 바라지는 않는다.
내 손에 떨어지는 게 없어도 좋다.
다온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삶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
괜히 서성거리고 있는데 고모가 다가왔다.
고모는 콧잔등을 찡그리며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떨리냐?”
“떨리긴 뭘 떨려.”
“딱 봐도 긴장했구만.”
“고모가 더 그런 거 같은데?”
“떨리지, 내가 이걸 해봤어야지.”
“뭐…… 처음에는 계산만 안 헷갈리고 잘하시면 되니까.”
오픈 시간이 다가왔다.
가게 인테리어 특성상 안에서 밖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밖에서도 안이 들여다보이면 장단점이 있다.
손님들이 많이 몰려 있으면 가게의 존재를 모르던 사람도 호기심을 가진다.
뭐 때문에 손님이 저렇게 많은지, 저렇게 맛있나, 하면서 발길을 이끈다.
대신 창가 쪽의 손님들은 간혹 시선이 신경 쓰일 수 있다.
게다가 만석이 아닌데도 사람이 너무 많다며 입장을 꺼리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그리고 만석일 경우에도 헛걸음을 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가게 입장에서는 계속 받지 못하는 손님을 응대하느라 인력에도 손실이 난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상황을 연출하게 될 수도 있긴 하지만.
나는 최대한 편안한 분위기에서 사람들이 식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했다.
특히 점심에는 비빔밥 한 그릇을 먹더라도 대접받는 기분이 들게끔 하고 싶었다.
깔끔한 인테리어에 정갈하게 차려져 나오는 음식.
거기에 맛은 너무 독특하지 않고 편안하게 계속 먹히는 그런 식사.
중장년층은 물론이고, 비교적 젊은 사람들도 찾아오기 좋게 하고 싶었다.
인테리어에 신경을 쓴 것도 그런 이유였다.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분위기를 즐기고, 젊은 사람들은 사진을 찍어 SNS에도 올릴 수 있게.
이제 오픈할 때였다.
오늘은 고모와 함께 앞으로 가서 문을 열고 영업 중임을 알리는 팻말을 세울 예정이었다.
가게 문을 열자마자 나와 고모는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가게 앞에 사람들이 늘어선 줄이 20m는 넘어 보였으니까.
그때 맨 앞에 서 있는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나를 보고는 말했다.
“어, 강건희다.”
그 옆에 있던 남자도 나를 보고는 목소리를 냈다.
“진짜네, 강건희네. 직접 나와서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