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112화 (112/174)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12화

25. 크리스마스 (2)

떡볶이, 튀김, 순대.

떡볶이는 일단 매웠다. 맵지 않게 만든다고 해도 떡의 식감 자체가 외국인들에게는 생소했다.

튀긴 음식이 건강하기란 어렵다. 건강한 식재료를 사용해 좋은 영양분을 섭취할 수는 있겠지만, 결코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음식으로 볼 수는 없었다.

게다가 미국은 초코바나 통조림 햄까지도 튀겨먹는 곳인지라 튀김 자체로는 승부를 걸 수도 없었다.

순대는 한국에서조차 가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걸 외국인들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것은 무모해 보였다.

영양 자체는 만들기에 따라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러면서 머릿속을 스친 게 오징어 순대였다.

이태리나 스페인 같은 곳이라면 충분히 시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재 노리는 시장은 미국이었기에 이것도 패스였다.

“흠…….”

만두는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좀 더 메인의 자리에 설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식사대용이 되고, 건강에 좋으면서, 한국적이고, 만두와 함께 팔아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그런 메뉴.

그러다 분식의 대표 중 하나가 떠올랐다.

김밥.

넣는 재료에 따라 맛도 달라지고, 건강에 도움이 되는 범위도 달라진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외 비타민이나 각종 필수 아미노산 등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하기에도 좋다.

재료에 따라 맛과 영양성분이 변한다는 게 가장 구미가 당겼다. 요리 과정은 거의 동일하나 여러 메뉴를 보유하는 것과 같았으니까.

김밥과 비슷한 다양한 종류의 롤이 미국에서도 인기가 많다. 많은 이들이 초밥을 즐기기에 김초밥도 익숙하고.

김밥은 새로우면서도 쉽게 파고들 여지가 충분했다.

롤이나 김초밥에 비해 저렴한 구성도 가능했고, 재료에 따라 좀 더 비싼 것도 만들어 팔 수 있었다.

꽂혔다. 미국으로 넘어가서 김밥을 말아볼 사람만 구하면 됐다.

4

“흠.”

행복 건강즙 1호점의 상담실이었다.

분명히 내 가게인데 왠지 모르게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이곳과 멀어졌다는 뜻이었다.

예전의 모습을 많이 잃었지만 내 인생이 담겨 있는 곳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모든 것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런데 벌써 어색함을 느낄 정도로 멀어졌다는 게 이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크 소리가 울렸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한 3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들어왔다. 피부가 하얀 편인데도 안색이 영 좋지 않았다.

나는 그를 보자마자 원인을 알 수 있었다.

그냥 바로 해결법을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무당 취급을 받을 테니까.

게다가 상담을 하러 오는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지쳐 있다. 몸의 치료를 원해서 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문제 해결의 과정에서 심리적 안정도 함께 얻기를 원한다.

치료만 된다면 아무 상관도 없다고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사람들 모두가 그렇다.

“안녕하세요.”

남자가 인사를 건넸다.

“앞에 앉으시죠.”

나는 옅은 미소로 남자를 맞이했다.

“성함이 김서진 님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죠?”

“아, 저…… 증상이 다양합니다.”

“네, 전부 말씀해주세요.”

김서진은 금방이라도 구역질을 할 것처럼 불편해 보였다.

“얼마 전부터 소화가 너무 안 되네요. 계속 미식거리고, 밥만 먹으면 소화가 안 돼서 얹힙니다. 매번 소화제를 먹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요. 먹기만 하면 속에서 걸린 느낌이 납니다.”

“소화불량이 심하시고요. 또 다른 증세는 뭐가 있으세요?”

“자주 어지럽고 피곤합니다. 식후에 그 증세가 가장 심해지고요.”

“식사를 안 하실 때는 괜찮으시고요?”

“그래도 컨디션이 좋지는 않은데, 밥을 먹었을 때보다는 훨씬 덜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너무 배가 고파서 견딜 수 없을 때 조금씩만 먹고 있습니다.”

그는 근심과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혹시…… 큰 병일까요?”

“병원에 다녀오신 적은 없으시고요?”

“큰 병원에는 안 가봤고, 동네 내과만 세 군데 갔었습니다. 전부 소화에 도움이 되는 약만 처방해주더라고요.”

“약을 드시고서도 똑같으세요?”

“약을 먹는 중에는 확실히 괜찮았어요. 속쓰림이나 소화불량도 훨씬 좋았고요. 그런데 그때뿐이더라고요.”

나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일단…… 오셨으니까 봐드리지만, 우선 병원에서 제대로 검사를 받아보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 정도로 심각한가요? 내시경을 해봐야 될까요? 이게 혹시나 암일까 봐…….”

김서진은 상복부 쪽에 손을 가져다 대며 불안감을 표했다.

“일단 암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요? 정말인가요?”

“네, 그럼요. 그런 기미라도 보였다면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셔서 검사를 받으시라고 했을 겁니다.”

“그럼 뭐가 문제인가요?”

“잠시만요.”

나는 목소리를 살짝 높였다.

“이 실장님!”

그러자 문이 열리고 이지나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네, 부르셨어요?”

“저희 주스팩 큰 거 3개에 생수 좀 채워다 주시겠어요?”

“주스팩에요? 컵 있는데.”

“주스팩이면 돼요.”

“네, 알겠습니다.”

김서진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가만히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지나가 생수로 가득 찬 팩 2개를 가져다 줬다.

“고맙습니다.”

나는 김서진과 눈을 마주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루에 물 얼마나 드세요?”

나의 물음에 김서진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대답했다.

“물은 그냥 목마를 때 조금…… 대신 무설탕 사이다랑 커피는 자주 마십니다.”

“역시 그러시군요.”

“물 마시는 걸 좀 늘려야겠죠?”

“조금 정도가 아니라, 많이 늘리셔야 됩니다.”

“그런가요? 그래도 나름대로 수분을 꽤 섭취하는 것 같은데……. 목이 마를 때만 마시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게 몸에서 필요로 하는 신호잖아요.”

“뭐, 틀린 말씀은 아니죠.”

김서진은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말했다.

“그리고 물도 너무 많이 마시면 위험할 수 있다더라고요. 신장에도 안 좋을 수 있고.”

“그렇기도 하죠.”

“그런데 많이 마셔야 된다고 하시니…….”

“일단 신장이 걱정되시면 커피를 줄이시는 게 나을 겁니다. 그리고 무설탕 사이다는 물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물은 물이고, 음료수는 음료수니까요.”

“그렇군요.”

“커피는 이뇨작용을 돕기 때문에 몸에 수분이 부족하게 됩니다. 지금 겪고 계신 증상들이 전부 수분 부족으로 인한 것입니다. 특히 소화불량에 대해 한 번 얘기해볼까요?”

나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간단하게 췌장 하나만 놓고 봐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췌장액은 대부분 물로 이뤄져 있는데요, 몸에 수분이 부족하게 되면 당연히 췌장액 생성이 줄고 점도도 증가하여 흐름 자체를 원활치 못하게 만듭니다.”

“아…….”

“그 결과 소화불량이나 체기, 역류성 식도염, 구역감 혹은 구토까지 이어지는 것이죠. 췌장액의 부족은 위장의 유문괄약근이 이완되지 않는 것으로 이어지는데요, 이러면 소화된 음식물이 위장에 오래 남아 있게 됩니다.”

“그러면 어떤 문제가…….”

“간단하게 말하면 체한 거죠. 하지만 간단하게 소화가 좀 안 되는 걸로 치부하고 가볍게 넘기면 안 됩니다. 이 음식물이 내려가지 않으면 위산 과다로 위벽도 손상되고, 가스와 거품으로 더부룩한 느낌을 받죠. 통증까지도 유발하고요. 이게 심해지면 가스를 배출하기 위해서 아래로 내려가지 앉으니 위로 뿜어내려고 하죠.”

“아, 그게…….”

“그렇습니다. 역류성 식도염이 되는 거죠. 반드시 물을 충분히 드셔야 합니다. 참고로 소금이 부족해도 이러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당연히 과다한 나트륨은 몸에 해롭지만, 부족한 건 더욱 위험합니다.”

김서진은 이해가 됐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이거 한 팩 드십쇼.”

나는 생수가 담긴 주스 팩을 내밀었다.

김서진은 주스 팩을 받아들고는 눈치를 살폈다.

“지금요?”

“예, 다 해봐야 230ml밖에 안 되니 전부 드세요.”

“알겠습니다.”

그가 벌컥벌컥 물을 마시는 동안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마시면서 들으세요. 말씀하신 대로 물 역시 과하게 드시면 안 좋습니다. 하지만 그건 단시간 내에 갑자기 많이 마실 경우에나 일어나는 일입니다. 평소에 잘 안 먹던 물을 과다하게 드실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보통 하루에 2리터를 권하죠? 2리터를 꼭 채우지 않아도 되지만, 가능하면 그에 가깝게 드십쇼. 신장에 아무 문제 없으시잖아요?”

김서진이 빈 팩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네, 네. 맞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꼭 의식적으로라도 물을 드십쇼. 인체는 대부분 물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런 물이 부족하면 몸에 좋을 리가 없지요. 단, 식전과 식중, 식후에는 조금 자제하시면 더 좋고요. 소화에 방해가 되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벌써 속이 좀 편해진 기분입니다.”

나는 생수 2팩을 더 내밀었다.

“이건 가시면서 드시고요.”

“정말 감사합니다. 어떻게 사례라도…….”

“사례는요, 괜찮습니다. 그냥 가시면 됩니다.”

“아니, 제가 뭘 드려도 모자란 판에 이것들까지 받아서…….”

김서진은 생수 2팩을 들어 보였다.

나는 피식 웃었다.

“빈 용기에 물만 담았을 뿐인데요 뭐. 조심히 들어가세요. 이제 물 잘 챙겨드시고요ㅣ.”

“네,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김서진이 상담실 문을 열고 나갔다.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련함과 보람참에 미소가 절로 묻어났다.

건강상담을 하고, 기분이 좋아져서 돌아가는 사람을 볼 때, 내게 상담을 받은 사람들이 건강해졌을 때 가장 기분이 좋았다.

돈이 부족해서 걱정할 일이 없기에 이런 마음도 가질 수 있는 거겠지만.

사람이 어느 정도의 부를 쌓고 나면 자아실현을 가장 우선시하게 된다던데, 딱 맞는 말 같았다.

지금도 돈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절대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돈을 많이 벌어도 사람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매번 새삼스럽다.

내가 언제부터 이런 사람이었지?

원래 이렇게 될 수 있던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가진 게 많아지니 변한 걸까? 사후세계를 알고 나서부터 그런가? 할아버지에게 능력을 전수받고 ‘이렇게 안 하면 안 된다’라는 강박 덕분일까?

모르겠다.

하지만 만족스럽다.

스스로가 행복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날이 올 줄은 정말 몰랐다.

5

상담실에서 1시간 이상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귀에 땀이 나도록 통화했다. 전부 일 때문이었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곳들과는 모두 통화를 마친 상태였다.

“아, 맞다. 삼촌, 그거 생각해보셨어요?”

“뭐?”

“삼촌이 주방으로 들어가잖아요. 그럼 홀 매니저를 따로 써야 되는데, 누굴 써야 할지……. 공고를 올려야 되나?”

“아니, 그럴 필요 없지.”

“왜요? 누구 쓸 사람 있어요?”

“설득할 사람이 있지.”

“누구요?”

“네 고모.”

나는 조금 당황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네? 고모요?”

“응, 네 고모가 맡으면 괜찮을 거 같지 않냐?”

“글쎄요…….”

천천히 홀 매니저로서의 고모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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