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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92화 (92/174)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92화

21. 인연 (3)

“그게 말이죠…….”

박종만은 말을 하기로 작정을 한 듯했다.

“쑥스럽네요.”

그는 멋쩍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설마 숙모는 아니겠지.

먼저 물어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박종만이 입을 열었다.

“그 있잖아요, 좀 아담하시고 눈 크시고.”

숙모였다.

“아, 혹시…… 2호점 점장님 말씀하시는 건가요?”

박종만도 행복 건강즙 2호점 점장이 나의 숙모인 것을 알고 있었다. 아마 괜히 에둘러 말하는 거겠지. ‘대표님 숙모가 좋아요’라고 하면 괜히 이상할 테니까.

박종만이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에이, 아니죠. 그분은 대표님 숙모님이시잖아요.”

왠지 모르게 안도했다.

“아니에요? 말씀하시는 외형이 딱 숙모여서…….”

“그분도 좋은 분 같긴 하지만 제가 마음을 두고 있는 분은 다른 분이에요.”

“그래요? 누구지? 아담하고 눈 크고…….”

“저번에 기계 점검할 때 얼핏 봤는데, 긴 머리를 뒤로 묶고 계셨어요.”

“그래요? 우리 직원들 중에 그런 사람이…….”

머릿속을 스치는 게 딱 한 사람 있었다.

나도혜 쪽의 직원인 한약사였다. 아마 내 또래거나 조금 더 많을 걸로 생각됐다.

“그 분은 저희 직원 아니에요.”

“예? 그래요? 그때 거기서 일하던데.”

“저하고 동업하시는 분 아시죠?”

“예, 예. 잘 알죠. 나도혜 원장님.”

“그쪽에 소속된 한약사에요. 지금은 화요일, 목요일만 와요.”

“아하……. 그렇구나. 한약사시구나. 그럼 오늘 오시겠네요?”

그러고 보니 오늘이 목요일이었다. 그런데 아까 한약사가 왜 안 나와 있었지?

나는 피식 웃었다.

“그렇겠네요. 그 분이 마음에 드세요?”

“선해 보이시고 웃는 게 예쁘더라고요.”

“박 대표님 정도면 충분히 잘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근데 나이 차이가 좀 나는 것 같아서…….”

“나이야 숫자에 불과하다지 않습니까. 그리고 많이 차이 나도 10살 정도일 텐데, 요즘 세상에 그 정도야 흔하죠.”

“그럴까요?”

“그럼요.”

박종만은 결의에 불타는 눈빛을 번뜩였다.

“대표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열심히 관리해서 데이트 신청 한 번 해볼랍니다.”

“하하하, 파이팅입니다.”

“저기, 그런데…….”

“예, 말씀하세요.”

“하나만 부탁 좀 드릴 수 있을까요? 제가 나중에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어떤 부탁인데요?”

“그…… 여자 분이 혹시 결혼하셨는지……. 제가 들이댔다가 거절당하는 건 어쩔 수 없는데, 유부녀한테 마음 품고 있는 거면 좀 그렇잖습니까.”

박종만은 생각하는 것으로도 죄를 짓지 않고 싶어 하는 사람인 듯했다.

아주 잠시 ‘내가 이런 것까지 알아봐줘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박종만의 부탁인데다가 사실 별거 아니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뭘 이런 걸 가지고……. 그럼 전 이만 일어나봐야겠네요. 그럼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예. 제가 여러 가지로 신세 많이 집니다.”

“신세는요, 평소에 제가 훨씬 덕을 많이 보고 있죠.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또 뭔가 필요하신 거 있으면 말씀하시고요.”

“네, 대표님도요.”

그렇게 JM 테크를 빠져나왔다.

3

행복 건강즙 2호점으로 다시 온 나는 곧바로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뭐 찾아?”

숙모가 다가와서 웃으며 물었다.

“아, 그게요.”

그때 한약사가 출근한 게 시야에 들어왔다.

“오셨네?”

“누구? 은진 씨?”

“네. 아까는 안 보이던데.”

“응, 아까 잠깐 통화하러 나갔었어. 거기 원장님한테 전화가 왔었나봐.”

“그렇게 오래요? 아까 나 여기 꽤 있었는데?”

숙모가 피식 웃었다.

“일 대충할까봐 걱정돼서? 안 그래. 표정 보니까 꽤 급하고 심각한 일이었던 거 같더라고.”

“그렇구나. 그럼 다행이고요.”

“그런데 갑자기 왜 왔어? 은진 씨 제대로 일하나 감시하려고? 문제 있으면 다 말할게.”

“아, 그것도 그건데, 저 한약사에 대해서 좀 여쭤볼 게 있어서.”

“응, 말해.”

“저 한약사 결혼했어요?”

숙모는 깜짝 놀라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왜? 관심 있어?”

그러고는 이내 이해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긴, 은진 씨가 괜찮기는 하지. 얼굴도 예쁘고 착하고…….”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니요. 저 말고 다른 사람이 관심 있어서.”

“그래? 우리 직원들 중에?”

“아니요, 다른 사람.”

“그래? 어떻게 은진 씨를 알고 관심을 가진대?”

“있어요. 나중에 알려드릴게.”

“치사하게.”

“아무튼 결혼했어요? 안 했어요?”

“아직 안 한 거 같더라고.”

“확실한 건 아니네?”

숙모가 백은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니까 반지가 없더라고.”

“빼놓고 다니기도 하지 않나?”

“그렇기는 한데, 궂은 일하는 것도 아니고 웬만하면 끼고 다니지.”

“흠…….”

“그리고 결혼은 안 했어도 애인은 있을 수도 있잖아.”

“그렇죠.”

“원장님한테 물어보는 게 확실하지 않겠어?”

“그렇기는 한데…….”

나도혜와는 함께 사업을 진행하면서 많이 친해진 것을 느낀다. 비즈니스 파트너이지만, 그보다는 훨씬 편한 사이다. 사적인 얘기도 종종하고. 그렇다고 친구 사이는 아니지만.

옛날에는 그저 친구가 최고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보니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지금도 오정득처럼 소중한 친구가 있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없다. 주변에 남아 있는 친구가 오정득 하나다.

오정득도 종종 연락을 하는 친구들이 있긴 한 듯하나, 1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한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20대 초반 정도까지만 해도 의리라는 것 하나만으로 뭉쳐 평생 함께할 것 같던 녀석들이 이제는 전화번호부에 연락처조차 저장돼 있지 않다. 그보다 멀었던 동창들의 이름은 가물가물하다. 실제로 기억이 안 나는 경우도 많고.

20대 초중반 정도에 여러 가지 이유로 찢어진 친구들이 떠오른다. 이따금씩 친구라는 이름으로 선을 넘는 경우가 많다. 아무렇게나 뱉은 말에 빈정상했던 일들은 일일이 셀 수도 없다.

이제는 차라리 어느 정도 벽이 있는,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가 더 편하다. 그런 사이가 오히려 놀 때조차 더 재미있는 경우도 꽤 있다.

어른들이 ‘친구가 밥 먹여주냐’ ‘친구가 평생 갈 거 같냐’ ‘그럴 수도 있긴 하지만 너부터 챙기는 게 우선이다’ ‘네가 잘 되면 친구는 알아서 따라오는 거다’ 등의 말들이 이제는 공감이 간다.

조금 씁쓸한 면도 있지만 사람 인연이란 게 그런 듯하다. 생각지도 못하게 이어졌다가 생각지도 못하게 끊어진다.

나도혜와도 그런 사이다. 사업적으로만 만나지만, 그 과정 자체가 즐겁다. 백은진이 싱글인지 아닌지에 대한 질문 정도는 상관없겠지.

4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차에 기댄 채 홀짝거렸다. 제법 쌀쌀하지만, 이럴 때 따뜻한 걸 마셔주는 맛이 있다.

―은진 씨요?

이어폰을 통해 들려온 나도혜의 목소리에는 당황스러움이 섞여 있었다.

“네, 네. 그 한약사 분이요.”

―왜요? 관심 있으세요?

기분 탓일까, 나도혜의 목소리에 왠지 날이 선 느낌이었다.

“아니요, 저 말고 다른 분이요.”

―어떤 분이요?

아무래도 제대로 느낀 듯했다. 확실히 나도혜의 목소리에서 온도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저 아는 거래처 사장님인데, 한약사 분을 보고 좀 알아가고 싶다더라고요. 그런데 기혼이시면 그럴 수가 없으니까, 저한테 좀 물어봐달라고 해서.”

―전 또 뭐라고……. 갑자기 뭐 물어보실 게 있다고 해서 뭔가 했는데, 조금 당황했네요.

“그래서 미리 사과드렸었잖아요. 일이랑 관련 없는 사적인 질문 좀 하겠다고.”

―네, 뭐…… 사과할 것까지는 아니었죠. 그런데 어디까지나 저희 쪽 계약직인 한약사 분이 기혼인지 아닌지, 연애를 하는지 안하는지, 제가 그런 걸 다 알까요?

“모르세요? 결혼 여부 정도는 알지 않나요?”

―그런 걸 다 조사하지는 않죠.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

“그래요? 그럼 할 수 없죠.”

―근데 알긴 알아요.

“에이이, 뭡니까.”

―저랑 직접적으로 친한 건 아닌데, 제 학교 선배 친구거든요.

“아, 그래요?”

―네.

“이쯤 되면 말씀하실 줄 알았는데. 그러니까 결론은……?

나도혜가 웃음 섞인 목소리를 냈다.

―어머, 말이 짧아지시는 거 같은데?

“그럴 리가 있나요.”

―은근히 능구렁이셔.

그녀는 웃음기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분은 아직 미혼이세요. 예전에 들은 얘기긴 하지만, 그때 당시 따로 만나는 분은 없었고요.

“아, 그래요? 잘 됐네요. 적어도 기회는 있는 거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겠죠?

“아무튼 고맙습니다.”

―그게 끝이에요?

“네?”

―진짜 그것만 물어보려고 전화하신 거예요?

“네, 뭐 더 해야 될 얘기 있나요?”

―아뇨, 딱히 그런 건 아니고……. 일 얘기든 뭐든 더 있을 줄 알았죠.

“다 잘 굴러가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웰니스도 판매량 계속 늘고 있고요. 원장님 인맥 효과도 분명히 있어요. 확실히 SNS에 뭐 올라오고 난 뒤에 반응이 다르거든요.”

―그쵸?

나도 모르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확실히 게시물 올라온 날 매출이 조금씩은 더 나와요.”

―다음 주 중에 하나 더 올라갈 거니까, 그때도 조금 기대해볼 수는 있겠죠. 아무튼 새삼스럽지만, 여러 가지로 감사드려요. 전부 대표님 덕분입니다.

“제가 감사하죠. 원장님이 여러 가지로 힘 많이 쓰셨는데.”

―아무튼 저도 이제 곧 진료 봐야 하니까 연락드릴게요. 또 물어보실 거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시고요.

“네, 원장님도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입가에 미소가 절로 번졌다.

할아버지에게 능력을 전수 받은 뒤로는 계속해서 운이 따르는 것 같았다.

언제나 기대 이상이었으니까.

내일은 작은아빠를 만나기로 했다.

한식당 ‘다온’에 대해 더 디테일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아, 맞다.”

주머니로 넣었던 휴대폰을 다시 꺼내들었다.

박종만에게 백은진이 싱글이라는 기쁜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어?”

갑자기 앞쪽에서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코트를 입은 남자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후덕하고 머리는 펌을 잘못했는지 지나치게 구불구불했다. 나이는 내 또래 정도로 보였다. 낯이 익었다. 아는 사람일지도.

“건희야! 오랜만이다!”

남자가 너무 반갑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누구였더라?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기억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그건 확실했다.

같이 축구도 하고, 농구도 하고, 매점도 가던 녀석이었다.

심지어 같은 반이었다.

그런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0년 가까이 됐고, 같은 반일 때만 친했던 녀석인지라 헷갈렸다.

백종현? 김종현? 채종현? 종현이 아닌가? 박중현? 아닌데. 이름이 뭐였지?

녀석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곧바로 바짝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나는 애써 웃어 보이며 녀석과 손을 맞잡고 악수를 했다.

“어, 어.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아, 잘 지냈지? 너 텔레비전에 나와서 진짜 깜짝 놀랐었다. 아이튜브에서도 대박이었고. 그거 다 봤거든.”

“그래? 고맙다. 너도 잘 지내지?”

아무렇지 않게 대화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눈앞에 있는 녀석의 이름을 떠올리기 위해 두뇌를 풀가동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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