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118화 (118/174)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18화

26. 새해 (4)

5

12월 31일.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특별함으로 가득한 한 해였다.

하지만 새해를 맞이하는 순간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새해를 맞이하는 순간에는 무언가 해야 할 것만 같은 강박관념이 다가온다.

열중하는 일이 있으면, 새해를 맞이하는 순간에 그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 일을 더 열심히 하고, 새해에는 더 잘 될 거라는 그런 마음이다.

여전히 같은 부분들도 많지만, 작년과 다른 점도 많다.

우선 내가 달라졌다.

내 삶은 180도로 달라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먼저 연락이 와서 답장을 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관리라는 표현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내게도 관리를 해야 할 인맥이라는 게 생겼다.

TV도 끄고, 잠시 컴퓨터 앞에서도 벗어났다.

침대에 걸터앉아 여러 가지 생각들을 했다.

자정이 코앞.

나는 머릿속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올렸다.

잘들 지내시죠? 덕분에 저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했다.

가족들이 아니었으면 어디 내가 지금의 삶을 꿈이나 꿀 수 있었나.

시간은 절대 멈추는 법이 없고, 새해가 찾아왔다.

우웅.

짧은 진동이 울렸다.

나도혜에게 온 문자메시지였다.

[강 대표님, 벌써 2019년이 지나가고 이렇게 2020년이 왔네요. 새삼 시간이 참 빠르다는 걸 느낍니다. 오늘 밤에 행복한 꿈꾸시고, 이제 시작되는 2020년에는 더 즐겁고 좋은 일만 가득하세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형식적이긴 하지만, 내가 보냈던 문자에 왜 답장이 없나 했더니. 딱 맞춰서 보내려고 그랬던 건가?

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답장을 보냈다.

[원장님과 처음 뵀던 게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벌써 이렇게 지났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웃는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했다.

그 기분을 고스란히 품은 채 침대에 누웠다.

6

1월 1일.

여전히 특별한 건 없다.

카페 웰웰을 제외하고는 직원들의 복지랍시고 전부 쉰다.

나는 아침의 시작을 간단한 식사 그리고 공부로 했다.

언제 누가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할지 모른다.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하나라도 더 익히고 있는 게 나의 운명이라 생각한다.

점심쯤에는 집을 나섰다.

남들 쉴 때 고생하고 있을 강인나가 신경 쓰였다.

1월 1일 낮인데도 손님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대다수가 커플이었다.

내가 카페로 들어서자 강인나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어? 오빠. 웬일이야?”

“그냥 들렀지.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다른 직원과 아르바이트생이 없었다.

“오늘 손님도 많이 없을 거 같고 그래서 그냥 쉬라고 했어.”

“둘 다?”

“직원 오빠는 이따 오후에 손님 좀 있을 것 같을 때 들러보겠대.”

“착하네.”

“응, 일 엄청 열심히 잘 봐줘.”

“이럴 거 같으면 말을 하지. 그냥 여기도 쉬게.”

“그럴 수는 없지. 카페가 매일 열려 있어야지.”

나는 카운터 안쪽으로 들어섰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뭘 어쩔 수 없어? 왜 여기 들어와?”

“너 혼자 고생하는데 어떻게 그냥 보고만 있냐.”

“안 보고 가시면 되죠.”

“야, 이…….”

강인나는 배시시 웃었다.

“아니, 근데 진짜 안 도와줘도 돼. 지금도 한가하잖아.”

“한가하긴 뭘 한가해.”

“진짜 괜찮은데.”

“내가 안 괜찮아.”

“나야 오빠가 도와주면 땡큐지 뭐.”

스스로 휴가를 반납했지만, 싫은 기분은 하나도 없었다.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인나에게 맡겼지만, 거들지 않았다면 찝찝했겠지.

들르길 잘했다.

7

1월 1일, 웰웰의 마감 30분 전.

“오빠도 장가 가야지.”

강인나의 말에 헛웃음을 쳤다.

“뭔 장가야.”

“가야지. 오빠도 이제 37살이야.”

“시끄러워.”

“아저씨.”

“장가도 안 갔는데 뭔 아저씨야.”

“장가도 안 간 아저씨.”

“흙 냄새 맡고 싶냐?”

강인나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지?”

“글세? 천국 가나?”

“그런 거 말고. 생물학적으로.”

“땅에 묻혀서 흙으로…… 아!”

녀석은 그제야 이해가 됐다는 듯 깔깔 웃었다.

“이해했어!”

“웃겨? 아저씨라고 또 그러면―”

“아저씨.”

“야, 이…….”

일반적인 사촌지간은 아니다.

나이 차이가 꽤 있지만 친남매 같다.

우리처럼 가까운 사촌지간도 있긴 하지만, 아예 남처럼 지내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새해 계획은 세웠어?”

내가 묻자 강인나가 피식 웃었다.

“뭔 계획씩이나…….”

“그래도 목표를 세워야지.”

“지금 꿈을 이루고 있는데 뭐.”

“꿈을?”

“응. 예전에 시작하기 전에도 그랬잖아. 이렇게 내 가게를 갖는 게 꿈이었어. 조금 다른 점이라면…….”

“왜, 뭐가 생각처럼 안 돼?”

“내가 생각한 가게는 엄청 여유롭고 느긋하고 그런 거였거든. 근데 할 것도 너무너무 많고 바쁘네. 뭐, 손님들이 많다는 건 좋은 거지만.”

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마음속으로는 조금 걱정됐다. 강인나가 속이 깊기는 하지만 이제 고작 21살.

“일 힘들어?”

“쉽지는 않지. 그래도 재밌어. 욕심도 나고.”

“그래?”

“응, 어느 새부터인가 진짜 2호점, 3호점 하나씩 늘리고 싶다는 욕심도 들더라고.”

“그렇게 될 거야.”

“그래야지.”

“지금 출근 어떻게 하더라?”

“격주로 하고 있지. 한 주는 하루 쉬고, 그 다음 주는 이틀 쉬고.”

“이제 주 5일로 고정하는 게 어때?”

강인나는 미간을 살짝 좁히며 고민했다.

“그럼 알바 1명 더 써야 될 걸? 지금 알바도 시금 9천 원씩 주는데.”

“그래봤자 4주에 이틀 차이야. 그 돈 조금 더 쓰고 너 쉬는 날 더 생기면 좋지.”

“2주에 하루만 근무할 알바가 없잖아.”

“당연히 그 부분은 조정해야지. 부매니저도 숨통 좀 트게 하고, 아르바이트 하나 더 쓰면 되지 않겠어?”

“얘기를 좀 해봐야 알 거 같은데.”

“풀어지라는 소리는 아니지만, 너무 몰아붙이지도 마. 넌 아직 어리잖아. 다른 하고 싶은 것들도 있을 수 있고.”

나의 말에 강인나의 표정이 묘해졌다. 뭔가 더 있긴 한 듯하다. 나는 녀석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뭐 하고 싶은 게 있긴 하구나?”

“아니, 난 진짜 웰웰 운영하는 거 좋아. 계속 이대로만 된다면 평생 하고 싶을 정도로.”

“그럼? 보니까 뭐가 있기는 있는데.”

“사실 지금도 하는 일이긴 한데…….”

“뭔데?”

“요즘 내가 이리저리 모델 활동을 좀 하잖아?”

“그렇지.”

“전부 오빠 덕분이야. 처음에 웰니스 모델 한 번 했던 게 잘 돼서 SNS로 좀 유명해지고 여기저기서 일이 들어오더라고. 협찬까지 들어오고.”

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대충 알고는 있었는데.”

“그 일이 생각보다 재밌더라고. 들이는 시간에 비해 이것도 조금 짭짤하고.”

강인나가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나는 피식 웃었다.

“계속 얘기해.”

“근데 촬영 스케줄 맞추는 게 어렵더라고. 웬만한 날들은 괜찮은데, 딱 하나를 할 수가 없어.”

“뭔데?”

“사실은…… 저번에 해외 촬영이 들어왔었거든. 잡지 화보였는데, 발리로 가야 된대. 2박3일 일정이더라고. 근데 난 최대 쉴 수 있는 게 이틀이잖아.”

“그거 때문에 일을 거절했던 거야?”

“그랬지.”

나는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바보야, 그럼 나한테 말을 하지.”

“오빠도 엄청 바쁘고, 다른 사람들한테 폐를 끼치는 게 좀 그래서 그랬지.”

“아휴……. 그래도 조정을 해보지……”

“다른 사람들도 이미 빡빡하게 일하고 있고, 전부 일정이 있는데 나 때문에 더 고생하면 안 되니까.”

“지금은? 그거 지금 하겠다면 할 수 있어?”

“물어봐야 하는데 아마도……? 언제든지 다시 연락 달라고 했으니까.”

나는 두 눈을 부릅떴다.

“해.”

“어?”

“당장 아르바이트 한 명 더 뽑고, 무조건 해.”

“그래도 돼?”

“그런 일이 있으면 일단 나한테 먼저 상담을 해. 그러니까 내가 있는 거잖냐.”

“알았어.”

“내가 바로 공고 올릴 테니까, 넌 바로 연락부터 해.”

“지금?”

“새해 인사 겸 슬쩍 물어보면 되지. 빨리.”

“알았어! 고마워 오빠! 오빠가 최고야!”

“별게 다 최고란다. 지가 미련하게 해놓고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챙긴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빈 곳들이 드러난다.

사람과 사람이 엮이는 이상 인간관계고, 거기서 완벽함이란 없겠지.

하지만 분명히 신경을 쓰면 더 개선이 가능하다.

더 노력하면 된다.

대부분의 문제들은 안 해서 문제지, 하면 된다.

8

강인나를 집에 데려다준 뒤 돌아가는 길이었다.

벌써 오후 8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나마 오늘은 신정이랍시고 평소보다 웰웰의 영업을 일찍 마감한 덕분이었다. 그것도 강인나가 안 된다는 것을 겨우겨우 설득시켰다. 녀석이 자랑스러우면서도 지독하다고 생각됐다. 체력도 좋고.

“이렇게 새해의 첫날도 지나가는구나아.”

나도 모르게 묘한 리듬을 넣어 흥얼거렸다.

우우웅. 우우웅.

휴대폰이 울렸다.

나도혜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대표님.

“네에, 원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쇼!”

―네, 감사해요. 대표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나저나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저녁식사 하셨어요?

이것저것 먹을 것을 사서 강인나의 손에 쥐어 보냈지만, 나는 거른 상태였다.

“아니요, 아직이요.”

―왜 아직까지 식사를 안 하셨어요.

“조금 아까까지 웰웰에 나가 있었거든요.”

―웰웰에요? 왜요?

“잠깐 들렀는데 강 점장이 혼자서 일하고 있더라고요. 그냥 올 수가 있어야죠.”

―아, 그래서 그러셨구나. 그럼 저랑 같이 식사하실래요?

식사 여부를 물어볼 때부터 어느 정도 감을 잡긴 했지만, 갑자기 훅 들어오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지금요?”

―그럼 지금이죠.

“어디신데요?”

―잠깐 뭐 좀 가지러 오려고 병원에 들렀어요.

“그럼 제가 모시러 갈까요?”

―아뇨, 중간에서 만나죠. 저도 차 가지고 왔거든요.

나도혜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그럼 어디서 뵐까요?”

나의 물음에 나도혜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문자로 장소 보내드릴게요. 거기서 봬요.

“네, 그래요. 그럼 문자 주세요. 바로 출발할게요.”

―네, 곧 봬요.

바로 한식당 주소가 담긴 나도혜의 문자가 도착했다. 마치 준비했던 것처럼.

이렇게 빨리 주소를 보낼 수 있나?

나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묻히며 천천히 차를 돌렸다.

9

요리가 코스로 나오는 고급 한정식집이었다.

룸 형태로 된 곳에 나도혜와 마주앉았다.

“겨우 시간 맞췄네요. 라스트 오더가 오후 9시거든요.”

나도혜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제가 조금 먼저 도착해서 바로 주문했어요. 괜찮으시죠?”

“네, 그럼요.”

“어차피 디너는 코스 두 가지 중에 택하는 거라 큰 차이는 없어요.”

“네, 네. 괜찮습니다.”

나는 룸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고는 말했다.

“그나저나 되게 근사한 곳이네요.”

“그쵸? 요즘 말도 많고 탈도 많긴 하지만, 그래도 별 3개를 받은 곳이거든요.”

“이런 데는 또 처음 와보네요.”

“언제 한 번 대표님 모시고 와야겠다는 생각했었어요.”

조금 헷갈리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알고 있던 게 시작된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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