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95화 (95/174)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95화

21. 인연 (6)

첫 번째는 처음에 말한 장례식장이다. 당연히 누군가가 죽는 것도, 죽어서 가는 것도 좋을 리가 없었다.

두 번째는 병원이었다. 아기의 출산으로 가는 게 아니면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누구든 아픈 건 슬프고 괴로운 일이니까.

세 번째와 네 번째는 교도소와 경찰서다. 피의자로든 피해자로든 싫다.

장례식장은 그렇게 가기 싫은 곳이다.

이번에는 나도 뭔가 연관된 느낌인지라 더 이상했다.

의사들은 대체 어떻게 버티는 걸까? 제 손으로 치료하던 환자가 세상을 뜨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내쉬며 장례식장으로 들어섰다.

8

사진 속 윤정섭 할아버지는 행복해 보였다.

나는 사후세계가 있는 것을 안다.

그러니 그곳에서는 아픔 없이 행복하시길 기도했다.

생전 처음 보는 유족들과 맞절을 하고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상투적인 말을 건넸다. 그런데 유족들은 나를 알고 있었다.

“저희 아버님께서 생전에 대표님에 대한 말씀을 매일같이 하셨어요.”

“그래요?”

의외였다.

건강상담도 수차례 했었고, 동네 사람이었기에 길을 가다 보면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마주치면 반가운 사람, 딱 그 정도였다. 그렇기에 나에 대해 매일같이 얘기를 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예의상 하는 말인가? 상중에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만약 진짜라면 무슨 말일까?

그러던 찰나, 상주인 남자가 옅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아버지께서 저희들한테 대표님 반만 따라가면 인생 성공하는 거라고, 아주 훌륭한 분이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아, 그러셨나요…….”

장례식장에 와서 칭찬을 들을 줄이야. 그것도 유족의 입을 통해서라니. 왠지 모르게 무안해서 어색한 미소만 지어 보였다.

“은인 중의 은인이라 하셨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아휴, 은인은요…….”

“아버지께서 어지럼증을 호소하시며 지팡이를 짚고 다니신 게 거의 10년 전입니다. 10년 가까이 힘들어 하셨죠. 그때부터 변하셨죠. 언제나 인자하시고 다정하셨던 아버지가 괴팍해지시더군요.”

‘고인을 기리는 자리에서 아들이 저렇게 말해도 되나?’ 하고 생각하는 찰나, 상주인 남자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가 들으시고 화내시겠네요……. 저희도 ‘몸이 편찮으셔서 저러시는구나’하고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서로 지치더라고요. 그렇게 점점 멀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께서 제 직장 앞으로 찾아오셨습니다.”

나는 양손을 앞으로 공손히 모은 채 잠자코 얘기를 듣고 있었다. 그 누구도 그 얘기를 멈추려고 하지 않았다. 내 뒤로 절을 하기 위해 왔던 사람들도 잠시 물러나 기다렸다.

상주인 남자는 잠시 고인의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다시 나와 눈을 마주쳤다.

“같이 저녁식사를 하자시더군요. 그래서 알았다고 했지요. 마주앉았는데 뭔가 어색하더라고요. 괜히 메뉴판만 들여다보고 있었죠. 그러다 문득 깨달았죠. 아버지하고 단 둘이서 식사를 하는 게 너무 오랜만이더라고요.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안 났습니다. 아마도 고등학교 졸업했을 때…… 그때가 마지막이었을 겁니다.”

그는 붉어진 두 눈으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너무 오랜만이었습니다. 그래서 말했죠. 둘이 식사하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고요. 정말 너무 오랜만이라고. 아버지께서 환하게 웃으시더군요. 자기도 안다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상주인 남자가 잠시 고개를 쳐들며 눈을 깜빡거렸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 나는 입술을 꾹 다문 채 가만히 있었다.

“죄송합니다. 아무튼……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그렇게 웃는 아버지를 보는 것도, 둘이서 식사를 하는 것도……. 대화는 그리 많이 나누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너무나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버지도 그러셨다고 확신하고요.”

남자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올라 있었다. 눈을 한 번 깜빡이면 바로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그는 목구멍이 꽉 막힌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계산을 할 때가 돼서 카운터 앞에서 실랑이를 했습니다. 결국 아버지께서 계산하셨죠. 오랜만에 자기가 사주고 싶다고……. 그러다 문득 뭔가 허전하더군요. 언제나 아버지의 몸을 지탱하고 있던 지팡이가 안 보이더군요. 그제야 깨달은 겁니다.”

남자는 이내 눈물을 콸콸 흘렸다.

“아버지께서 더 이상 지팡이를 짚고 계시지 않다는 걸 그제야 안 거죠. 직장에서 만나 저녁식사를 마칠 때까지 몰랐던 겁니다. 그렇게나 무관심했던 거죠. 더 이상 그러지 않을 수 있던 것은 전부 대표님 덕분입니다. 아버지를 10년 가까이 괴롭히던 병을 대표님이 치료해주셔서…… 크흑!”

“……좋은 곳에 가셔서 지켜보실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표님이 아니었다면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정말 후회만 가득했을 겁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가족들이 행복한 추억을 만들 수 있었던 건 대표님 덕분입니다.”

“아닙니다. 제가 무슨…….”

“대표님 덕분입니다. 그래서 저희 가족들은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옛날하고 똑같지는 않아도 환하게 웃는 인자한 모습으로 기억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저도 어르신께서 따뜻한 말을 건네주셔서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었습니다.”

남자는 손으로 눈물을 대충 훔쳐내고는 말했다.

“제가 너무 오래 붙잡아뒀네요. 죄송합니다. 아마 질질 짜면서 이렇게 조문객 붙들고 계속 말한 상주는 저밖에 없을 것 같네요.”

“아닙니다. 이렇게 찾아봬서 마지막 인사를 올릴 수 있었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와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식사 꼭 하시고 가세요.”

“예.”

그렇게 발걸음을 돌려 식사를 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구석진 곳에 혼자 자리를 잡았다. 육개장을 앞에 두고는 수저를 들었다. 묵묵히 먹었다.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그냥 넘겼다.

윤정섭 할아버지와의 인연이 이렇게까지 깊은 곳을 건드릴 줄은 몰랐다. 그 가족들에게는 더 그랬고.

장례식장에 처음 올 때 들었던 씁쓸함은 희미해져 있었다. 슬프지만 왠지 모르게 따스함이 느껴졌다.

나는 물을 한 잔 마시고는 잠시 양손을 모으며 눈을 감았다.

좋은 곳에서 평안하시길…….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저희 할아버지하고 친구하셔도 되고. 두 분이 맞아야겠지만.

9

“잘 다녀왔냐?”

작은아빠는 언제나처럼 조금은 시큰둥한 듯이 물었다.

“예, 잘 다녀왔죠.”

“근데 누구 장례식 다녀오냐? 친구 아버지?”

“아니, 동네 어르신. 전에 나한테 건강상담 받으시고 했었거든. 즙도 많이 팔아주시고.”

“그렇구만…….”

나는 한숨을 가볍게 내쉬고는 말했다.

“아무튼…… 일 얘기해야죠?”

“그래. 거의 다 정해지긴 했는데…….”

“일단 매장 위치 잡아야죠.”

“송파냐 강남이냐.”

“어차피 임대료 차이는 70만 원밖에 안 돼요.”

“70만 원이 ‘밖에’냐? 메뉴들 전부 비싸게 파는 것도 아닌데, 점심 특선 메뉴 6천 원짜리로 그거 채운다고 생각해봐라. 몇 그릇을 팔아야 되는지.”

“비싼 것도 같이 팔 거니까. 그리고 제가 볼 때는 그 자리가 70만 원 이상의 가치가 있거든요. 주변 건물들도 공실 없고.”

작은아빠는 여전히 조금 내키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 솔직히 처음에는 좀 작게 시작할 줄 알았거든.”

“원래도 어느 정도 규모는 가져가기로 했잖아요.”

“이렇게까지는 생각 안 했지.”

“할 거면 제대로 해야죠.”

“아니, 내가 했던 말이기는 한데……. 그리고 강남에서 요즘 세상에 6천 원짜리 메뉴가 말이 되냐?”

“딱 오후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점심에만 팔 거니까 괜찮아요. 그리고 그게 진짜 괜찮으면 저녁에 다른 거 먹으러 올 거라고 봐요. 좌석 많이 깔고 점심에 꽉 채우면 되죠.”

“그래, 그럼…….”

작은 아빠가 고개를 끄덕거리다 말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메뉴는 어떻게 하려고?”

“저는 여전해요. 최소 10가지 이상.”

나는 단호하게 말했지만, 작은아빠는 여전히 의구심을 표했다.

“확실해? 음식점 처음인데? 티비 안 보냐? 우리나라 요식업계의 신화 같은 사람도 그러잖아, 메뉴를 최소화해서 전문점이 돼야 한다고. 경쟁력 있는 메뉴들.”

“그게 점심 특선으로 나가는 비빔밥이죠. 그리고 그 양반도 그러잖아요, 메뉴 가짓수가 많은 건 좋은 거라고. 감당할 수 없는데 메뉴 종류만 많으면 그게 문제라고.”

“그게 다 소화가 되겠냐는 말이지. 주방에도 사람 여럿 쓰겠지만, 가게가 최대한 효율적으로 굴러가야 될 거 아니냐.”

“그래서 제가 메뉴 고민을 좀 해봤는데, 충분히 되겠더라고요.”

작은아빠가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뭐가 어떻게 된다는 거야?”

“일단 비빔밥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거죠. 가장 재료 소진율이 높은 것들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것들로 채우면 된다고 봐요. 채소들 겹치는 거 많잖아요. 그럼 메뉴 가짓수 늘어나도 능률이 크게 안 떨어질 겁니다.”

“흠……. 그래서 대표 메뉴들은 뭔데?”

“일단 점심용 비빔밥이 두 가지요.”

“뭐? 두 가지?”

“말이 두 가지지, 선택하는 거예요. 달걀프라이 아니면 두부. 둘 다 넣고 싶으면 500원 추가.”

이번에는 마음에 좀 들었는지 작은아빠가 눈썹을 살짝 들썩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건 괜찮네.”

“그쵸?”

“그리고?”

“일단 된장찌개, 청국장, 김치찌개 세 가지는 가야죠. 육수 같은 거 들어가고, 된장이냐 청국장이냐 김치찌개냐로 나누면 되니까. 세부적인 재료 들어가는 건 조금 더 생각해 보고요.”

“그럼 두부김치도 하면 되겠다.”

“아하. 그쵸, 어차피 두부랑 김치 다 있으니까.”

작은아빠는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술도 팔아야 하지 않겠냐?”

“술이요?”

되묻는 순간 이미 긍정적이지 않은 마음을 표시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작은아빠는 아랑곳하지 않고 의견을 냈다.

“그래, 약주로 조금씩 먹을 수도 있는 거니까.”

“약주라…… 약주!”

나는 눈을 번쩍 뜨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진짜 약주를 팔면 되겠네요.”

“그건 무슨 소리야?”

“메뉴 얘기를 해야 되는데…… 일단 술부터 얘기하죠. 일반 소주랑 맥주 같은 건 아예 팔지 말죠.”

“그럼 뭐 팔게? 담금주?”

“예.”

“그거 오래 걸려 인마.”

“담금주마다 다르죠. 그리고 담금주마다 숙성하는 시간도 다르고요. 빠르게 되는 것부터 팔면 되죠. 그리고 담금주도 사실 수개월 지나면 건더기 건져내고 유통기한 좀 있다고 보는 게 맞거든요. 무조건 오래됐다고 진짜 건강에 유의미한 무언가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어요.”

작은아빠는 고개를 끄덕거리다 말했다.

“그래, 뭐…… 담금주야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니까.”

“그쵸, 과일이랑 삼 같은 약재들이랑 전부 저렴하게 들여올 수도 있으니까요. 가게 분위기하고도 맞고, 마진도 훨씬 좋죠.”

나는 마음속으로 ‘그리고 온갖 약술들 만드는 법이 머릿속에 있거든요.’ 라고 말했다.

작은아빠는 나의 표정을 읽었는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럼 술은 네 말대로 하자.”

“괜찮은 거 같아요?”

“방금 말했잖아, 인마. 뭘 또 확인해.”

“하하. 두 번, 세 번 확실하게 해야죠.”

“그나저나 메뉴들 정해야 돼. 고급스럽게 가는데, 그에 걸맞은 메뉴들이 있어야 할 거 아니냐.”

“삼촌은 생각한 거 있어요?”

“있지. 너는?”

“저도 당연히 있죠. 고민되는 것들도 있고.”

“너부터 말해봐.”

“음……. 그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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