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91화
21. 인연 (2)
“예?”
못 알아들은 게 아니었다. 당황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마음의 소리였다.
박종만은 자신의 얼굴을 향해 손으로 원을 그렸다.
“보시다시피 제 몽타주가 좀 그렇잖아요. 너무 삭았잖아요. 이게 너무 들어 보이니까, 애로사항이 많거든요.”
“박 사장님 정도면 남자답고 인물 좋으시죠.”
“생긴 거야 어릴 때부터 이렇게 생겨먹었으니까 그냥 그렇다 치는데, 사람들이 제 나이보다 너무 높게 봐요. 저번에는 50대 소리도 들었다니까요?”
“박 사장님이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시죠?”
“저 이제 곧 마흔넷 됩니다.”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표정 관리를 못할 뻔했다. 최소 48살은 봤는데.
혹자는 그럴 것이다.
그래봤자 액면가랑 실제 나이랑 5살 차이 아니냐.
5년이면 금수강산이 절반 바뀐다.
“일단 좀 볼게요.”
민간요법으로 생김새 자체를 바꿀 수는 없었다.
하지만 동안의 첫 번째 요소, 특히 중년 이상일 경우 가장 많이 차지하는 부분이 바로 피부다. 주름이 얼마나 많고 적은지, 얼마나 깨끗한지 등에 따라 동안과 노안 여부가 갈린다.
무료로 건강상담을 하면서 이따금씩 피부 고민으로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다. 대부분 여자들이었다. 이따금씩 성인 여드름이나 홍조 등으로 고생하는 남자들이 몇 있었고.
그래도 다른 건강상담 건수에 비하면 상당히 적은 편인데, 박종만이 이런 고민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나는 박종만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봤다.
내 능력은 생명 그 자체에 있어서 지장을 주는 게 아니면 좋은지 안 좋은지 확확 안 떠오르는 경향이 있었다.
가벼운 병이라도 감기 같은 거라면 얼굴을 보고 잠깐 생각만 해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피부(놔두면 악화가 되고, 치명적일 수 있는 것은 제외하고)나 탈모, 성기능, 가벼운 알러지 등은 그냥 본다고 알 수 없었다.
박종만은 몸은 굉장히 건강했지만, 피부 건강만 본다면 썩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추워진 날씨 탓인지 피부가 많이 상해 있었다. 자외선으로 자극을 받은 여파도 있는 듯했다. 오래 전부터 있었을 것 같은 패인 흉터도 있었고.
“일단 피부 관리부터 하셔야 될 것 같네요.”
“그렇습니까?”
“네, 선크림 같은 거 안 바르시죠?”
박종만은 멋쩍은 듯 측두부를 긁적거렸다.
“네, 발라본 적은 딱히……. 햇빛을 많이 보는 것도 아니니까요.”
“땡볕 아래서 일을 하시지는 않겠지만,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시잖아요. 선크림 꼭 바르셔야 합니다. 필수에요, 필수.”
“아아,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패인 흉터들은 못 지웁니다.”
“예? 아니, 그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립니까.”
“피부과 의사들도 말하는 내용인데요. 피부에 흉이 안 생기는 게 베스트입니다. 어떤 흉이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보통 그래요. 늘어난 모공도 마찬가지고요.”
“아니, 왜 그 레이저 같은 걸로도 지지고 그러잖아요.”
박종만은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느 정도 완화 효과가 있을 수도 있고, 사라질 수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드라마틱한 효과를 바라고 수십, 수백만 원을 쓸 가치가 있냐고 여쭈신다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
“하지만…….”
내가 운을 떼자 박종만의 눈이 커졌다.
나는 그대로 말을 이었다.
“완화 정도는 해볼 수 있겠죠?”
“아아, 그렇습니까?”
“예, 어차피 관리를 하게 되시면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부분이고 해서 뭐 과정이 확 늘어나고 하지 않으니까 해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알려드리는 방법들은 피부도 피부지만 신체에도 좋은 거니까.”
“이햐아, 역시 대표님밖에 없다니까.”
“하하……. 지금 본래 나이보다 조금 더 많아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정돈되지 못한 피부, 자외선에 자극도 받고 타서 그럴 겁니다. 잡티도 좀 있고요. 주름이야 아주 심하신 정도는 아니고.”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일단…… 기본으로 보습입니다. 지금 날 건조한테, 얼굴에 뭐 바르세요?”
“저요? 저는 씻고 나서 스킨만 착착.”
박종만은 해맑게 손으로 뺨을 두드리는 시늉을 했다.
나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보습은 필수입니다. 특히 이런 건조한 날씨에는 더욱요. 그렇다고 너무 이것저것 바르면 기름 흐르고요.”
박종만은 바로 공감하듯 미간을 좁히며 눈썹을 팔(八)자로 만들고는 말했다.
“그렇다니까요. 난 그 로션 느낌 남는 게 너무 싫더라고. 시간 좀 지나면 개기름 흐르고요.”
“그래도 필요하신 과정이에요. 요즘은 스킨, 에센스, 로션, 크림 같은 것들을 혼합해서 남성용으로 나오는 올인원 제품도 있으니 그런 걸 쓰셔도 괜찮습니다. 근데 가능하면 에센스랑 수분 크림 정도를 사용하는 거 추천드립니다. 인체에 유해한 성분은 빠진 걸로 말이죠.”
“그래요? 그럼 어디 브랜드 뭐 써야 합니까?”
“일단 마음에 드는 적당한 거 고르신 다음에 제가 알려드리는 앱에 검색해보시면 다 나옵니다.”
“오…… 별게 다 있네요. 세상 진짜 좋아졌네요.”
“그쵸? 그리고 당연히 음식도 중요한데요. 기본적으로 자주 챙겨 드시기도 좋고 동안에 좋다는 것들이 마늘, 토마토, 녹차입니다. 건강에 좋은 것들이니 드셔서 나쁠 것도 없죠.”
박종만이 씩 웃었다.
“꼭 챙겨먹겠습니다.”
“술도 줄이시고, 가끔 혼자 드시고 싶을 때는 질 좋은 적포도주를 한 잔 정도 마시는 게 좋습니다.”
“오, 와인이요? 와인은 잘 모르는데. 그냥 편의점에서 마시면 되나?”
“저렴한 프랑스산 와인도 조심해야 됩니다. 뭐, 가격으로 무조건 정해지는 건 아니지만 잘 알아봐야 해요.”
“왜요?”
“프랑스 주요 와인산지에서 생산된 것들이면 오리지날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걔네는 그지들도 와인 먹잖아요.”
나는 피식 웃고는 겨우겨우 웃음을 덜어내며 말했다.
“그런데 와인에서 발암물질이 나오는 경우가 있었어요. 술이라서가 아니라, 나오면 안 될 성분이 나온 거죠.”
“어찌 그런 답니까?”
“여러 가지 첨가물들이 들어간 거죠. 와인이 포도를 발효시키는 거잖아요? 일단 포도만으로 발효를 시키면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효모를 넣어서 인위적으로 발효를 앞당깁니까. 그리고 타닌을 넣어서 색을 더하죠.”
박종만의 얼굴이 순식간에 심각해졌다.
“뭐 그딴……. 먹는 걸로 장난치는 놈들이 제일 나쁜 놈들입니다.”
“그쵸,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죠.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아까 효모 넣었죠? 발효촉진제인 황산암모늄도 넣습니다. 그리고 산화를 막기 위해 아황산수소염도 첨가하고요. 바닐라 향을 내려고 참나무 가루를 들이붓기도 하죠. 게다가 와인이면 나무통에서 숙성을 하잖습니까?”
“예, 예.”
“나무 향을 내기 위해서 숙성 과정에 나무 조각들을 넣습니다. 사실상 쓰레기인 것들을 말이죠.”
“참내…….”
“안 그러면 매년 나무통을 교환해야 되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지는 거죠. 당연히 원가를 낮추기 위해 하는 행위들입니다. 그리고 이게 결코 작은 범위가 아닙니다. 적지 않은 저가 와인들이 이렇게 만들어져요.”
박종만은 떫은 감이라도 씹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와인 다 먹었네요.”
“모든 와인들이 그런 건 아니에요. 단지 가려서 마셔야 된다는 거죠. 제가 조만간 괜찮은 와인으로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안 그러셔도 돼요. 오히려 제가 선물을 해드려야죠.”
“싫어도 드릴 겁니다. 받으세요. 와인 즐기는 세련된 남자가 되시는 겁니다.”
나의 말이 웃겼는지 박종만은 낄낄 웃었다.
나는 박종만과 눈을 마주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하셔야 될 것들이 더 있습니다.”
“아, 네.”
“뭐…… 피부에 안 좋은 것들이야 당연히 아실 테고요. 인스턴트나 튀긴 음식, 조미료 많이 들어간 거, 맵고 짠 거, 술이랑 담배 같은 것들이요.”
“네, 네. 그렇죠.”
“예, 자제하시고요. 머리랑 전체적인 스타일을 바꾸셔야 합니다.”
“예?”
박종만은 의외라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머리랑 스타일이요?”
“예. 지금도 괜찮으시지만, 동안으로 보이길 원하시잖아요? 사람 이미지가 3초 안에 판단된다고 합니다. 거기에 헤어스타일이 반은 먹고 들어갑니다. 옷차림도 그렇고요. 그런 부분도 신경 쓰셔야 합니다.”
박종만이 허허 웃었다.
“대표님한테 그런 얘기를 들을 줄이야. 그냥 뭘 어떻게 먹어야 한다는 얘기만 들을 줄 알았는데 말이죠.”
그는 웃음기를 지우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하긴, 생각해 보면 대표님도 처음 뵀을 때보다 얼굴이 더 훤해지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전부 노력의 결과물이지요.”
“그걸 그냥 그대로 낼름 받으시네!”
“팩트니까요.”
나는 능글맞게 웃어 보였다.
“뭐…… 박 사장…….”
박종만의 머리 쪽을 힐끗 보다가 다시 말했다.
“박 대표님은 탈모랑은 거리가 멀어 보이니 그 부분은 괜찮을 거 같네요.”
사장이나 대표나.
자주 그 호칭을 혼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능하면 대표를 선호하게 됐다. 나도 그 얘기를 듣는 게 좋았고. 그 미묘한 차이가 있다. 괜히 더 있어 보이고.
“그럼 다 된 건가요?”
박종만의 물음에 나는 검지를 세우며 대답했다.
“한 가지 더요?”
“이야, 이거 동안 되는 게 쉽지 않네요.”
“그쵸? 박 대표님께서는 체지방률도 조금 줄이셔야 됩니다.”
“살 빼라고요?”
“대표님께서 근육질이신 것도 알고, 덩치 좋으신 것도 엄청 보기 좋은데요. 아무래도 얼굴 쪽 살은 조금 빠져서 턱선이 드러나야 젊어 보일 겁니다. 사람에 따라 좀 다르기도 하고, 오히려 너무 마르면 쪼글쪼글해져서 노안이 되는데요. 그런 게 아니라, 약간의 체지방률 조절만 말씀드리는 거니까요.”
박종만은 스스로 턱과 볼 부근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하긴, 최근에 항상 좀 부어 있는 느낌이긴 했습니다. 매운 거에 소주를 많이 먹어서 그런가.”
“금방 바라시는 대로 될 거라고 봅니다.”
“고맙습니다. 역시 대표님은 뭐가 달라도 달라.”
그는 ‘크으’ 소리를 내며 고개를 살살 가로저으며 엄지를 세워 보였다.
“어떻게 나이도 젊으신 분이 그렇게 모르는 게 없는지, 항상 감탄합니다.”
“대단은요. 그냥 조금 이것저것 폭 넓게 아는 것뿐입니다.”
“아무튼 이런 고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째 갑자기 그런 고민을 가지셨어요?”
박종만이 멋쩍게 웃었다.
“아니, 뭐…… 저도 사람인데 꾸미고 그런 거에 관심은 있죠. 그런데 지금까지 항상 바쁘게 살면서 시간도 없고 하다 보니까 신경 쓸 겨를이 없었죠.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혼자 살고 있고요. 그런데 저도 마음이 동하더라고요.”
“마음이 동해요?”
“예에, 최근에 관심이 가는 여자 분이 생겼는데…… 나이 차이는 그렇게 많이 나지 않는데, 그 분은 좀 동안이어서…….”
“그렇군요.”
박종만은 나의 눈치를 살피다가 말했다.
“사실 대표님하고 관계가 있으신 분이에요.”
“예?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방금 관심이 가는 여자 분이 생겼다고 했잖아요?”
“네, 네.”
“대표님하고 관계가 있다고요.”
설마하는 생각이 들었다.
숙모는 아니겠지?
숙모는 박종만보다 연상이긴 하지만 동안이라 충분히 나이를 헷갈릴 수도 있었다.
그런 건 문제가 아니었다.
숙모는 현재 이일우와 데이트를 하는 사이였다.
박종만이 숙모를 좋아한다면 잘 될 가능성이 너무 낮았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그게 어떤 분인지…….”
박종만은 혀로 입술을 한 번 적시고는 대답을 하려 했다.
왠지 모르게 긴장됐다.
나는 숨을 죽이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