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01화
23. 확장 (1)
1
“조심히 들어가라.”
내가 손을 가볍게 들어 보였다.
오정득은 싱글벙글 웃으며 양손을 들고 별이 반짝이듯 흔들었다.
“그래, 잘 가라. 오늘 잘 먹었다.”
“다음엔 더 좋은 거 먹으러 가자.”
즐거운 술자리였다.
조금 과음을 한 느낌이 있었지만, 가끔은 이런 것도 나쁘지 않지.
매일같이 술을 마시는 것보다는 가끔 많이 먹는 게 낫다고 본다. 물론, 술독에 빠질 수준은 안 되겠지만.
그렇게 돌아서려는데 오정득이 손을 들며 스톱을 외쳤다.
“잠깐, 잠깐만.”
“왬마.”
“손모가지 한 번 더 보여줘.”
“봐라, 봐.”
술자리에서도 수차례 그랬다.
오정득이 의외로 시계에 취미가 있었다.
녀석은 내 시계를 얼핏 보고도 단번에 브랜드와 모델명을 알아맞혔다. 본인도 평소에 손목시계 여러 개를 바꿔서 차고 다녔다고.
나야 크게 관심을 두는 쪽이 아닌지라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끔 녀석의 손목시계 색깔이 바뀐 듯한 느낌 정도는 받았었지만.
“됐다. 만족했다. 내 눈이 이제 괜찮단다.”
오정득은 정말로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시계 변태 새끼.”
“그 귀한 놈이 손목에 올라가 있는데도 소중함을 모르다니. 개탄스러운 현실이다.”
“지랄 그만하고 들어가서 주무세요.”
“간다!”
“가라!”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2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아, 진짜요? 잘됐네요.”
내가 웃으며 말하자 수화기너머로 행복감이 묻어나는 박종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에. 어떻게 데이트는 한 번 하기로 했는데, 막상 또 되니까 걱정이네요.
“왜요? 뭐가 걱정이세요?”
―제가 누구랑 데이트하고 이러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서요. 어떻게 하고 나가야 할지, 뭘 해야 할지 참…….
박종만은 내가 정말 편해진 모양이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데이트 고민이라. 다소 험악한 인상에 그 덩치로 이런 고민을 토로하는 게 웃음을 자아냈다.
“데이트는 언제 하시기로 했어요?”
―다음 주 금요일에요.
“무슨 데이트 약속을 그렇게 미리 잡으셨답니까?”
―제가 이번 주에는 예약이 꽉 차 있어서요. 아무래도 주말 쪽으로 약속을 잡아야 할 것 같고.
“그 전날은 시간 어떠세요?”
―뭐… 다음 주는 특별한 거 없습니다. 제가 또 일을 할 때는 빡세게 하자는 주의라 가능한 이번 주에 일을 몰아놓기도 해서요.
“그럼 그날 저랑 잠깐 보시죠.”
―예?
“제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그래도 머리가 하나보다는 둘이면 뭐라도 좀 더 낫지 않겠습니까?”
―아, 그럼 저야 감사한데, 괜찮으세요? 대표님 바쁘실 텐데.
“괜찮습니다. 저도 박 대표님이랑 데이트 한 번 하죠.”
―하하하하하, 예, 데이트 연습이네요 연습.
나도 박종만이 많이 편해졌다.
깍듯하게 예의를 지키는 친구 사이 같았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는 집으로 들어섰다.
김현자에게는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아직 초저녁인데. 그래서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어머님, 어쩐 일로 연락을 주셨어요? 이 문자 보시면 연락주세요.]
그녀에게서 온 문자는 ‘선생님 잠깐 통화 괜찮으세요?’라는 내용이 전부였다.
문득 불안한 느낌이 하복부서부터 퍼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노우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고 전화가 연결됐다.
―네, 사장님.
“어, 여보세요? 잠깐 통화 괜찮니?”
―네, 말씀하세요.
“다른 게 아니라, 너희 어머니께서 연락을 하셨었거든.”
―엄마가요?
“어어, 문자만 하나 남기셨는데 전화를 거니까 안 받으시더라고. 그냥 확인 좀 해보라고 전화한 거야.”
―아, 네. 알겠습니다. 할머니 댁으로 전화 걸어봐야겠네요.
“그래.”
―매번 감사드립니다.
“감사는 무슨. 그럼 끊는다.”
―예, 들어가십쇼.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여전히 불안한 마음은 남아 있었다. 하지만 마음을 편히 먹기로 했다. 혼자 불안해하고 있어봤자 바뀌는 것은 없으니까. 그리고 응급상황인데 나한테 문자를 하거나 하지는 않았겠지.
우웅.
짧은 진동 소리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에게서 답장이 왔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확인이 늦어 죄송합니다. 미팅 중이었거든요. 혹시 잠깐 통화 괜찮으실까요?]
방송국 작가였다.
통화 내용도 뻔했다.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달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건강 프로그램이었다.
‘내 몸은 내가 알자’라는 제목으로 건강 정보를 전달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 최근에 시간도 많이 남는 편이었고, 어떤 사업자들은 홍보를 위해 뒷돈을 주고서도 방송에 출연하기도 한다.
일단 미팅을 하기로 했다.
3
“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여자 작가는 생글생글 웃으며 몇 번이나 고개를 꾸벅였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도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 몸은 내가 알자’의 이번 주제가 주스였다.
주스가 정말로 몸에 건강한지 아니면 건강하지 않은지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고 있었는데, 의사들이나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이 찬반 의견을 내놓는 게 메인이었다.
나는 작가의 제안에 응하기 전에 나도혜와 긴 통화를 해야 됐다.
현재 행복 건강즙뿐만 아니라, 웰웰과 웰니스를 나도혜와 함께 운영하고 있었으니까.
방송에 나가면 내가 팔고 있는 주스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도 나올 게 분명했다.
나도혜에게는 섭외문의가 가지 않았다.
그녀는 이번 방송에는 전문가로서 꼭 출연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이미 의사 패널들은 꽉 찬 상태라고.
게다가 나와 나도혜는 동업 중인지라 함께 방송에 나가면 특정 브랜드 홍보 및 옹호가 될 수 있어서 함께 출연은 불가능하다나.
내가 조금 꼬인 걸까? 너무 예민한 걸까?
어쩌면 물어뜯기 위해 부르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의사인 나도혜보다는 그냥 사업가인 나를 팩트로 조지기 쉽다는 생각일지도.
꼭 출연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스케줄을 핑계로 거부해도 됐다.
하지만 이걸 피하면 누가 어떻게 방어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내 브랜드를 겨냥하는 게 아니더라도 주스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매출에 직접적인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방어를 하러 가는 게 맞다고 여겼다.
내가 파는 즙과 주스는 정말로 건강에 좋다.
단순히 돈만 벌자고 이 사업을 하는 게 아니다.
진심으로 사람들이 더 건강해지길 바라며 일하고 있다.
그걸 폄하하게 둘 수는 없다.
그러니 나는 방송에 나간다.
방송 출연을 위해, 돈을 벌면서 마케팅을 하기 위해 나가는 게 아니다.
이건 토론을 위해, 아니, 전장으로 싸움을 하러 나가는 것이다.
침대에 누웠다.
어둠속에서 눈을 뜬 채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짧은 알림음과 함께 휴대폰 불빛이 번쩍였다.
노우민에게 온 문자였다.
[대표님, 어머니하고 통화 됐는데요. 몸이 조금 안 좋으신 것 같아서 관리법 물어보려고 연락하셨었대요.]
나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
[증상이 어떠신데? 많이 안 좋으시면 당연히 일단 병원으로 가는 게 우선이고.]
[지금은 또 괜찮으시대요. 조만간 시간 괜찮으실 때 한 번 뵙고 싶다고 하시네요.]
[당연히 봬야지. 언제든 시간 맞출 테니까 네가 어머니랑 시간 맞춰.]
[네, 알겠습니다. 늦은 밤에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죄송하든지 감사하든지 하나만 해라. 푹 쉬어.]
[네, 안녕히 주무십쇼.]
좀 더 편안해진 마음으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4
‘내 몸은 내가 알자’의 녹화일.
제작진은 친절했다. 태도만 봤을 때는 나를 물어뜯으려는 상어들로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극진해서 내가 계속 어색한 웃음을 지을 정도였다.
의사들은 제각각이었다. 지나치게 딱딱한 남자,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 남자, 친근한 여자, 도도한 여자, 눈도 안 마주치는 남자 등 다양했다.
금세 촬영이 시작됐다.
언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진행자들이 인사말을 하고 바로 진행됐다.
이래저래 은근히 재미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전에 출연했던 ‘우리는 몸신이다’ 같은 프로그램보다 시청률은 조금 낮았지만, 큰 차이도 아니었고 이쪽이 나은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그러다 주제가 나오는 순간 표정을 확 굳힐 뻔 했다.
건강 주스의 진실.
불쾌함을 감추려는데, 거기서 바로 후속타가 들어왔다.
“건강하려고 먹는 여러 종류의 건강 주스. 그 건강 주스가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는데요. 이게 과연 사실일까요?”
진행자의 말에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내가 파는 것은 설탕덩어리인 그런 주스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 또한 그런 시중에서 파는 주스를 놓고 말하는 게 아니다.
주스 파는 사람을 데려다 앉혀 놓고 이런 식으로 들이밀다니.
저격이나 다름없었다.
PD 새끼. 어쩐지 어색하게 웃으면서 눈을 제대로 못 보더라니.
녹화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고, 패널들의 의견이 쏟아질 차례였다.
진행자가 물었다.
“착즙주스가 진짜로 건강을 해치나요?”
내가 파는 건 착즙주스만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만들거나, 껍질이나 씨까지 전부 갈아서 주스로 만드는 게 대다수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그런 건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 내가 주스를 판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먹어보지도 않고, 실제로 본 적도 없고, 사실을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욕을 할 것임을 알 수 있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믿고 싶은 게 진실이 된다.
그렇게 선동이 시작되면 휘둘리는 사람들도 생긴다.
군중심리라는 게 그렇게 무섭다.
나는 내 제품을 믿는다.
하지만 가끔은 진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착즙주스에도 방어가 들어가야 한다.
그때 피부, 다이어트 전문 병원을 운영하는 젊은 여자 의사가 목소리를 냈다.
“네, 맞습니다. 착즙주스는 건강에 나쁠 수 있습니다.”
그때 속에서 무언가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한 번 해보자는 거지.
해보자.
제대로 붙어보자.
“과일과 채소가 몸에 좋다는 건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죠. 하지만 많은 분들이 필요로 하는 만큼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착즙주스의 장점이라면 생으로 먹는 것보다 부피를 확 줄일 수 있다는 점이 있죠.”
여자 의사는 미리 준비라도 해온 듯 막힘없이 말을 술술 이어나갔다.
“하지만 과일과 채소를 갈면 식이섬유가 파괴되어 영양분 흡수가 빨라지고, 혈당이 올라가게 됩니다. 같은 양을 섭취해도 생으로 먹을 때보다 혈당이 몇 배나 높게 올라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또한 남은 찌꺼기는 먹지 못하고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거기에 섬유소가 많습니다. 따라서 착즙해서 섭취하게 되면 대부분의 좋은 섬유소는 몸에 들어오지 못하게 됩니다.”
그녀는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진행자는 이에 대해 반대의견을 낼 사람을 찾았다. 그리고 눈으로 훑는 와중 나하고도 눈을 마주쳤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들어 보였다.
반격할 준비가 돼 있었다.
“네, 말씀해주시죠.”
진행자가 운을 뗐다.
나도 모르게 여자 의사를 힐끗 쳐다봤다. 그녀 역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곧장 진행자와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일단 과일과 채소를 착즙해서 마시는 것은 편의성을 위해서도 있지만,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그냥 먹으면 되는 것을 착즙하는 과정이 하나 더 생기면서 결코 편하지 않게 되잖습니까? 뭐라도 하나 더 해야 되잖아요.”
나의 말에 진행자와 몇몇 의사들이 하하 웃었다.
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제가 방금 드린 말씀은 농담 같지만 진실이기도 합니다. 과일과 채소를 착즙해서 마시는 이유는 중요한 영양소의 흡수율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식이섬유 때문에 마시는 게 아닙니다. 그건 다소 잘못된 인식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정면으로 부딪치며 크게 한 방 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