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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93화 (93/174)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93화

21. 인연 (4)

“이게 진짜 얼마만이냐. 이렇게도 마주치는구나.”

녀석은 내가 정말 반갑다는 듯 활짝 웃었다.

“그러게. 진짜 얼마만이지? 고등학교 졸업하고 처음 아닌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반갑기는 했다.

녀석과 컵라면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여전히 이름만은 떠오르지 않았다.

“야, 너는 얼굴이 더 좋아진 거 같다?”

녀석의 말에 떠오르는 거라고는 영업용 미소를 내보이는 것뿐이었다. 나는 생각대로 양쪽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그래?”

“어. 학교 다닐 때는 말할 것도 없고 화면보다 실물이 낫다 야. 요즘 잘 나가더니 관리 엄청나게 했나보다.”

“아니, 딱히 뭐……. 그냥 건강관리나 열심히 했지.”

“속이 건강해지니까 겉도 건강해지는 건가?”

“그렇지, 충분히 영향을 주지.”

그러고 보니 녀석은 학창시절 제법 샤프한 모습이었다. 잘생겼다는 느낌은 아니어도 한눈에 운동을 좋아하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은 또래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는 후덕한 아저씨가 돼 있었다.

아, 이제 기억났다. 안영준. 안영준이 녀석의 이름이었다.

“너 학교 다닐 때는 좀 무서웠는데, 어떻게 그렇게 인상 좋은 건강 전도사 이미지가 됐어? 진짜 신기하다.”

“내가 무서웠어?”

“그치, 우리 학교 애들 중에 너 안 무서워하는 애가 있었겠냐?”

나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되물었다.

“그 정도였나? 학교 조용히 다녔던 거 같은데.”

“그때 좀 친다는 애가 너한테 개겼다가 두드려 맞았잖아. 이제는 하도 오래돼서 이름도 가물가물하다.”

“다 옛날 얘기지 뭐.”

“그래도 다 남는 거잖아. 그래서 너 얼마 전에 검색어…….”

안영준은 아차 싶었는지 말끝을 흐리며 나의 눈치를 살폈다.

나는 피식 웃어 보였다.

“그래도 내가 엄청 나쁜 짓하고 다니거나 하지는 않았잖아. 그냥 질 나쁜 애들이 시비 걸면 안 피하고 싸웠을 뿐이지. 그래서 논란 있었을 때도 잘 넘어갔고.”

“맞아, 맞아. 그렇지.”

“……그래서 넌 어떻게 지내?”

달리 할 말이 없어 근황을 물었다. 일부러 ‘뭐 하고 지내’가 아니라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다.

안영준이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하긴 했다. 하지만 실례가 될 수 있는 질문이라 여겼다. 그래서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답할 수 있도록.

“나? 나도 그럭저럭 잘 지내지. 지금은 회사 다니고 있어.”

“아, 그래?”

“응. 컴퓨터 주변기기 만드는 회사인데, 그나마 야근이 별로 없는 편이라서.”

“그럼 좋네. 나 전에 다니던 회사는 맨날 야근인데 수당 같은 것도 없었거든.”

“나도 야근할 땐 수당 안 나와. 야근수당 나오는 회사는 못 갈 거 같아서 일부러 야근 없는 데로 왔지. 근데 뭐…… 내년부터 주 52시간 근무 시행된다고 말 많더라고. 그냥 봉급 조금이라도 센 곳에서 버텨야 됐나 싶어.”

크게 관심이 있는 얘기도 아니었고, 계속 이렇게 서서 얘기를 나누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슬슬 얘기를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예의상 연락처를 물어봐야 하나? 어차피 연락할 일도 없을 것 같고, 또 마주칠 확률은 훨씬 낮을 텐데 굳이 그래야 하나?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어 보이며 입을 떼려는 순간이었다.

“그나저나 진짜 인연이 있긴 한가보다. 안 그래도 너 한 번 찾아가려고 했었거든.”

안영준이 씩 웃으며 말했다.

“날 찾아오려고 했다고?”

“응. 그냥 살다보면 학교 다닐 때 생각도 가끔씩 하고 그러잖아. 네 생각 종종 나곤 했었거든. 그러다 티비에 네가 나오더라? 아이튜브에도 뜨고, 검색어에도 오르고. 그때 ‘아, 이건 하늘의 게시구나.’ 했지. 그런데 이렇게 마주친 걸 보니까 진짜 그런 것 같다.”

“그래?”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딱히 나쁜 관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좋을 것도 없었다. 이미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우리는 너무나 다르게 살아왔다. 사실상 이제 더 이상 아는 사람이라고 하기도 애매했다.

그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나름대로 인지도를 얻고 나서 조금 불편해진 점이라면 내게 무언가 바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내가 챙겨야 할 사람은 알아서 챙긴다. 조금씩이라도 사람들을, 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더 도우려고 한다.

챙기지 않은 사람들은 그럴 필요가 없는 이들이다. 남이거나, 남보다 못한 사이기에 챙기지 않는 거다.

생전 연락도 안 하던 사람들이 은근히 무언가 바라는 눈치를 준다. 뭐 하나 빼먹을 거 없나, 그것만 궁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주 큰 사고랄 것이라고 해봤자 차를 팔려다가 실패하자 일진 논란을 터트렸던 것밖에 없다. 그것도 제대로 반격을 했고.

하지만 자잘하게 피곤한 일들은 겪는다. 제일 흔한 게 뜬금없이 문자가 오는 거다.

나 누구라고, 잘 지내냐고, 시간 되면 한 번 보자고.

항상 그럴싸한 말들로 포장하며 둘러댔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제법 닫혀 있었다.

눈앞에 있는 안영준도 그저 찔러보려고, 뭔가 이득을 취하기 위하려고만 한다고 단정 짓고 있었다.

그런 게 아닐 수도 있는데.

내가 잘 되기 전에도 종종 생각을 할 정도라고도 했고.

나는 애써 웃으며 물었다.

“어쩌다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대?”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안에 들어가서 커피라도 한잔할래?”

안영준은 물어봐놓고는 내가 손에 들고 있는 커피를 힐끗 보고는 멋쩍게 웃었다.

“뭐, 커피 아니고 다른 거 마셔도 되고.”

“아, 근데 내가 일 때문에 이제 곧 가봐야 돼서.”

“그래? 그럼 언제 시간 되냐? 같이 술이라도 한잔하자.”

그저 나와 다시 친해지려고 하든지(애초에 그리 친하지도 않았지만), 무슨 목적이 있든지 그냥 적당히 넘기기는 어려울 듯했다. 나중에 계속 핑계를 댈 수도 있긴 했지만, 속내가 궁금하기도 했고.

나는 괜히 시간을 한 번 확인한 뒤 입을 열었다.

“그럼 잠깐 짧게 여기서 차나 한 잔 마실까?”

“좋지.”

그렇게 안영준과 함께 카페로 들어섰다.

5

“비법……?”

나는 미간에 힘이 들어가는 걸 의식하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안영준이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그렇게 성공시킨 비법 말이야.”

“회사는 나오기로 정한 거야?”

“아직 말은 안 했는데, 마음은 거의 굳혔지. 나도 여러 가지 생각한 아이템들이 있긴 하거든. 그런데 너 잘 나가는 거 보니까 차라리 네 밑으로 들어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더라.”

“내 밑이라니?”

“뭐, 정확히는 가맹을 해도 좋을 거 같다는 얘기지. 그거 즙 잘 팔리잖아?”

나는 떫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행복 건강즙은 따로 가맹을 할 일이 없어. 아무래도 전국에 우리가 직접 공급하니까. 온라인 주문이 대부분이라서.”

“아, 그런가? 그렇구나. 어차피 나도 그거보다는 더 땡기는 게 따로 있긴 했어.”

“뭔데?”

“요번에 카페 차렸잖아? 그것도 네 거라며. 그 티비 나오는 한의사랑 같이 한 거라며?”

“어, 어. 그렇지.”

안영준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너무나 뻔했다. 굳이 길게 앉아 있을 이유는 없을 듯했다. 아직 뜨끈한 차만 다 마시고 나면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가 웰웰 2호점을 한다면 어떻겠어?”

“기본적으로 가맹 사업을 염두에 두고 시작하긴 했지만, 생각처럼 그리 간단한 게 아니라서. 아직 정확한 체계도 안 잡혔고. 애초에 차린 지 얼마 안 됐잖아. 자리 좀 잡히고 나서 천천히 진행할 생각이거든.”

“늘어나면 좋은 거 아니야? 어차피 수수료 먹는 건데?”

“함부로 확장을 늘렸다가 브랜드 이미지 자체를 망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2호점은 지금 일하는 직원이 차리게 될 거거든. 그때부터 차차 늘릴 계획이야.”

“그래? 그냥 바로 해도 되지 않나? 그냥 과일만 갈아서 내놓으면 되는 거 아니야?”

순간 열이 확 치솟는 걸 꾹 참았다.

자신이 접해보지 않아서 모른다고, 남의 일이라고 쉽게 말하고 폄하하는 게 너무 싫었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에 대해 굳이 얘기를 늘어놓지는 않았다. 얘기해서 알아먹을 놈이었으면 애초에 이런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을 테니까.

“하게 되면 와이프랑 같이 해보려고 하거든. 너도 물장사를 하는 거잖아. 원래 물장사가 많이 남고. 나도 처음부터 많이 바라는 건 아니야. 그래도 성수기에 월 매출 3천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어?”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냥 갈 수가 없었다.

정신 차리도록 조금은 독하게 말할 필요성을 느꼈다.

현실을 알려줘야지.

“음…… 네 말대로 한 달 매출이 3천이라고 치자. 그럼 재료비랑 부식비 같은 게 한 1,500만 원 나간다고 계산하자. 당연히 1층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지금 내가 차린 것보다 조금 평수 작은 곳으로 잡아서 월세랑 관리비 200만 잡자. 200짜리 구하는 것도 어렵지만.”

안영준은 눈을 크게 뜬 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응, 그리고?”

“거기에 전기세 30만 원, 기타 보이지 않는 잡비들이 또 100만은 나가겠지. 이것저것 소모품 비용이 생각보다 이리저리 새거든? 기계도 주기적으로 점검해줘야 하고. 재수 없으면 수리비가 크게 나가니까. 거기에 쓰레기 처리비도 들고. 이런 거 다 해서 한 70만 원만 잡아보자.”

“으흠……?”

“그럼 대략 월 고정으로 지출되는 것만 1,900만 원이거든?”

“그래도 나한테 떨어지는 게 월 천은 넘네.”

나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 생각해봐. 최저임금 기준 12시간 주휴 및 휴게시간 시간당 10분씩 공제하고. 주 5일 약 210만 원인데 사대보험이랑 퇴직금은 포함돼 있지 않아. 그게 두 명이지. 그리고 주말에도 굴려야지? 주말 대략 12시간 기준 두 명 쓴다고 생각해. 그것도 따로 들어가고.”

“흠…….”

“평일 인건비랑 주말 인건비랑 다 합해서 700만 원만 잡아볼까? 실제로는 더 들어갈 테지만. 그럼 1,100만 원 남은 거에서 풀 알바 기준으로 700 빼면 400 남아. 그것도 세금은 포함 안 된 계산이지.”

“내가 직접 운영할 거니까 그건 문제가 안 되지 않아?”

“생각해봐. 카페는 딱히 쉬는 날을 만들기가 어려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명절에도 못 쉬고 남들 다 놀러가는 휴가철에도 장사해야 돼. 알바 주말에만 써도 사장은 나와야 되잖아. 그렇게 일해서 남는 돈이라고 해봤자 800만 원쯤 남을까? 1인당 400만 원 버는 꼴인데…….”

나는 떫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것보다 잘 될 수도 있지만, 못할 수도 있어. 월 매출 3천을 기준으로 한 것도 어느 정 도 잘 될 때를 얘기한 거야. 거기다가 너 가맹한다고 했지? 가맹점 수수료도 내야 돼. 그리고 비성수기 때 매출은? 성수기 절반, 어쩌면 반의 반이 안 될 때도 있을 거야.”

“그럼 차라리 아르바이트를 써서 굴리면서 안정적인 소득을 얻으면 괜찮겠네. 오토 매장 만드는 거지. 지금 너도 이렇게 여유 있게…….”

나도 모르게 표정을 일그러트렸는지 안영준이 말끝을 흐렸다.

순간 욕이 튀어나갈 뻔했던 것을 겨우 참아냈다.

“사장이라고 카운터에서 돈만 세고, 돈만 챙기는 거 아니야. 궂은일도 사장 몫이야. 잘 되는 것만 보지 말고 위험요소부터 체크해봐. 자영업도 쉽지 않아. 알잖아, 다른 사람 주머니에서 돈 빼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세금까지 계산해서 생각하면, 제대로 일한다는 가정하에, 중간 정도 된다고 봤을 때, 세후 둘이 합쳐서 많이 가져가야 5,500에서 6,000 수준일 거다.”

“……그래?”

“그리고 처음에 인테리어 포함해서 초기 비용도 들잖아. 그거 다 건지고 나오려면 시간도 꽤 걸릴 거야. 내 돈 주고 가게 차려서 월에 꼴랑 1,000만 원도 안 되는 돈 가져가려고 365일 일을 한다? 그럴 수도 있지. 충분히 큰돈이고. 하지만 그게 정말 만족도가 높을지 생각해봐. 어중간하게 발 디디다가 피 보니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실실 웃으며 긍정적이다 못해 낙천적이던 안영준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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