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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99화 (99/174)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99화

22. 건강 신화 (3)

생전 처음 보는 고가의 명품시계가 손아귀에 있는데도, 아직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상자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조심스레 시계를 내려놓은 뒤 상자로 손을 가져갔다. 묵직했다. 나는 폭발물이라도 옮기는 양 모든 행동이 신중했다.

천천히 상자를 열었다. 이 과정은 경건하기까지 했다.

역시나 고급스러운 케이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어떠한 브랜드 로고 따위는 없었다.

케이스를 살짝 들어 올리자 힘 있게 덜컥 열렸다.

그 안쪽에는 거북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냥 거북이가 아니었다.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금거북이였다. 발판 위에 올라가 있는 금거북이. 당연하게도 그 발판 역시 금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세상에…….”

큼직한 만큼 묵직했다.

시계보다 더 값어치를 주기 위해 일부러 발판을 붙인 듯했다. 금괴 위에 금거북이가 올라서 있는 셈이었다.

최소 2kg은 될 듯했다. 말 그대로 억 소리가 나오는 가치가 담긴 물건이었다.

“이걸 어떻게…….”

정효원 가족은 이미 떠났다.

이런 걸 받을 수는 없었다.

곧바로 정효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효원 씨.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아버님하고 잠시 통화 좀 가능할까요?”

―네? 아, 네. 잠시만요.

무슨 내용인지는 제대로 들을 수 없었지만, 정효원이 자신의 아버지와 대화를 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여보세요?

다시 정효원이었다.

“네, 효원 씨.”

―아버지께서 정말 죄송하다고, 하지만 지금은 통화를 할 수 없다고 하시는데요?

“예?”

―나중에 다시 찾아뵙겠다고, 그리고 드린 선물은 말 그대로 선물이라 돌려받으실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아니, 그런…….”

―대표님, 제가 뭐 하나 좀 말씀드려도 될까요?

“예, 예.”

―아마…… 저희 부모님께서 준비하신 선물이 부담스러우셔서 그러신 거라고 생각해요. 대표님도, 부모님도 저한테 직접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저도 바보는 아니니까요.

“그냥 저는…….”

―부담스러워하지 마세요. 말 그대로 마음이 담긴 선물이고, 그게 가치가 있으면 얼마나 있겠어요. 사람 목숨에는 값을 매길 수가 없는 거잖아요. 대표님은 그 목숨을 살려내신 거예요. 하신 일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도 이건 너무……. 제가 그냥 흔쾌히 받을 수 있는 선물이 아니네요.”

―그걸 돌려받는 일은 없을 거예요. 선물이니까요. 선물로 드린 것이니 어떻게 하시든 대표님 마음이고요. 저는 대표님께서 계속 그렇게 좋은 일을 하시는 데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뿐이에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조만간 또 찾아뵐게요.

“그래요, 관리는 계속 유지하셔야 합니다. 정기적으로 병원도 들르시고, 저한테도 오시고요.”

―그럼요.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눈앞에 있는 명품시계와 금거북이를 들여다봤다.

의미가 깊은 선물이었다.

거북이는 건강을 상징하고, 금은 그 자체로 부를 상징한다. 그리고 시계는 시간을 소중히 하고, 항상 좋은 시간을 보내라는 의미가 있다. 연인에게 한다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의미기도 하고.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손목시계를 천천히 손목에 가져다 댔다.

“멋있긴 하네.”

마음에 들었다. 살면서 이렇게 비싼 시계를 손목에 차는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요즘이야 휴대폰으로 시계를 보니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손목시계를 착용하고 다니지도 않았다. 생각해 보면 마지막으로 손목시계를 차고 다닌 게 군복무 시절이었다.

당시에 많은 부대원들은 보통 1, 20만 원 상당의 전자시계를 차고 다녔다. 가난한 나로서는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 집에서 지원은 바랄 수도 없었고, 그때 병장 월급이 2만 원 조금 넘었으니까.

나는 훈련소 앞에서 구입했던 1만 원짜리를 전역할 때까지 사용했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8천만 원이 넘어가는 손목시계를 손목에 두르고 있다니.

“참…….”

괜히 금거북이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내 인생에 금이라고는 도금밖에 없었는데.

바라고 했던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손에 들어왔을 때 기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한참 동안 상담실에서 손목시계와 금거북이를 들여다봤다.

생각지 못한 보상이 행복했다.

물욕이 그리 강하다고는 생각 안 했는데, 절대 싫어하는 건 아님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죽이긴 죽이네.”

6

다음 날이었다.

오전 11시 11분.

집이었다.

행복 건강즙 1호점에 들렀지만 딱히 내가 할 게 없는지라 집으로 돌아왔다.

웰웰과 행복 건강즙 2호점은 강인나와 숙모에게 맡겨놨는데, 내가 너무 자주 얼굴을 비추며 들쑤시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이 알아서 매일같이 내게 연락을 해오고 있었으니 믿고 맡기는 게 옳았다.

잘 되고 있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매출이 말하고 있었으니까.

웰니스는 나도혜가 워낙 빡빡하게 관리를 하는 터라 편하고 안정적으로 굴러갔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남았다.

얼른 작은아빠와 다온을 시작하는 게 우선이었다.

민희재와 함께 진행할 쿠키는 다른 브랜드를 내는 게 아닌지라 크게 손이 갈 부분이 없었다.

조만간 노우민과 깊이 얘기를 해볼 생각이었다. 아직 이름도 정하지 못했지만, 슬슬 퓨전 양식 음식점도 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미라클 헬스케어.

가능한 다양하고 많은 건강 브랜드를 런칭하고 싶었다.

잠시 집에서 쉬면서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이었다.

언제나처럼 실시간 검색어들은 훑어보는 식으로라도 한 번씩 살폈다.

“뭔 다 광고야…….”

실시간 검색어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들의 다수가 광고여서 짜증이 팍 났다.

플랫폼 수익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런 식이라면 검색어 조작이 가능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고 신뢰도도 하락하는 건데.

점점 외국 사이트들을 애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래도 익숙함을 포기할 수는 없기에 꾸역꾸역 하나씩 살피던 도중이었다.

뉴스토픽으로 떠오른 키워드 중 하나가 ‘E항공사 외동딸 완치’였다.

“어……?”

E항공사의 대표라는 사람이 아주 익숙한 얼굴이었다.

정효원의 아버지였다.

“뭐야 이거……?”

정효원이 금수저라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였을 줄이야.

국내를 대표하는 두 항공사들 중 하나는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들 중 하나였다.

애초에 항공사라는 걸 소유했다는 게 어느 정도 수준인지 보통 사람들은 감을 잡기도 어렵지 않은가.

정효원의 아버지 정석구.

관련 업계 종사자가 아닌 이상 중견기업의 대표 이름이나 얼굴까지 알고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내가 정석구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상 인지도로만 따지면 내가 더 높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민망했다.

나는 곧장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E항공사 대표 정석구 외동딸 정효원 씨 말기암 완치]

갖은 노력에도 병세가 악화되고 응급실에 실려간 사실이 알려져 많은 이들이 더 염려를 하기도 했다.

그런 정효원이 말기암 완치 소식을 알렸다. 측근에 따르면 “당시 정효원은 모든 병원에서 치료를 포기하고 호스피스 권유를 받았었다. 지금 이렇게 완치된 것은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라고 전했다.

정효원은 이제 막 처음으로 완치 판정을 받은 상태로 안정이 필요하고, 앞으로 5년 동안 6개월마다 정밀검사를 통해 계속 관리를 이어나갈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석구 회장은 “우리 딸 효원이를 걱정해 주시고 완치를 축하해주시는 분들에게 깊이 감사를 드린다”며 말문을 열었고 “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모든 분들이 건강을 되찾길 바란다”면서 XX암센터에 기부의사를 밝혔다.

한편, 정효원의 완치에 숨은 공신으로 ‘세상에 이런 일도’ ‘일의 달인’ ‘우리는 몸신이다’ 등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름을 알린 건강 전문가 강건희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기사를 쭉 읽은 나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니, 건강 정문가는 또 뭐야…….”

그렇게 당황하는 찰나 휴대폰이 울렸다.

행복 건강즙 1호점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여보세요?”

―대표님, 지금 어디세요?

행복 건강즙의 사이트 관리를 도맡고 있는 이지나였다. 요즘은 일손이 부족해 아르바이트도 쓰고 있긴 했지만.

“저요?”

집이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대표라는 사람이 더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느껴져야 직원들도 일할 맛이 날 거라 생각됐다. 실제로 내가 이리저리 놀러 다니는 사람도 아니었고.

“저 잠깐 일 좀 보려고 나왔어요. 왜요?”

―지금 갑자기 기자들이 몰려와서 대표님 찾아서요.

“기자들이요?”

―네, 네. 빨리 좀 와보셔야 될 것 같은데.

“알았어요, 금방 갈게요.”

전화를 끊자마자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는 걸음을 멈췄다.

“아니지, 아니지.”

너무 편한 차림이었다. 감은 지 얼마 안 돼서 기름기 하나 없는 머리카락들도 전부 붕붕 날리는 느낌이었고.

기자들과 마주하면 사진 몇 장은 찍힐 게 분명했다.

나는 적당한 니트에 면바지를 걸친 뒤 머리를 손질했다. 너무 꾸미고 다닐 필요는 없지만, 깔끔한 인상은 줘야 한다고 여겼다.

겉모습은 껍데기일 뿐이다. 하지만 아예 신경을 쓰지 않을 수도 없는 부분이다. 가장 먼저 눈으로 보고 무언가 느낄 수밖에 없는데, 어찌 선입견이 생기지 않겠는가.

특히나 처음 보는 사람의 인성이나 기타 여러 가지를 어떻게 알 수 있나. 겉으로 보이는 것만 보고 판단하게 마련이지. 그래서는 안 되지만 인간이란 시각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으니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그 사람의 옷차림이나 표정 등으로 어떤 사람일지 대략 유추할 수도 있고.

적당히 머리를 깔끔하게 한 뒤 코트를 걸쳤다. 그렇게 밖으로 나가려다가 서랍에 넣어둔 금거북이와 손목시계가 떠올랐다.

“음…….”

잠시 고민하다가 손목시계를 착용했다.

아무리 명품이더라도 결국은 물건이다.

사용하라고 있는 건데 모셔놓기만 하면 무슨 소용인가.

기왕 받은 거 제대로 차고 다니기로 했다.

그렇게 집을 나섰다.

걸음을 옮겨 행복 건강즙 1호점으로 향했다.

그러던 중 공영주차장 쪽에 사람들이 여럿 몰려 있는 게 보였다. 몇몇은 손에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내 차가 주차돼 있는 곳이라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엇…….”

내가 당황하는 찰나, 그 남자가 곧장 나를 향해 뛰어왔다. 목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냥 뛰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우르르 몰려왔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다가 멈췄다.

기자들이 전부 마이크(녹음기)를 들이밀었고, 카메라들은 전부 내 안면을 일점사했다.

이런 그림을 바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상상해본 적은 있었다.

이미 여러 방송들에 나오고, 꽤나 유명세를 탔으니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적어도 내가 잘 되면 잘 될수록 인지도도 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내가 그리 잘 되지 않았다는 뜻이겠지.

즉, 내가 바라던 걸 이루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그림이었다.

다른 말로는 확실히 무언가를 이뤄내고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들이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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