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03화
23. 확장 (3)
직장암 그리고 장 경련. 이외에 전체적인 신체 컨디션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내게 보이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김현자를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지 따위는 알 수 없었다.
쓴물이 올라왔다.
이 씁쓸하고 텁텁한 맛은 아는 사람만 안다.
아파하는 사람을 보고 있는 자체가 그렇다.
하지만 이보다 더 괴로운 것은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점이 가장 컸다.
이 무력감은 인간인 이상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8
김현자는 응급실에 들어선 지 약 4시간 30분 만에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커튼으로만 공간이 나뉘어져 있는 수많은 침대들 중 하나였다.
침대를 배정받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 데에 불만을 표할 수는 없었다.
말 그대로 한시가 급한 환자들이 많았으니까.
김현자 같은 말기 암 환자들은 해줄 수 있는 조치에 한계가 명확하기도 했고.
김현자는 통증이 많이 가셨는지 자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도 찡그린 미간은 여전했다. 편치는 않다는 뜻이었다.
이필순 할머니는 보호자 침대를 펴고 잠을 청하는 중이었다.
나와 노우민은 잠시 응급실을 빠져나왔다.
우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적막감 속에서 차가운 밤공기만이 내려앉아 있었다.
침묵을 깬 것은 노우민의 한숨 소리였다.
“하아아…….”
나는 말을 하려다가 다시 입술을 붙였다.
해줄 거라고는 위로밖에 없었고, 위로랍시고 무슨 말을 건네든 그저 그런 소리로 들릴 것을 알았다.
나도 경험해본 것인지라 잘 알고 있다.
누구든 위로를 건네는 건 고맙지만, 그 순간에는 크게 와 닿지 않는다.
“대표님.”
“말해.”
“저희 어머니…… 돌아가시겠죠……?”
“……언젠가는 돌아가시지.”
“어떤 의미로 여쭈는 건지 아시면서…….”
나도 탄식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모르지. 나도 모르지.”
“냉정하게 말씀 좀 해주세요.”
“내가 그렇게 말하면 마음이 편할 거 같아?”
“……모르겠어요.”
“조금은 다르게 생각해봐. 이미 예전에 의사가 뭐라고 했었는지 기억하지?”
노우민은 입술에 힘을 꽉 줬다가 말했다.
“예, 기억나죠. 잊을 수가 없죠. 그리고 이미 기적이나 다름없다는 것도 알아요. 의사 말대로라면 이미 돌아가셨겠죠. 하지만 아직 살아계시고…… 어제까지만 해도 꽤 컨디션이 좋으셨으니…….”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감정을 달래기 위함이지, 지금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무언가가 나오지는 않았다.
노우민은 내게 죄송하다고, 먼저 들어가라고 했지만 나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응급실에서 나서기 전, 의사는 요양병원을 추천했다. 바로 연계를 해줄 수도 있다고.
하지만 김현자의 강한 거부로 결국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말이 뇌리에 남았다.
죽어도 집에서 죽겠다고. 병원에 들어가서 가만히 누워 있다가 죽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다가 죽겠다고.
9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길.
조수석에 자리한 노우민은 꾸벅꾸벅 졸았다.
평소 같았으면 장난스레 타박했을 텐데, 오늘은 그냥 자게 놔뒀다.
늦은 시간이기도 했고, 심적으로 많이 지쳤겠지.
노우민의 집 근처에 도착할 즈음이었다.
“헛……!”
녀석이 화들짝 놀라며 깼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아, 죄송합니다. 깜빡 잠이…….”
“괜찮아.”
“죄송합니다.”
“뭘 죄송해. 피곤하면 좀 잘 수도 있지.”
“그래도…….”
“됐어, 인마. 여기서 어떻게 가야 돼?”
“여기서 내려주셔도 돼요. 걸어가면 금방입니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노우민은 잠시 눈치를 살피다 손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이쪽으로 쭉 가다가 우회전하시면 돼요.”
그렇게 녀석을 집 앞까지 바래다줬다.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십쇼.”
“그래, 내일은 11시에 출근해.”
“아니에요, 제때 나가야죠.”
“피곤해서 일 제대로 하겠냐?”
“하루 정도는 괜찮습니다. 저 예전에 투잡 뛰었잖아요.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죠.”
“그래, 그럼. 일하다가 많이 피곤하면 좀 일찍 퇴근하든가.”
“네, 진짜 못 버틸 것 같으면 연락드릴게요. 내일 가게 나오세요?”
“내일?”
작은아빠와 다온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만나기로 돼 있었다. 건강상담은 없었다. 정확히는 예약을 받지 않는 날이었다.
“내일은 가도 잠깐 들르고 말 거야.”
“네, 알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래, 얼른 들어가서 쉬어라.”
그렇게 핸들을 꺾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샤워를 했다.
씻으면서도 김현자가 힘든 얼굴로 링거를 맞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면서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적이 뭔가?
흔치 않으니 기적이다.
매번 일어나면 그건 더 이상 기적이 아니겠지.
10
다음 날 아침.
“이런…….”
내 이름이 검색어 5위 안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중이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 번째는 시계였다.
한 랩퍼가 새로 산 손목시계를 SNS에 인증하며 자랑했는데, 6천만 원 상당의 고가 제품이었다.
여기까지는 크게 화제가 될 것도 아니었다. 팬들이나 알지, 전 국민이 알 일은 아니었다. 유명인, 특히 랩퍼들의 경우 명품으로 치장을 하고 그로 인해 화제성을 가지려는 거야 흔한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한 네티즌이 이와 관련해 커뮤니티 사이트에 글을 올린 것이었다. 제목부터 ‘랩퍼를 바르는 자영업자의 위엄’으로 자극적이었다.
그 자영업자는 다름 아닌 나였다. 내가 방송에 출연하면서도 시계를 착용하고 있었고, 8천만 원이 넘어가는 명품이다 보니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댓글들도 화려했다. 진품이네, 가품이네, 무슨 모델이네, 할리우드의 누가 저걸 찼다더라, 즙 팔아서 돈 많이 벌었나보다, 노인들이랑 다이어트 하는 사람들 주머니 털어서 명품을 샀다느니 말이 많았다.
분명한 건 그리 좋은 소리는 없었다.
한국은 랩퍼와 같은 특정 직업군과 유명인이 아닌 이상 돈 많은 걸 티를 내서 좋은 소리를 듣는 곳이 아니다.
누구나 돈이 많은 걸 알아도 그걸 대놓고 뽐내지 않는다는 게 중요하다.
재벌조차도 비교적 검소한 모습을 보였을 때 사람들은 호감을 느낀다. 그래야 공감대가 형성이 돼서 그런 걸까. 나 역시 그랬던 기억이 있다.
걱정이 되는 건 당연히 매출.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도 문제였지만, 두 번째 이유가 마음에 걸렸다.
다시금 정효원의 암 완치 사실이 화제가 됐다. 그녀가 해외로 떠나고 SNS에 인증을 올린 탓이었다.
다른 말로 해외여행을 할 정도로 건강을 회복했다는 뜻이었으니까. 게다가 타고나기를 말랐던 사람인지라, 오히려 암이 나은 뒤 전보다 살이 좀 더 올라서 건강해 보여서 더 그랬다.
이 두 가지 사유로 나에게 붙는 수식어들이 생겼다.
명품시계 그리고 건강 신화.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뭐가 건강 신화냐…….”
지난밤 응급실에서 링거를 맞던 김현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가능하면 김현자와 노우민이 나에 대한 뉴스를 보지 못했으면 했다.
똑같이 말기 암으로 건강상담을 받은 누구는 회복하고, 누구는 분명히 죽어가고 있었다.
이 와중에도 신경 써야 될 게 있었다.
바로 매출.
건강 신화라는 말이 붙기는 했지만, 명품 시계로 사람들에게 미운털이 박힌 느낌이었다.
매출에 강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휴대폰을 집어 드는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나도혜의 전화였다.
그 순간 마음속으로 거친 말이 떠올랐다.
좆됐구나.
댓글들 반응이 그랬고, 아침부터 나도혜에게 전화가 걸려온 것이 그랬다.
정황상 그렇게밖에 생각이 안 됐다.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 나도혜입니다. 통화 괜찮으세요?
“네, 말씀하세요.”
―저 이제 곧 행복 건강즙 1호점 쪽인데, 혹시 잠깐 보실 수 있으세요?
아침부터 갑작스레 만나자는 연락이 당황스러웠지만,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네, 괜찮습니다. 그런데 한 20분 정도 걸리는데 괜찮으신가요?”
―네, 저도 가는 데 시간 조금 걸려요. 역 근처 카페에 들어가 있을게요. 나오시면서 전화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통화를 마치자마자 휴대폰을 내려놨다.
빠르게 머리를 감고, 세수와 양치질을 했다.
옷을 걸치고 집 밖으로 나서기까지 15분이 채 안 걸렸다.
나는 걸음을 서두르며 나도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역 바로 앞에 있는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천천히 오세요.
“네, 10분 조금 안 걸릴 것 같습니다.”
―커피 시켜놓을까요?
“아니요, 제가 가서 살게요.”
―어차피 드실 거면 말씀하세요.
“……그럼 전 카페라떼 시원한 걸로 좀 부탁드립니다.”
―네, 곧 봬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페에서 나도혜와 마주했다.
그녀는 카페라떼에 샌드위치까지 주문해놓았다.
“아침식사 안 하셨을까봐.”
“아, 네. 감사합니다. 원장님은요?”
“저는 먹었어요. 드세요.”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건가.
굳이 마다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스트레스가 잔뜩이었고, 나도혜와 그렇게 불편한 사이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샌드위치를 꾸역꾸역 입에 밀어 넣었다.
“체하시겠어요.”
나도혜가 웃어 보였다.
“괜찮습니다. 위장 튼튼해서.”
“그런데 오늘은 시계 안 차셨네요?”
“아.”
올 것이 온 건가.
“급하게 오느라고요.”
나는 나도혜의 눈치를 살피고는 카페라떼를 한 모금 마셨다.
“기사 읽으셨군요?”
나의 물음에 나도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실시간 검색어 오른 것들은 대부분 살펴보는 편이거든요. 더군다나 대표님 이름이 올랐는데 안 볼 수 있겠어요?”
“그렇군요.”
“그나저나 명품 좋아하시는 줄은 몰랐어요. 되게 검소하신 줄 알았는데.”
“아, 그게…….”
정석구 회장에게 선물로 받았다는 사실을 얘기해도 되는지 애매했다. 굳이 숨길 것도 없겠지만. 더군다나 그 대상이 나도혜였고.
내가 잠시 말을 아끼고 있는 사이에 나도혜가 생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게 그런 식으로 홍보가 될 줄은 몰랐네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오랜만에 매출이 확 올랐어요. 그것도 아침부터 수직 상승이에요. 저번에 ABC 주스 화제 됐을 때랑은 비교도 안 돼요.”
나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에요. 엄청 잘됐어요.”
“제가 검색어에 올라서요?”
“네, 물론이죠. 건강 신화가 되셨잖아요. 그것도 항공사 회장 딸을 살려냈으니까요. 앞으로 많은 의사들한테 질투를 사시겠어요.”
“저는 그냥 보조만 한 거죠…….”
“분명히 대단한 일을 해내셨죠. 사람들은 절대 보조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고요.”
나는 괜히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카페라떼라서 부드러울 터인데 이상하게 에스프레소처럼 쓰게 느껴졌다. 내 기분의 맛이겠지.
“그렇군요.”
“생각보다 별로 안 좋아하시네요?”
“네? 아니요, 그냥 조금 당황스러워서요. 부정적인 반응이 많을 줄 알았거든요. 실제로 댓글들도 그렇고요. 그런데 오히려 매출이 올랐다고 하시니까…….”
“아아, 시계 때문에요?”
“그렇죠.”
“그것도 매출 상승에 일조했어요.”
나는 다시 한 번 당황하며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그게 어떻게 매출 상승에 도움이 됐다는 건가요?”
“그만큼 많이 팔아서, 많이 벌었으니까 명품시계도 살 수 있는 거잖아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사먹는 이유가 또 있을 거고요. 아시다시피 저희 제품들이 검색만 하면 후기가 넘쳐나는데, 호평일색이고요.”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까지 행운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