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87화
20. 인지도 (6)
“이것 참…….”
어제 카페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 이상으로 화제가 돼서 걱정을 했던 터였다.
하지만 인터넷에 퍼진 반응들을 보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애초에 ‘갑질’이 주된 키워드인 것을 보고 한시름 덜고 있긴 했지만.
―요즘 세상에 아직도 저런 몰상식한…….
―덩치 큰 아저씨가 안 말렸으면 던질 기세였네요. 큰 사고로 이어질 뻔.
―저도 저번에 카페 갔는데 어떤 사람이 쌍욕까지 하더라구요~~~ 커피 한 번 시켜 먹으러 갔다가 어찌나 놀랐던지~~~ 그래서 그냥 나왔답니다~~~
―그나저나 다들 대처를 참 잘했네요.
―저기 실제로 있었던 사람인데요. 청이랑 주스, 쿠키 전부 너무 맛있었어요. 가격도 착했고요. 저 일 있고 나서 오히려 죄송하다고 서비스까지 챙겨주셨어요. 사장님이랑 직원들도 전부 너무 친절하고 좋아요.
영상이 통으로 올라온 건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뒷말이 더 나올 게 없으니까.
내가 걱정했던 부분은 있지도 않은 일을 소설처럼 꾸며내 올리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걸 경험해본 터라 더 예민했고.
CCTV 등이 있으니 일이 벌어져도 어차피 이길 수 있는 싸움이겠지만, 그 과정 자체가 싫었다.
그리고 나는 괜찮아도 강인나와 남자 직원 그리고 아르바이트생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었다.
사람들은 전부 우리 가게를 옹호해줬고, 오히려 좋은 소문이 퍼졌으니 좋게 마무리됐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럼 슬슬 가볼까.”
오전 11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스스로의 건강에 더 신경을 쓰기 시작한 탓이었다.
어제는 웰니스와 다온 오픈 준비 때문에 늦게 잠에 들었다. 안 그런 날이 없는 것 같긴 하지만.
기상 시각이 늦어지더라도 하루에 최소 7시간은 꼭 자기 시작했다. 아무리 관리를 해도 수면이 부족한 것을 완전히 채울 수 없음을 느꼈다.
그렇다고 필요 이상으로 자지는 않는다. 뭐든지 적당해야 좋다. 생마늘이 몸에 좋다고 마구 퍼먹었다가는 위장 질환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처럼.
질 높은 수면이라는 가정하에 가끔은 푹 쉬어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부족한 것보다는 무조건 낫다고 본다.
민간요법으로 잡티 하나 없던 얼굴에 트러블이 생기기 시작했고, 나도 모르게 예민해지는 것을 느꼈다.
딴 생각을 하고, 딴 짓을 할 시간을 줄이면 됐다. 깨어 있는 시간에 보다 집중력을 가지고 밀도 높게 일을 보면 아무 문제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웰웰이 오픈하고 두 번째 날인데 늦는 점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강인나를 믿으며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했다. 녀석에게 맡기지 못하면, 점장 자리에 앉힌 의미도 없으니까.
그렇게 집을 빠져나와 차에 오르려고 할 때였다.
“어이쿠, 이게 누구야!”
옆에서 울린 큰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박춘기 할아버지였다.
“어르신, 오랜만에 뵙네요. 잘 지내셨어요?”
나는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벌써 오랜 과거처럼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어쩌면 내가 지금 위치에 있을 수 있던 것도 박춘기 할아버지의 공도 컸다.
당시의 나는 작은 사치를 부린답시고 동네 냉면집에 들어갔다. 하필이면 박춘기 할아버지가 급체를 했고, 나름대로 조치를 취해 편하게 만들었다.
박춘기 할아버지는 친하게 지내는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를 했고, 그렇게 행복 건강즙 1호점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잘 지냈어?”
박춘기 할아버지의 물음에 나는 넉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예,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덕분은 무슨. 내가 뭘 했나?”
“그냥 여러 가지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감사할 것도 많네. 나야말로 고맙지, 자네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 있는 거잖아.”
“하하하, 저 아니었어도 어르신께서는 잘 지내고 계셨을 겁니다.”
“아니야, 자네가 살렸지. 나 체했을 때도 봐줬잖아. 노인네들은 음식 한 번만 잘못 먹어도 큰일 치를 수가 있거든.”
나는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건강상 크게 이상은 없어 보였다.
“요즘은 별일 없으시죠?”
“아, 잘 지내고 있지. 이제 냉면도 젊은이들처럼 그냥 후루룩 금세 먹어치워. 소화력이 아주 40대는 되는 거 같아.”
“하하하하하,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자네 요즘 아주 잘 나가더만?”
“잘 나가기는요. 그냥 동네 작은 장사들 하나씩 하고 있습니다.”
“아, 대단한 거지. 요즘 같은 불경기에 아주 훌륭해. 전부 자네 능력이고 복인 거야.”
“감사합니다.”
“뭘 맨날 감사하대. 지나가다 보이길래 불렀어. 그나저나 요즘도 그거 하나?”
“어떤 거요?”
박춘기 할아버지는 삿대질을 하듯 손을 움직이며 말했다.
“거, 있잖아. 상담해주고 하는 거.”
“아, 네. 요즘도 건강 상담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래? 혹시 잠깐 시간 좀 되나?”
“시간이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아, 다른 게 아니라, 저기 슈퍼하는 김 영감네 손자가 딸꾹질이 안 멈춰서 아주 생쇼를 하고 있더라고. 잠깐 봐줄 수 있나?”
“딸꾹질이요?”
‘큰일이 아니라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겨우 딸꾹질로’라는 생각도 들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후자의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다른 생각으로 이어가지 않았다. 스스로가 옳다는 방향으로 행동했다.
“그럼요, 가능하죠. 가시죠.”
“어, 어. 고마워.”
“고맙긴요. 거리가 먼가요? 차로 가실까요?”
“아니야, 여기 바로 앞이야. 저기 보이는 슈퍼 있지? 저기야.”
“아, 네. 가시죠.”
바로 박춘기 할아버지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일부러 부르거나 할 필요도 없었다.
슈퍼 앞에서 네다섯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옆에 서 있는 할아버지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지! 그렇게! 그렇게 해서 물을 천천히 삼켜봐!”
아이는 그대로 입에 머금고 있는 물을 꿀꺽 삼키고는 고개를 들었다.
“푸하.”
“어때? 괜찮지? 멈췄지?”
할아버지의 물음에 아이는 눈만 깜빡거렸다. 그러다 전신을 들썩거렸다.
“흐끅.”
딸꾹질은 멈추지 않았고, 할아버지는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이고…….”
그때 박춘기 할아버지가 손을 내저었다.
“에이, 뭣도 모르면서. 어여 비켜봐.”
할아버지는 인상을 찡그린 채 고개를 돌렸다가 나를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어이쿠, 최 사장이네?”
슈퍼 할아버지는 나를 보고 반갑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실제로 본 적도 없고,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었다.
아마도 나를 티비로 보거나 소문을 통해 들은 적도 있을 테고, 같은 동네 사람이라 친근감을 느낀 듯했다.
나는 씩 웃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아이를 힐끗 보고는 물었다.
“애가 계속 딸꾹질을 하나 봐요?”
“아, 그러니까 말이야. 몰래 먹은 것도 없는데 계속 그러네. 허허허.”
“제가 잠깐 봐도 괜찮을까요?”
“그럼, 봐주면 고맙지.”
나는 곧장 쪼그려 앉아 아이와 시선을 맞췄다.
“딸국질 안 멈춰서 힘들어?”
나의 물음에 아이는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딸꾹질을 했다.
“예, 하고 대답해야지.”
옆에서 할아버지가 말했다.
박춘기 할아버지는 인상을 찡그렸다.
“조용히 하고 있어. 뭘 쓸데없이.”
“아니, 애 예의범절 가르치는 거 아녀.”
“예의거들랑 이따 챙기고, 일단 딸꾹질 멈춰야 될 거 아니야. 거, 참.”
“뭘, 거 참이여. 나 참.”
“왜 자꾸 참참 그래?”
나는 두 할아버지를 보고 피식 웃고는 다시 아이와 눈을 마주쳤다.
“아저씨가 딸꾹질 멈추게 해줄까?”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가 뒤늦게 “네.” 하고 대답했다.
나는 피식 웃어 보였다.
숨을 참는 건 이미 해봤을 것이다. 네다섯 살짜리 애가 스스로 숨을 길게 참지도 못 했을 거고.
방금 물을 마시는 것도 해봤고. 그것도 나름대로 떠도는 민간요법으로 고개를 숙이는 방법도 사용했고.
아마 놀래주는 방법도 당연히 써봤겠지. 어차피 내게 떠오른 민간요법들 중에서 놀래주는 것은 있지도 않았고. 효과가 있더라도 어린아이에게 쓰기에 결코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건강에 문제가 되는 질환 같은 게 아니어서인지 딸꾹질을 한 방에 멈추게 할 무언가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딱 하나만 떠오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도해볼 방법들은 여러 가지였다.
“자, 가만히 있어봐.”
나는 천천히 아이의 귀로 손을 가져갔다.
“어, 어…….”
아이가 조금 겁을 먹는 듯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아프거나 그런 거 아니야. 약속.”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아이가 손가락을 걸어왔다.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았다.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가질지 말지는 모르겠다고. 그리고 아이를 가진다면 아들보다는 딸을 갖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내게 손가락을 걸어오는 아이를 보니 아이를 가지고 싶어졌고, 아들이든 딸이든 아무 상관도 없을 것 같았다.
이름도 모르는 남의 애도 이렇게 예쁜데, 내 애는 얼마나 예쁠까.
나는 손가락으로 새끼손가락으로 아이의 귀를 막았다. 그리고 동시에 귓불을 주물렀다. 그걸 약 30초 동안 지속했다.
그 동안 아이는 편안한지 가만히 있었다. 딸꾹질도 하지 않았고.
나는 손을 떼고 나서 아이를 유심히 지켜봤다.
약 5초.
“오……! 멈췄네! 멈췄―”
슈퍼 할아버지가 목소리를 높이는 순간이었다.
“흐끅.”
아이가 다시 딸꾹질을 했다.
박춘기 할아버지는 슈퍼 할아버지의 팔을 밀치며 핀잔을 줬다.
“영감탱이야, 호들갑 떠니까 애가 다시 딸꾹질하잖아.”
“아, 그게 왜 내 탓이야?”
“애가 딸꾹질을 다시 하고 있잖아.”
나는 할아버지들이 투닥거리는 소리를 라디오처럼 들으며 다음 방법으로 넘어갔다.
이번에는 손 지압이엇다.
아이의 손을 전체적으로 마사지를 하면서 특히 손바닥과 새끼손가락 첫마디를 집중적으로 주물렀다. 그걸 거의 1분 동안 지속했다.
“어때? 시원해?”
나의 물음에 아이는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볼살을 가볍게 꼬집었다.
마사지를 마치고는 손을 뗐다.
아이는 어느새 딸꾹질을 멈추고 있었다.
“이야아아아, 이번엔 진짜로 멈췄네! 멈췄어! 용하네, 용해!”
슈퍼 할아버지가 호들갑을 떨자 박춘기 할아버지는 마치 자신이 해낸 양 으스댔다.
“거봐, 맡겨보랬지?”
“언제는 내가 안 맡긴댔나?”
“아무튼!”
나는 시간을 살짝 확인하고는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일을 가봐야 해서요.”
“아, 그래? 어디로 가는가? 행복 건강즙?”
“아니요, 다른 가게로 갑니다.”
“그래? 2호점?”
“아니요, 다른 가게요.”
“다른 것도 열었어? 뭐 하는 곳인데?”
“건강 주스 파는 곳이요.”
“그래? 나도 한 번 가야겠네?”
“제가 자주 있지는 않은데, 오시기 전에 연락 한 번 주세요. 그럼 서비스 드리라고 할게요.”
박춘기 할아버지는 손을 내저었다.
“서비스는 무슨. 돈 주고 사먹어야지. 그런데 가서는 공짜 바라는 거 아녀. 팔아주러 가는 거지.”
“하하,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주스 카페는 어르신들께서 좋아하실지 잘 모르겠는데, 아마 내년에 한식당도 열 거 같거든요. 그때 꼭 한 번 모시겠습니다.”
“한식당? 식당까지 허게? 어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겄네.”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그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식당은 또 저희 작은아버지가 맡아서 운영할 거거든요.”
“그렇구만. 나중에 개업하면 꼭 말해. 내가 동네 영감탱이들이랑 할망구들이랑 데리고 꼭 갈라니까.”
“예, 그때 꼭 찾아와주세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려어, 들어가. 욕 봤어.”
그때 슈퍼 할아버지가 병에 들어 있는 두유를 가지고 와서는 내게 내밀었다.
“이거, 이거라도 하나 먹어.”
“아니요, 괜찮습니다.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아, 이미 땄어. 먹어.”
“그럼 감사히 먹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두유를 건네받았다. 뜨끈했다. 옛날에 이따금씩 할머니가 뜨끈한 두유를 줬던 게 생각이 났다.
“나중에 또 보자. 안녕.”
인사를 건네자 아이는 양손을 앞으로 모으고 고개를 꾸벅였다.
“안녕히 가세요. 감사합니다.”
또박또박 말하는 게 어찌나 귀여운지.
나는 손에 쥐고 있는 두유보다 더 뜨끈해진 마음을 그대로 품고 몸을 돌렸다. 걸음을 옮기며 두유를 한 모금 마셨는데, 달달한 게 입에 쩍쩍 달라붙었다.
그때 뒤로는 박춘기 할아버지와 슈퍼 할아버지가 얘기를 나누는 게 작게 들려왔다.
“하여튼 젊은 친구가 대단해.”
“대단하니까 텔레비전도 나오고 출세했지.”
“아, 누가 몰라서 말해?”
“아무튼 고마운 젊은이야.”
“내가 그 말하던 거 아니여.”
그때 아이가 목소리를 냈다.
“할아버지들 싸우지 마세요!”
나는 피식 웃고는 두유를 싹 비우며 걸음을 옮겼다.