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00화
22. 건강 신화 (4)
폭격.
내가 겪는 상황에 가장 걸맞은 표현이었다.
쏟아지는 질문들이야 뻔했다.
정말 정효원이 완치된 것이냐, 어떻게 완치를 한 것이냐, 정석구 회장과는 원래 아는 사이냐 등이었다.
“정효원 씨는 완치된 게 맞습니다. 정석구 회장님과는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그리고 어떻게 완치됐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제가 한 거라고는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식이요법과 생활습관을 알려드린 것밖에 없습니다.”
나의 대답에 기자들은 의문을 토해냈다.
“강건희 씨를 통해서 나았다고 하던데요?”
“대표님이 모르면 누가 압니까?”
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하늘만이 알겠죠.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저는 암을 무조건 완치할 수 있다느니 그런 소리를 하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저는 어떤 병이든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자는 거죠.”
가게에 가서까지도 기자들에게 꽤나 시달려야 했지만, 나는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지 않았다.
그리고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한 사람들 중 겸손할 줄 모르고 거만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꼭 실수를 한 번씩 한다.
그 사람들이 우둔해서 그런 줄 알았다.
아니었다.
나도 이렇게 조명을 받으니 바람이 들어간다.
우쭐해진다.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나는 여전히 나다.
인간 강건희.
건강 전도사로서 좋은 영향력을 전달하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7
정효원의 암 완치 소식 덕분인지 다시 건강상담 문의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지금은 예약이 가능한 요일이나 시간이 전보다 적었고, 99% 이상이 온라인으로 예약을 하거나 문의를 주니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당연히 특정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그걸 증명만 하면 우선적으로 따로 시간을 맞춰 만나고 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여자도 그랬다.
“불면증이라…….”
나는 여자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봤다.
일반적으로 자신이 불면증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중 실제로 불면증이 아닌 경우가 상당히 많다.
대표적인 게 충분한 시간 동안 잠을 자고도 마치 잠을 못 잔 것처럼 느끼는 수면착각증후군이 있다. 불면증이라고 하는 사람 10명이 있으면 6명은 그렇다고 한다.
나머지 4명도 진짜 불면증은 아닐 확률이 높다. 적어도 스스로 잠에 들지 못하는 게 아니라, 잠에 들기 어려운 신체와 환경을 조성하는 경우가 많다.
여자는 확실히 잠이 부족한 상태긴 했다. 다크서클도 짙었고, 옅은 화장이긴 하지만 그래도 화장을 한 상태인데 피부의 푸석푸석함이 그대로 보였다. 입술도 텄다. 눈도 충혈됐다.
내 능력이 아니더라도 여자가 피곤한 상태인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수면 부족으로 인해 장 기능도 떨어진 상태라 변비도 있는 걸로 보였다.
“수면유도제 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잖아요. 그 마저도 뭔가 개운하게 잔 느낌은 안 들더라고요.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여자가 침울한 목소리를 냈다.
“일단 평소에 어떻게 생활하시는지 아는 게 먼저일 것 같습니다. 커피 같은 카페인 음료 자주 드시나요?”
“커피는 안 마시고, 녹차는 좀 자주…….”
“일단 녹차에도 카페인이 많이 들어 있으니까 당분간은 끊으세요. 카페인은 무조건 멀리하셔야 합니다. 카페인 자체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에요. 이로운 효과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니까요.”
“네, 네.”
“술은요?”
“잠이 너무 안 올 때 조금 마셔요. 그럼 겨우겨우 몇 시간이라도 자거든요.”
“술도 안 좋습니다. 아마 몸으로 느끼셨을 거예요. 그런 식으로 잠에 들어봤자 숙면을 취할 수가 없거든요. 잠을 충분히 자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면의 질도 중요하니까요.”
“네, 맞아요. 그런 것 같아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리다 물었다.
“스트레스 많이 받으시나요?”
“뭐…… 아무래도 스트레스 안 받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야 그렇죠. 그래도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소하느냐에 따라 많은 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정말 생각보다 많은 게 변할 수 있어요. 가능하면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같은 고민으로 계속 힘들어하지 마시고요.”
여자는 힘없이 웃었다.
“노력해볼게요.”
“지금 말씀드린 부분들은 무조건 실행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1시간 전에는 컴퓨터나 휴대폰 사용도 멈춰보세요. 도움이 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운동도 도움이 되고요. 단순히 수면이 부족해서 생기는 몸의 피로함이 아니라, 적절한 운동으로 활력을 주고 휴식을 필요로 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외에 몇 가지 불면증에 좋은 방법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내가 펜으로 종이 위에 글씨를 쓰는 소리가 계속 울렸다. 그렇게 지켜야 할 것들을 전부 적으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첫 번째는 사과식초랑 꿀입니다. 따뜻한 물 한 컵에 사과식초 두 큰 술이랑 꿀 한 큰 술을 섞어서 자기 30분 전쯤에 드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두 번째는 길초근차입니다.”
“길초근차요? 처음 들어봐요.”
“스트레스 완화에도 좋고, 히스테리, 신경과민증, 진정, 정신불안증, 신경쇠약 등에 좋습니다. 장도 안정시키고 생리불순이나 심장병, 관절염에도 효능이 있다고 하죠. 천연 수면제라고도 불릴 정도이니 도움이 될 겁니다.”
길초근의 다른 이름은 쥐오줌풀.
굳이 그걸 말하지는 않았다.
이름만 들으면 괜히 먹기 찝찝하니까.
“상추를 달이고 꿀을 넣은 차나 카모마일도 좋습니다.”
나는 펜을 멈추고 종이를 내밀며 말을 이었다.
“여기 있는 모든 걸 다 지킨다면, 분명히 좋아지실 겁니다.”
“우와…….”
여자는 종이를 들여다보다가 내 얼굴을 힐끗힐끗 쳐다봤다.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무슨 프린트한 거 같아요. 아니, 프린트로도 이런 건 안 되죠. 글씨 진짜 잘 쓰시네요.”
“뭐……. 덕분에 읽기 좋으시죠?”
“네, 네. 너무 좋아요. 그 말이 사실이네요.”
“어떤 말이요?”
“대표님한테 건강상담 받으면 해야 할 것들, 지켜야 할 것들을 직접 손으로 써주신다고, 근데 그게 너무 보기 좋다고요.”
그녀는 종이를 들어 보이며 생긋 웃었다.
“이거 받으려고 건강상담 받겠다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라니까요?”
“하하, 그게 뭐라고 참…….”
나는 여자와 눈을 마주치며 다시 말했다.
“아무튼 꼭 지키셔야 합니다. 불면증을 이겨내셔야죠. 자도 잔 게 아니고, 깨 있어도 깨 있는 게 아니잖아요. 길어질수록 삶의 질이 많이 떨어집니다. 조금 힘들더라도 꼭 전부 지키도록 해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저기…….”
“네?”
“사진 한 장만 찍어주실 수 있으세요?”
“사진이요?”
“네.”
“뭐…… 그거야 어려운 건 아니죠.”
“그럼.”
여자는 바로 몸을 틀어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손으로 ‘V’자를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보정 효과가 들어가서인지 화면 속 여자와 나는 잡티 하나 없는 뽀샤시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여자는 내가 배경인 셀카를 찍고서는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감사합니다아아아.”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렇게 다시 상담실에는 나 혼자만 남아 있었다.
계속 뭔가를 쓰고, 입을 쉬지 않으니 제법 피곤했다.
잠깐 스치듯 보는 게 아니라, 하나하나 얘기를 풀어놓는 건 생각보다 체력소모가 컸다. 기가 빨리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즐겁고 보람 있었다.
8
“으아……. 피곤하다아아아아.”
나는 테이블 위로 엎어지며 조난당한 사람처럼 팔을 뻗었다.
그 모습을 본 오정득이 피식 웃었다.
“너도 피곤할 때가 있냐?”
“그럼. 나도 사람인데 피곤하지.”
“네가 사업 시작하고 나서 그러는 거 처음 보는 거 같아서.”
“그래?”
“응.”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정말 브레이크 없는 폭주기관차처럼 쭉 달려왔다.
아직도 앞으로는 끝이 없는 철로가 펼쳐져 있었다.
“좀 쉬엄쉬엄해.”
오정득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가볍게 가로저었다.
“아직 멀었지.”
“그러다 쓰러진다.”
“요즘은 그래도 잠 꼬박꼬박 잘 자고 있어. 갑자기 건강상담 예약 많아져서 그거 하느라 지친 거야. 오늘은 또 정해져 있는 시간 외 예약이 많았거든. 또 마지막 상담이 유난히 길었고.”
“마지막 상담이 뭐였는데?”
“불면증 심한 여자 분이 오셨었거든. 그래서 단순히 뭐 먹으면 되고 그런 게 아니라, 생활습관 같은 전반적인 것들을 싹 개선해야 되니까 하나하나 설명하느라고.”
“그래? 나한테 오면 바로 싹 낫는데.”
“어떻게?”
오정득은 묘한 웃음을 지었다.
“나랑 썸타면 불면증 싹 낫더라고. 아니, 썸도 아니지. 그냥 연락 좀 하면 그렇더라. 뭐하냐고 물어보면 잔대. 잘 거래. 아니면 나중에 답장 와서 잤대.”
여기서 위로를 하면 이상해진다. 애초에 녀석도 웃자고 한 소리고. 그래서 실컷 웃어주며 말했다.
“연쇄수면마네, 연쇄수면마.”
“야 이 씨…….”
오정득이 인상을 찡그린 채 중얼거리듯 말했다.
“근데 불면증 치료사라고 하기도 애매해.”
“왜?”
“부작용이 있거든.”
“무슨 부작용?”
“몽유병. 분명히 잔다고 했거나 잤다고 했는데 SNS 업데이트 되고, 뭐 어디 돌아다니는 거 보이고 그러더라.”
나는 다시 한 번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오늘은 오정득하고 특별히 어떤 일 때문에 만난 것은 아니었다.
“얼른 마감하고 나가자.”
“어, 어. 그럴 거야.”
다른 직원들은 이미 전부 퇴근시킨 뒤였다.
크게 할 것도 없었다.
꺼지지 않은 기계는 없는지, 뭐가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정산은 제대로 됐는지 등을 확인하고는 가게를 나섰다.
9
근처의 횟집이었다.
“자, 한 잔 받으쇼.”
오정득이 소주를 집어 들었다.
“이렇게 둘이 마시는 거 오랜만이네.”
나는 잔을 내밀며 씩 웃었다.
오정득은 술을 따르며 실실 웃었다.
“제대로 유명세 탔네.”
“그러게. 정말 기적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하필 또 항공사 회장 딸일 줄이야.”
“그런데 대체 비결이 뭐야?”
“무슨 비결?”
나의 되물음에 오정득은 잔을 비우고는 말했다.
“지금 네가 하는 게 일종의 대체의학이잖냐. 처음에 건강원 차릴 때야 뭐, 원래 할머니께서 건강원을 하셨으니까 그러려니 했지. 그런데 건강상담을 하대? 솔직히 처음에는 뭐 동네 노인네들한테 증상에 맞는 즙이나 권하려고 그러는 줄 알았어.”
“내가 무슨 노인들한테 사기치는 놈인 줄 아나.”
“아니, 상황이 그렇잖아. 그런데 진짜 좋은 일을 하는 거더라고. 그것도 오는 사람마다 다 만족할 정도로 효과도 좋고. 네가 예전에 공부는 잘 못했어도 머리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건 알거든? 그래도 이건 갑자기 너무 그러니까.”
오정득이 다시 잔을 채우고는 물었다.
“비결이 뭐야? 무슨 비급 같은 거라도 생긴 거냐?”
뭐라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을 내놨다.
“할아버지가 꿈에 나와서 알려주셨어.”
“지랄은…….”
오정득은 웃으면서 손을 살짝 들었다.
나는 그런 녀석에게 삿대질을 했다.
“이거, 이거 손 봐라. 은근히 자주 그런다? 폭력적이야.”
“너만 하겠냐.”
“난 옛날에나 그랬고, 넌 나이 처먹고 그러잖아.”
우리는 언제나처럼 또다시 티격태격거리며 웃음을 나눴다.
그렇게 잔을 부딪치고 또 부딪치던 중이었다.
몇 번인가 휴대폰 진동이 허벅지를 간질었다.
“잠깐 나 화장실 좀.”
“어, 다녀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볼일을 보고 손을 씻은 뒤 거울을 들여다봤다. 그러다 미소를 지었다. 참 많은 게 바뀌었다. 얼굴 때깔부터가 달랐다.
표정이 달라지고, 마음이 고와지고 여유가 생기니 그게 얼굴에서도 드러나는 듯하다. 실제로 열심히 관리를 하기도 했지만.
손을 말리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문자 여러 개가 도착해 있었다.
박종만과 김현자 그리고 모르는 번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