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13화
25. 크리스마스 (3)
고모는 좋은 사람이다.
정도 많고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쉽게 친해진다.
사람들을 대하는 게 특기일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매번 손님과 1대1로 이야기를 하게 되는 환경이었으니까.
최소 30분에서 염색이나 파마를 하는 손님과는 몇 시간 동안이나 이야기를 한다.
그런 고모가 직원 몇 명 혹은 손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울 리는 없다.
하지만 단순히 수다를 떠는 게 아니라, 홀 직원들을 효율적으로 움직이며 지휘하는 역할을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적어도 고모가 해본 일은 아니니까.
경력 있는 홀 매니저의 급여는 적지 않다.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여야 되니까.
하지만 내가 홀 매니저에게 바라는 건 모든 직원들과 함께 바삐 움직이는 것보다는 조금씩 일을 거들며 카운터에 자리하는 것이다.
그게 원래 작은아빠의 역할이었다. 즉, 내가 구하려는 홀 매니저의 역할을 사실상 사장과 같다.
다온의 얼굴이 되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모르는 사람보다는 고모가 그 자리를 맡는 게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뛰어난 직원을 구해도 ‘다온이 내 가게다’라는 생각을 가지기는 힘들다. 하지만 고모는 그럴 수 있다.
나이도 고려할 부분이었다.
가능하면 컴플레인이 아예 없으면 가장 좋겠지만, 음식점이든 뭐든 자영업을 하면서 컴플레인이 제로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때 손님들의 대부분은 직원을 대할 때와 사장을 대할 때의 태도가 다르다. 같은 사람이고, 누구에게든 그러면 안 되는 게 맞지만, 대부분 사장을 대상으로 할 때 격한 정도가 훨씬 줄어든다.
상대가 누구든 웃는 낯으로 금세 가까워지는 고모의 친화력을 생각하면 누구와 비교해도 그런 상황의 해결은 뛰어날 것으로 보인다.
직원들을 대하는 것도 그렇다. 천성이 부드러운 사람이다. 아마 다온을 작은아빠와 고모가 함께 운영한다면, 대부분의 직원들은 고모를 훨씬 편하게 대하겠지.
작은아빠는 딱 부러지는 사람이고, 고모는 말랑말랑하다.
당근과 채찍, 착한 경찰과 나쁜 경찰.
구도적으로 꽤나 괜찮게 느껴졌다.
―왜 말이 없어? 어떻게 생각해?
수화기너머로 작은아빠의 목소리가 울렸다.
“괜찮을 것 같기는 한데…….”
―근데? 뭐 문제 있어? 별로냐?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 고모가 하고 싶어 할까요?”
―그럼, 당연하지. 그리고 지금 인나가 잘 벌고 있기는 해도, 네 고모도 직접 돈 좀 만져봐야 되지 않겠냐?
“그렇죠.”
―카운터를 누구한테 맡겨도 네 고모한테 맡기는 것처럼 안심되지도 않을 거야. 부족한 부분은 배우면 되지. 네 고모가 미신 같은 거 좋아해서 그렇지, 그래도 머리는 잘 돌아가.
“그럼요, 알죠. 근데 고모가 하고 싶어 하려나?”
―관심 있을 걸? 안 되면 되게 해야지.
“제가 가서 말해요?”
―당연하지, 네가 대표잖냐.
“삼촌도 대표죠.”
―실질적으로는 네가 소유주지, 나야 지분 좀 있는 정도고.
“알겠어요, 얘기해볼게요.”
―그래, 끊는다.
고모와 만나서 이야기를 해봐야 할 듯했다.
행복 건강즙 2호점은 숙모가 잘 맡고 있었다. 최근에는 직원 수를 조금 더 늘렸다. 그 덕분인지 딱히 불만도 없었고, 직원들도 만족하며 일하는 듯했다.
웰니스야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나도혜가 꼼꼼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행복 건강즙 2호점에서 생산되는 것들을 유통하는 것인지라 어려움은 없었다.
이제는 주기적으로 시키는 고객들도 꽤 쌓였다. 품질 저하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지속적으로 안정적인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래도 안주하지 않고 단골 고객들에게는 서비스를 조금 챙겨준다거나, 홍보와 여러 이벤트에도 힘쓰고 있었다.
웰웰은 아직도 매출이 오르는 중이었다. 점장으로 있는 강인나의 역할이 컸는데, 녀석은 이제 SNS스타라고 부를 만큼 유명해졌다.
다행히 본인도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는지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즐기는 듯했다.
쿠키를 공급하는 민희재도 이제는 스스로가 건강하다는 확신이 들었는지 더 활발하게 일하고 있었다. 이쪽에서도 이야기를 진행하는 게 있었는데, 건강한 빵과 쿠키를 전문으로 하는 제과점을 열 가능성이 생겼다. 아마도 현재 빵집을 하고 있는 작은아버지의 가게를 재오픈을 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쪽이야 내 가게는 아니지만, 첫 인연이 인연인 만큼 좋은 관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았다.
모든 게 잘 되어가고 있었다.
내 관심은 다시 김밥에 꽂혔다.
어렸을 때 어른들이 밥 뭐 먹었냐고 물어봤을 때 ‘깁밥 한 줄이요’라고 대답하면 제대로 된 밥을 먹어야 한다며 혀를 찼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김밥만큼 영양 밸런스가 훌륭한 식품도 드물다. 심지어 요즘은 밥의 양은 줄이고, 다른 재료들을 풍부하게 넣는 것이 유행이라 영양이 더 뛰어나다.
그래, 김밥이다.
그런데 어떻게 시작해야 되지?
미국으로의 진출 방법이야 알아보면 다 나온다.
자문을 구해도 된다.
인맥?
한 다리 건너면 다 통한다.
맨입으로 바라면 안 된다.
돈 좀 쓰면 된다.
이러려고 돈을 번 거니까.
문제는 국내의 가게들을 놔두고 혼자 미국으로 건너가야 되는지에 대한 고민이다.
초반에는 어쩔 수 없겠지.
다시 한 번 되짚어본다.
모든 가게들이 나를 제외해도 책임자가 있다.
마치 이럴 때를 대비해서 판을 만든 느낌이었다.
6
이지나의 배웅을 뒤로하고 행복 건장즙 1호점을 나서는 찰나였다.
“어?”
노우민이 양손에 무언가를 바리바리 싸들고 오는 중이었다.
“우민아.”
“엇, 대표님.”
녀석은 꽤 놀란 눈치였다.
“너 가게 왜 나와? 아직 쉬기로 했잖아.”
“네? 아, 그게… 간식거리 좀 사서요. 그리고 이제 크리스마스인데, 다들 일 좀 일찍 끝낼 수 있게 도우려고…….”
“야 이 미친놈아.”
나도 모르게 말이 험하게 나갔다. 장난기가 섞여 있긴 했지만.
“네?”
“왜 돈도 안 받고 일을 해. 나와서 일할 거면 말을 해야지.”
“그럼 대표님이 그냥 계속 쉬라고 하셨을 거 아니까요.”
“어휴… 일단 그거 사온 것들만 가져다 드리고 다시 나와.”
“네? 그래도 온 김에…….”
나는 양손을 허리에 짚은 채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내일이 크리스마스인가?”
“정확히는 크리스마스이브죠.”
“흠…… 같이 들어가자.”
“네?”
“빨리. 후다닥 끝내자.”
다시 가게로 들어서자 이지나가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왜 다시 오셨어요?”
“일 좀 하려고요.”
“네?”
“지나 씨도 조금 도웁시다.”
“네? 저요? 과일 손질요?”
“씻는 것만 좀 도와줘요.”
“아… 네, 네. 알겠습니다.”
7
오후 6시 15분.
노우민은 물론이고, 이지나까지 끌어들여 일했다.
그런데도 평소보다 조금 늦었다.
아무리 늦어도 오후 5시 50분에는 일을 마치고 뒷정리를 하게 했는데, 이제 뒷정리를 해야 됐다.
그래도 불만을 표하는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내 앞에서 얼굴에 드러내지는 않았다.
당연히 대표인 내 앞에서 그럴 수 없어서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평소에 잘해줘서 이 정도에는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고 여겼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빠르게 많이 일하기도 했고.
“와, 역시 대표님은 다르시긴 하네요. 손이 안 보이네요, 안 보여.”
한 직원이 웃으며 말하자 다른 직원도 곧바로 맞장구를 쳤다.
“2배는 더한 느낌인데요?”
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평소보다 훨씬 많이 일하시느라 고생들 하셨습니다. 오늘 이렇게 저랑 우민이랑 지나 씨까지 뛰어든 건 다른 게 아니라요.”
다들 내게로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이제 크리스마스잖아요? 이브인 내일은 점심시간 없이 오후 1시까지만 근무하시고요, 크리스마스 당일은 전부 쉽시다.”
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모두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하지만 한 직원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그래도 돼요? 매번 딱딱 맞춰서 나가는 것들이 있어서…….”
“그래서 오늘 이렇게 평소보다 더 만들었잖아요? 내일도 오전에 물량 좀 채워놓으면 얼추 맞을 것 같습니다. 기존에 여유분 가진 것도 있고요.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보내세요.”
짝짝짝짝짝짝짝짝……!
다들 박수를 치며 너무 좋아했다.
겨우 하루 반짜리 휴식에도 이렇게나 좋아하다니.
급여는 확실히 업계 평균보다 높게 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직원들도 불만 없이 열심히 일했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얼마 전에 권호순이 한 말이 떠올랐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꼭 가족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휴식시간이 필요하다.
돈만 벌려고 일하는 게 아니니까.
돈을 벌어서 쓸 시간도 있어야지.
돈을 버느라 고생한 몸과 머리가 쉴 시간도 있어야 한다.
사실 이렇게 하루 쉬는 것 자체가 고용인 입장에서는 보너스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긴 했지만.
“그럼 다들 먼저 들어가세요. 뒷정리는 저랑 우민이가 하겠습니다.”
하지만 직원들은 내 말을 무시하고 바로 뒷정리를 시작했다.
나는 당황하며 말했다.
“다들 들어가시라니까요? 뒷정리는 저랑 우민이가 할게요.”
“에이, 이거 다 같이 하면 얼마나 걸린다고요. 후딱 끝내고 가요.”
“참… 고집들도 세셔.”
나는 피식 웃으며 함께 뒷정리를 시작했다.
8
뒷정리를 마친 직원들이 모두 돌아가고, 가게에는 나와 노우민만 남아 있었다.
노우민은 내가 무언가 할 말이 있음을 아는 눈치였다.
하긴, 녀석만 남겼는데 그걸 모르면 그게 이상한 거지.
“혹시… 제가 그냥 나와서 일한 게 문제가 되는 건 아니죠?”
노우민의 말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
“야, 그게 왜 문제가 되냐? 근데 앞으로는 그러지 마. 쉴 때는 쉬어. 그래야 계속 하지.”
“네, 알겠습니다.”
“저녁 먹어야지?”
“아, 집에 가서 먹으려고요.”
녀석은 의외로 완곡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나는 녀석의 속내가 빤히 들여다보였다.
“동생들 때문에?”
“아… 네.”
“동생들 먹을 것까지 이따가 따로 포장해줄 테니까 같이 밥이나 먹으러 가자.”
“아니에요, 안 그래도 돼요. 집에 먹을 거 많이 있어요.”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갈 건데, 동생들도 좀 먹여 인마.”
“네? 아, 하하.”
노우민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 좀 웃으면서 살고 인마. 이제 네가 가장이잖냐. 네가 정신 차리고 기운내야 돼. 동생들이 아직 어리잖아. 그래서 상처도 더 크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힘들다고. 그때 잘 잡아줘야 돼. 어릴 때는 잡아주는 사람이 필요해.”
“알겠습니다.”
나는 가게를 빠져나오자마자 주머니에 양손을 꽂고 하늘을 쳐다봤다.
“어후, 이제 많이 춥네.”
“그쵸, 날씨가 갑자기 확 추워졌어요.”
“뭐 먹고 싶은 거 있냐?”
“저야 뭐 아무거나 다 좋습니다.”
“그럼 나 먹고 싶은 거 먹으러 간다?”
“네, 다 좋습니다.”
“가자.”
나는 주차해 놓은 차로 향했다. 노우민은 조금 아리송해하면서도 조수석에 올랐다.
9
잠시 차를 세운 채 통화를 했다.
“네, 숙모. 네, 그렇게 해주세요. 네에, 감사합니다.”
행복 건강즙 2호점은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쉬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내일 2시간 정도 일을 더하고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쉬게 했다.
웰니스의 경우는 원래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쉬기로 돼 있었다. 웰웰은 카페의 특성상 크리스마스에 제일 바쁘니 쉴 수가 없었고.
“기다리느라 고생했다. 우리만 쉴 수는 없으니까.”
“아휴, 고생은요.”
“그럼 들어가자. 배고프다.”
그렇게 노우민과 함께 간 곳은 김밥으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나는 노우민과 마주앉자마자 물었다.
“김밥 좋아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