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16화
26. 새해 (2)
3
기다림.
삶은 언제나 기다림의 연속이라고들 한다.
어느 정도 공감한다.
하지만 살아가는 방식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이전의 나는 언제나 기회가 오면 잡으려고 기다렸다.
하지만 끝까지 오지 않았다.
아마 할아버지가 아니었으면 지금까지도 기다리고만 있었겠지.
원하는 게 있으면 움직여야 한다.
감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질 때까지 입을 벌리고 있어서는 안 된다.
직접 작대기를 들고 감나무를 쳐서 감을 떨어뜨려야 한다.
상담실에서 두 번째 건강 상담을 위해 기다리는 중이었다.
약속 시간이 10분 정도 지나가고 있었다.
5분 정도 늦게 오는 경우는 있었어도 이렇게 늦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게 아니면 약속을 지키지 않을 시 건강 상담 신청을 또 하는 게 불가능했으니까.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약속을 잘 지켜주는 것이기도 했고.
전화를 해봐야 되나?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였다.
똑똑.
노크 소리에 답했다.
“네, 들어오세요.”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피부가 뽀얗고 뚱뚱한 여자였다. 키는 160㎝가 좀 넘을 듯했고, 체중은 최소 100㎏ 이상.
얼굴은 앳된 걸로 봐서 나이가 많아도 20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안녕하세요오. 늦어서 죄송합니다. 지하철이 갑자기 앞차와의 간격 때문에 자꾸 정차해 있고 그래서…….”
여자는 양손을 앞으로 모으고 정말 죽을 죄라도 지은 양 눈치를 살폈다. 저렇게까지 미안해하니 괜히 안쓰러울 정도였다.
나는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괜찮습니다. 그래도 늦으실 것 같을 때는 미리 전화해 주시면 더 좋아요.”
“네, 네. 다음부터는 꼭 그럴게요.”
“앞에 앉으세요.”
여자가 조심스레 의자에 앉았다.
살이 많이 찐 것에 비해 건강에는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 혈당 수치나 요산 수치가 조금 높은 편이긴 했지만, 당장 몸에 무리를 줄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지금 상태를 유지한다면 결국에는 이상을 야기하겠지만.
젊음이 그녀를 지탱해 주고 있었다.
“오진희 씨 맞으시죠?”
“네, 네.”
“이제 곧 21살 되시고요?”
“맞아요.”
“어떤 것 때문에 오셨죠?”
오진희는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보시다시피 제가 살이 많이 쪄서요…….”
“언제부터 살이 찌셨어요?”
“음……. 솔직히 어릴 때부터 항상 살이 찐 편이긴 했어요. 아주 어렸을 때는 날씬했는데, 초등학교 올라가면서부터 조금 통통해지고…… 그다음부터는 쭉 뚱뚱한 편이었어요.”
“이제 다이어트를 결심하면서 오시게 된 건가요?”
“네, 네.”
그녀는 꽤나 주눅이 든 모습이었다.
“사실은 제가 재수를 준비했었거든요.”
“아, 시험을 잘 보셨나요?”
“네, 네. 성적은 잘 나왔는데…….”
오진희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재수하면서 살이 더 쪘어요. 그래도 항상 80㎏ 정도를 유지했었는데…….”
그녀가 말끝을 흐렸다.
나는 편안하게 웃어 보였다.
“그냥 편하게 말씀하세요.”
“……100㎏가 넘어버렸어요.”
“살을 빼고 싶으시다, 이거죠?”
“네, 맞아요. 내일 모레면 새해기도 하고, 이제 대학에도 가는데 이 상태로는 부끄러워서요.”
“그럼 제가 살 빼는 방법을 알려드리면 될까요?”
“네, 대학교 가기 전에 쫙 빼고 싶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처음으로 웃음기를 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안 돼요.”
“네?”
“지금 정확한 체중이 어떻게 되시죠?”
“……103㎏요.”
“키는요?”
“164㎝요.”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다 입을 열었다.
“진희 씨는 어릴 때부터 계속 살이 찐 상태셨어요. 그리고 지난 1년 동안 급격하게 찌셨고요. 맞죠?”
“사실 수능 준비할 때 90㎏ 가까이 쪘어요. 재수를 하면서 100㎏을 넘겼고요.”
“아마도 공부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푸신 것 같아요. 그래도 목표는 이루셨다니 다행이지만, 이제는 몸도 돌봐야겠죠?”
“네.”
“사실 체중을 줄이는 데만 집중하고 싶다, 남들이 봤을 때 날씬해 보이고 싶다, 이것만이 목표라면 단기간 다이어트도 가능해요.”
오진희가 눈을 반짝였다.
“그렇게 하고 싶어요.”
“살가죽이 축축 늘어져도요?”
“네? 아…….”
“피부에도 시간을 줘야 합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려서 현재 피부 안쪽을 지방이 채우고 있어요. 그런데 이 지방이 갑자기 빠져 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가죽이 남겠죠? 그게 늘어진 채로 남는 거예요. 한 번 그렇게 된 피부는 되돌리기 힘들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천천히 빼시면 됩니다. 오랜 시간 동안 살을 찌워오셨죠? 평생 쪘던 살, 그리고 2년 동안 갑자기 붙은 살. 그럼 빼는 시간도 비슷하게 투자해야 되지 않을까요?”
오진희는 울상을 지으며 물었다.
“그럼 평생 빼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평생 관리는 해야죠. 근육량을 늘리면서 지방은 줄이고, 그렇게 천천히 살을 빼는 겁니다. 그럼 피부도 탄력을 유지한 채 줄어들 시간을 가질 수 있겠죠. 현재 103㎏이라고 하셨죠? 한 달에 2㎏씩만 빼면 2년에 48㎏입니다.”
나는 오진희가 앞으로 다이어트 목표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종이에 쓰면서 말을 이었다.
“다이어트를 시작하는 첫 3개월 정도까지는 살이 비교적 빨리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첫 달에 그렇죠. 그럼 첫 달에만 4㎏를 뺀다고 생각하고, 나머지는 2㎏씩, 2년 동안 50㎏를 뺀다고 생각해요. 103㎏에서 50㎏ 빼면 몇 ㎏이죠?”
“53㎏요.”
“그 정도면 충분히 목표에 다다르는 걸까요?”
“그렇죠.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죠.”
“그쵸? 키가 164㎝에 53㎏이면 지극히 정상 체중이잖아요? 게다가 운동까지 하면서 관리하면 체지방량은 평균보다 낮아질 수 있습니다. 2년이에요. 다이어트는 장기적으로 계획을 잡고 작은 목표를 하나씩 달성해가며 쭉 해야 합니다. 첫 달에 4㎏, 매달 2㎏씩이요.”
오진희가 눈을 반짝였다.
“네, 네. 꼭 해내고 싶어요.”
“일단 운동이 필수입니다. 식단 조절은 당연한 거고요. 첫 달만 4㎏, 한 달에 2㎏씩 빠지는 걸 유지하면 돼요. 중간에 좀 더 많이 빠지는 달도 있을 거고, 체중이 줄어들지 않을 때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신경 쓰지 마세요. 이건 최종 목표에 이르기까지 계단식으로 설명을 드린 것뿐입니다.”
“그럼요?”
“거울을 보면 가장 정확하잖아요. 체중이 50㎏든 80㎏든 100㎏든, 스스로가 거울을 봤을 때 가장 보기 좋은 몸매가 돼야죠. 안 그래요?”
“맞아요.”
“같은 체중이더라도 골격이 어떤지에 따라, 타고난 체형, 그리고 근육량과 체지방량의 비율에 따라 몸매는 천차만별이에요. 요즘은 이런 것들이 많이 퍼져 있어서 어느 정도는 알고 계실 거예요.”
오진희는 완전히 몰입해서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네. 맞아요.”
“일단 커다란 계획은 이렇게 잡고 가시는 거예요. 장기적으로, 식이 조절을 하면서 운동을 병행하는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지금 진희 씨 같은 경우는 아직 젊기 때문에 천천히 다이어트를 하면 늘어지는 피부 없이 건강하고 예쁜 몸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니 꾸준히 하시길 바랍니다.”
“네, 열심히 할게요.”
그녀는 잠시 눈치를 살피다 물었다.
“그런데 운동은…… 어떤 걸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무래도 뛰어야겠죠?”
“운동을 안 하던 사람이 갑자기 뛰고 그러면 오히려 안 좋을 수 있어요. 특히 진희 씨의 경우 과체중이기 때문에 무릎 같은 곳에 무리가 갈 수도 있고요. 빠른 걷기로 충분합니다.”
“빨리 걷기만 하면 되나요?”
“당연히 아니죠.”
“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세요. 헬스요.”
“헬스요?”
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말했다.
“네, 다양한 운동들이 있지만 몸매를 만드는 데는 헬스만큼 좋은 게 없습니다. 다른 운동들은 각자의 목적이 있어요. 공을 차든 던지듯 치든 아니면 특정한 방식으로 몸을 움직이든……. 운동의 목적이 분명하게 있죠. 헬스는 운동 자체의 목적이 몸매를 만드는 데 집중돼 있습니다. 단순히 몸매 만들기와 건강을 위해서라면 헬스를 하세요.”
“아, 네……. 조금 부끄러운데…….”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가만히 있어도 몸매가 좋으면 운동을 하러 왜 가겠어요?”
“사실…… 예전에 수능 끝나고 재수를 하게 될 줄 몰랐을 때 헬스장에 한 번 간 적이 있었거든요.”
“네, 계속 말씀하세요.”
“그런데…… 그때 다른 사람들이 저를 보면서 비웃고 수군거린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나는 주눅이 든 오진희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 사람들이 바보 같은 겁니다.”
“네?”
“헬스장에 온 살이 찐 사람을 놀리는 사람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구직 센터에 간 사람을 비웃는 것과 같습니다. 목이 말라서 물을 사러 간 사람을 비웃는 것과 같고요.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지금의 몸은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어요.”
오진희가 생긋 웃었다.
“고맙습니다.”
“아직 멀었어요.”
“네?”
“할 얘기 많이 남았다고요. 피부 늘어짐을 방지하기 위해 실천해야 할 거랑 장기적인 계획 부분만 말씀드렸죠? 웨이트를 해서 근육을 늘리라는 거랑요.”
“네, 네.”
“식단 같은 부분들을 자세히 설명드리기 전에 경고부터 하고 넘어가야겠네요.”
“경고요? 무슨 경고요?”
오진희는 조금 당황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건강이요.”
“아, 네…….”
“지금은 진희 씨가 젊어서 괜찮지만, 그 상태를 유지하면 언젠가 반드시 문제가 돼서 돌아옵니다. 비만이 괜히 만병의 근원이라는 게 아니에요. 각종 성인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느니, 그런 얘기들이야 많이 들어서 아시겠죠.”
“네……. 집에서도 살 빼라고 성화세요.”
“지금 피 검사를 하시면 혈당 수치랑 요산 수치가 높게 나올 겁니다. 전부 무분별한 식습관 때문이죠.”
“……네.”
내가 물었다.
“혼나는 기분이시죠?”
“……조금요.”
“스스로를 아끼지 않으셨으니까 조금 혼나셔도 돼요.”
오진희는 당황하면서도 피식 웃었다.
“이제 열심히 할게요.”
나는 그녀를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그럼 오늘 여기 오기 전에 먹은 거랑 어제 먹은 거 말씀해 보실래요?”
오진희는 적잖이 당황한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네? 아, 그게…….”
“솔직하게요.”
“……오기 전에 햄버거 세트 하나 먹었고요, 어제 저녁에는 국밥 먹었어요.”
“그전에는요?”
“치킨…….”
“그전에 아침은요?”
“떡볶이랑 튀김이랑 순대랑…….”
골고루 다양하게도 먹었다.
나는 미소를 유지한 채 말했다.
“전부 드시면 안 되는 음식들인 건 아시죠? 적어도 당분간은요.”
“……네.”
“다이어트 때문에 상담을 받으러 오시는데 전부 드시고 왔네요.”
“이제 못 먹을 거 같다고 생각해서…….”
“그러시면 안 돼요. 마음을 먹은 순간부터 시작을 해야 돼요. 지금도 솔직히 말씀해 보세요. 상담 마치고 나면 오늘 내일은 맛있는 거 드실 생각하셨죠? 1월 1일부터 진짜로 시작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아…….”
오진희는 마음을 전부 읽힌 듯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1월 1일에는 새해라고 또 떡국을 먹었겠죠? 그래도 배달음식 같은 건 아니니까, 튀긴 것도 아니고 패스트푸드도 아니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할 거고요.”
“그게…….”
“솔직하게요.”
“……맞아요.”
“새해부터 시작이 아니에요.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을 해야 돼요. 시작이 반입니다. 담배를 끊든 술을 끊든 다이어트를 하든 뭘 하든, 지금 이 순간부터 당장 시작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