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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105화 (105/174)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05화

23. 확장 (5)

12

“어, 왔어?”

숙모가 밝은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그 모습이 익숙했다. 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잠깐 들렀어요. 별일 없죠?”

“응, 다 괜찮아.”

이 상황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언제부터 이런 게 당연했더라?

숙모는 좋은 사람이긴 했지만, 항상 웃는 사람은 아니었다.

지금 숙모가 품고 있는 미소에 내 역할이 제법 컸다고 생각한다. 나와 함께 일하면서부터 미소가 부쩍 늘었으니까.

숙모의 행복에 내가 도움이 된다는 게 기뻤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는 생각이야 진작부터 갖고 있었지만, 그 대상이 내가 소중히 하는 사람일 때 더 기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만 가볼게요.”

“응? 벌써 가?”

“그냥 잠깐 들른 거예요. 이상 없는 거 확인했으니 됐죠.”

내가 직접적으로 업무에 관여할 게 없으면 빨리 가는 게 맞다.

숙모야 나랑 일적인 관계 이전에 가족이니 편하겠지만, 다른 직원들은 그렇지 않다. 의식적으로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일에만 집중하는 게 보인다.

나를 티비나 인터넷으로 먼저 접한 경우도 있긴 하지만, 결국은 고용인이다.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가족 같은 기업.

좋다.

정말 말 그대로만 된다면 좋다.

하지만 대개 함께 무언가를 하려는 건 역효과다.

피고용인들로 하여금 불편함만 느끼게 할 뿐이다.

그래도 무언가 함께 해보겠다면, 예를 들어 회식이라도 하겠다면, 점심시간 같을 때 혹은 퇴근 전에 하는 게 맞다. 회식도 업무의 연장 아닌가.

내가 집중해서 해야 할 일은 일을 잘하는 만큼 돈을 많이 주는 것과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얼굴을 비치는 것은 지켜보고 있음을 조용히 전달하는 방법 중 하나다.

적당한 긴장감은 가져야 하니까.

이렇게 하는데 능률이 떨어지는 사람이 있으면 그건 그때 가서 조치를 취하면 될 일이다.

이 방법은 틀리지 않았음을 느끼고 있었다. 내 이득을 조금 줄이니 직원들은 더 열심히 일했으니까.

“무슨 일 있으면 연락주시고요.”

내가 말하자 숙모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 맞다. 숙모.”

“응?”

“그분은 아직 만나고 계세요?”

“어? 아…….”

이일우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숙모는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그냥 가끔 식사나 하는 정도지 뭐.”

나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괜찮으신 거 같아요?”

“되게 좋은 분 같더라고. 자기 일도 열심히 하고, 좋은 일도 하고, 성격도 좋고.”

“그분은 아래 자녀가 있대요?”

이미 이일우가 총각이었던 걸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하며 물었다.

숙모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럼요?”

“총각이래.”

“그래요?”

“응, 그냥 아주 오래 전에 결혼을 생각했던 여자가 있긴 했는데, 여러 가지가 안 맞아서 결국 파혼했대. 그 이후로 그냥 부모님 모시면서 일만 하면서 살았대. 그러다 나를 보고 오랜만에 설레는 감정이 들었다나 뭐래나…….”

숙모가 얼굴을 붉혔다. 열이 오르는지 뺨으로 손을 가져갔는데, 얘기를 하면서도 민망하다는 듯이 웃었다.

“아무튼 좋은 사람 같더라고. 아직 여러 가지로 조심스럽지만.”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래도 잘 만나 보셔요. 진짜 인연일지도 모르잖아요.”

“그러고 있지. 아이, 부끄럽다. 얼른 가.”

숙모는 갑자기 웃으면서 말 그대로 등을 떠밀었다. 나는 하하 웃으며 행복 건강즙 2호점에서 떠밀려 나왔다.

13

근처의 박종만 공장에도 들렀다. 각자 앞에 커피를 놓고 마주보고 있었다. 박종만은 안 그래도 인상이 센 편인데, 인상을 잔뜩 쓰고 있어서 험악해 보이기까지 했다.

“왜 그렇게 심각하세요?”

내가 묻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 왜 있잖아요, 소개해주신 은진 씨요.”

“네, 네. 왜요? 잘 안 됐어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

“그럼요?”

박종만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단 잘 만나고는 있거든요? 같이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차도 마시고. 그런데 얼마 전에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나는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었다.

“자기도 제가 좋긴 하대요. 즐겁다고. 그런데 결혼 생각이 전혀 없대요.”

“결혼생각이 전혀 없다고요?”

“예. 자기는 미혼주의인지 비혼주의인지 뭐 그거라고.”

“왜요?”

“뭐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자기는 누군가랑 평생 억지로 맞춰가면서 살아갈 자신이 없다고 하대요. 그래서 연애도 안 하고 살았고요. 관계가 깊어지면 결국에는 결혼 얘기가 나오니까.”

“흠……. 그래서요?”

“저한테도 나중에 얘기했다가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까 미리 말하는 거래요. 저한테 정하래요. 그래도 괜찮으면 계속 만나고, 아니면 어쩔 수 없다고. 자기는 결혼 생각이 아예 없다고.”

박종만은 오만상을 구기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간만에 연애 좀 하나 했더니…… 노총각 탈출 좀 하나 했더니 이게 웬말인지…….”

나는 팔짱을 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른 거 아닐까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음……. 사장님도 지금까지 미혼이셨던 이유는 ‘이 사람이다’ 싶은 사람이 없어서 아니에요? 그냥 나이 찼으니까 적당한 사람, 조건 맞춰서 떠밀리듯 하는 결혼은 싫으셨던 거잖아요?”

“그렇죠.”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백은진 씨도 지금까지 그랬기에 앞으로도 그럴 거라 생각하는 거라서, 앞으로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죠. 사장님은 결혼에만 집중하시는 분이 아니잖아요? 결혼이라는 게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고, 그런 거잖아요.”

박종만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좋으시면 그냥 만나시면 되는 거 아닐까요? 사장님도 당장 백은진 씨랑 결혼을 생각하고 그런 건 아니잖아요. 만나면서 누구의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는 거니까요.”

“그렇죠, 그렇죠…….”

“결혼이란 굉장히 숭고하고 무거운 거지만, 또 어떻게 보면 하나의 제도에 불과하잖아요. 요즘은 헤어지는 사람들도 많고요.”

나는 목소리를 한 톤 높이며 말을 이었다.

“외국만 해도 결혼을 안 하고 아이까지 가지는 경우 많잖아요. 단순히 혼전 임신 그런 게 아니라, 그러한 형태를 계속 유지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요. 그러니까 벌써부터 결혼을 하네 마네 그런 거 생각하지 마시고, 좋으시면 만나세요. 그러다 아니면 어쩔 수 없는 거죠.”

“그럴까요?”

“마음 가는 대로 하시라는 거예요. 막말로 결혼하기 싫던 사람도 결혼하고 싶게 만들면 되는 거잖아요. 아니면 ‘결혼만’ 하지 말고 다른 건 다 하면 되죠.”

박종만이 웃음을 터트렸다.

“상남자시네.”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이에요.”

“압니다. 후련해졌어요.”

“어떻게 하시게요?”

“만나야죠. 그렇게 만나고 싶어 했는데, 그 말 한마디 때문에 고민했던 게 바보 같네요. 더군다나 저도 당장 결혼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입가에 미소를 흠뻑 적셨다.

“잘 생각하셨어요.”

“고맙습니다.”

“고맙긴요.”

“고맙죠. 바쁘신 분 붙들고 이런 고민이나 늘어놓은 게 죄송할 따름입니다.”

“죄송은요, 오히려 감사합니다. 이런 고민까지 나누셔서.”

“참……. 사람이 너무 좋으셔.”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요.”

14

웰웰도 성업 중에 있었다.

비수기라 여기는 겨울에도 언제나 자리가 차 있는 걸 보니 흐뭇했다.

“바로 가?”

강인나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그럼 계속 여기 있어?”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오자마자 간다고 하니까.”

“그냥 잠깐 들른 거야.”

“그래?”

그때 손님이 들어섰다.

“바쁘네.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어, 어. 알았어, 오빠. 조심히 들어가.”

나는 남자 직원과 아르바이트생에게도 손을 들어 보이고는 카페를 나섰다.

행복 건강즙 1호점에도 들렀고, 그 다음 행선지는 웰니스였다.

전부 내가 없어도 잘 굴러가는 중이었다.

어느 정도는 의도한 바였지만, 이렇게까지 소위 말하는 오토 매장들이 이뤄질 줄은 몰랐다.

각 업체마다 매일매일 결재를 해야 될 것들이 있긴 했지만, 조금만 집중하면 2시간 이내로 끝낼 수 있는 업무량이었다. 때로는 1시간이 채 걸리지 않거나, 아예 할 게 없을 때도 있었고.

아마 사업자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형태겠지.

일을 하지 않는 순간에도 돈이 벌린다.

그렇게 죽어라 일해도 손에 들어올 날이 없던 돈이 이제는 가만히 있어도 벌린다.

재미있는 것은 위만 바라보지 않고 살았는데 그랬다.

오히려 주변과 옆, 더 넓은 곳을 살피면서 살았는데 이렇게 됐다.

옆을 챙기는 동시에 더 나아갈 때다.

빨리 다온을 오픈하고 싶다.

다른 것들은 거의 해결이 됐는데, 한식 셰프 섭외가 문제다.

요식업계에 딱히 줄이 없는지라.

빠르게 같이 진행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노우민이었다.

녀석과 퓨전 음식점을 차리기로 했는데.

시작은 조금 작게 해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김현자의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는 바람에 손을 대기가 어려워졌다.

여전히 김현자를 도울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휴대폰이 울렸다.

나도혜의 전화였다.

“네, 원장님.”

전화를 받자마자 나도혜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바쁘세요?

“아니요, 말씀하세요.”

―웰니스 들르셨다면서요?

“네, 그랬었죠.”

―연락주시지. 저도 지금 막 들렀다가 나오는 길이거든요.

“아, 그래요? 그런데 왜요? 뭐 하실 말씀 있으세요?”

―네, 있죠. 혹시 지금 어디세요?

나도혜는 차로 10분이면 닿을 거리에 있었다.

우리는 장소를 잡고 만나기로 했다.

나도혜와 만난 장소는 처음 1대1로 마주했던 룸 형태의 카페였다.

“여기…… 오랜만이네요.”

내가 방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나도혜가 생긋 웃었다.

“그러게요. 제 첫인상 참 별로였죠?”

“아니요, 첫인상은 좋았죠.”

“어어? 첫인상‘은’ 좋았다는 건 뭐예요? 다른 건 별로였어요?”

“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잊어버리죠.”

“제가 그렇게 별로였어요?”

나는 장난스레 잠시 고민하는 척을 하다가 말했다.

“별로까지는 아닌데, 훌륭하지는 않았었죠.”

“대표님도 별로였거든요?”

“그랬나요?”

“뭐…… 별로까지는 아닌데, 되바라진 부분이 없지는 않았었죠.”

똑같이 받아치는 나도혜의 말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아무튼 한마디도 안 지신다니까.”

“근데 진짜 많이 놀랐었어요. 대표님처럼 하드코어하게 솔직한 사람은 처음이었거든요.”

“그랬나요? 그냥 적당히 할 말만 했던 거 같은데.”

“엄청 솔직하셨죠. 지금도 그러시고요. 그래서 믿고 함께 일하는 거기도 하고.”

“그런가요? 칭찬으로 들으면 되죠?”

나도혜는 승무원처럼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럼요.”

“그나저나 왜 여기에 오자고 하신 거예요?”

“하실 말씀 있으세요?”

“아, 다름이 아니라 저희 확장이 필요할 거 같아요. 아니, 확장을 하면 어떨까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확장이요? 생산량을 늘리자는 말씀이신가요?”

“아니요.”

“그럼요? 웰니스를 더 확장할 게 있나요?”

“있죠. 그리고 웰니스만의 얘기는 아니에요.”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진짜로 확장을 하자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나도혜는 어느새 얼굴에서 웃음기를 빼고 사뭇 진지해져 있었다.

“네, 좀 더 높은 곳을 봐도 좋을 거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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