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106화 (106/174)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06화

24. 기회 (1)

1

나도혜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해외로 가요. 해외로 나가죠.

글로벌 시대잖아요.

이제 저희도 해외로 나가야 할 때 아닐까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나도혜가 진료를 보러 가야 돼서 깊이 있는 얘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그녀도 일단 염두에 두라고, 다시 함께 얘기해 보자고.

해외 진출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사업이 잘 되면서 그런 상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장은 아니었다.

나는 작은 사업체를 이제 좀 제대로 굴려보려는 단계였다.

다온은 이제 손을 막 대기 시작한 참이었고, 노우민과는 시작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상태였다.

언제나 다음 스테이지를 원하고 있었는데, 막상 그러한 기회가 찾아오니 걱정부터 됐다.

사실 이걸 기회라 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어떤 걸 무기로 삼아 접근해야 할까?

여러 가지로 리스크가 너무 컸다.

내가 국내 시장에서 비교적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인지도였다.

행복 건강즙을 처음 차렸을 때도 건강상담으로 동네에 입소문이 났었고, 이후 방송을 타면서 성장세를 탔다.

해외시장에서는 그런 게 통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그곳에서 먹힐 이름값이라는 게 없다.

지금은 아니야.

마음속으로 결론을 지으면서도 미련이 남았다.

나도혜와 깊이 얘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2

―당연히 네가 가야지.

수화기너머로 작은아빠가 특유의 툴툴대는 목소리를 냈다.

“아니, 가긴 가는데, 뭐라고 하냐는 거죠. 이력서를 보내온 것도 아닌데, 멀쩡하게 일하고 있는 사람한테 일을 제안한다는 게…….”

―그게 스카우트 아니겠냐. 우리 쪽 조건이 나쁘지도 않을 거고, 너라는 사람이 대외적으로 이미지가 괜찮으니까.

“그럴까요?”

―적어도 나 혼자 가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지.

혼자서 가라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다.

“아, 삼촌도 같이 가는 거죠?”

―당연하지, 일하게 되면 나랑 훨씬 자주 볼 텐데, 내가 얼굴을 비춰야 되지 않겠냐?

“그거야 그렇겠죠.”

―그럼 조만간 같이 가자.

“네, 빨리 확보해둬야죠. 이제 가게 인테리어도 들어갈 건데.”

다온의 준비는 착착 진행 중이었다.

근래에는 작은아빠와 일에 대해 얘기를 해도 그리 길어지지 않았다. 이미 부딪칠 만큼 부딪쳐서인지 더 이상 깎아낼 게 없었다.

사실 부딪쳤다고 표현하는 부분도 어디까지나 함께 일을 진행하면서 조율한 정도였다. 실제로 서로의 의견에 크게 반대하는 일은 없었다.

통화를 마치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예약을 해둔 일식집에 들어섰다.

나 혼자서는 올 일이 없는 고급스러운 곳이었다.

조금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절한 직원의 안내에 따라 방으로 이동했다.

일본의 다다미방 같은 형태였는데, 꽤나 고급스러움 느낌을 줬다. 좌식처럼 생겼지만, 막상 앉으면 테이블 밑으로 공간이 있어 입식 형태였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룸에 들어서 있으니 또다시 생각이 해외 진출로 쏠린다.

어느 나라를 염두에 두고 있는 걸까?

일본? 중국? 미국? 유럽? 동남아?

그나저나 어디지? 왜 안 와?

시간을 확인하는 찰나 노크 소리가 울렸다.

룸으로 들어선 것은 나도혜였다.

그녀는 이곳의 인테리어가 아예 보이지 않는 듯 나를 보며 미소를 머금고는 바로 맞은편에 앉았다.

“조금 늦었죠? 미안해요.”

“아니에요, 얼마 안 기다렸어요. 그리고 거의 딱 맞춰서 온 거 아니에요?”

“대표님은 특별한 일 아니면 항상 10분 이상 일찍 나와 계시잖아요. 그거 감안해서 빨리 오려고 했는데, 조금 늦어졌네요.”

“아휴, 그러실 거 없죠. 제가 그냥 유난 떤답시고 빨리 나온 거죠.”

“일단 주문부터 할까요?”

우리는 2인 디너 코스를 주문했다.

나는 다시 둘만 남자마자 입을 열었다.

“그래서, 해외로 진출하자고요? 웰니스요?”

나도혜가 피식 웃었다.

“되게 얘기하고 싶으셨나보다.”

“그럼요, 당연히 그렇죠. 엄청 신경 쓰이죠. 웰니스만의 얘기가 아니라는 건 뭔가요?”

“행복 건강즙, 웰니스, 웰웰 전부를 두고 하는 얘기에요.”

“무슨 말씀이시죠?”

“복합형 매장으로 진출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아니면 아예 제4의 브랜드를 내야 할 거 같아요.”

나는 팔짱을 끼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흠…….”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금세 식탁 위로 음식들이 차려졌다.

하지만 젓가락을 집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 오해는 하지 마세요. 당연히 사장님 지분이 훨씬 크기 때문에 적당한 비율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뭐…… 그런 것만이 문제는 아니니까요.”

“아, 네. 아무튼 제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건 대표님의 의사에요. 하실 마음이 있으신지 아니면 아직은 아니신지, 아예 없으신지…….”

“우선 이렇다 저렇다 말씀을 드리기 전에 얘기를 좀 듣고 고려해봐야 할 것 같아요.”

“네, 뭐든지 말씀만 하세요. 아직 저도 구체적으로 다 그려보고 말씀드린 건 아니라서 한계가 있긴 하겠지만요.”

“일단 해외 진출을 한다면 최초 국가는 어디로 생각하시는 거예요?”

나도혜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처음에는 동남아를 생각했었어요.”

“동남아요?”

“네. 베트남을 생각했었는데요, 아무래도 근래 들어서 한국 기업들도 많이 넘어가고 한류 영향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또 지금은 늦었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생각보다 재미를 보기 힘든 구조고.”

“저는 그런 부분들도 그렇지만, 경쟁력이 없을 것 같네요. 이미 저렴한 과일 주스가 널린 곳이잖아요. 그리고 저희가 가성비로는 괜찮지만, 무조건 싸게 가격을 책정해서 박리다매로 장사하는 업체는 아니니까요.”

말을 하는 순간에 다시 머리를 굴렸다.

확실히 베트남은 아니다.

“저희는 어디까지나 같은 계열의 제품들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거지, 절대적인 기준을 두고 보면 아니거든요.”

“네, 네. 저도 이래저래 생각을 해보고 알아봤는데 아닌 거 같더라고요.”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다 늘어놓으라는 게 아니었다. 어느 나라로 진출을 생각했는가에 대해 물었지.

필요 없는 이야기였다. 여러 사람들을 상대해보면서 느낀 점이었다. 사업이든 건강상담이든 중요한 건 곁다리가 아니라 핵심.

하지만 싫지 않았다. 이런 잡담도 받아들이기 나름이었다. 같은 상황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모든 게 달라질 수 있었다.

나는 한껏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다른 후보는요?”

“몇 군데 있긴 했는데, 베트남과 비슷한 이유거나 진출하기 애매한 곳들이 대부분이더라고요. 결국 이것저것 하나씩 따져보면 최적의 시장이라는 건 없고요. 사실 한국에서 시작한 것도 그랬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제 생각에는 처음엔 LA로 가는 게 어떨까 싶어요.”

“LA요?”

나도혜는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네. 기본적으로 한인들이 많은 곳이기도 하고, 날씨도 워낙 좋은 곳이라 주스 소비량도 높죠. 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합당하다고 생각되면 더 높은 가격에도 충분한 값을 지불할 소비자들이 얼마든지 있고요. 문제라면 그쪽도 경쟁은 세다는 점이죠.”

“확실히 그럴 테죠. 그리고 거기서는 특히나 웰니스의 경쟁력이 부족하다고 봐요. 공산품은 아니지만, 온라인으로 주문해서 받는 주스는 공산품 느낌이 나니까. 실제로 서비스를 함께 제공받는 제품이 아니면 미국에서 비싼 값을 받기는 힘들어서요.”

나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말을 이었다.

“인건비는 비싸도 생활에서 체감되는 물가는 오히려 한국보다 싸잖아요. 특히 농수산물 같은 경우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비싸고.”

“그렇죠, 그렇죠. 혹시 미국 가보셨어요?”

“아니요, 해외 나가본 적 한 번도 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그리 잘 아세요?”

이런 쪽으로 딱히 알아본 적은 없었다. 기본적인 상식조차 풍부하지 못하던 나였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면 나도 몰랐던 것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근래 들어서 다방면으로 노력을 하는 덕분도 있겠지만, 역시 할아버지의 능력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확신했다.

“그러게요.”

나는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뭐에요. 본인이 어떻게 아는지도 몰라요?”

“네, 진짜 잘 모르겠어요. 어쩌다 이런 것들을 알고 있는지.”

기적 같은 능력을 얻게 된 현실을 망각할 수가 없다.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놀라게 하고, 놀라운 상황을 연출하니까.

“LA라…….”

나는 혼자 중얼거리듯 말하다가 나도혜와 눈을 마주쳤다.

“그런데 문제가 있지 않나요?”

“어떤 문제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겠지만, 일단 재료를 어디서 어떻게 공급할지가 가장 중요하겠네요.”

나도혜가 눈을 반짝였다.

“그럼 해외 진출에 대해 생각은 있다는 거네요?”

“네, 뭐. 일단은 그렇죠.”

기적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가 뭐 할 건가? 엿 바꿔 먹을 것도 아닌데, 최대한으로 활용해야 되지 않겠는가.

국내든 해외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어디에든 있다. 내가 모든 사람들을 건강상담을 통해 돕는 건 불가능하다. 모두가 내 도움을 필요해하지도 않고.

하지만 내가 만든 건강한 식품을 통해 건강을 지키거나 개선하는 건 가능하다. 나를 거치면 분명히 더 효능이 좋아진다. 또한 수익 창출을 통해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도 있다.

“잘 됐네요. 그리고 말씀하신 부분은 어쩌면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래요?”

나도혜가 새하얀 치아를 드러냈다.

“네, 그쪽에 친구들도 좀 있거든요.”

“친구들이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혜야 워낙 금수저이니 유학을 다녀왔을 수도 있고, 주변 사람들이 외국에 나간 경우도 많겠지. 그 외에도 루트야 워낙 다양할 거라 생각됐다.

“네, 취미 덕분이죠.”

“어떤……?”

“머슬매니아요. 그때 세계 대회도 나가고 그쪽에서 훈련도 하고 그랬었거든요. 그러면서 가까워진 친구들이 좀 있는데, 아직까지 종종 연락하거든요.”

나도혜의 SNS에 외국인들의 댓글이 꽤나 자주 보였던 게 떠올랐다.

“아, 그렇겠네요.”

“그 친구들 중에서 피트니스 업계에 계속 있기도 하고, 식품 관련 사업을 하기도 하고 다양하거든요. 개중에 유기농만 고집하는 애들이 있거든요. 식단도 항상 지중해식으로 하는 경우도 있고. 채식주의자도 있고. 그쪽으로 연결하면 채소나 과일 공급도 어렵지 않을 거예요. 어쩌면 국내보다 비용이 낮을 수도 있을 걸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회가 제 발로 찾아와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데 어찌 안 잡겠는가.

“당장 한다, 하지 않는다, 결정할 수는 없지만 알아볼까요?”

나의 말에 나도혜는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네, 네, 그렇게 해요. 당연히 제가 말씀드렸는데 알아봐야죠.”

“그렇죠, 참.”

해외 진출이라.

간이 커졌다.

미국 여행도 가본 적 없는 놈이 미국에서 사업을 하겠다고 하다니.

모든 게 너무 빨리 진행돼서 무서울 정도였다.

하지만 나보다 더 빠르게, 더 크게 사업을 성장시킨 사례는 얼마든지 있었다.

나도 그 정도까지 올라가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은가.

뭔가 새로운 무언가를 또 시작하려고 하니 의욕이 불타올랐다.

언제부터 일을 이렇게 좋아했는지.

‘일’이란 것이 언제나 고통으로만 다가왔던 삶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일’이라는 것이 삶의 이유고 원동력이 돼 있었다.

사람이 살면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요소 중 하나로는 당연히 건강이다. 그 다음으로는 무엇을 꼽을지 어렵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것들이 많다. 하지만 빼놓지 말아야 하는 게 있다면 하는 일이 즐겁다는 점이다.

건강하고 일이 즐거운 나는 분명히 행복한 사람이었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크게 바뀐 점이 없을지도 몰랐다.

전에도 건강은 양호했고, 언제나 일을 붙들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왜 이리도 행복도와 만족도에서 차이가 나는지. 결국 가진 것과 하는 것은 같은데.

성공과 실패는 종이 한 장 차이라더니, 행복과 불행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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